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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10/09  한민족신문
오해뒤에 비낀 무지개

점심이 될 무렵, 지호는 안해와 함께 식당으로 발걸음을 다그쳤다. 외국에 간 동생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척들의 파티가 조직된것이다.

 

그가 콧노래를 부르며 한참 걸어가는데 뒤에서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자전거가 들이받았다. 지호는 뒤로 넘어졌고 열서너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자전거와 함께 그의 배 위에 엎어졌다. 얼마나 속도를 낸 건지 자전거 바퀴가 지호의 배 위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지호가 일어나려고 하자 머리가 띵해졌고 걸을 수 없어 다시 주저앉았다. 거울처럼 알롱알롱 떠 있는 하늘이었지만 그 순간 지호의 눈에 비친 하늘은 재빛이었다.

 

조금후 그 애의 할머니가 불려 왔고 지호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검사 결과 허리뼈와 다리뼈에 금이 가서 입원하게 되었다. 지호가 병실에 들어간 후 할머니는 어디론가 갔다가 얼마 뒤 손에 과일 꾸러미를 들고 왔다. 그리고 지호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우리 손자 때문에 괜히 아프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과일을 내려놓은 할머니는 나중에 보자며 돌아갔다.

 

어둠의 장막이 내리자 지호는 자꾸만 병실 문을 쳐다보았다. 할머니가 올 거라는 기대감으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 할머니가 와야 낮 간호로 지친 안해를 집에 보내 쉬게 할 수 있는데 할머니는 오지 않았다. 웃음이라고는 전혀 없고 무거운 공기와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만이 병실을 가득 메웠다.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에도 할머니는 전화 한 통만 하고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은 못 올 상황이니까 내일은 오겠지.)

 

지호는 그렇게 리해하려고 애쓰다가도 점점 괘씸하고 근심스러워졌다.

 

이러다가 치료비도 안 대주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앞섰다. 피해를 입히고도 책임을 회피하는 일을 여러 번 봐왔기 때문이다.

 

지호가 입원해 있는 동안 친구들의 위로 전화도 적지 않았다. 그중에는 "사정 보지 말고 간호비, 영양비, 정신적 손해비까지 다 받아내라"고 조언하는 전화도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의사가 들어와 말했다.

 

"수술할 필요는 없습니다. 집에 가서 움직이지 말고 잘 휴양하다가 보름 후에 걸으면 됩니다. 출원해도 되는데 치료비는 약 5천 원 정도입니다."

 

지호의 마음이 단단해졌다.

 

(피해를 당하고도 내 돈을 내라니? 오늘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이렇게 인정 없는 사람이라면 나도 사정 볼 필요 없다. 받아야 할 돈은 몽땅 받아내겠다. 그까짓 과일로 동정을 바라다니? 흥! 어림도 없다.)

 

분노가 치밀어오른 지호는 할머니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오늘 출원하니까 알아서 처리하세요"라고 소리치고는 끊어버렸다. 그의 얼굴은 뻘겋게 달아올랐고 그늘이 깊게 드리웠다.

 

바로 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 할머니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섰다. 손에 쥔 작은 비닐주머니를 지호의 품에 안겨 주며 말했다.

 

"금방 치료비를 결산했어요. 퇴원하셔도 뼈가 빨리 붙는 약을 계속 드세요. 돈을 꿔서라도 제가 끝까지 부담할게요. 원래는 매일 와서 간호해야 하는데 이 며칠 동안 치료비를 벌려고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검정귀버섯장에 다녔어요. 이건 밀방고약인데 뼈를 붙이는 데 좋다고 해요. 집에 가서 붙이세요. 그리고 간호비, 영양비 등등... 모두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할머니의 얼굴은 처음 뵈었을 때보다 훨씬 수척해져 있었고 병색이 감돌고 있었다. 순간 지호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감동의 눈물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오해했음을 깊이 후회했다.

 

곁에 있던 안해가 물었다.

 

"애 엄마는 어쩌고 할머니께서 이렇게 뛰어다니세요?"

 

할머니는 눈가를 붉히며 대답했다.

 

"후ㅡ 우리 손자 민호는 정말 운명이 기구해요. 애 엄마는 5년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애 아버지는 잔병치레가 많아서 제가 맡아 키우게 됐어요. 애 하나만 해도 힘든데 유치원에 다니는 손녀도 저한테 맡겼답니다. 시골에서 살다가 손자가 중학교에 입학하자 부득이 도시로 와서 시교에 단층집을 세맡고 살아요. 내 꼴 좀 보세요."

 

할머니의 옷차림은 반반하지 못했고 앞이빨이 한 개가 빠져 있었다. 시골 살림에 이런 짐까지 안고 사는 그녀의 이마에는 고된 삶의 년륜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처음에 지호는 그 얼굴의 주름을 보고 일흔이 훨씬 넘긴 줄 알았다. 그런데 겨우 예순 초반이었다. 너무도 겉늙었다.

 

할머니의 사연을 들은 지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병실 안이 적막으로 가득 찼다. 안해도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방금 전까지 지호는 분노와 오해로 가득 차 있었다. 할머니가 치료비를 내지 않을까 봐 책임을 회피할까 봐 두려워했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할머니는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으면서까지 치료비를 벌었고 빈 손으로 오지 않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내가 얼마나 작은 사람이었나."

 

지호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민호 할머니. 다른 부담은 가지지 마세요"

 

할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치료비외에 다른 건 생각 안 해도 됩니까? 간호비라든가, 영양비라든가..."

 

할머니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녀는 이미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다. 빌린 돈으로 치료비를 댔고 앞으로의 생활비도 막막했다.

 

지호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런 거 하나도 받지 않겠습니다."

 

"그럼..."

 

"대신 제가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할머니의 눈에 의문이 스쳤다.

 

"무슨 부탁이세요?"

 

지호는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민호를 좀 만나게 해 주세요. 그리고 앞으로 민호가 공부하는데 드는 비용을 조금이라도 부담하려고합니다. 할머니 혼자 다 감당하기엔 너무 무겁습니다."

 

할머니는 떨려나는 입술을 두 손을 모아 가렸다.

 

"뭐라구요? 무슨 말씀을..."

 

"제가 진심입니다. 저는 오늘 할머니를 보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저도 할머니처럼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안해가 지호의 손을 꼭 잡더니 한마디 참여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우리가 조금씩 도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는 결국 눈물을 쏟아내며 말했다.

 

"오늘 천사를 만났네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는 일어나 지호에게 절을 하려는듯 허리를 굽히려 했다. 지호는 얼른 할머니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지 마세요. 제가 오히려 할머니한테서 배웠습니다."

 

며칠 후 지호는 휠체어를 타고 안해와 함께 할머니의 집을 찾았다. 시교의 단층집 그닥 크지는 않지만 정성스럽게 정돈된 마당, 집안에서 남자아이가 나왔다. 바로 자전거를 타고 지호를 넘어뜨렸던 그 애였다. 민호는 지호를 보자 무서운 듯 뒤로 물러섰다.

 

"저... 저 아저씨..."

 

할머니가 민호의 등을 살짝 밀었다.

 

"인사 드려라. 아저씨가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한단다."

 

민호는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저씨. 제가 자전거를 너무 빨리 타서..."

 

지호는 웃으며 민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오히려 아저씨는 너 덕분에 좋은 사람을 만났어.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서 할머니한테 꼭 효도해라."

 

"네...!"

 

지호가 퇴원한 지 한 달이 지난 후. 그는 민호네 집에 다시 찾아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몇몇 친구들과 함께였다. 지호는 친구들에게 할머니와 민호의 사정을 이야기했고 함께 돕기로 한 것이다.

 

"우리가 힘 자라는대로 사랑의 손길을 내밀기로 했어요. 그리고 겨울이 오기 전에 집도 좀 보수해 드리려고요."

 

친구들의 손에는 과일 상자와 겉옷, 그리고 학용품이 들려 있었다. 할머니는 그 광경을 보며 또 한 번 눈물을 쏟았다.

 

"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그때 불시로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그러다가 조금후 하늘이 개이더니 무지개가 솟았다. 그 무지개는 그 어느때보다 더 크고 더 찬란했다. 그리고 그 무지개는 지호와 할머니, 민호, 그리고 친구들의 얼굴에 고루 비껴들었다. 오해는 사라지고 용서를 넘어 도움으로 피어난 아름다운 무지개였다.

/박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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