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8일 저의 할아버지 문죽송(文竹松)께서 76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마음 아프게도 저는 그이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였는지를 알고있지만 그이는 제가 그이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를, 얼마나 존경하는지를 또 그이때문에 얼마 자랑을 느끼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답니다. 하여 그이는 영영 떠나셨지만 저는 차마 그이를 보낼수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우리 마을의 첫 고중생으로서 선화촌이라는 조선족마을에서 40년간촌장직을 담당하셨는데 참으로 후덥고 자상하고 배려심이 강한 분이시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딸이 없고 아들만 셋이여서인지 문씨집안의 첫 손녀인 저를 장중보옥처럼 애지중지 하셨답니다. 할아버지댁은 마을 동쪽에 있고 우리집은 마을 서쪽에 있는데 할아버지는 며느리가 불편할것도 생각지 못하고 이른 새벽도 좋고 어스름한 저녁도 좋고 언제 이 손녀가 보고싶으면 한달음에 달려왔지요. 할아버지는 나의 작은 엉뎅이를 똑똑 두드려주며 <<아이구- 우리집의 보배둥이>> 하며 기저귀를 갈아주었고 내가 잘때에는 또 며느리를 조금이라도 더 휴식하라고 살그머니 기저귀를 빨아놓고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손녀 보러 가는 일때문에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한테도 욕을 참 많이 먹었답니다.
<<아이, 이 령감 왜 이렇게 주책이 없어졌어요. 며느리 어려운 줄도 모르고 저렇게 아들집에 들락날락하니. 그리고 그 순한 애를 계속 안아 줘서 인젠 한시도 누워있을세라 하니 잘 됐어요. 령감이 습관시켰으니 령감이 봐요. 에그- 로망이야!>>
하지만 안타까워 바가지를 박박 긁는 할머니와는 달리 할아버지는 또 할아버지대로 <<허허->>하고 호탕하게 웃으며 할머니를 나무람하였답니다.
"허허- 그래 내아들집에 가서 내손녀를 보는 것이 헌법에 위반되오? 국법에 위반된다오? 당신은 그저 부모자식을 멀어지게 하는 얘기만 한단데. 허허- 귀엽고 약은 놈. 우리 집의 보배가 안아주는것을 좋아하면 당연히 이 할배가 계속 안아줘야지."
이리하여 난 할아버지의 품에 안길때가 가장 많았답니다. 할아버지는 선후하여 손녀 둘, 손자 둘을 보게 되였는데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귀해 하셨지요. 간혹 우리들이 다투면 큰 나를 나무람할대신 동생들을 보고 <<혜정이는 우리 집의 제일 큰 손녀이니깐 너희들은 누나를 존경하고 누나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단다- 알겠어?>>라고 얘기했고 동생들이 할아버지한테 전화올때마다 할아버지는 <<효정아, 효정아>>라고 말한다는것이 그만 <<혜정아, 혜정아>>라고 불러 동생과 삼촌이 서운해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답니다.
나는 어릴때 항상 할아버지의 꽁무니를 따라다녔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불을 때면 나도 기다란 장작으로 부억아궁이를 뒤지며 불때는 시늉을 했고 할아버지께서 장판을 닦으면 할아버지의 등에 올라앉아서는 <<이랴- 이랴->>하며 할아버지의 허벅지를 마구 쳐대며 말타는 시늉을 해댔지요.
할아버지는 밤에 친구들집에 가서 트럼프를 놀때에도 저를 데리고 가서 무릎에 앉히고 놀았습니다. 호호호- 그런데 그때 트럼프수자를 금방 읽을줄 안 나는 할아버지의 손의 패를 졸졸 다 읽었지요. 그때면 함께 노는 할아버지들은 <<야- 혜정이 참 잘한다. 할아버지 손에 또 무슨 패가 있어? 마저 읽어봐! 흐흐흐- 혜정이 덕에 우리가 횡재하게 됐네. >>라고 얘기하며 껄껄 웃어댔습니다. 난 더 으쓱해서 할아버지의 손의 패를 소리높게 다 읽어버렸습니다. 나때문에 할아버지는 돈을 질때가 참 많았지만 한번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오히려 <<요- 총명한것 좀 보지. 이제 트럼프패를 몇번 봤다고 요렇게 수자를 다 익혔어? 허허- 우리 혜정인 찍어놓은 청화대학생이라니깐!>>라고 자랑스러워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트럼프놀이뿐 아니라 야외에 고기잡이를 갈때마저 6살밖에 안되는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아늑한 산속에 자리잡은 낚시터에 도착하면 할아버지들은 돗자리를 펴고 점잖게 앉아서 낚시질을 시작합니다. 할아버지들은 또 초담배를 련속 몇개 태우고나서는 물고기들이 어떤 먹이를 좋아한다느니, 메사구는 매운탕을 끓여먹으면 제격이고 붕어는 회를 쳐먹으면 별미라느니 하며 가담가담 얘기를 섞기도 하였습니다. 난 놀가지처럼 홀짝홀짝 뛰여다니며 나비를 쫓아다니기도 하고 무덕무덕 피여난 개나리꽃이며 민들레꽃을 꺾기도 하였으며 그러다 싫증나면 또 낚시질하는 할아버지의 옷섶을 막 흔들며 <<할아버지, 재미없어요. 저랑 함께 놀아줘요. 녜->>라고 지청구를 들이대기도 하였습니다. 그때면 할아버지는 <<그래- 우리 보배둥이 재미없어? 이만큼도 혼자서 용케 오래 놀았지. 자- 그럼 인제부턴 할아버지가 놀아줄게!>>라고 말하며 훌쩍 일어났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낚시질 하는 곳과 이슥히 떨어진 곳에 납작납작한 돌을 가득 주어놓고는 <<혜정아, 물속에 첨벙 던지지 말고 요렇게 수면과 수평을 이루면서 살짝 물우를 스쳐지나게 뿌려봐! 옳지옳지!>>라고 물수제비를 띄우는것을 나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온 오전 신나게 고기를 잡던 할아버지들이 점심에는 늪가에서 고기를 구우며 술을 마십니다. 야외에서 할머니들의 정성이 듬뿍 배인 김밥이랑 장졸임이랑 김치전이랑 가득 차려놓고 물고기구이, 매운탕에 이야기장단을 벌리며 알딸딸한 소주를 <<카-카->>소리내며 쪽쪽 굽내는 순간은 할아버지들에게 있어서 신선도 부럽지않을 정도로 행복한 순간이였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만은 저를 보살피느라 밥 한끼도 시름놓고 자시지못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뼈를 깨끗하게 발가낸 물고기구이를 맛나게 야금야금 먹어대는 이 손녀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우리 혜정이 많이많이 먹어. 물고기를 먹으면 머리가 총명해지거든. 이제 이 할배가 이렇게 많이많이 잡아줄게 응?>>라고 두손까지 뒤로 한껏 젖히며 말씀하셨답니다.
하지만 이렇게 나를 총애하시던 할아버지께서 고중3학년을 다니는 이 손녀가 대학시험장에 들어가는것도 보지못하고, 이 손녀가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원하던 문씨가문의 첫대학생이 되여 할아버지의 손에 넘겨줄 명문대학통지서도 쥐여보지 못한채 식도암으로 고생하시다 저 세상으로 떠나셨습니다. 이 손녀가 아직 할아버지한테 받은 사랑의 백분의 일, 아니 천만분의 일도 갚지 못하였는데 말입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자신을 목숨처럼 아끼는 친인을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크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어느 조선어문수업시간 한국 도종환시인의 시 <<담쟁이>>를 배우며 저는 수많은 청과선생님들과 동학들이 있는 자리에서 할아버지의 얘기를 하며 눈물을 왈칵 쏟았습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함께 손잡고 절망의 벽을 정복하여 파랗게 생명을 수놓는 담쟁이들의 모습이 존경스러웠고 <<동무들 성장길에서의 절망의 벽은 무엇이였습니까? 동무들은 절망의 벽앞에서 어떻게 행동하였습니까?>>하는 선생님의 물음이 저를 뭉클하게 하였습니다.저는 제일 첫 사람으로 손을 들고 발언하였습니다.
저에게는 저를 참으로 사랑하시고 40여년간 촌장사업을 하시며 마을사람들을 위하여 일심일력으로 일한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는 식도암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병마와 103일간 사투를 벌리다 영원히 돌아올수 없는 길로 떠나셨습니다. 아버지가 매일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하던 말씀이 지금도 들려오는듯 싶습니다. <혜정아,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자주 쳐드리고 고3이여서 공부가 바쁠테지만 시간만 나면 자주 가서 할아버지를 뵙거라. 할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할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않았단다. 계동병원에서 할아버지의 병을 치질로 오진하고 몇달간 치료한것이 병이 그만 지체되였지.>저는 그때 울고싶었지만 아버지가 슬퍼할가봐 소리내여 울지도 못하고 매일 홀로 이불속에서 눈물을 떨구었습니다.
흑흑- 이 세상에 태여나 처음 절망을 느껴봤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아파하시고 수척해가는데 저는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고 안위하는 외 아무것도 하지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더욱 슬펐습니다. 그 처절한 절망감, 하늘이 무너져 내린듯한 슬픔 영원히 잊을수 없을듯 싶습니다. 흑흑-
저는 끝내 발언을 맺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려 흑흑 흐느껴 울고말았습니다. 수업을 들은 선생님들과 동학들 모두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 저의 등을 다독이며 눈물젖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혜정이의 담임으로서 혜정동무가 요즘 이렇게 아파하고 힘들어 한것을 몰라 미안합니다. 훌륭한 할아버지이시고 훌륭한 촌장이셨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세요. 할아버지의 삶을 열심히 읽고 진정 리해하고 나면 할아버지가 혜정학생에게 남겨준것 결코 절망만이 아니라는것을 깨닫게 될것입니다…
눈물과 감동으로 이어진 시감상과 <<담쟁이>>수업시간- 이번 수업시간은 나에게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절망의 벽일지라도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면 희망의 푸른빛으로 덮을수 있다는것을 가르쳐준 한 시간이였고 나의 할아버지이기에 앞서 사회의 한 일원인 할아버지 문죽송(文竹松)씨를 알아가는 수업을 시작할것을 결심 한 수확의 한 시간이였습니다.
40여년의 촌장사업기간 할아버지는 구경 어떤 일들을 하셨을가?
어느 주일날 저는 뻐스를 타고 할아버지께서 생활하고 사업하셨던 선화촌으로 떠났습니다. 제가 어렸을때 저를 참으로 이뻐해주셨던 늙은이들을 다시한번 만나보고 싶었고 또 할아버지의 친구들로부터 할아버지의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싶었던것입니다.
뻐스가 계동에서 약 1시간쯤 달리자 내 동년의 추억들이 그대로 묻어있는 오붓한 선화촌이 나타났습니다. 마을입구에 세워진 <<선화촌으로 오신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조선글로 씌여진 간판이 한눈에 안겨왔고 즐비하게 늘어선 새로 세운 가로등들이 호기스럽게 서있었습니다. 저는 뻐스에서 내린후 곧장 로인협회를 향하여 발길을 옮겼습니다. 9월달도 허리를 넘어섰는지라 집집마다의 처마밑에는 빨간 고추다래들이 주렁주렁 드리워있었고 채마밭에는 싱겁게 키큰 옥수수가 등에 누렇게 잘 익은 이삭들을 업고 히죽이 웃고있었습니다. 초가집들은 하얗게 회칠되여있고 벽들집들도 덩그렇게 자리잡고 있지만 옛날의 그 가을걷이로 흥성하던 모습은 찾아볼수 없었습니다. 100여호가 살던 조선족마을의 여기저기에서 한족인들이 대화하는 목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습니다.
마당에 코스모스와 국화꽃이 화사하게 피여난 로인협회에 도착하였을때 로인들은 한창 게이트볼을 즐기고있었습니다. 그속에서 얘기중 <<응 그래>>하는 말을 밥먹듯 하여 우리 꼬맹이들로부터 <<응그래할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졌던 최할아버지가 나를 알아보고 반색하였습니다.
<<아니, 너 죽송이의 맏손녀 혜정이가 아니니? 응, 그래 맞지?>>
<<녜. 저 혜정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모두 안녕히 계셨죠?>>
저는 로인들께 인사를 올리고는 오늘 선화촌에 오게 된 연유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어느새 로인협회안에서 고스톱을 놀던 할머니들마저 로촌장 문죽송의 맏손녀가 찾아왔다는 얘기를 듣고 모두 달려나와 제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에그- 어느새 이렇게 처녀가 됐어? 여기 이 이마가 시원스러운것이랑 눈길이랑 제 할배 첸심하지? 야- 정말 조상은 못 속인다더니.>>
<<너 우리 령매와 동갑이니 올해 고중3학년이겠구나. 할배를 닮아 뛸데없는 대학생이겠지.>>
<<야- 애를 이렇게 밖에 세워놓지 말고 모두 날래 집안에 들어가서 얘기나누깁소.>>
<<응, 그래. 언녕 그래야지!>>
<<응그래할아버지>>가 여러 할머니들을 나무람하며 나를 집안으로 끌었습니다. 내손에는 어느새 잘 익은 노란 옥수수이삭이 쥐여져있었습니다.
<<응그래할아버지>>가 제일 첫사람으로 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응- 그래 문령감이 고생했지. 응 그래 다른 마을에서는 령도들이 슬금슬금 목재들을 팔아 제집 짓고 아들집 져주고 할때 문령감은 글쎄 마을의 나무들을 한그루도 켜지못하게했을뿐만아니라 사원들을 거느리고 앞장서 제방남 진펄을 메우고 황무지를 5쌍 개간한 곳에 모두 나무를 심었지. 응 그래 32년전에 심은 저 나무가 지금은 울창한 수림을 이루었으니 우리 선화촌의 후손들한테 엄청난 재산을 물려준셈이지. 남들은 간부질하면 모두 잘 산다는데 문촌장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손이 크게 부조를 하고 가을에 눈이 팍 덮혀 벼를 걷어들이지 못하였을땐 또 마을사람들의 벼를 다 걷은후 얼음판에 딱 붙어버린 제집벼를 다문 얼마라도 건져내느라 했으니 잘 살면 얼마나 잘 살았겠소..>>
이번엔 젊어서 찰떡을 해 팔아 자식들을 공부시켜 <<찰떡로친>>으로 불리우는 리할머니께서 입을 열었습니다.
<<문촌장은 우리집의 은인이란데. 47년전 난 남편을 잃고 태평이라는 한족마을에서 애 넷을 데리고 살았지. 나야 아무렇게 살아도 괜찮지만 애들이 커가자 괜히 이러다 이밥도 못먹는 곳에서 자식 넷을 조선말, 조선글도 모르는 데놈으로 썩이지않겠나 하는 걱정이 떠나지 않았지. 몇날며칠 밤을 설치다 태평과 제일 가까운 조선족마을인 50여리 떨어진 선화촌에 와서 대대간부들을 찾고 호구를 붙여달라고 통사정을 했지. 그땐 이미 대대별로 땅을 다 나뉜뒤라 우리집을 받으면 자연히 집집에 차려지는 몫이 적어졌고 우리집은 또 잔밥이 넷이나 되고 로력은 나 하나뿐이니 집체로 일할때 어느 대대에서도 우리를 받으려 하지않았지. 야- 내 그때 안타까운 심정을 어디가서 얘기하겠소. 그때 문촌장이 대장질할때였는데 <아줌마 얘기를 들어보니 아줌마 참 고생을 많이 하신분이구만. 시름놉소. 조선족이 제 조선족으로 살고 자식을 제 조선족으로 키우겠다는게 얼마나 대견한 생각임둥. 구렁텅이에서 허덕이는 사람을 보고 그대로 지나가면 천벌을 받습꾸마. 하물며 한 피줄을 타고난 조선족인데 우리는 더구나 못본척해서는 안됩꾸마…>라고 나를 보고 걸걸하게 얘기하고는 한집한집 다니며 설복공작을 하였지비. 그래서 자식들도 조선학교를 다닐수 있었고 지금 청도, 상해같은곳에서 회사랑 경영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수 있게되였어. 에그- 내 정말 문촌장의 은혜를 한평생 잊을수 없단데...>>
리할머니는 어느새 옷섶으로 눈굽을 찍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선화소학교에서 20여년간 교장직을 맡으셨던 함교장께서 우리들에게 할아버지와 선화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1980년도까지만 하여도 우리 선화촌에 조선족학교가 없었는데 애들이 모두 4리나 떨어진 흥안촌에 가서 다녀야했지. 어린것들이 4리나 되는 산길을 일년사시장철 오가야 했으니 얼마나 고생이 막심했겠나. 그리하여 너무나 멀어서 다니기 불편하여 어린 나이에 중퇴하고 집에서 농사짓는 애들이 많았지. 이것을 가슴아프게 생각해오던 문촌장이 현교육국을 신이 닳도록 찾아다니며 우리 마을에 학교를 세워줄것을 요구하였지. 그런데 현교육국에서는 우의 문건정신이요 뭐요 하며 피일차일 미루기만 하면서 좀처럼 비준할 눈치를 보이지 않았네. 그래 문촌장이 전체 촌민들이 학교를 세워줄것을 요구한 서명이 적힌 천을 가지고 대대간부들을 거느리고 계서시교육국까지 찾아갔지. 시교육에서 마을에 와서 조사까지 하였는데 반영한 내용과 다름이 없자 학교를 지어주는것을 동의하였지. 학교를 짓기 시작하였는데 운동장은 완전 솔밭이였소. 문촌장은 전체 사원들을 이끌고 나무를 켠다음 뿌리를 뽑았고 온 마을의 손잡이뜨락또르와 소차를 전부 동원하여 자른 나무가지와 뽑은 나무뿌리들을 운송해갔지. 솔밭이 운동장으로 변신하자 문촌장은 또 사원들과 함께 애들에게 아담한 배구장, 축구장을 만들어 주었지. 1981년 9월1일 선화촌의 이름을 딴 선화학교가 정식으로 개학을 맞이하였는데 그때 제1기 학생이 80여명 되였지. 학교가 멀어 공부를 중퇴했던 애들까지 다시 학교문을 찾게 되자 학교가 제일 흥성할땐 학생이 120명까지 달하였소.
그때 학교에는 녀교원 4명이 있었는데 숙사로 있은 초가집이 불만 때면 연기가 났고 구들도 덥지 않았다우. 그래서 해마다 구들을 뜯어고쳐야 했는데 개학할무렵이면 문촌장이 직접 지붕에 올라가서 연통을 다시 쌓았고 얼굴에 검댕이칠을 해가며 구들을 뜯어고쳤지.
문촌장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잘 가르쳐주려면 우선 많이 배우고 견식이 넓어야 한다며 방학만 되면 대대돈을 써가며 선생님들을 연길의 학교들에 연수를 보내였소. 1984년도에 문촌장은 또 비싼 리자돈까지 맡아가며 5백여원의 돈을 내 손에 쥐여주면서 전교교원과 2명의 3호학생을 데리고 <경박호-북경-청도-대련-태양도>라는 로선을 따라 10흘간 유람을 하게 하였지.
그때 얘 애비 문범도가 공부를 그렇게 잘 하고 운동도 전현에서 삐여져 전교에서 첫손꼽히는 모범생인데도 제 아들은 보내지 않고 5학년의 3호학생 둘을 보냈지. 촌장부터 이렇게 교육을 중시하고 교원들을 존중하였기에 마을에서도 애들교육을 중시하고 교원들을 우러러보는 기풍이 형성되였소. 사실말이지 촌장사업을 하며 촌에 일만 해도 눈코뜰새 없이 바쁜데 마을애들의 교육에 문촌장처럼 이렇게 신경 쓴 촌장이 정말 전성적으로도 드물걸세. >>
함교장의 눈굽은 어느새 축축히 젖었습니다. 막혔던 골물이 터진듯 여기저기에서 쏟아져나오는 격동적인 목소리들을 들으며 저는 감동에 목메였고 할아버지때문에 한없는 자랑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할아버지는 바로 그 담쟁이잎이였습니다. 바로 그 수천수만개의 담쟁이잎들을 이끌고 절망의 벽을 파랗게 덮은 존경스러운 담쟁이잎이였던것입니다.
귀로에 오른 나의 마음은 벅차기만 하였습니다. 그것은 참대처럼 바르고 정직한 삶을 사신 할아버지, 소나무처럼 평범하지만 기품있는 삶을 사신 나의 할아버지- 문죽송(文竹松)씨는 떠나가셨지만 그 고결한 인격에서 빛나는 파란 담쟁이잎만은 우리들의 생명을 쪽빛으로 물들였기때문입니다!
http://www.hmzxinwen.com/news/1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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