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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05/25  한민족신문
나는 한국행에 가난호로 됐다.

30년 전 중국 농촌에서 살던 처남, 처제들은 내가 도시에서 사는 것만 부러워한 것이 아니라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3000여원의 월급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더 부러워했다.

 

당시 농촌에서 일년 순수입이 1만원이면 만원호라고 불렀고 모두들 만원호로 되겠다고 아득바득 애를 썼다. 그러니 어찌 나의 월급이 부럽지 않았겠나?

 

10년 전 내가 한국에 와서 살 때에 나보다 10년 먼저 한국에 온 처남, 처제들은 여전히 나를 부러워했다. 나는 3D업종에서 뼈 빠지게 일하지 않아도 달마다 150여만원 퇴직금을 받는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모든 것이 뒤바뀌어졌다.

 

그 사이 건축현장에서 일하는 처남 넷은 숙련공이 되어 받는 월급이 나의 퇴직금보다 3배 이상 더 많아졌다. 거기에다 처남댁들도 함께 돈을 벌어 은행계좌에는 수억원의 돈이 들어있다. 그들은 그 돈으로 4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사서 살고 있다.

 

그리고 자가용을 몰고 출퇴근을 하고 있다.

 

처제 둘도 남편과 함께 번 돈으로 아파트를 사겠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있다.

 

그런데 나의 퇴직금은 그 사이에 답보하고 있고 이곳 생활품 물가는 늘 고공행진을 하고 있어 나는 30만원 월세 방에서 힘겹게 살고 있다.

 

명절마다 처남, 처제들은 나의 월세 방으로 찾아와 함께 명절을 쇤다.

 

그때마다 그들은 돈을 번 자랑을 한다. 그러나 나는 자랑거리가 없다. 그러니 왕따 당한 기분이 든다.

 

나의 신경을 더 자극하는 말은 보험 얘기다. 돈이 많다보니 그들은 여러 가지 보험에 가입하여 있기에 병으로 병원에 입원해도 자기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돈이 없는 나는 달랑 국민건강보험에만 들다보니 3차례 병원에 입원해 수술치료를 받아 수백만원의 치료비를 내야만 했다.

 

그때 다행이도 처남, 처제들의 도움을 받아 나는 그래도 빚은 지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나는 처남, 처제들의 은행카드를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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