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기사스크랩
기사 출력  기사 메일전송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http://www.hmzxinwen.com/news/24769
발행일: 2022/06/19  정명선
고향의 맛 _ 시래기 된장국

새벽에 늦잠을 좋아하는 몸을 억지로 이끌고 누운 채로 기지개 몇 번 펴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따르릉 따르릉 인터폰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깨고 울린다. 나는 환자가 깨어날까 봐 허겁지겁 뛰어가 받았다.

 

"여사님, 빨리 내려오세요. 친구가 왔어요."

 

원무과 오 팀장님의 목소리다. 조선족들이 한국 땅에 와서 일하면서 여사님 호칭을 받는 유일한 직업이 간병일이다. 나는 야간에 입었던 유니폼 갈아입을 여유도 없이 마스크만 챙겨 쓰고 계단으로 급히 뛰어 내려갔다.

 

1층 로비에 도착하니 정문 앞에 친구가 커다란 박스를 들고 서있다. 코로나 이후 한국의 요양병원들은 문을 잠그고 출입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외부인이 들어올 수도, 근무자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시스템이다.

 

이렇게 차단된 병원에서 간병일하는 나를 걱정해서 친구가 오늘도 반찬이랑 먹을거리 한 짐 챙겨온 모양이다. 참 고마운 친구다. 짐만 넘겨받은 나는 유리창 너머로 고맙다는 싸인을 하면서 돌아서 가는 친구의 뒷모습만 쓸쓸하게 지켜봤다.

 

겨우 들 수 있을 정도로 무거운 박스를 병실까지 옮겨놓고 헤쳐 보니 박스 속에는 커다란 곰 솥도 있었다. 뚜껑을 여는 순간 나는 '아뿔사 이건 뭐야 ' 하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받는 사람이 아연실색할 정도로 통 큰 친구가 연변 토장과 텃밭에서 캔 애기배추 시래기에 돼지고기를 넣고 된장국을 끓여 가져왔다. 시래기 된장국은 친구의 마음과 같이 아직도 뜨겁다.

 

어렸을 때 거의 날마다 먹었던 시래기 된장국이다. 가을에 장만한 채소로 겨울을 버텨야 했던 그 시절, 집집의 처마 밑에는 가을 김장하고 난 배추를 꿰달아매놓은 시래기 꾸러미가 매달려 있었다. 엄마들은 시래기를 가마솥에 푹푹 삶고 다져서 어른 주먹만 큼씩 죄기 해 눈 속에 파묻는다. 우리는 겨우내 그 시래기로 끓인 된장국을 먹었다. 그 덕에 그때는 암으로 앓는 어른들을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고 우리는 탈 없이 잘 자랐다. 어릴 적부터 먹어온 그 맛에 길들여진 우리는 오늘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나는 간병인 동료들을 탕비실로 불러 아침 식사를 함께하였다. 시래기된장국에서 큼직한 고깃덩어리를 건져 숭덩숭덩 편으로 썰어 국에 넣고 한 그릇씩 나누었다.

 

"음, 바로 이 맛이야. 이거 얼마만이야."

"와~, 시원하다. 어~,구수해."

 

이사람 저사람 탄성이 절로 나온다. 삼복 철에 에어컨 틀어놓고 뜨거운 된장국 마시며 땀 뻘뻘 흘리면서도 시원하다고 탄식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빵 웃음이 터진다. 우리말표현이 참 애매하다.

 

행복해 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나도 한 그릇 차지하였다. 한 숟가락 입에 넣으니 그 맛과 향이 입과 코로 온몸에 스르륵 퍼진다. 구수하고 시원한 이 맛, 한 숟가락 후루룩에 "와~ 시원하다." 또 한 숟가락 후루룩에 "어~구수하다." 감탄사가 그냥 튕겨나는 맛이다. 옆방 언니가 하는 말에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어젯밤 무슨 꿈 꿨길래 이런 아침상을..."

 

코로나 터지고 우리 간병인들은 이년반이 지나도록 출입이 금지된 병원생활을 하고 있다. 외출금지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해본 지가 오래됐다. 병원식당에서 나오는 대로, 생기는 대로, 차려지는 대로 하는 세끼 식사이다 보니 먹고 싶은 거 건강에 좋은 거 챙길 틈이 없다. 입맛에 맞는 식사를 찾는 건 희망뿐이고 사치이다. 휴식 없는 피로도 힘들지만 단맛짠맛 다 뺀 병원식사에 우리의 위장도 지쳤다. 위장이 고향의 맛~ 시래기 된장국을 반긴다. 어릴 때부터 그 맛에 익숙해진 입이 시래기 된장국을 즐긴다. 기가 막힌 그 맛의 비쥬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머나먼 타향에서 맛보는 고향의 맛~ 시래기 된장국, 우리는 그 맛에 취하여 고향 이야기를 하면서 잔치를 하였다.

 

그 동안 못 먹었던 음식들이 내 입으로 들어오는 것에 감사하고 친구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하며 아침을 포식하였다. 한국의 백선생 집 밥이 울고 갈 고향 맛 밥상이다. 우리 마음을 고향으로 이끌어 가는, 고향 맛 풍기는 소박한 밥상이 주는 행복이다. 시래기된장국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갈증이 난 우리에겐 그냥 평범한 국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달래주는 보약이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고향에 돌아 갈 거라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날은 왜 이다지도 오지를 않는지 마음만 답답하다. 혹시나 코로나를 묻혀 갈까 걱정되어 고향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종식될 그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동포 간병들이 수없이 많다. 아마도 코로나가 종식되고 나면 고향으로 가는 첫 비행기에 내가 탑승해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오늘도 출입금지 된 한국의 요양병원에서 고향을 그리며 간병일상을 보내고 있다. 오늘도 고향의 가마솥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시래기된장국을 연상한다.

 

우리가 가장 머물고 싶은 곳은 우리가 나서 자란 고향이다. 우리가 가장 즐기는 맛은 고향 음식이다. 그곳에서 따뜻함과 포근함을 느끼고 그 맛에서 행복을 느낀다. 고향의 맛~ 시래기된장국은 고향을 더 사무치도록 그립게 한다.

 

고향 연변이 넘 그립다!

/김선화



기사 출력  기사 메일전송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독자의견쓰기
* 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 등 목적에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등록된 글은 수정할 수 없으며 삭제만 가능합니다.
제    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스팸방지            스팸글방지를 위해 빨간색 글자만 입력하세요!
    

포토뉴스

사진작품

미술작품

방습거울
음악감상
한중방송 라디오방송
사진은 진실만 말한다

 가정여성 

한민족여행사

 동포사회 

TV광고

영상편지

한민족신문 韩民族新闻
 
  l   회사소개   l   광고안내   l   구독신청   l   기사제보   l   개인정보보호정책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