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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08/24  한민족신문
꿈 많은 나의 사랑하는 모교를 그리며

사랑하는 나의 모교, 할빈시 조선족제1중학교(1947개교)가 어언간 칠순을 넘어섰다. 그러나 지금도 그 옛날의 추억을 더듬어가노라면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진다.

 

하늘 높고 구름 맑은 풍작의 계절, 결실의 계절, 산과 들이 황금빛으로 물든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에 나의 모교 환갑연이 우리 동포사회의 문화행사로 이루어짐에 다함없는 경의를 드리며 삼가 축하와 축복, 축원의 인사를 드린다.

 

류수 같은 세월, 살 같은 광음에도 나의 마음 한가운데는 항상 나의 중학시절의 모교가 그대로 든든히 자리 잡고 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그간 모교도 모름지기 여섯 번 정도는 바뀌었을 것이지만 모든 것이 다 바뀌어도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정다운 모교의 스승님, 다정다감한 선후배들의 모습은 언제나 그대로이다.

 

실은 모교 예순 돌이 가까워 옴에 따라 내 마음도 왠지 설레기 시작했다.

 

나를 길러준 모교에 무엇으로 내 마음의 선물을 마련해 볼까 고민하던 끝에 몇 달간의 신고를 거쳐 나는 우리 방송국 동료들과 함께 지난해 7월5일 끝내 중한방송사상 최초로 한국KBS와 손잡고 아름다운 송화강반에서 할빈시 조선족제1중학교 건교 60돌을 경축하는《우리 동포 노래자랑》공연을 성황리에 치렀다.

 

관중들은 평생 친 박수와 평생 외친 환성을 다 합쳐도 오늘만큼 못하다며 감격과 감동을 금치 못했고 한국가수와 KBS 리호섭 사회자와 행사진에서는 세계 어디를 다 돌았지만 오늘 만큼 뜨거운 성황은 처음이라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뜻 깊고 색다른 방식으로 모교 예순 돌을 기꺼이 경축할 수 있게 됨을 긍지로 느꼈다.

 

그로부터 달포를 지난 8월 13일엔 우리 방송국에서 운영하는 어린이방송합창단 일행 50여명이 천리도 더 되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가서 전국각지에서 몰려온 75개 팀과 각축을 벌린 끝에 영광스럽게 전국조선족청소년음악제의 대상을 따오게 되였다.

 

우리 어린이방송합창단이 전국조선어방송계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외둥이라는 점도 자랑거리가 되겠지만 둘도 없는 대상을 따 온 이번 원정의 어린 투사들 모두가 바로 할빈시 조선족제1중학교, 나의 모교의 기특한 학생들이란 점을 대서특필하고 싶다.

 

어린 꼬마들로 하여금 노력과 분투, 화합과 협력으로 모교 예순 돌에 올리는 또 하나의 큰 선물을 마련하게 했다.

 

합창단 창단 반년나마에 방학기간을 빼고 근근이 두석달간의 강훈련을 거쳐 이처럼 실력을 키우기란 참으로 조련찮았다. 치치할시에서 유명한 합창지휘를 모셔온다, 오상시에서 음악지도를 청해온다, 할빈대학에서 피아노반주를 초빙한다, 조선민족예술관의 협조를 청한다 하며 우리 방송국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한계를 가리지 않고 무엇이나 최선을 다 했다.

 

김춘산, 엄광렬, 리성환, 최용남, 최설화, 김홍란, 김옥화.. 수많은 분들의 피땀이 슴베여 더더욱 무거워진 영예의 액자가 모교 어린이방송합창단의 연습실에서 꼬마들을 격려하며 빛을 뿌리고 있다!

 

모교에 드리는 선물이 크든 작든, 많든 적든 오로지 사랑의 마음이 깃들었다면 모두 다 소중하다고 해야겠다.

 

모교의 예순 돌을 경축하기 위한 《우리 동포 노래자랑》 공연이며 우리 어린이방송합창단이 마련한 축하선물 얘기를 하다 보니 불현 듯 까마득한 나의 중학시절의 옛 추억이 주마등마냥 눈앞을 스쳐 지난다.

 

제자들을 위해 베푼 은사님들의 덕윤과 은혜, 크나 큰 공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받고 받은 스승님의 은총 또한 내나 네나 이를 데가 없을 것이기에 그건 잠시 접어두고 나 혼자만의 추억, 이를테면 40년 가까이 숨겨 두었던 《천기》를 모교 예순 돌에 즈음하여 드디어 터뜨리려 한다.

 

39년 전의 어느 가을날인 것 같다. 학교에서는 전교문예선전대를 묶고 있었다. 한 고향친구들인 변덕수, 손명헌 한 학급의 김동철, 리태환, 전옥희, 하옥진, 방성자 등 여러 낯익은 학생들이 문예선전대에 뽑혀 우쭐하고 있는데 똑 마치 전교에서 나만 빠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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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선전대 대원들은 매일 악기를 다룬다, 춤을 배운다, 노래를 부른다 하며 야단법석이었다. 그러나 나는 풀이 죽어 기숙사에 푹 박혀 있거나 긴 복도를 힘없이 거닐 군 하였다.

 

사춘기 때라 춤추고 노래하는 여학생들과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도 은근했었지만 그 보다 나는 트럼펫을 불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했다. 음색이 높고 날카로우며 명쾌한 남성적인 매력을 자랑하는 트럼펫이 나를 매료했다.

 

내 눈에는 트럼펫을 부는 악사는 마치도 악대중의 기치처럼, 영혼처럼 돋보였다. 가끔 명상에 잠기면 기사처럼 대오의 앞장에 서서 진군의 나팔을 높이 불며 천군만마를 이끄는 나의 영웅형상을 꿈꾸어 보군했다.

 

만약 트럼펫이 안 차례지면 색소폰이라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도 좋았지만 색소폰의 생긴 모양이 신기하게 나의 마음을 끌었다.

 

선전대에만 들어 갈 수 있다면 어쩌다 한 번씩 둥둥 치는 징도 좋았고 육중하게 보이는 첼로가 차려져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학교문예공연을 관람하거나 또는 공연 끝에 기쁨에 들떠 왁자 지껄이며 쓸어 나오는 문예선전대원들을 볼 때마다 샘이 많은 그 어린나이에도 시기와 질투 대신 항상 자기를 그 집단속의 일원으로 간주하고 몰래 흥분에 들떠 있었다. 다만 아직까지 내 차례가 안 되었을 뿐이지 나는 조만간에 문예선전대 대원이 되리라는 것을 속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예선전대 김철호 지도선생님께서 선전대 활동실 앞에서 서성이는 나를 보더니 《넌 입술이 얇아 트럼펫을 불면 제격일 것이야》라고 하기에 나는 하마트면 환성을 지를 번 했다. 감격에 목이 메여 설레는 가슴을 가까스로 누르며 나는 그로부터 몇몇일을 김철호 선생님의 거동만 눈치 보며 지냈었다. 이렇게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이 지났건만 야속하게도 선생님은 끝내 나를 찾아 주시지 않으셨다.

 

기나긴 중학시절이 다 끝나도록 나는 끝내 학교문예선전대 일원이 되지 못했다.

 

졸업 후, 아주 먼 훗날 담임선생님한테서 들은 얘긴데 실은 그때 한창 《문화대혁명》 난리여서 학교에서는 매일이다 시피 투쟁대회요, 경축대회요, 어록학습, 활용좌담회요 하면서 공부는 뒤 전으로 하고 행사와 활동이 많았었다.

 

그 북새판에서도 담임선생님께서는 학급반장인 나를 학급이나 잘 이끌어 가라고, 그리고 학교 최준호 선생님이 이끄는 무선전반도체실험서클의 조장인 내가 이미 맡은 일만 잘 감당하기에도 힘겨울 텐데 다른 잡념이 있어서 되겠냐며 내가 그렇게 갈망하던 문예선전대 대문에 미리 빗장을 걸어놓았던 것이다.

 

그때 만약 내가 학교문예선전대의 대원으로 쉽게 되었더라면 이처럼 아름다운 추억이 오늘까지 남아 있을까?

 

이루지 못한 것, 아쉽게도 짠하게 잃어버린 것, 다시는 되돌릴 수 없었기에 그것이 더 아프면서도 소중하지 않을까?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쉽지만 난 그래도 그 꿈에 만족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꿈 많은 나의 사랑하는 모교를 더 사무치게 그리고 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시골에서 하향단련기간 농촌문예선전대에 자진해 들어 색소폰을 열심히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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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밤마다 고요한 달빛아래 친구들과 모여 너는 손풍금, 나는 색소폰, 동네형님은 클라리넷을 불고 동생은 트럼펫을 불며 북두칠성이 기울고 아침노을이 붉을 때까지 청춘을 불태웠다. 그로부터 나는 기타며 바이올린, 젓대, 퉁소, 단소, 가야금에 하모니카며 소고, 대고, 새장구까지 닥치는 대로 불고, 켜고 치며, 대학에 가서는 피아노에까지 손을 대며 부산을 떨었다.

 

하지만 아무리 악기를 이것저것 다루어도 지도선생님이 안 계신 탓인지 아니면 끈기 없는 아마추어의 부족한 열성 때문인지 또는 대학에서 배우는 전공과목과 너무 거리가 멀어서인지 중학교 시절의 악기에 대한 그 뜨거운 사랑과 정열은 식고 식어 결국은 한낱 장난에 불과했었다.

 

세월이 흘러서 정열은 식어가고 있었지만 나의 마음 한 구석에 굳게 자리 잡은 중학시절에 피우지 못했던 꿈은 잊어 본적이 없었다.

 

그 꿈이 드디어 움트고 있었다.

 

그 꿈이 싹으로 되살아나서였다고 해야 할까 꼭 곁들여 소개하고픈 것이 있다면 위에서 말씀드린 《우리 동포 노래자랑》 공연의 창발과 기획, 섭외와 조직 그리고 어린이방송합창단의 단장 장본인이 바로 나라는 것이다.

 

중학시절 그렇게도 문예선전대에 들고 싶었던 나 장석주가 오늘날 이렇게 이러한 방식과 수단으로 꿈을 이루어보려고 안깐힘을 다 쓰는 것이 참으로 나 스스로도 다행스럽고도 대견하게 여겨진다.

 

그 옛날 나의 모교의 문예선전대와 오늘 모교에 뿌리내린 우리 어린이방송합창단은 서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내용이나 형식을 비교할 수 없겠지만 각자가 꿈을 이루어 보려는 노력과 민족문화를 전승, 창달시키려는 사명은 마찬가지일 것이 아닌가.

 

참으로 감구지회로 가슴이 뻐근하다.

 

오늘 수많은 어린이들의 꿈이 무르익어감과 더불어 나의 꿈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릇 아름다운 꿈을 가졌다면 우리는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좋은 꿈은 좋은 인생을 가꾸어가는가 본다.

 

성인이 이르기를 삼십이립이요, 사십불혹이라 했지만 모교는 이미 이삼십대 젊은 청춘시절에 《문화대혁명》 난리에 곤혹과 진통을 거쳐 그 미열이 사십대까지 오랜 세월 다사다난 이였다면 오십지천명, 륙십이이순이라 모교의 오륙십대는 천지신명이 도와 나서서 민족인재양성의 요람으로, 동포문화행사의 기지와 중심으로 크게 육성되고 있는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후배학우들은 이 천재일우의 시기와 기회를 바로 잡고 누구나 아름다운 꿈을 현실로 키워가도록 노력에 노력을 곱해야 할 것이다.

 

모교 예순 돌을 경축하는 성스러운 나날에 새삼스레 나의 담임선생님들이 그리워진다.

나에게 꿈을 주고 힘을 주신, 나를 가르치고 키워주신 이미 하늘나라에 계신 담임선생님-김복순, 김창재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나를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신 담임선생님 남윤원 은사님과 모든 스승님께 축주를 올리며 모교 육십 성상 축연의 자리를 함께 하고픈 마음이다.

 

바라보니 복숭아며 오얏 향기로 만천하가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이로구나.

 

꿈과 땀으로 이룬 태평성대를 즐기며 우리 어찌 하늘과 땅에 감사하지 않으리오!

 

이 성스러운 감은계절에 모교 선생님들은 손수 가꾸신 무릉도원에서 길이길이 건강장수 하시고 사랑하는 모교는 더더욱 번영 창성하라!

 

찬란한 모교의 미래를 위하여 건배!

/학생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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