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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09/17  한민족신문
난초의 짙은 향기

요즘 난초가 싱그러운 꽃을 곱게 피웠다.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 집 문을 열기 바쁘게 은은한 향기가 제일 먼저 반겨준다. 몸은 아직 문 밖에 서 있는데 안으로 살며시 이끌 듯 감도는 그 맑고 그윽한 향기는 깊은 산골짜기에서 한 줄기 바람에 실려온 듯 어느 사이엔가 나를 집안으로 흡인해 들인다.

 

내가 애지중지 기르는 8개의 화분 중에서 유독 난초만이 똑 같은 꽃으로 세 개가 된다. 작년 초겨울에 접어들면서 한 난초가 가느다란 잎 가운데서부터 꽃줄기가 치고 올라오더니 여러 개의 꽃망울은 지었고 이윽고 하나 둘 연두 빛 꽃을 활짝 피우기 시작하였다. 한 겹으로 된 작고 수수한 꽃잎 세 개가 바람개비처럼 제각기 펼쳐져 있는 가운데서 받침 꽃잎과 입술 꽃잎 그리고 꽃이 색깔도 노랗게, 파랗게 잘 조화되어 과연 아름답다. 거기에다 물을 한 모금 뿜어놓고 보니 반짝이는 물방울과 유난히 잘 어울려 더더욱 빛나 보인다. 실로 예술작품이 따로 없다.

 

난화는 명화로 불리나 다른 모란이나 사랑을 상징하는 장미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풀잎 같은 잎 새에서 단아한 꽃을 피우는 것이 소박할망정 고순하고 짙은 향 때문에 한결 더 돋보인다. 단단한 가지도 끈끈한 줄기도 없이 아주 연약한 듯 하면서도 사철 푸른 잎과 맑고 은은한 꽃 향기로 매화,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로 중국에서는 “10대 명화”중 하나로 불리면서 오랫동안 역대 문인묵객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온 난은 때로는 아름다운 사람이나 미인의 향기에 비유되기도 하였는데 송나라의 위대한 시인 소동파는 “양차공의 춘난에 쓰다(題楊次公春兰)"라는 명시 중에서도 이용하였다.

 

한편 난은 그 향기를 느낄 수 있지만 풀숲에 깊이 숨어서 보이지 않아 그윽한 향기로만이 찾아보는 수줍음을 타는 꽃 중의 하나이다. 본래 청량한 깊은 산골짜기에서 남몰래 피는 꽃이 였는데 고고한 자태의 은은히 감도는 그 향기가 혼탁한 세상을 도피하여 은거한 선비의 모습과 흡사하여 아마도 유독 선비들이 반하여 가장 칭송하는 꽃인가 보다.

 

이런 우수한 꽃이 어쩌다 먼길 떠나 드디어 우리집에 까지 와서 조용히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은 무등 의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코 요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수집은 듯한 그의 은근한 향기는 말할 수 없는 긴 여운을 무척이나 남겨준다.

 

나는 어릴 때 한동안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였다. 낮에는 학교에 가고 방과 후에는 밤늦게 까지 현 문화관 화실에서 미술선생님으로부터 전문 그림지도를 받았다. 그때 미술선생님은 가끔 우리에게 세계명화나 중국명화에 대해 해석해주면서 그 명화들에 깃든 이야기도 곧잘 들려주었다. 그 많은 이야기 중에는 “꽃잎 밟고 돌아가는 말발굽 향기롭네.”라는 그림이야기가 지금도 나의 기억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먼 옛날 주정에서 화가를 뽑는 그림시험을 봤는데 그 시험 제목이 바로 “꽃잎 밟고 돌아가는 말 발굽 향기롭네”였다고 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꽃을 그리고 말을 그리고 사람도 그렸지만 향기는 그려내지 못했다. 그런 중에 유독 시험관이 눈길을 끄는 그림이 있었다. 우리 미술선생님은 그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노라면 은은한 꽃향기가 물씬 풍긴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림으로 향기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였다. 우리더러 상상해 보라고 하였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이 명제의 그림을 그린다면 어떻게 뜻을 살려 주제의 내용이 완전히 알려지도록 연구해보라고 하였다. 나는 아무리 상상해보아도 어떻게 향기를 표현할 수 있을지? 아니면 그림에서 향기를 무엇으로 나타내는 다른 방법이 또 무엇인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한 식경이 지나서도 누구나 신통한 구상을 하지 못하자 선생님께서는 드디여 우리에게 그림을 설명해주셨다.

 

그 이야기는 이러하다.

 

우리나라 북송시기의 황제 송휘종은 그림재능이 아주 뛰어났으며 그림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과거시험에서도 그림을 출제하기로 하였다. 조정에서는 황제의 이런 뜻을 받들어 화가시험을 볼 때 당시나 송사에서 한 구절을 따다가 그림명제로 삼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중에서도 “꽃잎 밟고 돌아가는 말발굽 향기롭네”라는 시제가 나온 그번 시험에서 일등으로 합격한 그림은 사실 아주 간단하였다. 어느 여름날의 황혼 무렵 한 군자가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달리는 말을 쫓아온 나비들이 말 주위를 맴돌며 그냥 나풀나풀 춤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림속에 꽃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꽃이 없으되 나비가 찾아든 이유는 은은히 풍기는 짙은 향기였기 때문이였다는 점이다.

 

그게 이 그림의 뛰어난 상상력이였다고 한다. 단지 화가가 후각적인 것을 시각적으로 개변하여 교묘하게 표현한 것일 뿐 이였을까? 거기에서 나는 결코 화려하지 않고 요란하지 않고 조용히 피여오르면서 풍기는 꽃이 향기를 지닌 그런 아름다운 사람을 은유적으로 비유해 찬양한 것이 아닌가 믿어졌다. 그리고 그 향기의 주인은 어쩌면 맑고 미더운 덕목을 갖추고 따뜻한 자태를 가진 난초같고 매화같은 가인일거라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덕성이 풍족한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아도 언제나 향기가 밖으로 스스로 풍겨나오더라.

 

그번 그림은 향기있는 사람을 비유한 한폭의 아름다운 추상작품이였다.

 

오늘날 온갖 욕망으로 충만된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속의 이욕과 공명만을 쫓아 정신없이 달려가는 수많은 가람들 속에서 나는 가끔 이 모든 것 초연한 째 밝디맑고 그윽한 영혼을 지닌 아름다은 사람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하여 화려하게 짙은 향기를 풍기는 것이 아닐지라도 좋은 이들의 삶의 깊이는 나를 무척 감동케 하고 그 속에는 난초같은 감미로운 그윽한 향기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껴본다.

 

그래서 오늘도 마냥 그 향기에 흠뻑 취하고 싶어 꽃을 향하여 조용히 한걸은 더 다가간다.

 

아~, 그 향기가 너무 좋아서!

/윤상철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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