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고생은 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나는 늘 생각해왔다. 그것도 그럴 것이 우리 이모는 남편을 잘못 만나 중국에서 장사를 하다가 몇 백만원 빚만 가득 지고 한국에 와서 힘들게 번 돈을 빚만 갚아주다가 인제는 70나이를 바라본다. 한평생 고생살이인 것이다.
사촌언니 역시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일찍 시집 갔는데 쪼들린 살림에 이기지 못해 한국에 나왔다. 한국에 올 때, 가짜 시집이 진짜 시집이 되었고 아들 둘을 먹여 살리기 위해 힘들게 벌다가 인제는 병들어서 집에 돌아 가야 한다.
나는 그들과 비교하면 행복하다. 좋은 교사직업에 월급도 4천원(인민페)넘는다. 남들은 한국에 올 때 돈 벌기 위해 온다 하지만 나만은 그렇지 않았다. 4번 한국에 다녀왔는데 매번 올 때면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이 자매학교를 공식방문하는 행차로 한국의 교장선생님과 여러 선생님, 학생, 학부모들의 존경과 사랑을 가득 받고 다녀왔다. 하지만 이번 한국행은 단순한 여행이나 하기 위한 것이 아닌 내 몸으로 뛰면서 아직 내가 세상에 존재 해야 할 이유를 찾고 싶은 마음을 앞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떠나 올 때 직장의 동료들이나 친척들은 한국에 가는 것을 만류하면서 돈 잘 버는 남편이 있고 뭐가 부족해서 한국에 가는가, 정말 고생을 사서 한다고 말하였다.
말로만 들어 왔던 한국에서의 동포들의 생활, 그것을 귀가 아닌 내 몸으로 눈이 아닌 내 마음으로 체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에 도착하자 친구나 친척을 찾지 않고 그냥 식당을 찾아 주방에서 설거지 일을 맡아 하게 되였다.
일은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12시간 일이지만 일이 끝날 무렵이면 주방의 구석구석을 깨끗이 닦고 씻고 하면서 마무리 하고 나면 매번 10시가 넘고 집에 오면 거의 11시가 된다. 몸의 고달픔은 내 상상의 수십배를 초월하고 있었다. 정말 고생을 사서 하는 일이였다. 집에 있어도 돈 걱정, 입을 걱정, 먹을 걱정 없을텐데 하필이면 고생을 사서 하다니 생각해보니 저도 모르게 어슬픈 웃음이 나왔다.
올 여름 들어 한국의 날씨는 유별나게 더웠다. 제일 더울 때는 40도에 이르렀다. 숨이 막히는 주방에서 일하기란 아이들에게 글만 가르치던 내가 어떻게 일을 했는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내딴에는 쉼없이 부지런히 일해도 줄어들지 않고 산 더미처럼 불어만 나는 그릇들, 얼굴에서는 땀이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물이 쏟아져 내려 오고 있었다.
그래도 밥 먹는 시간이 제일 즐거웠다. 배고픔을 달래기 보다는 사장님의 친절함, 따뜻한 배려를 받는 것이 타향살이 하는 우리동포들에게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밥상을 차리면 사장님은 우리를 어서 오라고 부르면서 “집을 떠나 고생이 많네. 굶지 말고 밥은 잘 챙겨 먹어야 하네. 많이 먹어.” 그러면서 오늘은 복날이라고 우리 직원들에게 닭곰 한마리씩 안겨주었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였다.
일당으로 일하다 보면 가끔 일이 쉬운 식당도 있었다. 여름철에 한국사람들은 여행을 잘 다녀오는데 한가할 때는 손님이 한명도 없다. 그날은 떡호박집으로 일하러 갔는데 전날 주방장이 나오지 못하게 되니 오늘 일들을 예전에 다 해놓고 떠났다. 거기다 손님도 별로 없고 하여 나는 주방을 이리닦고 저리닦고 하면서 서성대기만 하였다. 하루가 삼추같이 느껴지는데 시계바늘은 움직이질 않았다. 이때 사장님이 오시더니 “손님도 없는데 그렇게 더운 곳에 서 있지 말고 밖의 그늘 밑에 있는 의자에 가서 땀을 들이라”고 말하였다. 또 하나의 소중한 배려였다.
힘들고 지치는 타향살이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환경에 적응하면서 정 붙이고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도 하나 또 하나의 소중한 만남, 소중한 인연, 소중한 시간들이 아니겠는가?!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서 내 기억이 색 바랜다고 해도 한국식당에서 고생을 사서 한 일들은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늘 소중하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갈 것이다.
/김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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