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개그프로그램에서 보이스피싱을 소재로 어눌한 사기꾼들이 어설프게 범죄를 저지르는 코미디를 선보여 인기를 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어설프지는 않다.
5월 29일 오후 2시경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거주하는 피해자 한모씨(71세)는 여의도 농협지점으로부터 전화를 한통 받았다.
“어떤 의심스러운 여자가 고객님의 주민등록증하고 농협통장을 가지고 와서 통장에서 돈을 찾으려고 하는데 입금되어 있는 예금을 주어도 되나요?”
“저는 농협통장을 개설한 사실이 없는데요?”
“그러면 제가 바로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5분 후쯤 경찰이 농협에 도착하면 전화를 다시 할게요. 여자는 도망갔네요”
잠시 후 영등포경찰서 수사관이라고 하면서 신고를 할 것인지를 물어본 뒤 또다시 새로운 인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영등포경찰서 수사과장 안○○입니다. 검찰청에 선생님 명의로 사건접수가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 명의의 농협통장에서 2억 6,000만원이 미국으로 이체되었는데 그러한 사실이 있나요?”
“아니오, 그런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금융기관에 입금되어 있는 모든 선생님 명의의 돈을 인출해서 제가 불러주는 계좌로만 입금을 하시면 아무런 문제없이 안전하실 겁니다.”
한모씨는 바로 기업은행에 적금으로 예치하였던 2,700만원을 인출해서 이들이 불러준 계좌로 하루 이체한도액인 600만원을 입금시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영등포경찰서에 전화해서 수사과장 안○○이 실제 근무하는 경찰관인 것을 확인하여 그나마 남아 있던 조그마한 의심도 날아가 버렸다.
“600만원만 입금시키셨네요? 나머지 2,100만원도 입금시키시면 안전하게 될 겁니다.”
나머지 돈을 입금시키러 나가던 중 이를 이상하게 여긴 부인과 아들이 전화사기라고 만류함으로써 추가 피해를 겨우 막을 수가 있었다.
경찰서에 신고하러 찾아와 수사과장에게 “진짜로 나에게 전화한 적 없느냐”며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70대이시지만 대학까지 졸업하신 엘리트임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최근은 이렇게 누구나 당할 수밖에 없도록 실제 근무하는 수사관 혹은 경찰간부의 실명까지 직접 사칭하고 있다. 특히 피해자들의 거주지 정보까지 확인하고 해당 관할 경찰서를 사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관공서에서 실제로 작성한듯한 문서를 팩스로 보내 속이기도 하고 경찰관서 등 수사기관의 홈페이지와 똑같이 생긴 피싱사이트를 만들어 유인하고 계좌정보를 빼내는 일도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경찰은 어떠한 경우에도 돈을 이체시키거나 보안조치를 해야 한다며 개인정보나 계좌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경찰에 전화하여 사칭한 경찰관을 확인하는 경우에도 단순히 근무사실만 확인하지 말고 직접 통화를 요구하거나 자신에게 전화를 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는 반드시 확인을 해야 안전하다.
한동안 잠잠하던 보이스피싱이 다시 활개를 치고 있다. 선량한 국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게 각별히 주의해 주기 바란다.
/영등포경찰서 경감 이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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