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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05/09  한민족신문
나의 한국 생활 정착기

나는 한국에 와서 연변과학기술대학 간호학부에서 알게 된 이죽자 선생님댁에 얹혀 살았다. 이듬해 3월 초에 남동생도 한국에 오겠다고 해서 보증금 400만원을 겨우 마련하고 급하게 선생님께서 살고 계시는 주변에서 제일 싼 반지하 월세 방를 계약하였다.

 

선생님께서 이불과 주방에서 쓸 그릇, 식기, 밥상, 칼, 식용유와 주방세제까지 챙겨주셔서 불편없이 서울에서의 새살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참 고마우신 분이시다.

 

이사하던 날, 집에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습도가 집안을 장악하여 온밤 잠들 수 없었다. 발바닥에 쩍쩍 밟히는 습기는 온몸에 덮쳐들어 암담함을 주었다. 습하기로 목욕탕에 누운 느낌이었다. 반지하 방이 습하다는 말은 들어 왔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밖이었다. 밖은 아직 추워 창문을 열 수 없는데 집안은 젖어 있어 안에 있는 사람도 눅눅하고 전체가 끈적이는 느낌이었다. 퀴퀴한 냄새에 숨이 콱콱 막히었고 습도는 최고치를 찍었다.

 

온돌 바닥재를 들어보고 깜짝 놀랐다. 글쎄 바닥이 온통 물 천지였다. 뜬눈으로 날을 새고 집주인한테 연락하였더니 사모님이 공사하시는 분과 같이 오셔서 둘러보셨다. 그 사장님의 말로는 어딘가 보일러 배관이 누수된 것 같은데 200~300만 원의 보수비용이 들거라고 한다.

 

공사비에 깜짝 놀란 사모님이 계약을 해지 해주고 집을 비워두겠다 한다. 보증금을 돌려받고 종일 집 보러 다녔지만 그 보증금으로는 주변에서 다른 방을 구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이다. 지프라기라도 잡을 만큼 절실했다. 절박했던 순간에 남동생이 용기있게 자기가 공사를 직접 해보겠고 나섰다. 동생의 말로는 겨우내 비여 있어서 동기가 든 집에 보일러를 돌리니 물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단다. 나는 직접 수리하겠으니 전세로 싸게 해달라고 사모님께 사정해 보았다.

 

몇일 동안 보일러를 높은 온도로 돌렸더니 벽이며 바닥이며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종일 보일러 돌리고 물을 닦아내고 선풍기 켜고 했더니 집안은 차츰 마르기 시작했다. 다행이 동생의 판단이 맞아서 공사는 하지 않고 600만원에 전세 계약을 하였다. 모자라는 200만 원은 벌어서 한달 후에 갚으라고 집주인 사모님께서 배려해 주셨다. 나는 계약서를 받아쥐고 가슴 절절히 밀려오는 감동에 그만 울컥했다. 소문에는 전세 사기도 많다는데 나는 들어보지도 못한 후불 전세 계약을 하였다. 부동산 사장님의 말대로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싼 전세였고 한국 부동산 계약에서 있을 수 없는 후불 전세 계약이었다.

 

싼게 비지떡이라, 집수리는 만만치 않았다.

전 세입자가 버리고 간 쓰레기가 담벽옆에 무더기로 쌓여 있고 윗층에 사시는 할머니가 대문 안팎에 폐지를 잔뜩 쌓아 두어서 동네 사람들이 쓰레기도 무단투기하였다. 게다가 쓰레기더미에는 바퀴벌레까지 득실거렸다.

 

집은 반지하라는 단점이 있긴 하나 한 사람 누울만한 작은방과 침대 놓을 만한 큰방 하나 주방과 화장실까지 있을 건 다 있는 구조였다. 게다가 보일러실이 밖에 따로 있어서 세탁기를 놓을 수도 있고 창고로도 쓸 수 있었다. 대문안의 작은 공간은 반지하 두 세대에서만 쓸 수 있게 되어 있다. 다른 세대들은 대문 밖의 계단을 이용하였고 대문밖에도 작은 공터가 있다.

 

마치 쓰레기장 같이 된 집을 동생하고 둘이서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윗층 할머니에게 폐지를 치워달라 부탁하였다. 대문 밖의 쓰레기와 담벽 옆에 쌓여 있는 쓰레기부터 치워버리고 동사무소에 가서 쓰레기 무단투기 경고장을 받아다 걸어 놓았다. 쓰레기 무단투기에 무언의 도전장을 던진 셈이다.

 

대문 안 작은 마당도 물청소까지 깨끗이 해놓고 동대문 도깨비시장에 가서 방수 페인트와 실내용 흰색 페인트를 사왔다. 페인트 가계 사장님이 가르친 대로 흰색 페인트에 연두색 페인트를 9:1 비례로 배합하였더니 내가 좋아하는 연한 옥색이 나온다. 배합된 옥색 페인트를 집안의 방문, 화장실 문, 작은방의 미닫이문과 창문들을 칠했다. 집안 벽지를 뜯어내고 곰팡이를 제거한 후 새로 도배도 하였다. 습기를 방지하려고 바깥벽과 바닥을 방수 페인트로 칠하고 대문 안의 작은 마당도 초록색 방수 페인트로 칠하니 효과는 가관이었다. 썩은 이를 뽑아낸 듯한 이 상쾌함,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와~, 드디어 해냈다. 웬지 모를 뿌듯함과 감동이 밀려왔다. 자랑스러웠고 가슴이 벅차서 친구들한테 잘난 척도 해봤다.

 

마당의 초록색 방수 페인트가 생명력이 넘치는 잔디밭을 상상하게 해줘서 한결 활력을 주었다. 마당에 건조대를 펼쳐 빨래를 널어 놓고 스킨답서 큰 화초를 사다 놓으니 제법 정결하였다. 옆집 세입자가 빨래터로 쓰기가 아깝다며 테이블 놓고 노천카페를 하자는 농담도 하였다.

 

이렇게 한달 동안 퇴근하고 짬짬의 시간으로 동생과 둘이서 셀프 인테리어를 하였다. 중고 가전에서 냉장고 세탁기 가스렌지를 사다 놓고 큰 방에 침대와 간의 장농도 들여놓았다. 티비다이는 이사 가는 집에서 줘서 갖다 놓고 티비는 당분간 중국에서 가지고 온 노트북으로 시청하기로 하였다.

 

아담하고 깔끔한 새집으로 변신한 집은 너무 훌륭했다. 비록 반지하이긴 하지만 서울에서 허기를 채울 수 있고 지친 몸을 편하게 재울 수 있는 내 집이 있다는 게 행복했다. 적은 돈으로 전세까지 마련 한데 만족했고 뿌듯하였다. 또 한번 집주인의 사랑에 감사했다.

 

꾸미기를 좋아하는 나는 인형 옷이랑 만들어서 문고리에 걸어놓고 조화 바구니도 창가에 놓아 아담하고 포근함을 한결 더 업그레이드 시켰다. 이죽자 선생님과 집주인 사모님께서 "아니~, 헐망했던 집이 이렇게 변할 수 있어요?" 하시며 깜짝 놀라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고맙다." 고 응원해주시고 "생활력이 강하다." 고 연신 칭찬해주셨다.

 

그 집에서 동생은 창호 기능사로 중국에 있는 가족을 부양했고 아들 대학공부 뒷바라지를 하였다. 나는 간병 일을 하면서 열심히 돈 벌어서 노후준비를 하였다. 우리 남매는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이 보금자리를 재개발로 6년 만에 아쉽게 떠났다. 우리에겐 그냥 집이 아니라 한국 생활 정착에 희망을 주었고 고국의 사랑을 주었던 더없이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수년이 지났는데도 그때의 행복이 추억으로 오래도록 잊혀 지지 않는다. 한국 생활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이죽자 선생님과 집주인 사모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아직 그대로이고 그 사랑이 방울방울 추억으로 맺혀 나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나는 지금 성취의 기쁨을 안고 새 희망을 붙들고 한국 생활에서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김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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