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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그리시던 아버지

봄 향기가 그윽히 풍기는 5월도 이제는 다 가고 있다. 5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지난 5월 8일, 어버이 날을 맞으면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되새겨 보고자 한다.

 

아침부터 자식들과 조카들한테서 축하의 문안 전화가 연속 걸려왔다. 그런데 그들의 효심에 나는 저도 모르게 아버지 생각이 났다.

 

만일 아버지께서 생전이시면 지금 나도 아버지께 효도를 다 할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17년 3월 29일, 경북 청도군 매전면 호화동에서 태여나신 아버지는 8남매 중 둘째 아들이였다.

 

18세 되던 해 만주에 땅이 흔하다는 소문을 듣고 먼 친척을 따라 중국 땅을 밟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 흑룡강성 목릉시 하서향 조양촌에 자리 잡은 아버지께서는 토지개혁 때부터 촌장 직무를 맡았다. 촌민들을 이끌고 황무지를 개간하여 많은 논밭을 일구었다. 하여 조양촌은 토막나무 때며 이밥 먹는 살기 좋은 마을로 인근에 소문 높았다.

 

하지만 해마다 설 명절에 술 한 잔 하시면 그처럼 억척스럽고 굳세여 보이던 아버지는 한숨을 길게 내 쉬며 슬픔에 잠겨 계시는 것이였다.

 

아버지께선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세여 보니 타향이 고향이 되고 고향이 타향이 되는구나... "하고 노래를 부르시며 눈물을 흘리 군 하셨다.

 

''야, 언제면 고향에 가서 형제들을 만나 볼 수 있을까?

내가 고향을 떠날 때 큰 자동차에 올라탔다. 자동차가 떠나자 먼지가 뽀얗게 날리는데 막내 동생이 '형아, 형아, 어디로 가? 나도 갈래" 라고 소리치며 그 뿌연 먼지 속으로 달려오다가 그만 넘어지는 것이였다.

 

달리는 자동차에 앉은 나는 그 장면을 보고만 있어야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났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미여지듯 아프단다"라고 말씀 하시며 눈물을 흘리시군 하셨다.

 

아버지는 고향과 고향에 있는 형제들을 한평생 그리워하며 언제 한 번 고향에 가겠다던 소원을 끝내 이루시지 못하셨다.

 

1988년 2월 12일에 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도 눈을 감지 못하셨다.

 

지금처럼 한국에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날이 보다 일찍 왔더라면 아버지를 모시고 한국에 있는 고향에 오셨더라면 아버지께선 얼마나 반가와 하실까?

 

한평생 고향을 그리워만 하시고 고향에 가 보려는 소원을 이루지 못하신 아버지가 더 안타깝게 생각되고 아버지가 더 그리워지면서 보고 싶은 마음은 허전하기만 하다.

/박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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