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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03/14  한민족신문
우연한 만남

세상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패턴을 반복한다. 그 만남에는 오래 이어지는 인연이 있는가하면 소중한 인연이지만 서서히 연락도 끊기고 끊어진 인연이 아쉬워 전전긍긍하는 이별도 있다.

 

간병인 영실이는 남들이 전혀 모르는 소중한 인연을 간직하고 있다. 일에 파묻혀 정신없이 지나온 동안 잊지 말아야 할 인연도 찾아볼 겨를이 없이 오랜 세월을 무심히 살아왔다.

 

어느 날, 병실에 새 환자가 왔다. 그리고 그 날 일어난 일은 영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여느 때와 같이 환자를 침상에 눕혀드리고 환자 몸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피부에 욕창이 없는지? 팔 다리는 움직임에 불편이 없는지? 자기표현이 정확한지? 식사는 스스로 할 수 있는지? 식사량과 음식의 형태는 어떤 걸로 하는지? 한 가지 또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참 많기도 하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체위를 조심스럽게 변경시키면서 피부상태를 살펴보았지만 환자는 여전히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환자의 거동이나 식사 배변 등의 일상생활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신속히 파악해야 했다. 코로나로 인해 보호자의 동행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환자의 상황에 대해 묻지 못하고 모든 상태를 일일이 눈으로 확인해야 하며 간호사에게서 전달 받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영실이는 환자의 소지품을 풀기 전에 환자에게 물으려다가 포기하고 일단 짐 보따리를 풀지 않고 병실농속에 넣어 두었다. 환자를 살살 흔들자 할머니의 노쇠한 목소리가 들렸다.

 

"건드리지 말아주세요!"

 

시간이 꽤 지나 환자는 돌아누웠고 90이 넘어 보이시는 년로하셔도 우아해 보이는 할머니가 서서히 침상에서 일어나 앉으셨다. 손에는 작은 가방이 꼭 쥐여 있었다.

 

"간병사님! 내 가방 좀 잘 챙겨줄래요? 부탁해요!"

 

할머니의 요청대로 가방을 상두대 농속에 넣고 할머니에게 돌아가 천천히 부축해 침상에 다시 눕혀드렸더니 "도와줘서 고맙다"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침대에 누우신 후 한잠 잘거니 조용히 해달라고 하셨다.

 

"예~. 알겠습니다. 제가 짐정리 해드릴 텐데 괜찮으세요?"

 

할머니는 급할 것 없으니 천천히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한 말씀을 덧붙이셨다.

 

"지금 내가 요양원병원에 들어온 거 맞으시죠?"

 

할머니는 부드럽고 점잔은 어조로 말을 이어 가셨다.

 

"애들이 말하길 집에 혼자 있기보다 여기가 안전하다고 하네요!"

 

요양병원을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빈말이 아닌 듯 환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기고 자녀들은 연신 “죄송합니다”를 되뇌는 건 요양병원에 처음 입원할 때의 풍경이다. 할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영실이는 마음이 짠하여 재빨리 자세를 바꾸며 친절함을 보여드렸다. 왠지 들을수록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마스크 한 상태라 할머니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다.

 

"어디 아프신 데는 없으세요?"

 

할머니는 잠드셨는지 조용하셨다. 영실이는 살그머니 마스크를 살짝 하고 얼굴을 확인하였다. 년로하긴 했지만 낯익은 얼굴에 깜짝 놀랐다. 무너져 내린 얼굴선과 주름이 잡힌 처진 볼이 나이 들어 보이지만 옛 모습이 남아있다. 그가 알고 있던 모습과 서늘한 콧날, 장미 빛 뺨은 그가 한때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말해 준다. 그 아름다움에 쓸쓸하기도 하고 다행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가슴은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급히 할머니의 이름을 확인하고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 영실이는 부뚜막위의 개미마냥 안절부절 못했다. 사람들은 우연한 만남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영실이는 그 우연한 만남이 주는 갑작스러운 반가움에 격동되였다. 긴가민가한 상황 속에서 예상치 못했던 요양병원에서의 만남이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세상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우연히 귀한 만남으로 오래 기억되는 일이 있다. 영실이와 할머니의 만남이 그렇다.

 

할머니가 깨여나자 휠체어에 태우고 한참동안 차분한 마음으로 할머니에게 조용히 병원의 곳곳을 보여드렸다. 할머니는 과거에 어린이 집을 운영했던 일이며 이미 고인이 된 남편과 지방에 있는 사립 중학교를 운영했던 옛 이야기를 해주었다. 분명 그 분이셨다. 영실이는 조심스레 물었다.

 

"신촌 어린이 집 민원장님 맞으시죠? 저 기억하시겠어요? "

"원장님! 저 김영실입니다."

"어~..."

 

할머니는 기억을 더듬으시느라 한참 말씀이 없으셨다.

 

"김선생? 똑순이 김선생? 반가워요. 세월이 많이 흘렀구려^^."

 

너무 뜻밖이라 믿기지 않으신 모양이셨다. 우연찮게 요양병원에서 환자와 간병인으로 만난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신기해하고 반가워하셨다.

 

할머니는 반가워 하시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어린 아이처럼 바라보시기도 하고 물끄러미 쳐다보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영실이는 할머니를 꼬옥 안아드렸고 할머니도 영실이를 꽉 껴안았다. 뜨거운 포옹이었다. 생각지 못한 기막힌 우연이다. 어쩌다 이렇게 극적으로 만나게 된 것일까? 끊겼던 연이 뜻밖에도 요양병원에서 기적적으로 이어졌다.

 

떨리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기분이 최고였다. 할머니의 얼굴은 참 밝고 순수해 보였다. 온화한 미소와 차분한 말투에는 안정감이 있었다. 할머니는 선하고 유쾌한 분이었다. 그래서 영실이는 더 애틋하고 친근감이 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한참 나누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갔다. 인연은 기묘하다. 할머니는 영실에게 잊지 못할 사람이었다.

 

30여년 전, 영실이는 남편에게 처참히 배신당하고 세상을 다 잃은 듯 현실을 도피하여 허겁지겁 한국에 왔다. 혈혈단신 외토리로 한국 땅에서 불법체류 신분으로 식당 설거지나 모텔청소, 아니면 공장에서 일해야 살아갈 수 있는데 몸이 허약한 영실이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절망에 빠져 거의 삶을 포기하는 영실이를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할머니께서 자기가 운영하는 "어린이 집" 집사로 받아주고 딸처럼 품어주셨다. 영실이는 생을 포기할 만큼 힘들었던 아픔에서 헤어 나와 삶의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일에 대한 열망이 강한 영실이는 아픔과 슬픔을 일속에 묻어버리고 죽기내기로 집사 일에 열중하였다.

 

원래 꼼꼼하고 차분한 성격인지라 집사일이 영실의 적성에 맞았다. 할머니는 영실의 노력을 인정하시고 월급도 보육교사 보다 더 챙겨주셨고 어린이집 모든 사무와 관리를 그녀에게 맡겼다. 믿어주시고 베풀어주신 은혜가 고마워 열과 성을 다하는 영실이를 할머니는 이쁘게 봐주셨다. "우리 깍쟁이 선생" 이라며 친구들에게 자랑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영실이를 보면서 중국동포들에 대한 신뢰도 대단하셨다.

 

할머니는 영실이가 감사함을 보답해야 하는데 그 동안 찾을 수 없어 아쉬워했던 분이시다. 다주택자인 할머니는 영실에게 한옥집도 통째로 빌려주었고 타향살이에 건강에 소홀할세라 가을이면 포도농장에서 수확한 무공해 포도와 포도쥬스도 각별히 챙겨주셨다. 출국 할 때마다 그 나라의 선물을 챙겨주시는 것도 잊지 않으시고 이모님 같은 사랑을 주었다. 계절에 따라 안겨주는 할머니의 선물에는 사랑과 배려가 듬뿍하였다. "노사간"의 우정은 영실이가 고향에 돌아간 후에도 지속되었다.

 

영실이는 고향에 돌아가 몇 년간 엄마의 병시중을 하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다시 한국에 왔다. 신세를 지고 도움을 주신 할머니를 절대 잊지 않고 은공을 갚으려고 오자마자 할머니를 찾아 신촌에 있는 어린이 집과 창전동 자택을 찾아갔지만 어린이 집은 재개발이 되여 흔적도 없었고 집은 지방으로 이사하셔서 찾을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바쁜 일상에 쫓기면서 할머니를 찾을 엄두를 못했었다. 결혼반지 대신 귀국할 때 할머니가 선물하셨던 묵직한 금반지가 영실의 손가락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젠 피곤하네요! 김선생 병실로 가 주세요!"

 

"원장님, 저하고 함께 해요. 외롭지 않으시게 제가 돌봐 드리겠습니다. 옆에서 열심히 챙겨 드릴게요."

 

은인 같은 할머니를 이렇게 만나다니 영실이는 꿈만 같았다. 한달 뒤 귀국하려고 예매한 항공권도 취소하고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드리기로 하였다.

 

"그래도 김선생! 고향에는 돌아가야지! 가족은 만나야지!"

 

"가족은 나중에 만날 테니까 걱정 마세요. 괜찮아요! 원장님!"

 

"이 늙은이의 마지막 여생을 지켜주겠다니 정말 고마워요!"

 

할머니의 눈물 섞인 말에 영실이는 억장이 무너지는 걸 느꼈다.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할머니의 품에 머리를 묻었다. 세월이 야속했다. 우아하고 품위 있으면서도 도도했던 분이셨는데~, "세월 앞에 장수가 없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섰다. 멋쟁이 셨던 할머니가 힘없이 휠체어에 몸 맡긴 모습이 아프게 가슴을 허집는다. 안타까움이 넘친 허전함을 안은 영실이는 마음이 무거웠다.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지 모르지만 영실이는 인생을 살며 해온 것 중에 가장 뜻 깊은 선택을 하였다. 바쁘다는 이유로 인생의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았나? 하고 반성도 한다. 삶의 의미 있는 순간을 할머니와 천천히, 또박 또박 진지하게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김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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