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대 명절, 설날이 턱 밑에까지 바투 다가 왔다. 올해 고향의 설은 어떤 풍경으로 다가 올까? 한해 한 번씩 찾아오는 설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고향의 설풍경이라서인지 어린 시절에 손꼽아 기다리듯 요즘도 설을 기다린다.
내 기억속의 고향의 설은 먹는 것과 입는 것이 제일 이름다웠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먹을 것, 입을 것이 귀했던 세월이었다. 그래도 한해 한 번씩 찾아오는 설날이면 개 눈알 사탕 한 알, 엿 한가락을 먹을 수 있어 행복했고 새 옷 한견지라도 해 입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어 좋았다. 설날 아침이면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과 동네 좌상 노인들에게 세배를 올리고 개 눈알 사탕과 엿 한가락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친구들과 무리지어 한족동네에 가 "양걸 춤"을 구경하고 그 뒤를 따라다니며 흉내를 내며 즐기는 것이 좋았다.
내 기억속의 고향의 설풍경은 집집마다 사람들로 차 넘쳐 좋았다. 설이면 외지에서도 친척들이 몰려와 집안을 채웠고 설음식을 만드노라 아랫목은 늘 뜨겁게 달아 있었다. 콩나물에 배추김치, 곱돌 장, 두부가 전부였지만 입이 데는 줄도 모르고 호호거리며 먹는 음식이 천하별미였다. 밖에서는 눈보라가 하얗게 일어도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로, 개구쟁이들의 폭죽소리로 동네는 들끓기만 했다.
내 기억속의 고향의 설풍경은 소박한 인정이었다. 생산소대별로 소, 돼지를 잡고 남녀노소가 한데 모여 즐기는 환락의 장이었다. 윷이며 트럼프를 치다가도 어느 사이엔가 술상이 마련되고 소주 한잔으로 서로의 마음을 풀었다. 그러다가 흥이 나면 바가지장단에 젓가락 장단까지 합세해 "도라지", "쾌지나 칭칭"을 불렀고 구들장을 꺼지게 덩실덩실 어깨춤을 췄고 손과 발을 얼구면서 마을길에서도 춤을 췄다.
그러나 어느 해부터인가 고향의 설 풍경은 한적하고 한산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엿을 다리던 아낙네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오가며 세배를 하던 사람들의 모습도 사라졌다. "아리랑"을 부르던 생산대 대장이 해외로 나가고 "도라지"를 추던 부녀주임이 도시로 가고, "쾌지나 칭칭"을 부르던 옆집 아저씨도 자녀 따라 도시로 떠났다. 설에나 고향을 찾던 자녀들도 사업이 바쁘다는 이유, 차표를 사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이유, 혹은 귀향길이 멀어 오가는 길에서의 피로가 무섭다는 등등에서 오는 이런 저런 원인, 또는 이유로 고향을 찾지 못하고, 그래서 고향에는 홀몸으로 외롭게 설을 맞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형제, 친척들로 법석이던 집안에 한기만 가득하고 고향집을 지키는 이들이 그리움에, 외로움에 지쳐가고 있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금년의 설은 어떤 풍경일까. 휘청거리는 몸을 지팡이에 간신히 의지한 채 동구 밖에서 한겨울의 추위에 백발을 날리며 이제나 저제나 고향을 찾을 아들딸, 손자손녀를 기다리는 노인들의 초라한 모습이 재현될까. 아니면 집집마다 웃음과 노래로 차 넘치고 해도 달도 기웃거리며 부러워하는 풍경일까.
이제 곧 설이 다가온다. 어제 날의 고향의 설풍경이 그리워진다.
/허명훈 수원시
http://www.hmzxinwen.com/news/8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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