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계시고 아내와 딸자식까지 있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혼자 사는 연습을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아귀가 맞지 않은 말이지만 불혹의 나이를 먹으면서부터 지천명의 중반의 나이를 먹은 지금까지 나는 이국 타향 한국에서 17년을 혼자 사는 연습을 하고 있다.
고향에 있을 때만 하여도 지금처럼 혼자 산다는 건 언제 한번 꿈도 꾸지 못했고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일이지만 인간이 이 세상을 살다보면 양지가 음지가 되고 음지가 양지 될 때가 있고 또한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고 삶이고 보면 언제, 어느 때 삶의 환경이 바뀌기 마련이고 그 환경에서 살아가자면 부득이 혼자 사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1962년도 봄에 형제 8남매 중 막내로 이 세상에 태어나 나는 한 번도 어머니의 치마폭을 떠나본 적이 없고, 다만 형님, 누나들의 따뜻한 정과 사랑만 받으며 응석만 부리며 동년의 세월을 보냈고 그 후 형님, 누나들이 시집, 장가를 가고 나도 장가를 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면서도 늘 부모와 형님, 누나들의 보살핌과 경제적인 도움을 받으며 살다보니 나에게는 고독과 외로움 같은 건 전혀 인연이 없는 걸로 알고 살았다.
그 후 형님, 누나들이 가정의 생계와 유지를 위해 돈 줄기를 찾아 한국과 연해도시로 진출했고 나만 그냥 고향에 남아 1.2헥타르의 논농사를 지었지만 해마다 논농사에 들어가는 생산비 원가와 생활용품물자들도 청승부지로 치솟아 오르고 있는 현실에 비해 벼 가격, 쌀 가격은 그냥 앉은 지리를 치고 있어 농사를 지어봤자 남는 수익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학년이 높아가는 딸애의 공부 뒤 바라지는 물론 가정 생계유지가 점점 어려워 졌다.
그래서 나도 불혹의 나의를 먹던 1997년도 봄에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 핍박에 의해 량산을 오르듯 몆년 전에 중풍으로 운신 못하는 노모와 처자식을 고향에 남겨 두고 혈혈단신으로 천리타향 한국으로 나오면서 그때로부터 나의 혼자 사는 연습이 시작되었고 고독과 외로움과의 인연도 시작되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불혹의 나의를 먹기까지 단 한 번도 부모와 형제, 처자식과 헤어져 살아 본적이 없던 내가 하루아침에 가족과 이별하고 산 설고 물설고 게다가 사회풍토까지 낯 설은 이국타향에서 외기러기 신세로 혼자 살아가자니 처음엔 이런 저런 어려움이 많아 눈앞이 캄캄해 났다.
난생 처음 전기밥솥에 밥을 짓다보니 물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해 쩍하면 꼬들밥이 되지 않으면 죽이 되고 반찬도 너무 짜서 먹지 못하고 때론 반찬이 너무 싱거워 간을 여러번 맞추다보면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 가는지 코 구멍으로 넘어가는지 매번 저녁 한 끼를 해결하는 것이 진짜 곤혹이고 먹는 음식보다 버려지는 음식이 더 많았고 빨래와 집안 청소는 힘들고 귀찮아 늘 들쑥 날쑥이다.
달라진 환경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힘들고, 거치장스럽고, 귀찮은 일들은 저만큼 제쳐놓고 간편한 것으로 대체하는 일이 잦아졌다.
전에 고향에 있을 때만 하여도 입에 대지도 않았던 라면 등 인스턴트식품과 친하게 되었고 빵 한 쪼각 물 한 컵으로 끼니를 떼우기가 일쑤다. 입는 옷도 갈아입기 귀찮아 늘 입던 옷을 입다 보면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옷을 입고 다녔고 세탁기에 넣어 돌리기만 하면 저절로 되는 빨래도 이붓 아비 제사 미루듯 집구석에는 항시 빨래가 쌓여 있었으며 방도 거두지 않아 당장이라도 이사 가는 집을 방불케 했다.
말 그대로 '홀아비 살림에 먼지 석자다.' 는 말이 그른데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악처가 효자보다 낫다고 나와 25년을 함께 살면서 그동안 아내의 빈자리와 그 역할이 얼마나 소중했고 크다는 걸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매일 새벽 별을 머리에 이고 노동 강도가 세기로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노가다 현장에서 하루 꼬박 13시간을 일하고 휘청거리는 몸으로 셋집에 들어서면 언제나 고독과, 적막이 진을 치고 있어 일하기보다 외로움에 시달리는 것이 더욱 힘이 든다.
그때마다 영국의 작가 다니엘 디포의 장편소설 '로빈슨 크루쇼' 에서 주인공 로빈슨 크루쇼가 외딴 무인도에서의 그 비참한 삶이 지금의 내 삶과 무엇이 다르랴는 생각에 한숨과 한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혼자 앉아서 한숨과 한탄을 한다고 내 처지가 변하거나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 오히려 내 처지가 더욱 난감해지고 처량해지기만 했다.
나는 생각 끝에 이왕 혼자 몸이 된 이상 그래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입지를 생각하면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혼자 사는 길'을 다짐하고 '혼자 사는 법'을 익히며 낙도를 찾기로 했다. 그러나 홀아비에게 모든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먹고 입고 빨래하고 집안 청소하는 일 어느 것 하나도 자연스러운 것이 없다. 그렇다고 변하지 않으면 내 처지만 더욱 처량하고 가엽게 된다. 울며 겨자 먹듯 혼자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내 삶은 어디까지 내가 가꾸면서 살아야지 어 누가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것 또한 우리네 인생이고 삶이 아닌가. 더욱이 고향도 아니고 이국 타향에서 혼자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혼자 사는 연습은 해야 한다.
천리 길도 첫걸음부터고 잠을 자야 꿈도 생긴다고 물론 처음에는 힘이 들고 귀찮더라도 원인과 방법을 알고자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가노라면 쥐구멍에도 해 빛이 들어 올 날이 있듯 분명히 혼자 사는 낙도를 찾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서점에서 여러 가지 요리책을 사서 보기도 하고 그래도 모르고 생숭하면 체면도 무릅쓰고 같이 일하는 동료 아줌마들에게 요리하는 방법과 요령을 물어가면서 익히고 배웠더니 지금은 웬간한 요리는 혼자서도 뚝딱 할 수 있는 수준급이며 빨래는 물론 집안 청소도 깔끔하게 할 수 있어 아무리 홀아비살림이지만 여자 있는 집도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차츰 타향살이에 적응이 되고 마음이 안착되어 가면서 '혼자 사는 길'과 '혼자 사는 법'을 알고 낙도를 찾게 되면서 내 생활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 오게 되었다. 전에는 늘 내 신세가 고독하고 외롭다고 혼자 실망에 빠져 고민하고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오래 동안 보지 않던 문학서적을 읽고 놓았던 필도 다시 들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고 내 삶에도 새로운 활력소가 생기면서 이제 더는 고독하거나 외롭지가 않다. 오히려 하루하루의 삶이 즐겁고 유쾌하고 활기로 차 넘친다.
그렇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찌 보면 자신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그 모습이 다르게 되거나 그 결과가 다르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덧 내가 타향살이를 한지 어언간 1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그 약이 나에게 진짜 '약'으로 되어 그동안 타향에서 나 혼자 살아온 삶의 편린들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니 인간의 삶이란 늘 편안하고 안락한 삶에 안주하면서 우여곡절이 없는 순항의 삶을 사는 것 보다 때론 고독과 외로움, 열악한 환경과 역경을 겪으며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사는 삶, 그 속에서 삶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고 받기만 하는 인생보다 먼저 베풀 줄을 아는 인생, 그리고 아들, 남편, 아버지의 책임과 입지가 무엇인지 등 많은 인생의 도리와 사람의 도리를 깨달고 느끼면서 잃은 것 보다 덤으로 얻은 것이 많아 만족과 자호감과 행복을 느낀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일찍 퇴근했다. 나는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하루 일에 땀에 절어 하얗게 소금이 밴 옷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그동안에 익힌 익숙한 솜씨로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앉히고 감자 두 알을 깎아 파와 매운 고추를 썰어 된장찌개를 끓였다. 어느새 세탁기에서 빨래가 다 되었다고 음악이 흘러나오고 구수한 밥 냄새 된장찌개 냄새가 집안을 진동한다.
창문을 열고 서쪽하늘을 바라보니 한 폭의 이름다운 수채화를 방불케 하는 저녁노을을 저녁 해가 앙증맞게 야금야금 먹고 있다. 그 가운데 오늘도 이국 타향에서 혼자 사는 나그네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삶의 길에 연습은 없는 것이라지만 어차피 미완의 인생일진대 연습 또한 틀린 말이 아니며 더구나 나그네의 혼자 사는 길에는 연습은 불가피한 것이다.
정녕 아들, 남편, 아버지의 길이 산전수전이 있는 그 곳에 열려 있는 것이리라.
/허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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