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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12/04  한민족신문
베푸는 것이 곧 낙이다

방정률, 림연순 부부 이야기

  지난 11월 8일, 흑룡강성 목릉시 기경촌의 한 가정에서 울려 퍼지는 흥겨운 손풍금소리, 노래소리, 웃음소리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웬일일까?

 

그 날은 바로 기경촌의 방정률(69세) 림연순(67세)부부가 올해도 500Kg이나 되는 배추김장을 마친 희열로 벌어진 오락판이였다.

 

김장을 도우려고 목릉시 조선족노인협회 부회장 렴민숙을 비롯한 방정옥, 김경신, 방혜숙 등 회원들이 김장을 깨끗이 마친 희열로 즐거움을 나누는 멜로디였다.

 

그럼 가정 식솔이 몇인가 궁금하시죠?

 

방정률, 림연순 부부는 돈 벌려 외국으로 나간 딸의 10살 난 외손자와 6살인 외손녀를 돌보면서 살고 있다.

 

"우리는 나누어 먹을 사람이 많아서 해마다 500Kg 김치를 담가야 해요."

 

아내해 림연순씨는 웃음진 얼굴로 말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김장에 쓸 배추를 텃밭에서 가꾼 것이 모자라면 사서 보탰다. 고춧가루가 모자라면 한근에 3~4십원씩 해도 10근씩 샀다. 이외에도 젓갈이며 마늘이며 생강을 사는데 톡톡히 들지만 한 두해도 아닌 10여년을 꾸준히 이렇게 해 왔다.

 

해마다 김장이 끝난 이튿날이면 동네 분들은 물론 10리 떨어진 현성에 사는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사랑의 김치 나누시느라 분주하시다. 벌써 200Kg의 김치를 퍼냈다.

 

그리곤 이듬해 2,3월이면 입맛이 없어하는 노약자들에게 가져다 드린다. 지난 세월 움 속에서 푹 익은 김치 맛을 느끼시는 마을 어르신과 현성 어르신들은 세상에 이렇게 고마운 일이 있냐며 반기셨다.

 

"사람이 사느라면 어찌 급할 때, 아플 때, 타인의 손길이 필요 할 때가 없겠어요. 언제든지 날 부르면 고맙지요"

 

방정률씨는 늘 이렇게 말했다.

 

한 마을에 사는 독거노인 박씨가 불치병으로 고생할 때 자주 찿아 보고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 해 주셨다. 그의 마지막 소원이 연변병원 용한 의사에게서 치료 받는 것이라 하시며 돈 3천원만 꿔 달라고 할 때도 이 돈은 꿔주면 못 받는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선뜻 대주고 왕복 로비까지 쥐여 주셨다.

 

그 후 일 년도 안 되여 박씨가 저 세상으로 가시자 천원에 달하는 흙집을 대신 받은 것이 전부였다.

 

어찌 이뿐이랴. 한 마을에 사는 장기 환자 김씨가 90여세 되는 모친을 모시는데 병이 더해 지탱하기 힘들어 하는 소식을 듣자 자주 드나들며 생활용품들을 가져다 드리고 온 겨울 아침저녁으로 찾아가 재를 퍼내고 석탄을 퍼 들이며 불을 땠다. 치아가 변변치 않은 그들에게 손수 면을 끓여 드린 적이 수도 없다.

 

위생소가 없는 이 마을 주민들은 갑자기 집에 앓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그를 찿아 상의하고 해결책을 의논하군 했다. 그래서 "마을 간호사"라고 친절히 부른다.

 

그럴 만도 했다. 일찍 정률씨의 어머니가 당뇨에 신장병으로 앓다보니 의원을 자주 찾게 되였다. 그러면서 의학책을 사서 열심히 자습하고 의학, 생활상식들을 열심히 학습하였다. 문제들은 현병원의 문의사와 절친으로 지내며 묻고 해결하며 많은 의학지식을 쌓게 되였다. 게다가 장기 환자인 어머니를 돌보다 보니 의사 처방만 있으면 간호사 일을 척척 해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 덕에 방정률 부부는 태여 난지 몇 달 안 되는 손주 둘을 맡아서 지금껏 별 탈 없이 잘 키울 수 있었다.

 

신체상의 거부로 한잔 술도 못 마시는 그이지만 친구를 사귀는 일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1984년도부터 20여 년간 집 근처에 3푼 되는 양어장을 만들어 놓았다. 친구들과 낙시꾼들의 놀음장소로 제공하여 같이 즐겼다. 양어장의 생선은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나 친구, 동창모임에 회식용으로 내 주었다.

 

하여 마을의 노약자들은 "자네 덕분에 물고기 맛을 본다네"라며 즐거워 한다.

 

어찌 이뿐이랴. 부지런하기로 손꼽히는 이들 부부는 터전에 옮긴 몇 그루의 과일이 익을 철이면 오고가는 사람, 친구들에게 마음대로 따 드시라며 모두 나눠 먹었다.

 

한무 되는 터전에 여러 가지 야채를 삼모작까지 하며 알뜰히 가꾸었다. 싱싱하게 잘 자란 야채를 이웃들은 물론 현성의 친구들에게도 나눠 주었다.

 

이들 부부는 언제나 보기 좋고 싱싱한 야채를 남에게 주었지만 집에는 꼬부라 들고 상품가치가 없는 것을 남겼다.

 

한번은 야채 가지려 왔던 한 아줌마가 좋은 야채들을 가져가면서 주방 바구니에 담긴 볼품없는 야채들을 보았다. 그는 "참 대단하오"하면서 늘 외우군 한다.

 

한번은 현성에 사는 친구 리모씨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한 달음에 달려가 위로하셨다. 입맛이 없겠는데 먹고 싶은 음식이 없느냐고 여쭸다. 어린 시절 설 명절에 돌판에다 팡팡 친 찰떡이 맛있던 생각이 난다고 하셨다.

 

이튿날 옛 방식대로 정성들여 만든 찰떡 한 대야를 들고 갔을 때 그는 감격의 눈물을 금하지 못하셨다.

 

그해 겨울 생활난으로 고생하는 5명의 어르신들께 설 명절에 고기라도 사서 드시라며 50원, 100원씩 드렸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몇 번씩은 좋은 일을 할수 있다. 하지만 몇십년을 지내오면서 남에게 베푸는 일을 자기생활의 철칙으로 간주하며 "받는 사람보다 베푸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며 말하는 이는 참으로 드물 것이다.

일찍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문화대혁명을 겪게 된 그였지만 어려서부터 음악에 특별한 재질이 있어 발 풍금을 제법 잘 쳤다. 중학교 2학년을 다니다가 가정 곤난으로 그만 뒀지만 음악에 대한 배움의 길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아껴 모은 돈으로 손풍금을 사서 열심히 연습하며 박자를 터득했고 악보를 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손풍금, 색스폰, 피리 등 독주를 할 수도 있고 편곡도 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현, 향에서 소집하는 문예활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매번 상을 받았다.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그가 타는 흥겨운 손풍금소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삶의 활력소를 불어 넣군 했다.

 

봉사의 길은 평탄치 않다. 오직 부지런한 손길과 사심 없는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만 이 길을 연장할 수 있는 것이다. 방정률씨는 자신이 하는 일에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묵묵히 따라주며 부지런히 돌아치는 아내가 안스럽기도 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그리하여 좋은 노래가 있으면 아내가 배우라고 손풍금 반주를 하며 함께 부르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부부생활에 이채를 돋우기도 한다.

 

"남은 인생을 많이 베푸는 것이 우리 부부의 낙"이라고 말하는 방정률 림연순 부부는 오늘도 현진초등학교에서 공부하는 손주를 태우고 오는 길에 또 다른 학생까지 데려다 주며 더 알찬 여생 길을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다.

/김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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