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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03/27  한민족신문
한국에서의 조선족들의 자화상

로신 선생은 일찍 자기 민족의 《열근성》을 칼질한 것은 동포가 미워서 아니었다. 《각성》하지 못한 《혈육》을 매질함으로써 민족의 자강을 호소함이었다.

 

필자가 오늘 우리 “조선족들의 이국땅에서의 자화상”을 싣는 마음 역시 무겁다. 하지만 곪고 있는 상처를 파헤치고 치유한다는 마음에서 이 글을 적는 것이다.

 

나의 동네 고양시 구일산에는 요녕, 길림, 흑룡강 등 곳에서 온 조선족 200세대 살고 있다. 이 사람들은 원륨, 투륨, 고시원 등 월세, 전세를 잡고 식당, 간병, 공장 등 현장에서 일하며 힘겹게 돈벌이하고 있다.

 

최근 들어 나의 동네에 조선족이 경영하는 다방, 노래방, 음식점 가게가 적잖게 일어섰다. 그 중에서도 마작 게임장이 여덟 곳이다.

 

마작 게임장은 오전 11시 30분에 시작하여 오후 5시에 끝나고 저녁 6시에 시작하여 밤 11시 30분에 끝난다. 또는 자정에 시작하여 새벽 5시에 끝나기도 한다. 한 타임당 게임비는 놀음의 액수에 따라 3만원, 4만원, 6만원이다. 놀음에 미친 사람은 24시 놀면서 게임비 12만원을 마작게임장 사장에게 주어야 한다.

 

심양에서 온 박씨는 아내와 함께 10여년 별의별 일을 하면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구슬땀을 흘리며 온갖 고생을 이겨 내면서 돈을 벌어 전세를 잡았다. 박씨는 2년 전 마작 놀음판에 끼어들기 시작하여 제 때에 일터에 나가지 않고 어중이떠중이들과 휩쓸려 다니며 마작 놀음만 하다가 밤중에 들어가기가 일쑤였다. 통장에 돈이 없어 친척, 친구들에게 빌리고 나중에 아내 모르게 전세집에 검은 손을 뻗쳤다. 결과 한화 1억원을 잃고 친척, 친구들도 박씨를 멀리하게 되었고 아내도 보따리를 싸 가지고 박씨 곁을 떠나 버렸다. 지금 박씨는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 백수가 되었다.

 

이씨 아줌마는 하루 식당 일에 지친 몸이지만 밤 10시에 퇴근하면 곧바로 마작 게임장에 가서 한 타임을 놀고 새벽에야 집에 와서 쪽잠을 자다 출근길에 나선다. 주말이면 마작 게임장에는 놀이꾼들로 꽉 차 있다.

 

누가 돈을 버는가? 마작 게임장 사장이 돈을 버는 것이다. 한 게임장에서 한 달에 천만원 순 수입이 들어온다고 한다. 여덟 곳이니 놀음 꾼들이 한화 8천만 원을 마작 게임장에 각각 가져다 주는 셈이다

 

정말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마작에 미친 사람들은 친척, 친구들의 돈을 갚지 못하여 전화번호를 바꾸고 낮에는 숨어서 살고 밤에야 거리에 나서게 된다.

 

1807년을 기점으로 중국은 아편 때문에 은을 영국에 보내게 되었다. 도광제는 임측서에게 아편. 근절 특명을 내렸다. 임측서는 흠차 대신으로 아편이 반입되는 해외 무역 창으로 유명한 항저우에 부임하자마자 유통되던 아편 2만여 상자를 압수하여 구경군들의 보는 앞에서 아편을 전부 못 쓰게 만들어서 바다에 버렸다.

 

그러나 현시대 마작 게임기를 부셔 한강물에 버릴 용사가 없는 것이다. 신고받고 지방 경찰들이 마작 게임장에 오면 그저 도박하지 말라고 몇 마디 남기고는 가 버린다.

 

중국 나의 고향 요녕성 환인 와니전자촌에 한족 500세대, 조선족 200세대가 살고 있었다. 요녕성에서 곡창으로 불리는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1920년 김학송이 조선에서 조선족 10세대와 함께 압록강을 건너 나의 동네에 정착하게 되었디. 그 당시 한족 30세대가 잡곡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었다. 김학송은 저 낮은 산을 뚫으면 강물을 끌어 들여 이곳 황무지를 옥토로 바꿀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마을 사람들을 끌어 모아 산을 깎기 시작하였다. 갖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산이 뚫리고 물이 쏟아져 가난을 물러 받던 한족들도 쌀밥을 먹을 수 있는 옥토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70년대 나의 동네 조선족들은 수입이 높기에 식탁은 한족에 비해 훨씬 풍성했다. 늘 강냉이 떡에 무 짠지를 씹는 한족들을 두고 조선족들을. 게을러서 저렇다고 손 가락질 했다. 호 도거리를 시작하자 조선족들은 형편없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처녀들이 도시의 식당, 술집에 진출하자 동네에는 노총각 40여 명이나 되었고 탈가한 유부녀로 홀아비들이 생겼다.

 

엎친데 덮친다고 외국 바람으로 동네에 조선족들이 사라지면서 조선족 초등학교가 페교되고 홀아비들은 논마저 한족들에게 맡기고 아내들이 외국에서 자식 공부시키라고 다달이 보내온 돈으로 놀음하고 술 추렴하면서 《양반행사》를 하였다. 한족들은 조선족들의 논마저 다루는 외에 야채 재배, 야채 장사, 두부 장사를, 하다못해 인력거 끌고 손님을 싫어 나르거나 품팔이 해 아글타글 돈을 모으는데 조선족 남정들은 할 일이 없어 시간이 많으니 남의 돈 따먹겠다고 날마다 마작판 화투판에서 열을 올렸다. 딴 사람은 기쁘다고 한잔, 진 사람은 화가 난다고 한잔, 늘 이렇게 《술 풍년》이다.

 

한족들은 해마다 벽돌집이 일어 섰지만 조선족들은 초가집에서 살았다. 그래도 입들은 살아서 《되놈 새끼들은 정말 쩨쩨하다니까? 몇푼 더 벌겠다고 저렇게 아글타글 하다니...》 이렇게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으로 살고 있었다.

 

조선족들은 운이 좋아 한국이란 나라에서 한화를 벌어 시골을 떠나 도시에다 아파트를 사고는 이제는 걱정할 일이 없다고 무지한 이가 큰 소리 친다. 정말 소가 웃다 꾸레미 터지겠다. 요녕, 흑룡강, 길림 등 고장마다 조선족 동네가 점점 사라지고 조선족학교가 페교되고 기름진 논밭을 한족들에게 넘기었다. 그저 아파트 한체가 전 재산이다.

 

필자는 여기까지 쓰고 나니 마음이 더 무겁다. 일산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대림, 구로, 안산, 파주, 금촌... 등 고장을 둘러보아도 나의 동네 상황과 엇비슷하다. 지금 건강상태가 좋아 돈 벌이 하면서 마작을 놀지만 노동일이 상실되면 고향에 있는 아파트도 팔고 빈 털터리 신세가 되여 노숙자로 공원, 지하철역 대합실, 거리 등을 다니면서 구걸해야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제라도 마작 놀음에서 환골탈태하여 새길을 개척해야 하지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신석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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