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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09/27  한민족신문
일제와 싸운 한 조선족 항일소녀_김금녀

 
1930년 10월, 중공만주성위는 료여원, 양림을 동만에 파견해 연길현 조양천 무산촌에서 회의를 소집하고 동만특별위원회를 설립했다. 새로 설립된 동만특위, 왕청현위의 영도하에 왕청 현 각 민족 인민들은 활기찬 반일투쟁을 전개하고 항일무장 왕청현 반일유격대와 소왕청 항일유격근거지를 건립했다.

 

이로 인해 항일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수많은 영웅인물들이 용솟음쳐 나왔다.

  

전쟁터의 '어린 종달새'로 불리는 12세 아동단원 김금녀가 바로 그중의 한명이다. 일본침략자의 사탕포탄과 사망위협에도 그녀는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죽일 테면 죽여라!"고 말했는데 악에 받친 적들은 그녀를 마구 때려 죽음에 이르게 했다.

 

1932년 4월, 일본 괴뢰군은 연변지역에서 진인무도한 제1차 '토벌'을 발동했다. 이번 '토벌'에서 김금녀는 가족 6명이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참을 수 없는 비통함에 그녀는 아동단에 참가할 것을 주동적으로 요구했고 젊은 여자아이들로 구성된 '항일선전대'에 가입했다.

 

김금녀는 유격대와 함께 백 여리의 길을 걸어 왕청현 소왕청 항일유격근거지의 중심인 마촌에 도착했다. 로상에서 그녀는 대오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다리와 얼굴이 가시나무에 긁히고 발에 물집이 생겨도 전혀 개의치 않아했다.

 

1933년 5월 1일, 소왕청 항일근거지에서는 문예공연을 개최했는데 김금녀는 자기 가족 6명이 왜군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된 사실을 공연프로로 만들어 무대에 올려 근거지의 군중과 병사들로 하여금 깊은 감동을 받게 했다. 그녀는 산속의 종달새처럼 '항일선전대'를 따라 동만과 길동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그중의 골간으로 거듭났다.

 

1934년 가을, 근거지의 한차례 반 '토벌'전투에서 김금녀는 불행하게 적들의 마수에 걸려들었다. 교활한 적들은 각종 달콤한 말로 그녀를 속였지만 의지가 강인한 김금녀는 끝내 한마디도 발설하지 않았다. 흉악하기 그지없는 적들은 어린 김금녀를 잔혹하게 고문했으나 그녀는 성인들도 참기 어려운 고통을 참아내면서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일본군관이 히죽거리며 김금녀의 앞에 다가가 한손에는 총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사탕을 든 채 "꼬마야, 공산당이 어디 있니? 유격대는 어디 있니? 말하면 사탕을 주고 말하지 않으면 죽여 버릴테다. 알겠니?"라고 말했다.

 

김금녀의 두 눈에서는 증오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그녀는 적들에게 "나쁜 놈들아, 날 위협하고 속일 생각을 하지 말라. 내 입에서 정보를 꼬물만치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너희들은 같은 하늘을 떠이고 살 수 없는 원쑤이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죽일 테면 죽여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부르쥐고 그 일본 군관에게 달려들어 몸으로 그자를 밀치고 또 그자와 싸웠다.

 

흉악한 적들은 어린 여자아이가 이렇듯 의지가 강하고 굴하지 않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적들은 김금녀를 마구 때려 죽음에 이르게 했다.

 

김금녀가 희생될 때 그 나이가 12세에 불과했다. 소왕청 항일유격구에서는 김금녀를 위해 성대한 추도식을 개최하여 전쟁터의 '어린 종달새'를 추모하고 그녀의 영웅적 장거를 노래했다. 김금녀가 장렬히 희생되였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여러 나라 신문들에서는 '어린 렬녀 략전'이라는 주제로 그녀의 영웅사적을 선전했다.

 

현재, 왕청현에서는 김금녀가 당시 희생되였던 자리에 그녀의 반신조각상과 기념비를 세웠다. 매번 청명절이 되면 현지 중소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조직하여 그녀의 기념비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 제사에 참가한 학생들은 분분히 김금녀가 희생될 때 우리의 나이와 비슷했는데 그녀와 같은 열사들이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지금 우리의 행복한 생활이 있다면서 우리는 지금의 행복한 생활을 보다 소중히 여기고 혁명선열들의 유지를 받들어 열심히 공부해 홍색유전자를 대대로 이어감으로써 보다 강대한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항상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천은 한결같고 붉은 배는 여전하다. 시대는 변했지만 그 정신은 영원하다.

 

역사를 거울로 삼아 리치를 깨닫고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 중공만주성위의 이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길림인민들은 초심을 잃지 않고 역사를 명기하려는 신심과 결심을 확고히 할 것이며 역사 속에서 계발을 받고 경험을 얻어 보다 앙양된 분발의 자세로 새로운 시대에 공훈을 세우고 새로운 장을 써나갈 것이다.

/리강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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