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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01/18  한민족신문
우리말 노래가 더 넓은 세상에 퍼지도록

 
우리 민족 가요는 선률이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경쾌하고 독특하여 여러 민족이 즐겨 부르는 노래 중의 하나이다. 우리 민족 노래를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넓은 세상에서 부를 수 있도록 우리말 노래 가사를 중국어로 번역한 후 온라인에 올려 네티즌들의 총애를 받고 있는 한 경찰이 있다.

 

그가 바로 심양시공 안국 황고분국에서 근무하는 정학철 씨다.

 

정학철 씨는 우리 말 노래를 중국어로 번역하기 위해 수십 년을 애써왔다.

 

1964년 심양시 서탑에서 출생한 정학철은 1969년에 아버지를 따라 로중현의 한족촌에 갔다. 한족학교를 다닌 그는 조선어를 모르고 자랐다. 그러다 소학교를 다닐 때 고문(古文)에 정통한 담임선생님을 만나게 되였고 고문에 흥미를 가진 정학철 씨는 열심히 고문을 배웠다.

 

1982년 정학철씨는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심양시 인민경찰학교에 입학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경찰학교를 졸업한 후 심양시 공안국 황고분국에 배치받았다.

 

휴식의 틈을 타 정학철씨는 고전 시사를 열심히 읽고 터득하는 한편 작품 창작에 몰두했다. 그의 노력으로 시사 창작 수준이 놀랍게 제고되였으며 그의 시작품이 잡지 등 간행물에 발표되면서 문학 창작에 튼튼한 기반을 닦아놓았다.

 

2007년의 어느 날, 정학철씨는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에 갔었다. 친구들이 “왜 우리가 좋아하는 조선족 노래가 중국어로 번역된 것이 이렇게도 적은가?”고 하며 실망스러워했다.

 

말한 사람은 무심결에 말했지만 듣는 사람은 의미심장하게 들려왔다.

 

정학철 씨는 조선족들이 즐겨 부르는 중국 조선족 노래와 조선족들이 애창하는 조선 노래, 한국 노래를 한어로 번역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요 번역을 해야 겠다고 작심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의 조선어 수준이 너무 낮은 것이였다.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조선어문을 배웠으나 그만한 수준으로 가사 번역을 하려면 어림도 없었다.

 

하여 정학철씨는 조선어문을 배우려고 심양시 조선족제3중학교 전임 교장 윤경찬 선생님을 모셨다. 매주 토요일, 일요일 밤낮으로 조선어 공부에 열중하였다. 공부하다가도 단위에서 부르면 즉시 달려가 맡은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야만 했다.

 

그렇게 수년간 정학철씨는 눈코 뜰 사이도 없이 바삐 보냈다. 출 퇴근할 때에도 반복적으로 되새기며 조선어 공부를 하고 짬만 있으면 조선말방송을 들었다. 짧은 시간 내에 훈민정음, 자모음을 익혔고 조선어로 대화할 수 있었으며 조선문 간행물을 막힘없이 볼 수 있었다.

 

언젠가 조선 가요를 한어로 번역하여 직접 부르니 한족 친구들이 박수치며 좋아했고 조선족 친구들도 조선어의 가사 뜻을 잘 나타내고 음악 절주에도 잘 맞는다고 인정해 줬다. 여기서 자신감을 얻은 정학철씨는 달리는 말에 채찍질 하듯 가사 번역에 더욱 몰두했다.

 

그러나 가요 번역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어떤 가사는 아주 묘하고 까다로와 며칠 밤을 패가며 고민해도 신통치 않았다. 그럴 때면 그는 윤경찬 선생님을 찾아갔고 그의 가르침과 그의 건의에 따라 참답게 음미하고 또 음미했다. 《조선말사전》과 《한어사전》, 《조한사전》을 뒤지고 비교하며 조선어 가사 뜻에 합당한 한어 단어를 찾는데 공을 들였다. 친구들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허심하게 듣고 반복적인 수정을 거치면서 중국어 가사의 질이 한층 높아졌다.

 

어느 한번 우연한 기회에 ‘중국시창음악기지 온라인 전업 음악창작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정학철씨는 그 음악 창작회의 회원으로 되여 음악창작회 활동에 참가했다. 거기서 영상제작 등 많은 것을 배운 정학철은 조선어 가요를 한어로 번역하고 한어 가요를 조선어로 번역했다. 그리고 자기가 직접 부른 영상을 온라인 전문 음악창작회에 올렸더니 회원(네티즌)들이 호응해 나섰다. 당시 정학철은 조선 가요, 한국 가요, 중국 조선족 가요를 중국어로 번역하는 온라인 음악창작회의 번역원으로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가사의 뜻을 대충 알아볼 수 있도록 간단하게 번역하여 시창과 함께 문자 자막을 만들어 올렸다. 하지만 온라인 친구들의 요구가 점점 높아졌다. 민족 특색이 짙고 미감이 있으며 입에 잘 오르는 가사를 붙여 누구나 쉽게 배우고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번역해 줄 것을 요구했다.

 

정학철씨는 중국어로 번역된 가사가 매개 소절과 음절, 음표에 기본상 잘 맞게 번역하여 조선어 노래를 부르는 데 쉽게 만들었다. 그리고 특색있는 조선어 단어는 조선어 그대로 가사를 붙이고 우리 민족 가곡의 특유성을 잘 나타내 네티즌들의 공감을 이이뤄냈다.

 

오래동안 번역에 종사하면서 정학철씨는 구절마다 조선어 특유성을 나타내는 번역법을 모색해냈다. 자기의 독특한 번역법이 있게 되자 정학철의 번역 욕망은 전례없이 높아지고 번역 가요를 부르는 전문 가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절박하게 느꼈다.

 

때마침 정학철은 우연한 기회에 사천성 투쟈족 가수 고사용을 알게 되었다. 그의 특유의 소수민족 노래 풍격은 정학철의 심금을 울렸다.

 

정학철의 요청을 받은 고사용은 생각 밖으로 조선족 노래와 조선, 한국 노래를 즐겨 부른다며 시원스레 수락했다. 때를 같이 하여 정학철 씨도 자기가 번역한 조선 가요 “단풍이 들었네”의 악보를 그에게 보냈고 고사용은 바로 열창했다.

 

그 후로 정학철과 고사용의 합작이 더욱 자연스러워졌고 조선 가요 “가로수”, 한국 가요 “청풍명월” 등을 연이어 번역했다. 고사용이 부른 노래는 네티즌들의 열광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온라인 음악창작협회에 조선어 번역 노래를 올리면서 정학철은 많은 조선족들과 음악 애호가들을 알게 되였고 정학철의 이름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학철은 조선어 노래를 중국어로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자체로 가사를 쓴 노래도 있다. 2013년의 여름, 12기 전국운동회가 심양에서 열리게 되였다. 정학철은 ‘12기 전국운동회 평안 봉사자’로 있는 기간에 가사 한 수를 썼는데 작곡가 채강이 곡을 달았다. 그가 쓴 노래 “평안을 지키기 위하여”(为平安守望)는 제12기 전국운동회 선수촌에 울려 퍼졌다. 이로하여 정학철씨는 심양시 공안국 황고분국 ‘통령표창'을 받았다.

 

가사 번역에 열중하는 정학철씨지만 애호와 본직에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가사 번역 때문에 본직에 영향을 주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여유시간을 이용하여 번역하고 창작하다 보니 늘 바삐 보낼 수밖에 없었다.

 

2014년 5월 정학철씨는 밤낮 고생하는 순라 경찰들의 로고를 담은 시 “작은 사과”(小苹果)를 썼는데 경찰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다.

 

공안 전선에 몸을 담아 온지 30여년, 그동안 정학철씨는 여유시간을 이용하여 조선족 가요 “축배원무곡”(김광룡 작사, 최동혁 작곡) , “나무 잎 사랑”(리해란 작사 리하수 작곡) 등 50수와 조선 가요 “다시 만납시다”(리정술 작사, 황진영 작곡), 한국 가요 “사랑하기 때문에” 등 100여수를 번역하여 온라인 등 여러 매체에 발표하여 많은 큰 환영을 받았다.

 

번역 노래는 연변 조선족들이 애창할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까지도 즐겨 부르게 되었으며 중국어 가요를 또 조선어로 번역하여 직접 자기가 부르기도 했는데 팬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올해 1월 21일, 길림 라디오텔레비전방송국에서 룡정시 군중 문화생활측기를 2022년 음력설 기간에 방송하기로 했다. 그런데 해란강 합창단의 남성중창 “아, 빛발치는 당기여!”(한동해 작사, 안웅용 작곡)를 중국어로 번역하여 보내 달라는 급한 전화가 정학철에게 걸려왔다. 작곡가 안웅용 선생님은 마땅한 번역 인재를 찾지 못해 안절부절 하다가 마침 정학철씨의 소문을 듣고 연락한 것이다. 당시 정학철씨는 사건 수사 때문에 매하구에 가 있었다. 수사 임무도 긴박하고 번역 요청도 밀어낼 수가 없었다. 정학철씨는 할 수 없어 수면시간을 줄이며 노래 가사를 중국어로 번역하여 방송에 지장 없게 했다.

 

갑작스런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그에게는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무 일군들의 영웅 형상을 노래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학철씨는 가사 “평안과 건강을 지키기 위하여”(守护安康)를 한국어와 중국어로 창작하여 연변의 유명한 작곡가 리하수 선생님께 작곡을 부탁하였는데 이 노래도 전국에 울려 퍼지면서 코로나19오 싸우는 백의천사들에께 큰 힘과 용기를 주었다.

 

가요계의 문인들과 친숙하게 지내는 정학철씨는 가사를 번역해달라는 부탁이 있으면 언제든 선뜻 나선다. 하기에 그가 번역한 100여수의 우리 말 노래는 전 세계로 울려 퍼지고 있다.

/김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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