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풍잎이 다 떨어져 바람에 날려가고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니 하늘에서는 눈송이가날리어 집구석에 갇히다 싶이 있노라니 지나간 어릴적 옛 추억만 눈앞에서 맴돌아 치며 뇌리를 스치기만 한다. 그리하여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쥐여들고 자판을 두드려가며 다시 소년시절로 돌아가 본다.
때는1965년, 하마탕 향중심 신흥소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일이다. 나의 고향 하마탕 서북쪽에 우뚝 솟은 ‘명산’이라 일컫는 사방산에 원족을 갔던 그날의 일은 70을 넘긴 나이인 지금도 영화 필름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농촌에서 자란 우리 또래들은 누구나 굴곡 많은 어린 시절을 겪어왔기에 그 기억이 더욱 선명한 것 같다. 당시 농촌은 지금과 달리 경제가 어려워 문화생활이라 부를 만한 것이 거의없었다. 그래서 해마다 단 한 번만 학교에서 조직하는 화창한 5월말의 봄이 되면 원족을 갔었다. 그 소식만 들어도 모두 마음이 날아갈 듯 손뼉치며 좋아했다.
소학교 저급 학년 학생들은 가까운 야산이나 강가로 가고 고급학년은 먼 심산으로 원족을떠났다. 그해 나는 고급학년으로 금방 올라와서 처음으로 꿈에 그리던 유명한 사방산 원족에 갈 수 있었다. 선생님이 며칠 전부터 날짜를 알려주시자, 형편이 괜찮았던 아이들은 미리 먹을거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도시락과 과일, 사탕, 사이다를 챙긴 아이들은 자랑이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 집안 살림이 어려워 늘 그렇듯 쌀밥에 달걀 두 알, 그리고 내가 강물이 풀릴 무렵 고기발로 잡아 말린 작은 물고기 반찬이면 그저 만족스러울 뿐이었다.
드디어 좋은 날을 골라 5월 20일, 아침 8시 30분. 선생님들 인솔 아래 우리는 사방산을 향해 출발했다. 모두들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뒤질세라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한 시간쯤걸으니 어느덧 사방산 기슭에 도착했다.
잠시 쉬는 동안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심산으로 올라간다. 대오에서 떨어지지 말고, 위험한 곳에서는 서로 부축하며끝까지 안전하게 올라가자.”
봄빛이 완연한 산에는 원시림 고목과 이름 모를 잡초, 갖가지 야생화가 향기를 뿜어냈다. 초록 잎에서 나오는 시원한 산바람은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는 듯했고, 우리는 힘든 줄도 모르고 산을 올랐다.
11시 무렵, 선생님은 점심시간을 알렸다. 각자 가져온 도시락을 펼쳐 먹고, 식사가 끝나자선생님들은 하마탕 중심소학교 인장이 찍힌 ‘보배쪽지’를 숲 속, 돌 밑, 나무 사이에 숨겨놓았다. 우리는 반 시간 동안 숨겨진 보배를 찾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는 본격적인 유희놀이가 이어졌다. 보배를 찾은 아이는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읊었고, 필기장·연필·지우개 같은상품을 받았다.
물론 누구나 보배를 찾고 싶어 했지만 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라 상품 받은 애들은 웃음끼돌지만 찾지 못한 애들은 입이 뿌죽하게 나와 있었다. 나는 원족 갈 때마다 “이번엔 꼭 찾겠다!” 벼르며 노래와 시도 미리 연습했지만,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학교에 입학한 까닭인지 단 한 번도 보배를 줍지 못했다.
유희 놀이가 끝나고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선생님은 여러 번 강조하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대열에서 떨어지지 말고, 절대 개인행동 하지 말아라.”
상품을 받은 아이들은 신나서 앞에서 뛰어다니며 웃고 떠들었지만, 보배를 못 찾은 나는 맥이 빠져 대열 맨 뒤에서 천천히 따라 걸었다.
그때였다. 산길 옆을 피끗 스치듯 바라보는데 눈부신 꽃 하나가 마치 천촉등처럼 환히 빛나는 듯 보였다. 순간 심장이 벌컹벌컹 뛰었다.
“와, 산삼 꽃이다!”
동화책에서 보았던 ‘백초의 왕’ 산삼.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누구나 보면 안다고 했던 그 귀하고 값어치 높은 보물 산삼 꽃이 하늘이 내려준 운 처럼 나의 눈앞에 환하게 서서 손짓하고 있었다.
너무 기뻐서 심장이 쿵쾅하면서 맥박이 빨리 뛰어 한동안 혈압이 치솟는것 같았다. 빨리 서둘러야 했다.
우리 집이 워낙 가난했기에 나는 앞서가던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몰래 산삼을 캐기시작했다. 옛말에 산삼을 만나면 “방초!”라고 크게 외쳐야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혹시 들킬까 두려워 조용히 혼잣말로만 “방초…”라고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주변의 부식된 흙은 푸실푸실해 손에 잡은 나뭇가지로도 어렵지 않게 산삼을 캘 수 있었다. 줄기와 꽃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조심스레 밥곽에 담았다. 그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치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운아가 된 듯 뿌듯해서 빨리 집에 가려고 뛰었다.
산길을 내려오려는데 나는 이미 심산 깊은 곳에서 대열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소리쳐도 친구들에게 닿지 않았다. 조급하게 앞쪽으로 가보니 절벽, 뒤로 가도 절벽, 남쪽도 절벽. 그제야 겁이 덜컥 났다. 정신을 가다듬고 서쪽으로 뛰어 가보니 마침 친구들이 지나가며 밟고간 잡초가 어슴푸레한 길을 이루고 있었다.
“다행스럽게 드디어 길을 찾았다.”
안도감에 눈물이 저절로 흘러 내렸고, 두 주먹을 꼭 쥔 채 내리막길을 냅다 뛰어 내려가 20분쯤만에 대열을 따라잡았다. 온 몸은 땀 범벅이 되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즈음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저녁밥을 지으며 나를 맞아주셨다. “오늘 원족 가서 무슨 좋은 일 있었나?”, 웃음을 감추지 못하던 나는 턱을 쳐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엄마, 오늘 아주 귀한 산삼을 캤어요!”
어머니는 놀라며 웃음끼 띄우곤 “얘가 무슨 헛 소리하냐? 어디 한번 보자”
나는 먼저 꽃을 보여 드렸다. 어머니는 잠시 보시더니 “이건 개삼 꽃 같은데”라며 혹시 모르니 산삼 뿌리를 보자고 하셨다. 밥곽에서 조심스레 꺼내 보여드리니 어머니는 한바탕 크게 웃으며말씀하셨다. “얘야, 이건 산삼이 아니라 개삼이란다.”
그 말씀에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눈앞이 샛노래지며 땅에 털썩 주저 앉았다. 산삼으로집안의 고난을 바꿔보겠다는 어린 마음의 커다란 희망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나만홀로 한순간 부자 된 듯한 환상의 허황한 꿈을 꾼 격이 되어 민망하기만 하였다.
세월이 흐른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의 나는 너무 어리고 순진했다. 그러나 그 순진한 마음과 설렘,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도 길을 찾아 내려오던 어린 나의 당찬 모습, 아주 찌들게 가난하여 가정 생활에 보탬이 되게 이바지하려는 나의 포부가 컸다는 점은 평생 잊을 수 없는추억으로 남아 있다.
/전학도
http://www.hmzxinwen.com/news/28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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