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나는 난로 앞에서 숯불을 피운다.
한 줌의 불씨가 잿빛 속에서 새빨갛게 살아오를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도 오래 묻어 있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숯불은 단순한 열이 아니라 내 인생의 한 장면을 다시 데워주는 불이었다.
나는 중국 요녕의 한 중학교에서 20여 년간 교원으로 일했다.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글과 삶을 가르치며 나름의 자부심을 지녔다.
그러나 세상살이는 늘 빠듯했다. 자녀 학비, 집 마련, 생활비가 겹치며 한숨이 깊어졌다. 결국 나는 교단을 뒤로하고, 2006년 1월 한국행을 택했다. 그때 내 나이 마흔아홉이었다.
한국에 와서 처음 얻은 일자리는 전라북도 남원시의 《오장동 숯불갈비》식당이었다.
교단 대신 숯불 앞이 내 자리였고, 분필 대신 집게가 손에 쥐어졌다. 새벽부터 나무탄을 꺼내 불을 붙이고, 불판을 닦으며, 테이블마다 숯불을 날랐다. 하루하루가 불과의 전쟁 같았다.
홀 이모들이 “아저씨, 불판 좀 바꿔 주세요!” 하고 부를 때마다, “네.” 그 한마디가 목에 걸렸다.
교원 시절 수없이 말을 했던 내가, 타국의 식당에서는 그 한마디가 어찌나 어려운지~
마치 목에 돌멩이가 걸린 듯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로 인해 오해도, 서운함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사장님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저씨, 한국은 인사 한마디가 정이에요. 손님 앞에서는 언제나 웃는 얼굴로요.” 그 말을 가슴에 새기며 숙소에서 거울을 보고 수십 번 연습했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언젠가부터 손님들이 내 인사에 미소로 화답할 때, 마음속의 장벽이 허물어졌다.
삼복더위가 극심하던 어느 날이었다. 숯불 앞에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허리를 굽혔을 때, 한 홀 이모가 다가와 종이컵을 내밀었다.
“삼촌, 냉커피 드세요.”
그 한 잔의 냉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그것은 땀과 피로를 씻어주는 보약이자, 이국살이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따뜻한 온정이었다.
점심시간이면 종업원들이 함께 식사했다. 공기밥 몇 숟가락이면 금세 사라졌지만, 더 먹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누군가 “중국 사람은 밥을 참 잘 먹는다. 나라가 가난해서 그런가 봐.”
그런 말을 들을까 두려워 숟가락을 내려놓고 허리띠를 더 졸라맸다.
배보다 자존심이 더 고팠다.
‘사람은 밥이 아니라 마음으로 사는 존재다.’
그 말을 속으로 되뇌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저녁이면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남원 시청, 교육청, 공장 단체들이 찾아와 고기를 굽고 웃음소리를 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내 억양을 듣고 물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말씨가 다르시네요.”
“예, 중국에서 왔습니다. 조선족입니다.”
그는 젓가락으로 상추 위에 고기 한 점과 마늘, 쌈장을 올려 정성껏 싸서 내 손에 쥐여주었다.
“이국 땅에서 고생 많으십니다. 이거 드세요.”
나는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지만, 결국 그 따뜻한 손길을 덥석 받았다.
고기 한 점이 목을 넘어가며 눈물이 핑 돌았다.
그것은 단지 고기가 아니라, 나를 사람으로 인정해준 한 조각의 마음이었다.
그 뒤로 단체 손님들은 식사가 끝날 때마다 내 손에 1만 원, 2만 원씩 봉사비를 쥐여 주곤 했다.
“아저씨, 수고 많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나를 다시 세워주었다.
나는 그 돈을 따로 모아 봉투에 넣었다.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면, 그 돈으로 통돼지를 잡고
동네 사람들을 초대해 한국에서 받은 따뜻한 정을 나누고 싶었다.
하루의 일이 끝나면 숯불을 식히고 재를 쓸었다.
그 재 속에는 내 하루의 피로와 땀, 그리고 인간의 온기가 함께 섞여 있었다.
교단에서는 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여기서는 불로 사람의 마음을 덥혔다.
나는 생각한다.
“몸이 당하는 고생을 이기지 못하면 그저 고생이지만,
마음으로 이겨내면 그것이 재산이 된다.”
그 말은 내 삶의 좌우명이 되었다.
지금도 숯불 냄새가 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 냄새 속에는 냉커피 한 잔의 정, 밥 한 공기의 배려, 손님들의 미소가 함께 들어 있다.
그 불길 속에서 나는 인간의 품격을 배웠고,
이국에서도 살아갈 힘을 얻었다.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남원에서 숯불을 피우며 사람의 정을 배웠다.”
숯불은 언젠가 재가 되지만, 그 불길 속에서 피어난 정은 지금도 내 가슴 속에서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
/신석운
http://www.hmzxinwen.com/news/27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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