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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12/23 개원 청솔 리한택

길은 흐른다

어어 어허야 어허야 어허
어어 어허야 어허야 어허
행상소리가 아침 안개를 타고 멀리 멀리 흐른다.
긴 상여 행렬이 막 동구밖을 나선다.
동네 터줏대감인 리영감의 상여가 나가는 날이다.

가자가자 어서 가자
갈길은 구만리다
竹馬故友 박영감이 선창을 하자.
어어 어허야 어허야 어허
흰 바지저고리에 상여꾼들이 후창을 한다

황천길이 멀다더니
문밖에 나서면 황천길이다
어어 어허야 어허야 어허
처자권솔을 다놓고 돌아를 간다
어어 어허야 어허야 어허

이팔청춘 어린 나이
한 많은 두만강을 건너왔었네
어어 어허야 어허야 어허

갖은 설움 참아가니
돌우에도 꽃이 폈네
가세 가세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 가세
어어 어허야 어허야 어허

오솔길은 동산으로 향한다
오고 가고
가고 오고
리영감의 발자취에 땅이 헐어 길이 트이고
샘물 끌어 良田沃畓 만들고 山비탈 깎아 과수원 만들었네
팽이같은 한생 이제서야 한가히 가마 타고 꽃구경을 나선다

고생만하던 나로구나 불쌍허다
인제 가면은 언제나 오려나
어어 어허야 어허야 어허

하늘도 무심 하여라
이렇게 가시는듯 돌아오소서
어어 어허야 어허야 어허

생전에 심은 배나무에 梨花가 이렇게도 화사한데
어이하여 꽃가마속에 누워만 계시는가
어어 어허야 어허야 어허

훌훌 털고 벌떡 일어나보세
달콤한 鷄鳴酒 한잔 먹고 봄꽃 구경을 가세
어어 어허야 어허야 어허

오솔길에는 눈송이 같은 梨花가 흩날린다.
지게 진 리영감 꽃눈 맞으며 발걸음도 가벼우시다.
梨花가
피고 지고
지고 피고
오솔길에는 수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소달구지 워낭소리 흐르던 오솔길
꽃다운 새색시 꽃가마 맞이하던 오솔길
생떼같은 자식들이 뛰여놀던 오솔길
머나먼 고향에서 희소식이 전해오던 오솔길
전쟁터로 나가는 동생 마지막 모습이 어린 오솔길

때가 묻고 정이 묻은 오솔길은 먼 곳으로만 흐른다.
싱그러운 봄햇살이 내리고 梨花도 하염없이 내린다.
하얀 梨花 즈려밟으며 한 사내아이가 외로이 걸어 간다.
애틋함이 묻어나는 오솔길 끝자락에서 홀연 어디론가 사라진다.

나는 가네 나는 간다
어어 어허야 어허야 어허
인제 가면은 언제나 오나
어어 어허야 어허야 어허

오솔길은 벌써 저 만치 가고 있다.
환희가 흐르고 슬픔도 흘렀던 오솔길
떨어지는 梨花는 나비가 되여 마지막 길을 배웅한다.
한번가면 다시는 돌아 못올 마지막 길
오솔길도 슬픔에 흐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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