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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10/10  한민족신문
쪽지 한장으로 찾은 사랑

여지껏 살아오면서 혼인중매를 선 적이 몇번 있었는데 쪽지 한장으로 혼인을 성사시켰던 일이 제일 인상 깊은 일로 남아있다.

 

내가 서른다섯살 나던 해인 1990년 나는 여러신문사의 통신원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해 6월 16일에 길림신문에 내가 쓴 “석방된 한 청년에게 보내는 편지”란 제목으로 쓴 글이 실렸는데 내 사업단위주소까지 밝혔었다.

 

그 글에 마음이 울렁이였던 몇몇 글쟁이 열혈 청년들이 편지를 보내왔는데 그 중에 도문시 모촌에서 살고 있다는 최씨도 있었다. 최씨는 그때 통신도 쓰지만 소설공부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보다 많이 년하였지만 같은 글쟁이라는 리유로 편지를 자주 오가고 하다가 어느날 안도현 만보에서 살고 있는 우리집에 찾아오기까지 했다. 그때 교통이 불편하여 만보까지 오려면 차를 여러번 갈아타면서 오다보니 긴 시간이 걸려야 했으므로 무척 힘들었다. 그를 만나고보니 후리후리한 키에 짙은 눈섭아래서 이글대는 눈, 거기에 말재주도 청산류수인 최씨는 전형적인 미남이였다.

 

처음에는 얼굴이나 익히려는 목적으로 왔겠지하고 생각했는데 결국 내 도움을 받자고 온줄이야.

 

“박누님. 내 왜서 그 먼 도문에서 여기까지 왔는가하면 좀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글쎄 꿈에 고인이 된 할아버지가 오셔서 날 보고 너의 장가문제는 안도에 있는 박씨라는 녀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조상이 돕자고 찾아온 꿈은 꼭 길몽이라고 생각하고 찾아왔습니다. ”

 

나는 할말을 찾지못해 한동안 입을 벌리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내 재간에 어떻게 색시감을 소개한단말인가요? 더구나 불시로....”

 

“난 어떻게하나 꼭 도움 받겠습니다.”

 

이건 무작정 색시감을 얻어달라는 말이 아닌가?

 

(그럼 한번 나서보자. 일이 성사되면 좋은 일을 한것이니까)

 

그때 나하고 편지 통하는 통신원 처녀애들이 몇이나 되였는데 나는 하나하나씩 머리속에 떠올려보았다. 물론 내가 살고 있던 고장에도 통신을 쓰는 처녀들이 몇이 있긴했지만 조건상에서 별로 적합하지 않아보여 포기하고 연변의 어느 시골에서 사는 농촌처녀애를 두고 무릎을 탁 치게 되였다.

 

(나이도 맞고 또 둘다 통신원이니까 마주세우면 될것 같아. )

 

성이 장씨라는 그 처녀애를 비록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녀도 통신을 쓰고있기에 우리둘은 마음이 통해 할말도 많아서 한참 편지로 거리를 가깝게 하고 있었다. 여러통의 편지를 통해 아주 녀성다운 기질도 갖추었고 심성도 착하다는 감각이 생겼다. 나는 그녀가 쓴 소식보도가 실린 신문을 최씨한테 보이면서 이 처녀가 좋을거라고 말했다. 그때 시대는 오직 편지로만 련락할수 있어서 나는 그 처녀애한테 쓴 쪽지를 최씨한테 주면서 찾아가보라고 했다. 쪽지 내용이라야 내가 최씨에 대한 느낌과 찾아가면 만나주고 잘 고려해보라는 부탁을 쓴 간단한 몇줄의 글이였다.

 

최씨가 떠나갈때 나는 이쯤 노력했으니 일이 되고 안 되는건 운명이 결정하는거니 다시는 날 찾지 말라는 말까지 하고는 그후 그 일을 내 머리속에서 지워버렸다.

 

어느날 최씨가 편지를 보내왔는데 이렇게 썼다.

 

선배님이 써준 쪽지를 들고 낯선 처녀를 찾아가는 순간은 마치 길을 잃은 사람이 지도를 찾는 것 같았고 두려움과 설레임이 뒤섞인 발걸음이였습니다. 원래는 누님이 함께 해야 할 걸음인데 혼자 찾아간다는것이 정말 담대함이 없이는 엄두도 못 낼 일이죠. 처녀를 본 적이 없었지만 "그녀의 글처럼 따뜻한 사람일 거야"라고 믿었죠.

 

그 처녀를 찾아가서 쪽지를 내민후 그녀의 밝은 표정을 보노라니 신심이 생겨나서 말했지요.

 

‘ 저는 글을 통해서 또 박선생님을 통해서 그대를 좋아하게 됐어요.’

내 말을 들은 처녀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나도’라고 속삭였어요......참 날듯한 기분이 아니고 뭡니까? 우리는 몇번의 만남에서 사랑이 무르익고 있음을 느끼면서 결혼까지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박누님 인제와서 실토정할건데 다르게 생각마세요. 사실 그때 내가 꿈 얘기를 한건 다 꾸며낸건데 그렇게 꾸미지 않고는 도와달라는 말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누님은 마음이 후더운 사람이니 꼭 도와주리라고 믿었습니다.

......

 

세상에 이런법도 있단 말인가? 처음에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짓는것으로 끝낼 줄 알았는데 갑자기 '킥킥 ㅡ'하는 웃음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그 다음엔 ‘호호호'로 커지고 말았다.

 

그후 나는 이 일을 친구들한테 외운적 있었는데 듣는 친구들마다 모두 웃음보가 터졌다. 결국 나 혼자만의 웃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웃음으로 번지고 말았다.

 

그후에 처녀가 나한테 편지왔는데 이런 재미나는 구절도 있었다.

 

그 총각이 쪽지를 나한테 넘겨줄때 그의 떨리는 손과 긴장한 표정이 너무 귀여웠어요. 그 순간 '이 사람과 함께라면 행복할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아, 이러면 결과는 완미한거구나)

 

나는 좋은 일을 했다는것으로 가슴이 뿌듯해났다.

 

반년이 지난후의 어느날 최씨가 웬 처녀를 데리고 날 찾아왔는데 바로 내가 소개한 처녀라고 했다. 날씬한 몸매에 아련하게 생겼고 목청은 사랑에 빠진 여자의 설렘과 부드러움 그리고 애교가 담겨 있어 듣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느낌이였다.

 

“박누님 덕분에 이같이 훌륭한 녀자를 만나게 되였는데 참 감사하지요. 오늘 우리 같이 인사를 왔습니다.”

 

말을 마친 최씨가 가지고 온 사탕이며 과자봉지를 내 놓았다.

 

우리 셋은 과자를 먹으면서 이야기주머니를 풀었다. 그 처녀는 말할때마다 생글대는 얼굴이였는데 얼굴의 전체에서 제일 귀여운것이 바로 작지만 그러나 웃음이 찰랑대는 눈이였다.

 

내가 최씨보고 내가 잘 소개한게 맞는가 물으니 제꺽 이렇게 대답했다.

 

“나처럼 글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녀자여서 정말 마음에 듭니다.”

 

그 말에 처녀는 빨개진 얼굴을 다소곳이 숙이고는 입을 열었다.

 

“난 여지껏 혼인소개가 들어와도 그냥 글쟁이 남자를 만나고 싶은 마음 굽히지 않았는데 정말 잘된 일이죠. 둘다 글을 쓰는 취미가 있어서 앞으로 생활이 더 재미나겠죠.”

 

그날로 집에 돌아간 그들은 후에 결혼했다는 소식을 편지로 보내왔는데 이런 구절도 있었다.

 

박누님의 쪽지가 우리의 사랑을 시작하게 했습니다. 지금은 함께 책을 쓰고, 함께 삶을 쓰고 있어요. 고마워요,

 

......

 

가끔씩 그들이 쓴 글을 신문에서 보았는데 글쟁이 남편은 수다스럽지 않지만 글에는 열정을 담고 안해는 수줍지만 글에는 용기를 담아서 쓰고 있는듯 했다.

 

그후 농촌일이 바빠서인지 편지가 뜸해졌는데 어느 편지에는 그 쪽지를 보석처럼 여기면서 그냥 잘 건사하고 있는데 드문드문 둘이 함께 읽는다는 글귀를 썼다. 또 후에는 아예 소식이 끊어졌는데 다른 사람을 통해 들은바에 의하면 둘다 출국했다는것이였다.

 

지금쯤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그때 그 이야기가 인제는 력사의 뒤켠으로 사라진 일이지만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작은 쪽지 한장으로 커다란 사랑과 인생의 결정을 내린는다는 건 그때의 그 시절 글쟁이들이 우상으로 보이는 시기였기에 이런 재미나는 일이 발생한게 아닌가 싶다.

/박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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