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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09/19  한민족신문
연애 편지와 죄인

편지는 문자가 발명된 이후 인류 최초의 원거리 통신 방식이다. 고대에서부터 근대까지는 직접 종이에다 글을 써서 상대방한테 보내줬다. 편지는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사랑의 다리이기도 하다.

 

아픈 마음, 슬픈 마음, 기쁜 마음... 짧은 편지글에다 담을 수 없지만 쓰는 마음 하나만으로 받는 마음 하나만으로 나를 돌아보고 서로를 돌아보게 된다. 편지는 서로의 정을 심화시키고 확충시켜주는 구실을 한다. 만일 편지가 단순하게 의사를 전달 하는데 불과하다면 그것은 말로 표현하는 것과 별로 다를바 없다.

 

하지만 편지만 아니라 모든 문장적인 표현행위는 그것 자체가 사고하는 행위나 써 나가며 생각하는 일이다. 말로 약속한 그것보다 문자로 두 사람의 정의 믿음을 준다. 편지는 또한 영원히 보관할 수 있으니 평생을 두고 추억을 자아낸다.

 

나의 집에는 200통의 편지가 보물처럼 보관되어 있다. 이사 할 때마다 무게야 얼마 되지 않지만 짐이라길래 버리라고 했더니 아내는 그렇다고 그걸 어떻게 버리겠냐고 되묻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내 덕분에 200통의 편지가 30년 동안 박스에 잘 보관되어 있다.

 

지금 같이 클릭 한 번으로 지구촌 사람과 실시간 안부를 주고받는 초고속 인터넷 시대에 손으로 쓰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어야 발송되는 번거로운 편지가 사라지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정성스럽게 쓰고 마음을 담은 편지가 아련한 향수와 더불어 생각날 때가 있다. 문득 편지를 한번 써 볼까? 하고 책상 앞에 앉아 막상 쓰자니 만만치 않다. 대상이 정해져야 할 말이 생기고 감정이 잡히는데 결국 편지는 되지 않고 상자에서 옛날 쓴 편지를 꺼내 읽으면 그때의 순간이 새록새록해 진다.

 

45년 전 시골에서 살던 나는 우리글을 모르는 동네 분들이 부탁하면 시간을 쪼개여 대필을 해줘었다. 대필은 《흡사》 그 사람의 대리 역할을 하는 일종의 연주, 배우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편지를 부탁하는 사람의 감정까지 전달 해야 하는 힘든 일이었다.

 

나의 옆집에 홀로 사는 할머님이 있었다. 할머님은 발신자 봉투를 들고 나의 집을 찾아 두서없이 얘기를 하셨다. 건강 조심하라, 여기 걱정은 말라, 무서운 세상이니 몸 조심하거라. 그런 내용이었다.

 

군인 생활하는 아들에게 때로는 시집간 딸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어 하였다. 나는 할머님의 얘기를 다 들은 후에 나의 생각을 잘 입혀서 정성껏 쓴 후에 읽어드리면 할머니는 훌쩍거리며 울거나 손벽을 치면서 웃기도 하였다.

 

《이렇게 속이 후련할 수가 없네. 편지를 정말 잘 쓰네. 넌, 이 다음에 필시 시골을 떠나겠네.》

 

할머님의 칭찬에 잔뜩 신이 나서 살을 더 붙어가며 썼다. 더 슬프게 더 재미있게 썼다. 할머님이 신씨네 둘째가 편지를 잘 쓴다고 동네에 입 소문을 펴뜨리자 동네 분들은 밤마다 편지를 써 달라고 나의 집으로 찾아왔다. 이렇게 동네 분들께 대필해 주고 오리 알, 계란, 민물고기, 산 나물... 등 작은 사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다 나의 대필 “알바”도 전화기가 우리 동네에 보급되자 막을 내렸다.

 

1981년 9월, 요녕사범학교에 다니던 시절 금주시에서 군인 생활을 하던 나의 절친 성철이는 인물이 훤칠하여 꽃미남이라고 불렀지만 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 흠이었다. 친구는 중매로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모현 중학교 교원인 이쁜 처녀 선생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첫 대면에 처녀 선생은 친구의 가정배경도 좋고 군인이고 인물체격도 좋은데다가 친구가 고상한 총각으로 보여 마음에 들었는지 친구에게 긴 편지를 보내왔다. 친구는 편지를 받은 이튿날 새벽에 금주에서 기차를 타고 나의 학교로 찾아왔다.

 

그날은 일요일 날이라 친구와 함께 근처 식당을 찾아 앉았다. 2원을 가지고 만 포식하는 세월이었다. 생맥주 한잔 마시고 나서 친구는 호주머니에서 처녀 선생이 보낸 편지를 내 손에 쥐여 주면서 읽어보고 대필을 원하는 것이었다. 고양이가 생주에게 코를 물리는 뜻밖의 일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대필 편지는 수백 통을 썼지만 연애편지 대필은 한번도 써보지 못하였다.

 

나는 편지봉투를 받지 않고 거절하였다. 그러자 친구는 이 어려운 고비만은 나의 손을 빌어야 한다고 사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편지봉투를 받았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하여 새벽부터 설치며 달려와 나에게 편지를 맏기는 그 간절한 친구의 마음을 나는 모를리가 없었다. 부족한 글솜씨로 인해 친구의 마음을 처녀 선생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인 것이다. 오후 시간을 내 빈 교실에서 정성을 다하여 쳐녀 선생에게 답장을 썼다.

 

사랑하는 ×××

 

안녕하세요? 고요히 깊어가는 이 밤 저는 비로서 떨리는 손으로 필을 들었지요. 막상 필을 들고 보니 어디로 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종잡을 수 없구요. 하지만 저는 이 밤을 지세운다 하더라도 무엇인지 쓰지 않고서는 견딜 것 같지 않아요. 왜 이 시각에 저의 가슴이 설레이겠나요.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이요. 아침마다 눈을 뜨면 그대가 먼저 떠오르고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져 무엇보다 소중한 그대지요.

 

우리가 처음 강역에서 만나던 그날 밤, 아직도 선명해지는 느낌이지요. 강물은 도도히 흐르고 버들가지는 바람에 하늘하늘 춤을 추고 둥근달은 그대와 나를 비추고...

 

버드나무가 버들개지를 귀여운 모습으로 싹을 틔운다는 것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이지요. 내 마음속에 피여나는 생각들을 키워 그대 있는 곳으로 푸른 하늘을 새처럼 날고 싶어요. 그대와 사랑의 돛을 달고 희망찬 인생 항로를 헤쳐나가고 싶지요. ...

 

처녀 선생과 수십통의 편지가 오갔다. 그 대가로 친구에게서 군복 두 벌에 군인 모자, 군인 외투를 사례로 받았다. 그러나 친구와 처녀 선생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반쪽짜리 사랑이었다. 나를 통해 만드는 사랑은 진실한 사랑으로 발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발신자의 나와 수신자의 처녀 선생의 걸음걸이가 어긋나기 때문이다.

 

나는 편지를 대신 쓰는 마음이었지만 처녀 선생은 편지를 읽으며 마음을 움직여 한 걸음씩 나아가는 처지라 이 사랑은 서로의 발을 맞춰 걸어가는 사랑의 걸음걸이가 되였다.

 

나는 아내와 중매결혼하면서 연애편지를 쓰지 못하였지만 처녀 선생과 2년간 연애편지를 써왔다. 그들은 마침내 연애생활 2년 만에 결혼하였다. 그러나 친구는 황혼 이혼이 되여 혼자 외국에서 살고 있다.

 

나는 그 처녀 선생에게 한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면서 철저한 죄인이 되었다. 그러나 때 늦은 후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각 반성의 글이라도 써 자신의 과오가 한 여인의 마음을 비참하게 농락했다는 사과의 글을 남기고자 한다.

 

진심으로 되는 사과의 글이 그 선생에게 위로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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