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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01/19  한민족신문
나는 코로나환자의 간병인이였다

나는 애심간병총회 소속 간병팀장이다. 내가 동료의 소개로 애심간병총회 관리팀에 합류한지도 어언간 2년 4개월이 되었다. 이번 코로나위기에 대표님과 관리팀 식구들은 한 마음으로 함께 코로나와 싸우면서 이 어려운 현실을 이겨가고 있다. 

 

코로나가 폭발적으로 확산되던 어느 날, 나와 남편이 일하던 요양병원에도 확진자가 생기면서 병원은 대 혼란에 빠졌다. 병원들은 방역조치를 철저히 한다고 했지만 확진자는 끝임 없이 속출되고 전담병원마저 병상부족으로 확진자이송이 안 되는 여려움에 빠졌다. 다행이도 병원원장의 신속한 대응으로 6층 전체 병동을 비워 확진자 격리병실을 만들어 병원내의 코로나 환자를 수용하였다. 병원내의 확산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혼란 속에 많은 간병인들이 병원을 이탈하였고 확진된 간병인들은 치료센터로 이송되였다. 코로나환자 9명이 격리실에 이송되였는데 간병인이 없어 원장이 안절부절 하였다. 불행하게도 내가 맡은 병실에서도 확진자 한명이 나와서 나는 밀접 접촉자가 되였다. 지금 생각해도 무슨 힘이 나에게 그런 용기를 주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된 바에 코로나환자 간병을 하기로 마음 먹고 내 병실의 확잔자와 함께 코로나 격리병실로 옮겨 갔다.

 

격리실에 몸을 둔 38 일간 확진자들과 동고동락하면서 공포속에서 힘든 날을 보냈다. 강인한 성격 탓에 남들에게는 강한 여자로 불리는 나였지만 두려움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고향에 있는 아들이 엄마 걱정으로  마음고생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아프기도 했다. 병원의 다른 층에서 격리병동만 쳐다보며 걱정으로 한숨짓는 남편에게도 미안했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정신을 차리고 무조건 코로나와 싸워 이겨내리라 다짐했다. 애심의 정신이 아니였다면 내가 격리실에 몸을 담을 수 있었을까? 

 

나는 죽음의 낭떨어지에서 힘들게 숨 쉬는 코로나 확진자들이 건강을 찾을 수 있게끔 분투하고 최선을 다 하기로 하였다.

 

격리실이 있는 6층의 큰 병동에 있는 9명의 확진자들과 함께 밤낮을 공포에 떨어야 했다. 특히 한밤에는 병원의 고요하고 무시무시한 공포의 기운이 싸늘하게 느껴지면서 도저히 잠들 수 가 없었다. 하루 24시간 코로나 환자를 간병하느라 방호복속에서 흘린 땀으로도 두려움은 씻 겨지지 않았다. 확진자들의 처량한 눈길, 괴로움으로 내 뱉는 고통의 신음소리에 무서웠다. 

 

바이러스 때문에 주변을 비닐로 봉해버리고 공간도 없이 아예 “출입금지”를 했다. '내가 살아 나갈 수 있을까? 어쩌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매일 두려움 속에서 살던 나에게도 우려하던 일이 닥쳤다. 내가 확진자로 된 것이다. 나는 허탈하여 긴 한숨만 쉬고 있었다.

 

도망치듯 병원을 떠난 몇몇 간병인들은 전화로 허무한 말만 하여 늘 나에게 공포를 가중시켰고 한 사람도 살아나갈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비수 같은 소리로 예민한 내 신경을 자극하였다. 애심간병총회의 김철수 대표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려고 전화번호를 누르는 순간 설음이 북받쳐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김대표와 김선숙 선생님과의 통화, 태 감사의 문자메시지에서 그래도 위로를 받고 마음이 안정되기도 했다.

 

생명의 위기에도 실오리만한 희망을 품고 정신을 차려야 했다. 

 

하루 종일 “우리는 애심간병사” 노래와 “고향의 꽃길” 등 노래를 들으면서 일하였다. 매일 관리팀 카톡을 보면서 힘을 얻군 했다. 휴대폰이 나의 친구였고 애심간병총회가 나의 버팀목이였다. 

 

치료센터에서 나를 불러 앞으로의 의향을 물자 아는 업무과장한테 병원에 남겠다고 말했다. 애심총회 관리팀 일원으로서 병원을 믿는 마음에서 계속 확진자들을 돌보겠다는 뜻을 전했다. 원장님, 업무과장님, 간호과장님이 눈물 나게 고맙다고 했다. 너무 고마워 나한테 특별한 관심과 배려도 해주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환자를 위한 나의 마음이 갸륵해서인지 나는 기적적으로 무증상으로 코로나가 완치 되였다. 위험에 처했던 9명의 확진 자들도 완치되어 건강을 찾고 격리가 해제 되였다.

 

병원 측에서도 우리 부부를 배려하여 조건이 우월한 병실에 배치해 주었다. 짐 정리도 못하고코로나 격리병실로 입주했는데 고맙게도 업무과 직원들이 우리 부부의 짐들을 잘 정리하고 보관해주었다. 병원장님부터 병원 각 부서 직원들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도와주었다. 부모가 자식의 짐 보따리를 챙겨 주듯이 물건들을 빈틈없이 차곡차곡 정리하고 잘 보관해 놓은 정성에 나는 감동 받았다.

 

후한 봉금도 받고 상금까지 받았다. 코로나 피해로 원장님께서는 경제상 손실을 많이 입었음에도 후한 돈까지 챙겨주면서 격려해주니 뭉클해진다. 

 

병원에서는 아무리 구인난으로 힘들어도 어려울 때 도망가듯 떠나갔던 간병인들이 다시 오겠다는걸 아예 단절해 버렸다. 자기만 살겠다고 환자를 버리고 뛰쳐 나가서도 허무한 요언을 날조하여 병원분위기를 더 공포에 빠뜨렸던 몇몇 파렴치한 간병인들은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이 병원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답하면서 애심간병총회에도 더욱 큰 공헌을 하련다. 아들은 사업에 성공하였고 귀한 손자가 공부도 잘 하니 출세할 때까지 뒤 바라지 도 해주련다. 또 “재한 중국동포애심간병인총연합회” 대표님을 비롯한 전체 식구들의 응원에 감사를 드린다.

 

코로나의 종식, 상봉의 그 날을 그리면서 오늘도 열심히 일손을 다그친다.

/전송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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