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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01/12  한민족신문
80년대, 칼라TV를 사던 이야기

나는 하마탕향 수의소에서 근무하다가 1987년 사업의 수요로 왕청진 가축병원 소장으로 임명받고 전근하였다.

 

금방 왕청에 집을 잡고 낮에 출근하다가 저녁에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면 텔레비전이 없어 그 시간이 너무나도 지루하고 답답하기를 말이 아니였다.

 

그래서 아이들과 옛말이나 하고 시시 잡담하며 잠을 청하기도 하였지만 온 집 식구가 저녁을 먹고 기본 문화생활인 텔레비전 시청도 못하니 모두가 너무 허전하였다.

 

지금 같으면 핸드폰으로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니 TV 없어도 무방하지만 그때에는 텔레비전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나 마찬가지였다. TV를 시청하지 못하니 마치도 하루 저녁이 일 년 밤을 지내는 지루한 느낌이였다.

 

80년대에는 우리 마을에는 칼라텔레비전은 한 대도 없었으며 흑백텔레비전도 십 여대 밖에 되지 않았다.

 

그때에 우리는 그나마 흑백털레비가 있었다. 마을의 아이들은 저녁밥을 먹고는 TV 보러 몰려와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거리낌 없이 자리를 비집고 틀고 앉아 구경하군 하였다. 그래서 우리 집 식구는 앉을 자리마저 없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에는 마을이 진흙길 이여서 비가 오면 미끌어 걷기가 힘들어서 바지가 진흙투성이가 되어 다니기도 했다. 저녁에 아이들이 털레비전을 다 본 후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온돌은 온통 흙투성이 된다. 그러니 집은 수라장이 되어 한참이나 쓸고 닦으며 청소해야만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그 후 내가 왕청으로 전근하게 되어 TV를 가져가면 처가 집 아이들이 눈치 보며 남의 집으로 털레비전 보러 다녀야 하니 털레비전을 아예 처가 집에 주고 우리는 왕청에 가서 칼라텔레비전을 사기로 하였다.

 

왕청 시내로 이사한 후 며칠 지나서 저축해 놓은 돈 2000원을 가지고 백화 상점으로 칼라털레비전을 사러갔다. 각지각색의 TV가 많았는데 가격이 엄청 비쌌다. 제일 싼 것이 3000원이 넘었다. 내가 갖고 간 돈으로는 근본 어림도 없었다. 그리하여 다른 상점으로 여러 곳을 돌아 다녀 보았는데 마침 수도국에서 경영하는 상점에서 판매하는 20인치 칼라 텔레비전이 크기가 딱 맞춤한데다가 가격마저 맞아 2000원을 지불하고 구매하였다.

 

그때에는 너무 기뻐서 장밤을 새어 가면서 보았다. TV를 사오고 온 가족이 한자리에 단란히 앉아 웃음보를 터뜨리며 칼라텔레비전을 시청하던 그때가 제일로 기쁜 것 같고 세상의 행복을 우리만이 안고 사는 느낌이었다.

 

며칠 지난 후 우리 옆집에서도 칼라텔레비전을 사왔다. 저녁을 먹고 그 집의 텔레비전이 어떤 것인가 궁금하여 가 보니 웬걸 우리 집에서 산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았고 진짜 명실에 부합되는 천연색 털레비전이어서 깜짝 놀랐다.

 

속담에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가 하늘이 얼마나 큰 줄을 모른다" 더니 나는 처음으로 칼라 털레비전을 접하였기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는데 옆집의 텔레비전과 대조하여 보니 정말로 하늘과 땅 차이로 느껴지며 우리가 구매한 텔레비전은 너무 안 좋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속상해서 그날 밤 아예 한숨도 못 잤다.

 

이튿날 출근을 미루고 상점 영업시간을 기다려 부랴부랴 밀차에 텔레비전을 싣고 숨 가쁘게 한참을 헐떡거리며 밀고 가서 상점 책임자를 찾아 텔레비전을 바꾸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실수로 견본으로 보던 것을 주어서 효과가 나쁘니 다른 새것으로 바꿔 준다고 하였다. 새것을 갖고 와서 포장을 뜯고 전원을 켜보니 원래 것보다 좋았으나 옆집 TV에 비하면 그래도 현저히 차이가 났다. 그때에는 물건을 사려면 모든 것을 밀차로 짐을 운반해야 함으로 정말 힘들었다.

 

이튿날 또 바꾸러 갔다. 상점 경리가 나를 보더니 "왜서 또 왔는가" 물었다. 나는 미안하지만 어제 상점에서 실험 해보지 못해 집에 가서 상자를 뜯고 TV를 켜보니 시청 효과가 좋지 않아서 또 바꾸려 왔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어제 하고는 태도가 완전 달라지며 하는 말이 "현재 2000원 가격이면 이 정도가 표준이니 10개를 보아도 모두 똑 같다" 며 그런대로 보라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만약 마음에 정 안 들면 1000원의 돈을 더 지불하고 3000원 짜리의 더 좋은 TV로 바꾸어 가라고 하였다.

 

그때 왕청으로 이사를 금방 왔으니 경제 조건으로 울며 겨자 먹기 하듯이 할 수 없이 다시 그런대로 집으로 그냥 돌아와 반년 동안 섭섭한 대로 보았다.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마음 상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차후에 꼭 빨리 돈을 모아 좋은 것으로 바꿔 오리라 하고 결심하였다. 그 후 아글 타글 돈을 모아 1000원을 준비하고 나니 어느덧 눈 깜짝할 사이 반년이 훌쩍 지나갔다. 하마탕에 있을 때에는 일 년 넘게 시청하고 새것으로 바꿔 온 적도 있었는데 반 년쯤은 일 년의 절반이니깐 꼭 바꿔줄 것 이라고 자기 좋은 생각을 하며 세척제로 텔레비전을 깨끗이 닦고서 1000원을 호주머니에 넣고 경리를 찾아갔다. 웃돈을 더 주고 새것으로 바꿔 달라고 했더니 경리는 코웃음 치며 응대도 하지 않았다. 반년이나 넘게 시청하던 텔레비전을 어느 현장 간부 어른이 와서 사정해도 안 된다고 하며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는 그만 실망했다.

 

상점 경리한테 "하마탕에서는 일년 넘게 시청하던 텔레비전이 고장 나서 두말없이 새것으로 바꿔어 주었는데 여기서는 왜 안 되느냐"고 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 우리는 봉사 업종에만 있다 보니 남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군중들의 많은 곤난을 해결해 주었고 많은 것을 베풀며 살던 습관이 있었다. 그렇게 자기 좋은 생각으로 반년이 넘게 보며 지났어도 그냥 바꿔 줄 거라고 착각하였다. 텔레비전을 다시 집으로 가져다 놓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해가 안 되었다. 이튿날 또 상점 경리를 찾아가기로 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일찍 잃고 가정의 호주 노릇하며 끈질긴 인내성과 법에 어긋나지 않는한 마음 먹으면 꼭 해내는 외고집 성질을 키워 오다보니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꼭 하려고 들었다. 나는 이튿날부터 경리와 느슨한 마라톤 경기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상점경리를 만나서 "나에게는 2000원이면 아주 큰돈이지만 이렇게 규모가 큰 상점은 마치도 20전 같으니 경리께서 그렇게 알고 백성들에게 인심을 베플어 달라"고 사정하였다. 법에 위반되는 것도 아니고 법에 걸릴 문제도 아니니 꼭 방조해 달라고 손이야 발이야 빌며 사정했다.

 

사람이 함께 사는 세상이니 필요할 때 남에게서 방조를 받을 때도 있고 서로 도움이 필요하면 남을 도와주며 살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수도국 상점으로 경리보다 먼저 출근해 경리가 오기를 기다렸고 어디로 가면 어디로 따라 다니며 사정했으나 응답이 없었다. 이렇게 끈질기게 일주일 다니고 나니 생각 밖으로 기적이 나타났다.

 

너무 끈질기게 경리가 위생실 가도 따라 다닐 정도였으니 아무리 목석이라도 감동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도 끈질긴 내 정신에 감동 되었는지, 아니면 너무도 귀찮아서 그러는지 텔레비전을 바꿔 주겠다고 하여 결국 바라는 대로 소원을 이루었다.

 

그는 나 보고 "그런데 선생님은 어느 단위에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왕청 하북 다리 옆 가축병원에서 사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잠간 있다가 새로운 칼라텔레비전을 바꾸어 주었다. 내가 상자를 뜯고 테스트해 보자고 하니 웃으며 검사할 필요 없으니 집에 가서 전원을 꼽고 시청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칼라텔레비전을 밀차에 실은 후 경리에게 앞으로 나의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인사하고는 돌아왔다.

 

텔레비전을 집으로 가져와서 전원을 켜보니 진짜로 맘에 들었는데 옆집의 텔레비전보다도 훨씬 더 좋아 보였다. 그렇게 내 가슴속을 짓누르던 고민거리를 해결하니 더 없이 기쁜 심정은 말 할 수도 없어 매일 내가 맡은 수의사업에 더 열중하게 되었다.

 

텔레비전 문제가 해결된 며칠 후 수도국 상점 경리가 어쩐지 나를 찾아와 반갑게 인사하며 전 선생님이라 부르며 자기가 온 목적을 말했다. 알고 보니 그는 짱오라는 왕청에 몇 마리 없는 희귀한 개를 기르고 있었는데 며칠 전부터 병에 걸려 여러 곳을 다니었고 심지어 연길 동물병원까지 다니며 치료하여 거액의 돈을 썼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어서 빨리 치료 안 하면 죽을 것 같다며 마지막으로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마치도 물에 빠진 사람이 한 오리 짚 오리라도 잡으며 목숨 구하려는 일념인 듯 하였다.

 

그때 나는 이 기회에 나의 의술을 모두 발휘하여 텔레비전을 바꿔준 고마움을 되갚으려고 개를 잘 치료하리라 마음먹었다. 병든 개를 세심히 검사해 보니 "传染性细小病毒“ 병이였다. 만약 증상이“犬瘟“병이라면 사망률이 80%까지 되어 위험하며 "细小病毒" 병에 걸리면 50% 사망확률이 되니깐 정성들여 치료하면 괜찮아서 치료 후유증도 없을 것 같았다. 몇년래 애완견 치료약을 만들었는데 80%가 이 약을 쓰면 치료되었다. 경리가 키우는 개를 3~4일간 치료하였더니 완전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개가 죽음에서 벗어나게 되어 너무도 감동되고 고마웠는지 많은 돈을 주려고 했다. 그 당시 짱오라는 큰개의 몸값은 인민페 만여원이 더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상점 경리로서 틀을 차리며 하찮은 수의사 일을 한다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나의 신세 덕에 만원도 넘는 개를 살렸다면서 너무나도 존경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치료비가 얼마인가고 물었다. 그러나 나는 그냥 사양하였다. 이 기회에 그에게서 받은 텔레비전의 신세를 갚으려는 마음에서였다.

 

그 후에 우리는 여러 번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깍듯이 인사하며 2년이 지나도록 “彩电好不好“ 하고 물어보았다. 나도 “很好“ 라고 하였다.

 

30년이 넘은 세월이 흐르니 인젠 그 경리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은 세월과 함께 내가 왕청에 와서 칼라텔레비전을 구입 한지도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때 경제적으로 부족하여 저렴한 가격의 텔레비전을 사서 반년 넘게 속을 썩이며 몇 년은 더 늙어간 것 같다. 그 일이 있은 후 부터 나는 큰 교훈을 살려 인생을 살게 되었다.

 

칼라텔레비전을 구매하느라고 한바탕 신경질적으로 소란스러웠던 그때를 되돌아보니 허구 픈 웃음이 앞서면서 그때의 해프닝을 이렇게 적어본다.

/전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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