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소리없이 깊어 간다.
부엌에서 밤새 울던 귀뚜라미도 이젠 꿈나라에 들었는지 간간이 잠꼬대 소리만 들려온다.
한쪽 커튼이 떨어져 나간 창문으로 푸르스름한 달빛이 흘러내리듯 창턱을 적신다. 창턱의 작은 화분에 수분 잃은 꽃가지가 한없이 고개를 숙인다.
허름한 방에 노인이 주검처럼 누워있다.
깊게 패인 눈두덩은 까맣게 천정을 응시하고 있다. 순간 번뜩이는 눈동자는 노인이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어둠속에 더부룩한 턱수염이 허연빛을 발하고 있다.
으음～
산소가 모자란 붕어처럼 입을 한껏 벌리고 숨을 몰아쉰다. 숨이 멎은듯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후～하고 날숨을 내뱉는다. 그럴때마다 그의 목구멍에서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함께 새어나온다.
노인은 입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깔깔한 혀를 내밀었지만 마른 입술을 적시지 못했다. 갈라터진 입술은 아프고 쓰려온다.
은은한 달빛이 흐릿한 방안을 살포시 어루만진다.
벽에는 빛이 바랜 흑백사진이 덩그러니 걸려있다. 색바랜 사진속에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마누라가 희미하게 웃음짓고 있다. 순간 노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반짝이는 그 무엇이 볼을 타고 힘없이 흘러 내린다.
틱.틱.틱
낡은 벽시계의 초침소리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며 방안의 정적을 깨뜨린다.
오랜 시간 쌓인 먼지와 습기, 약간의 곰팡이 냄새가 뒤섞여 형언할수없는 탁한 공기가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노인의 앙상한 갈비뼈가 이따금 한번씩 오르내린다. 쩍 벌린 입으로 하나 뿐인 앞니가 흉물스럽게 드러나있다. 작은 공간의 탁한 공기를 한모금씩 탐닉 할때 마다 노인의 아래턱 흰수염이 미세하게 떨린다.
어둠속에 노인은 그림처럼 누워있다. 번들거리고 고무줄같은 살가죽에 앙상한 뼈마디가 훤히 드러나있다. 손등에는 검푸른 혈관이 마치 땅 위로 드러난 뿌리처럼 불거져 있다.
미동도 없던 노인의 손이 갑자기 경련을 일으킨다. 온 힘을 다해 무엇을 움켜쥐려듯이 높이 쳐든 손은 허공을 맥없이 할퀴고서는 다시 방바닥으로 처지고 만다. 광대뼈가 선명하게 드러난 노인의 얼굴은 이미 해골의 윤곽을 하고 있다.
눈꺼풀이 무겁다. 자꾸만 잠이 온다. 노인은 애써 정신을 가다듬는다.
그릉, 그릉
돌연 목구멍에서 그릉소리가 난다. 숨이 꽉 막히자 노인은 기침이 점점 거칠어진다. 어둠속에 꿈틀하던 노인은 급기야 손가락을 입안으로 쑤셔넣고 마구 쑤셔댄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다. 끈적거리는 가래는 목구멍에 딱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다. 기진한 노인은 몸을 옆으로 숙이고 컥! 컥!하는 거친 기침을 연달아 내뱉었다. 마른 나무가지같은 손가락은 목을 붙잡았고 굽은 등은 기침의 충격으로 더욱 구부러졌다.
숨이 가쁜 노인의 가슴이 크게 오르내리고 있다. 깊숙히 파인 그의 눈에는 고통과 불안으로 가득하다. 기침소리에 침울한 방안의 공기가 힘없이 진동한다. 몸을 일으키려고 안깐힘을 썼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경련이 온듯이 노인의 몸이 파르르 떤다.
방안은 다시 고요해진다.
창 너머로 거무충충한 버드나무가지들이 바람에 흐느적거리고 있다. 노인의 희뿌연 눈동자는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며칠째 이렇고 누워 있었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혼미해져 자다 모르는 기척소리에 깨어나고 추움에 떨다 다시 깨어나군 했다.
오래도록 불을 때지 않은 방구들은 냉골처럼 차가왔다. 방바닥은 탐욕스런 괴물마냥 촉수를 내뻗어 노인의 몸을 속속들이 파고든다. 무수한 촉수들은 한올의 온기마저 깡끄리 뺏아갈 태세이다.
' 요를 두껍게 깔아서야 했는걸...'
몸살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 드러 눕고부터 지금까지 이러고 있다. 방구들에서 올라 오는 한기에 온 몸이 오싹오싹 추워 온다. 더 두터운 요를 깔지 않은것이 무척이나 후회된다.
파고드는 한기에 이가 덜덜 떨렸다.
몸은 점점 굳어져가고 이제는 손도 발도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의식 마저도 혼미해져 가끔은 정신줄을 놓군 했다. 이러다 쥐도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노인은 들컥 겁이 났다.
따스한 방구들이 그립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이 그립다. 그리고 온정 많은 마누라의 얼굴이 그립다.
암울한 방에서 감정이 북받친 노인은 한없이 서러워진다. 애써 정신을 가다듬는다. 가슴 오르내림이 보이지 않을 만큼 호흡이 미약해졌다. 온 몸의 근육이 탄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 다시 일어 날수 있을 것이야... 암, 그렇구말구! '
애써 팔다리를 움직여봤지만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노인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 보았다. 은은한 달빛이 유리창을 환하고 비추고 있다.
뒷 울안에 심은 댕가지가 얼마나 컸을가? 지금쯤이면 가지들이 주렁 달렸을 것이다. 오래 손보지 못한 밭은 아마 잡초로 무성할 것이다. 그리고 처마밑 제비둥지에 새끼들이 알을 까고 나올 때가 되었는데 와 이리도 조용하노? 노인의 목구멍에서 가느다란 탄식소리가 터져나온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먹지 못했으니 근육에 힘이 있을리가 만무했다. 죽이라도 한숟가락 먹을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물이라도 한모금 마실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수 있을것만 같았다. 지난 세월속 그 어떠한 역경속에서도 항상 그랬으니 말이다.
바스락 바스락!
적막한 부엌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굶주린 쥐새끼들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뒤지고 있을것이다. 평시 같았으며 부지갱이로 막 때려잡았을 고약한 놈들이지만 오늘 따라 반갑게 느껴졌다. 먹을것이 한알 없는 구차한 집안구석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해준것에 참으로 고맙고 마음 한구석으로는 미안함이 들었다.
‘ 부엌에 먹다 남은 감자 몇알이 네놈들이 먹기엔 충족할것이네, 비록 말라 쪼그라졌겠지만...’
노인은 속으로 중얼거린다.
목구멍이 콕콕 쑤시는듯이 아파난다. 바짝 말라 갈라 터진 입술은 숨을 쉴때마다 아려왔다. 손가락에 할퀸 입안에는 비린것이 가득했다.
물독에는 샘터에서 길어 온 물이 가득하다. 그 물이라도 시원하게 마셨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 같다. 그러나 지금 물 한 그릇 받쳐줄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속은 타 벌써 재가 된다.
어디선가 방바닥을 소란스레 기어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보지 않아도 그놈들이라고 노인은 단정했다. 오랜 세월속에 낡고 비좁은 공간을 공유해 왔으니 말이다. 바퀴벌레가 먹이를 찾아 온 방안을 뒤적거린다. 어둠속에서 스치는 작은 발걸음 소리가 불편하게 귓가를 간지럽힌다. 더 담대해진 바퀴벌레는 몸으로 얼굴로 마구 기어오른다.
후!
노인은 온 힘을 다해 입김을 불었다. 툭하고 귀밑으로 떨어진 바퀴벌레는 어디론가 잽싸게 도망가버린다.
창유리를 뚫고 들어온 밝은 달빛은 달팽이가 기듯 조금씩 안쪽으로 기어 오고 있다. 볼수는 없지만 지금 밤하늘에 은쟁반같은 보름달이 두둥실 떠있을것이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 왔다.
그날이였지, 보름달이 유별나게 둥글고 밝은 날이였지. 촉촉한 달빛속에 젊은 총각은 난생 처음으로 보드랍고 하얀 마누라의 손목을 잡았었지. 그리고 그 고운 입술에 진한 키스를 했었지. 그리고 또 ...
오늘 따라 죽은 마누라가 한없이 그리워진다.
하얀 달빛은 어느새 창문턱을 뛰어 내려온다. 달팽이같이 굼뜬 달빛은 서서히 앞으로 다가 온다. 조금만 더, 조금만...
노인은 안깐 힘을 다해 손을 뻗어 달빛을 만지러간다. 파르르 떨리는 손은 고집스럽게 조금씩 달빛을 향해 더듬어 간다. 그러나 좀처럼 닿지가 않았다. 만질수도 없었다. 달빛이 다가 오기만을 조용히 기다리는 노인의 두눈은 간절함이 가득 하다.
달그락 달그락!
돌연 문고리 잡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고 의심스런 눈빛으로 방문을 바라본다. 어둠속에서 노인의 두눈은 반짝이고 있다.
누가 온 것일가?
분명 밖에 누가 와 있는것만 같은데... 누구지?
밖은 다시 조용하다.
올 그 누구도 없다는것을 노인은 잘 알고 있다.
쒹∼
바람이였다.
지나가다 실없이 문고리를 흔들어 놓고 휭하니 가버린것이였다.
‘ 집 나간 야옹이는 언제야 집에 돌아 올란지... ‘
유일한 가족인 고양이가 집을 나간지 오래되었다. 그럴 사연이 있었다. 온종일 밭일을 마치고 돌아 와 보니 마누라가 곱게 수놓아 만든 베개를 형편없이 물어 뜯어 놓은것이다. 그날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고양이는 간다온다 소리도 없이 집을 나간 뒤 지금껏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야옹!
당장이라도 방문을 긁고 들어와 언제 그랬나 싶이 몸에 칭칭 감기며 재롱을 부릴 것만 같았다. 지금 고양이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가? 방에 조용히 드러누운 노인은 무지 미안한 생각이 든다.
따닥따닥
문득 마루에서 다듬이 소리가 들려온다.
귀익은 소리다. 천국에 간 마누라가 돌아 온 것일가? 이렇게 귀맛좋은 다듬이 소리는 아무도 흉내를 내지 못하니 말이다.
귀가 쫑긋해진다. 노인의 귀는 방문을 넘어 밖으로 더듬어간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잎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마누라의 가쁜 숨소리가 들려온다.
툭! 툭!
울안에서 농기구 손질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 당신 오늘 고생 많았어요. 좀 쉬세오! ”
아내의 살가운 말소리가 들려온다.
졸～졸～
고향의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 온다.
“ 야호! 반두에 물고기가 제법 잡혔다야 ”
“철수야, 강에 갔다고 니 아버지가 야단치면 어짤끼고? “
동네의 냇가에서 두 사내아이가 반두로 물고기를 잡으며 떠들썩하다. 그리고 나팔꽃이 빨갛게 핀 고향집의 울바자가 보인다. 그리고 부엌에서 엄마가 누룽지 긁는 소리가 들려온다. 구수한 냄새가 방문틈으로 솔솔 풍겨 들어온다. 노인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다.
소쩍소, 소쩍소, 소쩍소
어렴풋이 귓가에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 새벽에 소쩍새가 세번 울면 누군가가 죽는데! ”
귓가에 엄마의 말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눈까풀이 다시 무겁게 내려온다. 빗물에 젖은 풀잎처럼 저항할 수 없이 자꾸자꾸 아래로 처진다. 흐릿한 의식속에서도 노인은 그 무게를 느낀다. 어둠이 서서히 밀려온다. 그 어둠 속에서 오랜 기억들이 파도처럼 출렁인다.
“ 음～”
혼미한 노인은 애써 정신을 가다듬는다.
방바닥에 비춘 하얀 달빛은 조금씩 앞으로 다가 온다. 간절한 노인의 눈빛이 어둠속에서 빛이 난다. 닿을듯 닿을듯 가까이 더듬어 오던 달빛은 끝내는 노인을 지나쳐 다시 멀리로 도망을 가버린다.
“아～”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가느다란 탄식이 터져 나온다.
눈까풀이 완전히 내려 앉는다. 더는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들리지도 않는다. 몸이 무한정 아래로 아래로 침전한다. 담요를 뚫고 구들을 뚫고 땅을 뚫고 아래로 아래로 꺼져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춥지도 않다. 슬퍼지도 않다. 아프지도 않다. 배고프지도 않다.모든것이 평화롭다. 노인의 움푹한 눈에서 한줄기의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달빛에 흐르는 눈물은 더욱 차갑게 펀뜩인다.
이튿날 아침.
눈부신 햇살이 창유리를 넘어 쏟아져 들어온다. 따사로운 햇살 속 노인은 자는 듯이 평화롭다. 처마밑 제비 둥지에서 갓 나온 새끼들의 울음소리가 울안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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