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고향으로 간다. 고향을 떠나 한국에 온지 꼭 3년만이다. 유난히 높고 푸른 서울의 겨울하늘도, 네온등으로 현란한 명동거리도, 한강의 아름다운 야경도, 한국의 자랑인 남산타운, 63빌딩도 고향으로 날아가는 내 마음을 잡지 못한다. 나는 이제 곧 어머니의 그 젖가슴처럼 따스하고 포근한 품으로 나를 반겨줄 고향으로, 부모, 형제, 처자들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3년 전 나는 가정의 생계를 위해, 남들 못잖게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그리고 내 인생과의 싸움을 위해 정든 고향과 부모, 처자들을 등지고 한국으로 왔다. 갈퀴로 돈을 번다는 황금의 나라 한국으로 무작정 떠났다. 3년 세월을 뼈를 깎으며 현장일을 했다.
내 인생에서 3년 세월은 많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지만 아무리 가정의 생계와 꿈을 위한 전쟁이라지만 이 3년 세월은 나에게 있어서도 너무나 지루하고 고달픈 시간이었다. 설음과 아픔, 외로움이 뒤섞인 세월이었고 그리움으로 모지름을 써온 세월이었다. 했기에 나에게 있어서 지난 3년 세월은 몇십년, 아니, 그보다도 더 길고 아득하고 고역의 세월의 흐름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노라면 전에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리움으로, 고독으로, 생활의 어려움으로 곤혹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물며 돈 하나만을 바라고 구석구석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열악한 환경에서,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노가다 현장에서 뼈를 깎는 고달픈 일을 하고 있음에야! 몸은 지칠 대로 지쳐 망가지고 조선족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로 느껴야 하는 멸시와 수모, 이 모든 것으로 스트레스는 쌓일 대로 쌓이고 가슴에 멍이 든다. 타향살이로 체험하는 그 설음과 아픔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마음 같아서는 개도 안 먹는다는 돈이 뭐가 대수냐며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훌쩍 고향으로 가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남편으로, 아빠로 살아야 하는 책임감의 그 무게는 천근, 만근의 무게보다 더 무겁게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처자들와 고향사람들 앞에 당당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아야 했다. 나 하나의 희생은 곧바로 가정의 행복과 유족한 살림으로, 아름다운 생활로 이어지고 있었다. 떨쳐버릴래야 떨쳐버릴 수 없는 이런 책임감이 있었기에 나는 3년이란 세월을 용케 이겨낼 수 있었고 금의환향이란 꿈이 있었기에 나는 정신상, 육체상으로 오는 모든 고달픔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나 밤이면 밤마다 찾아오는 성적 갈증과 고독을 이겨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40대 건장한 사내로서의 생리적 욕망도 참기 어려웠고 고향에 있는 친인들에 대한 그리움을 참는다는 것도 잔혹한 일이었다. 특히 80대중반인 부모님의 건강이 걱정스러워 항상 마음을 졸여야 했고 자식으로서 이제 몇 번 있을 지 모를 부모님의 생일상을 차려드리지 못한다는 자책감과 부모님의 만년에 곁을 지켜드리지 못하는 불효자식이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고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홀로 서기로 1.2헥타르의 농사를 지으면서 딸애의 공부뒤바라지를 하며 심장질환으로 장기병환에 계시는 부모님 모시고 힘겹게 살아가는 아내의 옆을 지켜주지 못하는 것도 안타까웠다.
힘겨운 현장일을 하다가도 고향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노라면 나도 언제면 저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갈 수 있으랴는 망념한 마음으로 바라볼 때면 제 아무리 하늘이 열번을 울어야 남자는 한번을 운다지만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남몰래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신문, TV에서 한가정이 단란히 모여앉아 한때를 즐기는 모습을 볼 때도, 해마다 돌아오는 우리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과 설 명절을 맞아 인천국제공항이나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콩시루처럼 빼곡한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객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부러움과 동시에 고향이 있어도 아직 돈을 벌지 못해 가지 못하는 내 신세에 언제나 쓸쓸함을 느껴야 했고 한 사람에게 있어서 그래도 마음대로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이고 부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도 이젠 고향으로 간다. 더 이상 부러운 것이 없다. 3년동안 실향민이 아닌 실향민으로 살아오면서 내 몸에 붙었던 교포, 형틀목수, 이방인 등 내 가슴을 아프게 하던 이름들도 모두 어젯날의 일이다. 그림자마냥 따라다니던 외로움도, 스트레스도, 고독도. 그리움도 모두 한순간에 떨어져나갔다.
더 이상의 쓸쓸함도, 절망도 없다. 눈물도 없다. 나에게는 오직 기쁨과 행복만이 있을 뿐이다. 3년간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그렇게 오매불망 그립고 그립던 사랑하는 내 가족, 친인들과의 상봉과 내 태를 묻은 고향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제 곧 망념된 꿈이 아닌 현실로 된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그처럼 푸를 수가 없고, 간혹 떠 있는 구름도 그처럼 희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비행기는 여느 때 없이 느리게만 느껴진다. 내 마음은 비행기에 앞서 언녕 고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내 삶의 보금자리, 내 마음의 언덕인 고향이 나를 반겨 맞을 것이다.
/허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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