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한 고을에 김씨라는 양반이 외동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아들은 사흘이 멀다 하게 술친구들을 불러다 술판을 벌이곤 했다. 이를 지켜보던 김씨는 아들이 어떤 친구들과 어울리는지 무척 궁금하였다.
어느 날 밤, 아들이 늦게 귀가하자 김씨는 일부러 떨리는 목소리로 아들에게 말했다.
“얘야, 방금 전에 아버지가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시체는 동구 밖 백양나무 아래에 묻혀 있으니 어서 네 친구들을 불러다가 시체를 뒤산에 묻자꾸나.”
그 말은 아들의 친구들을 시험하려는 김씨의 계략이었다.
“아버지, 걱정 마세요. 지금 당장 친구들을 불러 도와드릴게요.” 아들은 자신만만하게 나가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하나같이 거절했다. 실망한 아들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잠시 후 김씨는 말없이 집을 나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섯 명의 친구들과 함께 돌아왔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어서 삽이랑 곡괭이 챙깁시다!”
그러자 김씨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콩밭에 가서 두부 찾겠소? 어서들 신발 벗고 방 안으로 드시오.”
김씨의 아내는 상다리 휘도록 술상을 차렸고 친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양해하시오. 못난 아들 교육시키려 이 밤중에 폐를 끼쳤습니다.”
그제야 김씨는 자초지종을 설명하였고 친구들은 그의 지혜에 감탄하며 술잔을 들었다. 그날 밤 자정이 넘도록 우정의 술자리가 이어졌다.
그 일을 계기로 아들은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술친구들과 인연을 끊고 학문에 정진하여 마침내 과거에 급제하였다.
비록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진정한 친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감동적인 교훈이다.
얼마 전, 나는 수원에 계신 김지견 선생님의 초대를 받았다. 전철 노선을 살펴보니, 일산역에서 서울역을 거쳐 인천행 열차로 갈아타야 하는 긴 여정이었다. 몸은 피곤할 수 있지만, 선생님의 정중한 초대가 마음을 움직였다.
그때 서울에 사는 김철하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내일 아침 자가용으로 모시러 가겠습니다. 주소만 알려주세요.”
이튿날 아침, 그는 직접 우리 동네까지 와서 나를 태우고 수원으로 향했다. 덕분에 김지견 선생님, 김철하 선생님과 더없이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이 두 분은 나의 고향 친구도, 동창도 아니다. 육십을 넘긴 나이에
맺은 인연이지만, 마음으로 깊이 통하는 친구들이다.
사람은 돈이나 권력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진실한 친구가 곁에 없으면 삶은 얼마나 외롭고 고달플 것인가.
진정한 인생의 자산은 물질이 아니라 사람, 그중에서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다.
어린 시절, 고향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삶은 고구마 하나를 나눠 먹던 기억이 아직도 마음속에 따뜻이 남아 있다.
진지하고 정의로운 친구는 그대의 성장을 도와주고, 삶을 단단히 붙들어주는 버팀목이 되어준다.
반면, 가볍게 맺어진 인연은 위기의 순간 쉽게 사라진다.
우연이나 이해관계로 맺어진 관계는 결국 시험대 앞에서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좋은 친구는 시간이 증명한다.
진정한 친구는 기쁨은 배로 늘려주고, 슬픔은 절반으로 덜어주는 존재다.
불행이 찾아왔을 때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손을 내미는 용기와 진심이야말로 우정의 본질이다.
우리는 그런 친구를 곁에 둘 수 있을 때, 참으로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복은, 좋은 친구를 곁에 두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자산이다.
/신석운
http://www.hmzxinwen.com/news/27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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