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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10/21  한민족신문
“우리 말 글의 운명” 연재 (2) _ 장석주

한자개념 정립, 두음법칙 폐지, 외래어 표기법 이견우리 말글의 慘狀을 파헤쳐 眞相을 밝힌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발달한 표의문자인 동이한자(東夷漢字)의 장점과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표음문자인 언문한자(諺文漢字)와 토착어를 이루는 음소문자―자질문자(資質文字, featural writing) ― 정음자(正音字)를 갖고 있는 자랑스러운 문화민족이다.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의 진상 규명

 

오랜 세월 종합문화를 이끌어 온 불교와 유학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동양의 사유와 관념, 행위와 방식은 인(仁)과 의(義)와 예(禮), 지(智), 신(信)등 오상(五常)에 기초하여 효(孝)내지 덕(德)과 충(忠), 마침내 악·락(樂)에 가닿는 근본 개념으로, 수신(修身)에서 비롯하여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 이르기까지 먼저 정(情)으로, 다음 이(理)로, 마감에 법(法)으로 다스림을 조문(條文)이 없는 순서로, 서열(序列)로, 준칙으로 수천 년 삼아왔다.

 

이어서 이기설(理氣說)과 심성론(心性論)에 입각한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중시하는 실천 도덕과 인격과 학문의 성취를 기하는 성리학(性理學)개념이 고려말기와 이씨조선500년의 통치 이념으로 뿌리내렸다.

 

이러한 인간의 전통, 전승 및 고금의 문화 전수(傳受)와 인성교육은 모두 우리 문자, 우리 문자가운데서도 한자(漢字)와 한자어(漢字語)를 떠나 운운할 수 없다.

 

고로 동양의 고현(古賢)들은 이를 세세만년 물려받을 대물림 신조로 삼아 우리 한자와 한자어로 법전(法典)과 법서(法書), 보감(寶鑑), 실록(實錄)따위를 많이도 엮어왔다.

 

그리하여 모든 일에 우선 정의상통을 꾀하고 정례겸도(情禮兼到)로 정을 중히 여기며, 이치와 도리를 따짐에 정리(情理)를 봐가며, 정서이견(情恕理遣)또는 이덕복인(以德服人)을 이소고연(理所固然)으로 도성덕립(道成德立), 덕륭망존(德隆望尊)을 쌓고자 하였다.

 

서양의 사유관념과 행위방식은 동양과 반대로 먼저 법을 앞세워 준법과 수법(守法)을 철칙으로 지키고 법어지언(法語之言)이 생활화 되어 매일 매시(시시각각)법에 얽매여 살며, 법을 모르면 촌보난행이다.

 

우선 법에 저촉이 없어야만 이치와 도리를 따질 수 있으며, 정감(情感), 정서(情緖), 정동(情動), 정황(情況)따위는 아예 뒷전으로 한다.

법이 우선이고 법이 유일한, 철저한 법질서에 제한된 민주와 자유가 가능하며, 그래서 동양에서 보기에는 오로지 법만 아는, 무정하고 무서운, 정 떨어지는 법 사회 같다.

 

동서양의 이념 차이 또는 이념 대립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필자는 동양의 유교문화권의 두텁고 끈끈한 정(情)과, 사리로 밝은 이(理)에, 서양의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에누리 없는 철두철미한 법(法)을 겸비한 법고창신(法古創新)확립을 제창한다.

 

즉 동서양의 우수한 옛것을 본받고 근본을 지키되 그것을 변화시켜 우리에게 알맞을 새것을 만들어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만국에 본이 되고 만세에 길이 전승될 각종, 각항, 각가지 신법, 신율(新律)을 제정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필자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민주사회와, 규범과 질서를 요한 법치사회의 상호 보완(덕치와 법치의 유기적인 결합)이야말로 인간 ,인민의 인성과 인생, 인권 및 인격이 보편적으로 보장 받고 비로소 인품의 가치가 널리 인정받는, 최대한 인덕을 베풀 수 있는 중요한 환경조건이며 또한 기본적인 담보라고 보고 있다.

이 또한 인류운명 공동체의 이념이 아닌가 싶다.

 

그러자면 물론 새로운 법제정의 이념, 원리, 규범, 기준과 규칙의 상대적인 객관성, 연관성, 보편성, 보급성을 기해야 하거니와 더욱이 제정될 법의 필요성, 타당성과 준수 가능성 및 미치는 영향과 그 역할, 여파에 대한 예상과 예측, 예료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본다.

 

부실한 법이나 규정, 규범, 기준, 원칙은 없기만 못하기 때문이다.(법제정 요건, 법리학 등 생략함)

 

실은 우리에게 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법이 있고 없고, 또 많고 적음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미 제정된 갖가지 법이 모두 우리의 행위준칙으로 될 만한가? 제정된 그 법이 과연 현실에 입각하여 나라와 민족의 역사와 미래에 이로운가? 그 법을 지켜서 국가와 민족이 잃게 되는 것이 많으냐 아니면 얻는 것이 많으냐의 득실을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한국의2005년“국어기본법” 참조)

 

필자가 본문에서 거론하고자 하는 법과 규정은 주로 한국의 현행 “한글맞춤법”, “표준어규정”과 “외래어 표기법”의 일부 장절이며, 위의 법과 규정에 따른 “국어대사전”, “표준국어대사전”, 또는“조선말사전”, “조선어사전”을 비롯한 많은 우리말 사전의 일부 올림말; 특히는 고금의 모든 우리말 사전에서 새긴 낱말 ‘한자’, ‘한자어’, ‘한자음’풀이에 대한 주석, 주해와 필자의 남다른 견해를 주요한 취급 범위로 한정했음을 밝혀둔다.

 

본문의 머리말에서도 언급했었지만 필자는 같은 값이면 되도록 고유어를 주장하고 지어는 고집까지 쓰면서라도 고유어(토착어)를 선호한다.

 

오랫동안 한자와 한문이 우리의 문자생활을 지배하여 우리의 기초어휘에 속하는 토착어 낱말이 날로 사라지고 있는 시점에서 실은 오늘날 한자와 한자어와 함께 사멸되고 있는 토착어를 건지고 살려야 함이 급선무이다.

 

예하면 ‘얼굴’보다 ‘용안(容顔)’이 예뻐 보이고, ‘누리’가 사라지며 ‘세상(世上)’이 판치고, ‘이’보다 ‘치아(齒牙)’가 점잖아 보이고 ‘슬기’가 ‘지혜(知慧·智慧)’만 못한 듯싶고, ‘안(眼)’이 ‘눈’보다 돋보이고 죽고 산다는 뜻으로의 ‘죽살이’가 ‘생사(生死)’를 이기지 못하는 현황을 바로잡기도 어려운데 오늘날 도리어 한자와 한자어가 토착어와 함께 묶여 외래어에 몰살되고 있다.

 

토착어냐 한자어냐를 따짐은 우리말 한집안의 작은 승강이질이라고 한다면 난발, 남용되는 외래어를 막아 순수한 우리말 고유어를 얼마나 지켜내는가 함은 민족 문화의운명이 달린 생사판가름이라고 할 수 있다.

 

하기에 필자는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고자 본문 전편의 서술에 따로 고유어사랑과 고유어의 전승과 창달에 대한 대목을 특설하지 않고 고유어 살리기를 우리 한자와 한자어의 생존과 함께 묶어 다루었음을 미리 말씀드린다.

 

문자가 우리의 역사, 우리의 문화, 우리의 유산, 우리의 얼과 혼, 우리 생활의 필수불가결로 물과 공기 같다면 우리 문자에서 오늘의 우리 한자와 한자어 내지 토착어를 포함한 고유어는 우리 역사의 뿌리이고 기틀이며 우리 문화와 생활의 골격이고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한자의 유래, 우리 한자의 명분 및 진상규명은 본문 전편에서 다루게 되었기에 여기서 잠시 생략한다.

 

반만년 뿌리내린 우리의 고유어가 천방지축으로 외국어와 외래어만 숭상하며 따라가는 거세고 사악한 한류(寒流·韓流)속에 휘말려 행방불명이 되어가고 있다. 암초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지고 있다.

 

필자는 본문 서두에서 우리 낱말로서의 한자어는 물론 우리 문자로서의 우리 한자음을 갖고 있는 한자는, 현제 중국 한족(漢族)의 한자나 중국 한자음, 일본의 한자와 일본 한자음, 베트남의 한자와 베트남의 한자음 등과 구별이 있음을 미리 말해 두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은 우리말과 글에 섞여 있지 않는 곳이 없다. 이미 우리말에 융합이 된 우리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은 우리의 모든 생활과 교제에서 도저히 떼어버릴 수 없는 존재로 되었다.

 

그 많은 한자어 품사가운데서 명사가 대부분이고 명사 가운데서 지명이나 인명이 상당수를 점하고 있다.

시간상 관계로 또 지면의 제한으로 삼천리금수강산의 지명, 인명은 잠시 그만 두고 거론에 오른 중국의 지명과 인명을 줄거리로 우리말에 굳어진 고사성어와 속담 몇 가지만 실례로 보기로 하자.

 

고사성어 :

공명동고(孔明銅鼓): 제갈공명이 남정(南征)할 때 만들었다는 동고(銅鼓=꽹과리).

우공이산(愚公移山): 사업을 하는데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잔꾀를 쓰지 말며 불요불굴하면 반드시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음을 이름.

 

태백촉월(太白捉月): 이백(李白)이 채석(采石)에서 술에 만취하여 물속의 달(月)을 잡으려다 죽은 일.

(학원사(學園社)에서 펴낸“고사성어(古事成語)”(1982)에서)

 

우리 속담 :

가자니 태산이요, 돌아서자니 숭산이라.

태산이 높다한들 하늘아래 뫼로다.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는 줄 아느냐.

강태공의 곧은 낚시질.

돈이 제갈량.

조조는 웃다 망한다.

(1962년 한국 민중서관에서 출판된 이기문의“속담사전”)

 

보다시피 위의 예문에서 ‘태산’, ‘숭산’, ‘만리장성’등은 한자어로 된 지명이나 지점이고 ‘공명’, ‘우공’, ‘태백’, ‘진시황’, ‘강태공’, ‘제갈량’, ‘조조’등은 한자어로 된 인명이나 인물이다.

 

수백 년 수천 년 내려오면서 삶의 지혜를 이렇게 속담이나 성구로 엮어 오늘에 와서는 우리들의 삶을 더더욱 지혜롭고 다채롭게 이끌어가는 격언이고 보면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나 다름이 없다고 해야겠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한국에서는 수백 년, 수천 년 한국·조선에 잘 익혀진 중국의 지명과 인명을 가차 없이 고쳐‘중국어 표기법’이랍시고 한문(漢文)병음 발음 그대로 적고 쓰고 있다.

 

최근 매일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한국의 중국뉴스에서 우리는 변해버린 중국의 지명과 인명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예 :

‘북경’을 ‘베이징’으로, ‘남경’을 ‘난징’으로,

‘상해’를 ‘상하이’로, ‘심양’을 ‘선양’으로,

‘대련’을 ‘다롄’으로, ‘청도’를 ‘칭다오’로,

‘연변’을 ‘옌볜’으로, ‘모택동’을 ‘마오쩌둥’으로,

‘연길’을 ‘옌지’로, ‘호금도’를 ‘후진타오’로.

 

지난 2008년 7월 12일 15시(한국시간) 한국의 ‘국민의 텔레비전중심채널’에서 “중국-대만59년 만에 열린 하늘 길”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송 되었다. 방송에서 ‘베이징쇼우두 공항’이라는 자막과 함께 해설이 수차 거듭 되었다.

 

그 다음 달 같은 방송국의 ‘2008북경올림픽’소개 화면에 오른‘서우두공항’이라는 자막을 보면서 필자는 ‘쇼우두’와 ‘서우두’가 도대체 무슨 말이며 두 낱말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여 사전까지 뒤지며 그 뜻을 헤아리려 했었다.

 

방송화면을 유심히 살펴보니 글쎄 ‘수도공항’의 ‘수도(首都)’를 한문자발음을 본 따느라고 ‘쇼우두’, ‘서우두’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날 같은 방송에서 “제5의 도시”라는 표제로 중국의“漢王科技” 회사를 소개하는 화면에서는 ‘한왕커지’라는 자막이 여러 번 흘렀다. ‘과학기술’의 준말(약어) ‘과기(科技-keji)’가 우리말로 ‘커지’로 둔갑되었다.

 

일전(2008년10월6일) 대한항공 밴쿠버-서울행 기내에서 필자는 비행정보지의 지도에 중국 지명 ‘대련(大連)’을 ‘달리안’으로, ‘할빈’과 ‘심양’사이의 ‘장춘(長春)’을 ‘샹쳔’으로, 하북성 ‘랑방(廊坊)’은 ‘랑팽’으로 표기함을 보고 경아함을 금치 못했다.

 

놀람과 의혹에 뒤이어 ‘대련’이 ‘다롄’을 거쳐 ‘달리안’으로 넘어가듯이 이제 또 부지기수의 인명, 지명이 어떻게 둔갑을 하려는지, 미무(迷霧)속의 고마문령(瞽馬聞鈴-눈 먼 말이 앞에 가는 말의 방울 소리를 듣고 그대로 쫓아간다는 뜻으로 자기 주견이 없는 맹목성, 맹목적)이 된 한국의 경조부박(輕躁浮薄)한 인명, 지명 표기에 하늘이 무너지듯 가슴이 답답하고 눈앞이 캄캄해 그 날의 현훈기가 아직도 가셔지지 않고 있다.

 

2007년 3월에 한국의 시공사에서 펴낸 “해외여행 가이드북”⑥은 중국의 일부 도시의 지명과 인명뿐만 아니라 보통명사까지도 중국어 표기법을 따른다면서 지금까지의 관용(慣用)적인 쓰임을 무시하고 있다.

 

우선 책자의 차례를 펼쳐 보면 베이징과 화베이·둥베이지방(북경과 화북, 동북지방)이라는 목록이 있는데 얼핏 몇 장만 뒤져봐도 도저히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형편이다.

 

예 :

지명 :

창장강(長江), 황허강(黃河)(중국지도6쪽), 베이하이(北海)(93쪽),

네이멍구(內蒙古)(중국경내는 ‘멍구’고 이웃 나라로는 ‘몽골’로),

완리창청(万里長城)(100쪽), 타이양다오(太陽島)(135쪽),

우이판뎬(五一飯店)(368쪽), 룽먼따사(龍門大廈)(137쪽),

청두자오퉁판뎬(성도교통호텔/成都交通飯店)(330쪽),

스제위안이보란위안(세계원예박람원)(336쪽), 구궁(故宮)(90쪽),

시산썬린(서산삼림/西山森林)(336쪽), 톈안먼(天安門)(90쪽),

루쉰구쥐(魯迅故居)(245쪽), 두푸차오당(杜甫草堂)(317쪽),

허핑판뎬(和平飯店)(187쪽), 둥펑판뎬(東風飯店)(187쪽).

 

인명 :

저우언라이(周恩來), 장제스(蔣介石)(260쪽),

쑨원(孫文)(260쪽), 위안스카이(원세개/袁世凱)(156쪽),

친스황(진시황/秦始皇)(365쪽), 양구이페이(양귀비/楊貴妃)(366쪽).

 

보통명사 :

뎬신(点心)(270쪽), 지우지아(酒家), 러우와이러우(樓外樓),

지우뎬(酒店), 상뎬(商店), 구러우(鼓樓), 바이훠(百貨),

거우우중신(購物中心)(219쪽), 원우상뎬(文物商店)(219쪽),

와이탄(外灘)(186쪽).

 

참으로 번역사전의 도움으로도 풀이가 어려운 한국식의 새로운 외래어, 이제는 외래어 남용의 수준을 넘어 외래어도 아니고 외국어도 아닌 수수께끼와도 같은 언어로 변해가고 있다.

 

위에서 보다시피 과거인, 현대인 가릴 것 없이 쑨원(손문-孫文), 루쉰(로신-魯迅), 저우언라이(주은래-周恩來)뿐만 아니라 친스황(진시황-秦始皇), 양구이페이(양귀비-楊貴妃), 두푸(두보-杜甫)에 이르기까지도 일색이며 지명은 물론이요 보통명사들인 ‘세계’가 ‘스제’로, ‘원예’가 ‘위안이’로, ‘박람원’이 ‘보란위안’으로, ‘서산’이 ‘시산’으로, ‘삼림’이 ‘썬린’으로, ‘교통’이 ‘자오퉁’으로, ‘국제’가 ‘궈지’로 둔갑이 되고 ‘지우뎬(酒店)’, ‘상뎬(商店)’, ‘구러우(鼓樓)’, ‘바이훠(百貨)’, ‘거우우중신(購物中心)’, ‘원우상뎬(文物商店)’, ‘지우지아(酒家)’, ‘러우와이러우(樓外樓)’, ‘와이탄(外灘)’…… 등등 알고도 모를 ‘외래어’가 수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어는 ‘오·5·五’와 ‘일·1·一’과 같은 수자마저도 사정없이 음차역의 구실로 한국 서사 문법에도 어긋나는 새로운 용어로 끊임없이 둔갑하고 있다.

 

흡사 천여 년을 거슬러 중고와 중세기 우리의 선조들이 한문자를 빌려 우리의 토착어휘를 쓰는 격으로 돌아온 듯싶다.

 

예 :

바다(波旦), 벼랑(比烈), 서늘히(沙熱伊), 구슬(古斯), 어미(阿嫫), 아들(阿旦), 바람(把倫), 구름(古論), 서리(色立), 이슬(以沁), 머리(墨立), 눈(嫩) (“삼국사기”, “삼국유사”, “계림유사”에서)

 

오랜 세월 중국 조선민족이 집거해 사는 요동반도(랴오둥반도)의 지명을 책자 “해외여행 가이드북”⑥)과 대조하고 비교해 본다.

 

예 :

요녕(遼寧)=랴오닝, 요하(遼河)=랴오허, 북릉(北陵)=베이링(138쪽),

장춘(長春)=창춘, 길림(吉林)=지린(7쪽), 송화강(松花江)=쏭화쟝(135쪽).

지어는 외국의 국가 명칭과 종교 이름도 중국어 표기법을 따라야 한다면서 마구 고친다.

 

예 :

‘러시아(俄羅斯)’가 ‘어루어쓰’로(136쪽).

‘기독교회(基督敎會)’가 ‘지두지아오후이’로(152쪽).

 

문제는 한국의 시공사에서 펴낸 이 “해외여행 가이드북”⑥이2007년 3월 9일 개정판으로 7쇄 인쇄될 만큼 많이 탐독되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또 마음이 더 무거워 진다.

 

이런 식으로 인명, 지명을 고쳐가다 보면 속담성구의 인명 지명도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뉘라서 장담하랴.

그러면 고쳐지게 될 속담 중에 위에서 실례를 든 지명 가운데의 ‘태산’은 ‘타이산’으로 고쳐야 할 것이고 ‘만리장성’은 ‘완리창청’으로 고쳐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시황’도 ‘치인스황’으로 고쳐질 것이고 ‘강태공’도 ‘자앙타이궁’으로, ‘제갈량’은 ‘주우거량’으로 고쳐질 것이다.

 

위와 같은 사단과 사태를 묵과하고 묵인하며 중국어의 한글 표기법을 따른다면 늘 우리와 함께 해왔던,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고사성어와 속담도 이제 다음(아래 예문)과 같이 변신을 하게 된다는 것이 아닌가?

 

예 :

고사성어 :

‘공명동고(孔明銅鼓)’는 ‘쿠웅밍퉁구’로

‘우공이산(愚公移山)’은 ‘위궁이산’으로

‘태백촉월(太白捉月)’은 ‘타이바이줘웨’로

 

우리 속담 :

“‘태산’이 높다 한들 ‘하늘(天)’아래 뫼로다”가

“‘타이산’이 높다한들 ‘톈’아래 뫼로다”로 될 것이고,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는 줄 아느냐”가

“‘치인스황’이 ‘완리창청’을 쌓는 줄 아느냐”로,

“‘강태공’의 곧은 ‘낚시(釣魚)’질”은

“‘장타이궁’의 곧은 ‘도우위’질”로 될 것이고,

“‘돈(錢)’이 ‘제갈량’”은

“‘체엔’이 ‘주우거량’”으로 될 것이고,

“‘조조(曹操)’는 ‘웃(笑)’다 ‘망(亡)’한다”는

“‘초우초우’는 ‘쑈’하다 ‘왕’한다”로 될 것이 아닌가?

 

속담이란 옛적부터 내려오는 민간의 격언으로서 그 역할과 작용에 대해선 말치 않아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속담의 함축성 또한 고도로 엄밀함으로 하여 토 하나가 줄어도 아니 되고 붙어도 어색하리만큼 한 덩어리로 엉켜서 전해가고 있다. 지혜와 슬기의 집대성을 이룬 이러한 속담도 이젠 지명, 인명뿐만이 아니라 모든 음을 달리해야 하는 인위적인 진통을 겪다가 수(壽)를 다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필자는 한국 학원사(學園社)에서 펴낸“고사성어(古事成語)사전”(1982)의 서문 한 대목을 인용하고자 한다.

 

비록 한자(漢字)가 이방(異邦) 중국(中國)에서 비롯하였다 할지라도 한자문화(漢字文化)는 이미 겨레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있습니다. 수천 년을 두고 동양문화를 형성해온 한문(漢文)으로 된 고문헌(古文獻)은 유구한 인류생활의 양상(樣相)과 방대(龐大)한 사상(事象)을 담고 있으니 어찌 한자(漢字)나 한자성구(漢字成句)에 대한 정확한 지식 없이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주옥같은 글귀를 본문의 다음 장절에서 풀어보기로 하고 이어서 안타까운 실례를 하나 더 들어본다.

2005년 중·한·일 3국 공동 역사 편찬위원회에서 지어내고 한국 한겨레신문사에서 펴낸 책자 “미래를 여는 역사”에 “난징 중산둥루에서 일본군이 체포한……”이런 대목이 있다. 이 책자는 ‘남경(南京)’을 ‘난징’으로, ‘중산동로(中山東路)’를 ‘중산둥루’로, 그 외에 ‘곡부(曲阜)’를 ‘취푸’로, ‘천안문’을 ‘톈안먼’으로, ‘여순’을 ‘뤼순’으로, ‘강남(江南)’을 ‘장난’으로, ‘이대소’를 ‘리다자오’로, ‘양정위’를‘양징위’로 칭하고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여전히 인명, 지명뿐만 아니라 보통명사까지도 중국어 표기법(한어병음발음,漢語拼音發音)을 따라 동쪽에 있는 길이라는 뜻의 ‘동로(東路)’가 ‘둥루’로, 흐르는 강의 남쪽이라는 뜻의 ‘강남(江南)’이 ‘장난’으로 아리송하게 둔갑을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의 ‘강남’과 중국의 ‘강남’을 비교 해 보면 :

서울특별시에 행정구역으로 강남구가 있다. 중국문자로도 ‘江南’이라고 적혀 있다. 한글·조선글로도 같고 중국글로도 똑 같은데 국가가 다르다 해서 한국의 ‘江南’은 한자어 ‘강남’이고 중국의 ‘江南’은 이른바 외래어 ‘장난’이라고 달리 부르고 달리 쓰이고 있다.

 

한문(漢文)발음을 정확히 하려면 ‘장난’이 아니라 ‘jiang nan-쟝난’이라고 해야 하며 언문과 우리 음에 없는 성조(聲調)를 붙여야 한다.

 

중국의‘江南’이든 한국의‘강남’이든 다 같은 민족끼리, 또는 우리말로 쓰고 우리 음으로 교제하는데 기어코 알고도 모를, 맞지도 않는 표기를 택해야 할 이유가 궁금하다.

참으로 웃지도 울지도 못할 ‘장난’이 아닌 ‘장난’이다.

 

더 생동한 비교도 있다.

중국 광주에 우리 동포들이 즐겨 찾는 ‘강남노래방’과 ‘江南歌廳’이라는 두 가게가 있다. ‘강남노래방’은 한국인이 경영하고 ‘江南歌廳’은 중국의 조선족이 운영하고 있다.

 

한국인 경연의 ‘강남노래방’ 간판에는 ‘江南歌廳’이라는 중국문자가 가지런히 새겨져 있고 중국 조선족 운영의 다른 ‘江南歌廳’간판에도 ‘강남노래방’이라는 우리글로 된 현란한 네온등이 퍽 유혹적이다.

 

필자는 두 가게의 간판 명 번역에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런데 광주의 한국인 상대로 배포되는“광저우저널”에는 한국인 경영의 ‘강남노래방’은 간판 그대로 ‘강남노래방’이고 중국 조선족 운영의 ‘江南歌廳’은 가게 간판에 분명 우리글로 ‘강남노래방’으로 되어있건만 중국어 발음을 본 따서 ‘장난거팅’이라고 광고되고 있다.

 

그대로 웃어넘길 ‘장난’이 아닌 ‘장난’이다.

중국의 항주, 상해, 북경, 청도, 심양, 연변, 할빈 등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에서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약칭 ‘대한-大韓-dahan’이 ‘따한’이라는 딱지로 탈바꿈 하고 있다.

 

“대한클럽”이 “따한클럽”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대한태권도”가 “大韓跆拳道-따한타이첸도”로 가고 있다.

 

한국의 ‘대한’을 중국에 온 한국인들이 우리말과 우리글로, 저희들 끼리 ‘따한’이라고 따돌리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할빈 의거110돌에 즈음하여 중국에서의 “대한”의 어제와 오늘 내지 내일의 이미지를 새롭게 사색해보며 그 시사(示唆)와 머금은 뜻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강남 갔던 제비가 새봄을 맞아 고향에 돌아와 보니 강도 그 강이요 고장도 여전히 그 모양 그대로인데 둥지 이름이 ‘강남’으로부터 그새 ‘장난’으로 변해버렸고, 안중근 의사가110년 전 할빈 역에서 총성과 함께 외친 고함이 ‘대한독립만세’였었는데 한 세기만에 ‘대한’이 한국인들로부터 ‘따한’이라고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우리말과 글이 아닌 알고도 모를 별명으로 서로 달리해야 하는 실례도 있다.

2007년 10월 12일자 한국 “문화일보”의 인터넷뉴스(전자신문)에 “제4회 ‘홈타민컵’전국조선족어린이방송문화축제”라는 기사가 올랐다.

 

아래는 기사에 오른 우리 민족(조선족)의 인명이다.

‘장숴저우’, ‘진위화’, ‘진제’, ‘진후이전’, ‘퍄오샹스’……

우리 동포들의 인명이 다음과 같은 방정식으로 둔갑되었다.

한자명 ‘張碩宙’→ ‘장석주’→ ‘장숴저우’로,

한자명 ‘金玉華’→ ‘김옥화’→ ‘진위화’로,

한자명 ‘金杰’→ ‘김걸’→ ‘진제’로,

한자명 ‘金慧珍’→ ‘김혜진’→ ‘진후이전’으로,

한자명 ‘朴香實’→ ‘박향실’→ ‘퍄오샹스’로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101201033224072002 웹페이지 참조.

 

“중국 길림성교육대표단, 도교육청 방문”이라는 제목을 한 “한국교육신문” 웹 사이트(2006-09-27)에서는 중국 연변대학 ‘김병민(金柄珉)’총장이 ‘진빙민’으로 올랐다.

 

http://www.edum21.com/paper/news/view.php?참조.

papercode=news&newsno=2293&sectno=1&sectno2=0참조.

 

“한국대학신문”웹 사이트(2008-07-25)에는 ‘연변대학’ ‘김병민’이 ‘옌벤대’ ‘진빙민’으로 올랐다.

 

문제는 우리 겨레의 성씨 ‘김씨’의 ‘김(金)’일 경우 우리말 발음에 따른 영문 ‘KIM’이라는 표기냐 아니면 중국어 발음 ‘金-jin’의 소리대로 ‘JIN’이라는 중국병음 문자 표기냐 하는 시비가 아니라 똑 같은 우리말과 우리글로의 표기와 발음에서 한국인은 ‘김’이라고 해야 하고 중국의 조선민족은 ‘진’이라고 해야 하는 현대판 한국식의 ‘창씨(創氏)’ 표기법과 발음기준이라는 것이다.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사는 80여만 우리 동포들의 신분증에는 한자성명과 가지런히(한자성명 위에)우리 정음자(正音字)로 뚜렷하게 성과 명이 밝혀져 있다.

 

중요한 것은 중화인민공화국 거민신분증(中華人民共和國居民身分證)인명표기에 우리 글 즉 정음자(한글)성명(姓名)이 한문자 위에 우선시(優先視)되어있다는 것이다.

 

예 :

최상철崔相哲   김병민金柄珉

리송암李松岩   백성렬白成烈

심승길沈勝吉   허애란許愛蘭

 

중국정부에서는 엄정(嚴正)하고 분명하게 우리 민족 인명표기 기준을 위의 예문에서처럼 우리 한자음독법 규범을 따르도록 하건만 한국에서 오히려 우리 ‘최’씨를 ‘추이’씨로, ‘김’씨를 ‘진’씨로, ‘백’씨를 ‘바이’씨로, ‘박’씨를 ‘표우’씨 또는‘퍄우’씨로, ‘허’씨를 ‘쉬’씨로 바꾸어버리고 있다.

 

실은 필자를 포함한 중국의 대다수 국민들의 거민신분증에는 성명(인명), 성별, 민족, 주소(지명)를 포함한 어떠한 항목에도 중국어의 병음표기가 전혀 없다.

 

혹자는 한국에서는 중국인의 인명표기는 신분증보다 여권의 성명을 기준하기에 ‘金’씨의 경우 ‘jin’의 발음에 따른 여권의 영문표기 ‘JIN’을 선택한다고 해석하고 있지만 천만에, 중국의 모든 여권에는 한문자 성명이 앞서고 한어병음자모로 된 인명은 중국의 한자음으로서 뒤따르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한자명이 주(主)로서 기본이며 병음명은 부차(副次)적으로 중국의 한어발음 즉 중문한자(中文漢字)음의 표기로 인명의 부름소리 주음부호로서의 보충일 따름이다. 한국에서는 중국 인명의 주체인 한문자는 버리고 보충된 소리역할로 뿐인 중국 한자음 표기인 병음자모를 영문명(英文名)으로 착각하는 듯싶다.

 

필자는 본문 전편에서 우리의 인명, 지명표기는 그것이 정음자든지 아니면 한자든지,토착어든지 아니면 ‘하나 또는 둘 이상의 한자의 결합’으로 이룬 한자어든지 모두 우리의 글이라고 밝히고자 한다.

 

한국에서는 중국의 인명뿐만 아니라 지명까지도 모조리 ‘개명(改名)’하고 있다.

 

한국의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국민일보”등 신문들은 앞 다투어 해외 우리 동포가 가장 많이, 또 가장 오래전부터 살아온 중국 ‘연변(延邊)’을 ‘옌볜’으로, ‘연길(延吉)’을 ‘옌지’로, ‘룡정(龍井)’을 ‘룽징’, ‘도문(圖們)’을 ‘투먼’이라고 별명지어 부르고 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16/2010091600097.html참조.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457412참조.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soc&arcid=0920304178&code=41121111&gstatus=no참조.

 

한국의 민중서림에서 최근에 펴낸 “국어대사전”(2006)의2689쪽에도 낱말 옌볜과 옌지 그리고 옌볜대학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올랐다. 한국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낱말 지명 ‘연변’과 ‘연길’, ‘도문’이 ‘옌볜’과 ‘옌지’, ‘투먼’으로 올랐다.

 

2008년 5월 17일자 한국 “전국경제인연합회(FKI)”를 비롯한 일부 언론과 책자들에서는 ‘조선족(朝鮮族)’을 ‘차우센주’, ‘초센주, 초우센주, 센주’로 표기하고 있다.

 

한국의 “chosun.com라이프”웹 사이트에서는 “[중국의 소수민족]⑨ 차오시엔족(朝鮮族)”이라고 제목을 단 기사는 “최고위 인사는 소수민족 정책 총괄했던 장관급 리더주(李德洙)”…… “한반도계 중국인을 뜻하는 차오시엔족은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독특한 존재다”라고 서두를 떼고 있다.

 

조선민족 ‘리덕수’가 ‘리더주’로, 이른바 한국의 ‘두음법칙’을 적용했더라면 ‘리더주’가 아니라 ‘이더주’로 성씨도 갈아버려야 옳았을 터이고, 같은 글에서는 또 ‘조선족’이 ‘차오시엔족’으로 둔갑되고 있다.

 

http://news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1/11/2010011100452.html참조.

 

참으로 기절초풍할 지경이다!

역사는 인류를 조롱이라도 하듯이 80여 년 전의 이른바 ‘창씨개명’을 탈바꿈시켜 다시 등장토록 하는 듯싶다.

지난날 우리 민족의 액난(厄難)과 수난이었고 국치민욕(國恥民辱)이었던 ‘창씨개명’이 오늘 한국의 이른바 ‘중국의 원지음’, ‘현지음 표기 기준’이라는 허울을 쓰고 사악한 흑운을 몰아 중국의 조선민족 동포와 동내를 삼키고 있다.

 

그 옛날의 ‘창씨개명’은 악착같은 일제가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말살하려고 갖은 탄압과 강박으로 우리 겨레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강요였다면, 오늘은 오히려 그 피해를 입었던 한국이 중국의 200만 우리 동포들로 하여금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성(姓)과 부모가 지어준 이름(名), 지어는 오랜 세월 뿌리내려 정착한 정든 고장의 명칭도 모조리 버리고 바꾸도록 핍박하고 있다.

 

80년 전에 일제가 ‘창씨’와 ‘개명’을 강요한 우리 겨레의 인명은 일본식이었지만 오늘 한국의 이른바 ‘중국의 원지음’, ‘현지음 표기 기준’으로강요하는 우리 겨레의 인명, 지명은 이른바 중국 현지음이란다.

 

마치도 한국이 80년 전의 피해자로부터 오늘은 가해자로 군림하여 일제의 ‘창씨개명’을 본받아 그때를 답습이라도 해보고 싶은 듯이, 무고한 중국의 조선민족들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살벌하게 ‘창씨’도 아니며 ‘개명’도 아닌, 아무리 들어보고 옮겨 봐도 현지 중국 사람도, 그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도 알아듣지 못하는,귀신이 곡할 노릇에 도깨비 씻나락 까먹는 소리 같은 이른바 ‘인명’과 ‘지명’을 마구 강요, 감행하고 있다.

 

한국은 해외의 우리 동포들에게 겨레말 학습과 보급을 고양하고 민족 정체성 확립을 선행, 추진할 대신 서로 알아듣지 못할 조어(鳥語)를 강요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겨레의 얼과 독립의 혼을 그대로 물려받은, 대를 이어 구국간성(救國干城)을 지키며 해외동포들의 생명으로 지켜온 동족어(同族語)를 깡그리 말살하려 함은 아닐 터인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오리무중, 가슴이 뭉개지는듯하다.

 

중국의 수백만 우리 동포를 겨냥한 한국식의 ‘창씨개명’은 삭풍(朔風)마냥 엄한으로 우리의 반만년 찬란한 역사와 화하(華夏)문명과 함께한 동이문화(東夷文化)를 송두리째 삼켜 냉동시켜버리고, 사악한 암류마냥 해외 동포들의 민족적 일체감과 동질성 및 유구한 동방문화를 삼켜 뭉개고 좀 먹이고 있다.

 

역사와 문화를 지키고자 하는해외 우국단충(憂國丹忠)의 뜻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고국에서 퍼 붓는 불문곡절 불벼락에 급기야 우리 해외 동포들의 삶의 터전은 황폐되고 대를 이을 씨는 말라버리어 수백만 해외동포는 줄 끊어진 풍연의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 성도 설고 이름도 설고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면목까지 설고 마음마저 설다보면 서로 남남이 따로 있으랴, 마침내 ‘재외동포(在外同胞)’가 ‘제외동포(除外同胞)’로 전락되어버리고 고국의 해외 적자가 부모 잃은 고아신세로 되어버리고, 효자 열녀가 장차 향관(鄕貫)은커녕 족보(族譜) 씨보(氏譜)도 없어 종당에는 고국도 조상도 모를 후레자식으로 번져 질까 심히 우려된다.

 

해내외의 모든 동포들의 마음을 모아 당장 무모한 ‘중국의 원지음’, ‘현지음 표기 기준’이라는 불장난을 멈추라고 대성질호하고 아울러 하루 빨리 잃어버린 것, 바수고 부수고 버리고 던진 것, 낡고 헤어진 것이라도 무릇 우리의 역사와 현실과 미래에 유조하고 유리하다면 에누리 없이 모두 다 구조하고 복구하고 수선하여 우리말과 글의 아름다운 원형을 되찾을 것을 간절히, 간곡히 간촉하고자 한다.

 

중국의 조선민족들이 한국에서 국적이나 영주권 또는 외국인등록증을 신청하거나 발급받을 때에 받는 가장 큰 충격과 심한 자극은 우리말과 우리글의 성명(姓名)을 버려야 하고 더구나 집안 족보나 가보(家譜)에 오를 때에도 자기 성과 명이 아닌, 한자어도 토착어도 아닌 자기도 모를 이름(부호)으로 취급당하는 수모를 겪을 때이다.

동족 간의 지역시기 내지 열등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예 :

본관은 밀양박(朴)씨이건만 ‘박수운(朴秀云)’이 ‘퍄오슈윈’으로,

본관은 김해김(金)씨이건만 ‘김대환(金大煥)’이 ‘진다환’으로,

본관은 안동권(權)씨이건만 ‘권오송(權五松)’이 ‘췐우수웅’으로,

본관은 수원백(白)씨이건만 ‘백태봉(白泰峰)’이 ‘표타이펑’으로,

본관은 신안주(朱)씨인데 불현 듯 ‘저우’로 변하고,

본관은 광주모(毛)씨, 함평 모(牟)씨인데 불현 듯 ‘마오’로 변한다.

 

한국에서 발급하는“외국국적동포 국내거소신고증”의 인명(성명)란에는 한문자·중문은 물론 한자어·정음자·언문(한글·조선글)도 한자(一字)없는 영문(英文)도 아닌, 한국의 외교부나 법무부의 중국담당 요원이 아니면 누구도 전혀 모를 중국의 병음부호(기호)로 기재되어 있다.

 

해당 카드명이 “외국국적동포 국내거소신고증”인만큼 발급대상은 분명 우리 같은 겨레와 민족에 한에서다. 해당 카드에 기재될 성명은 카드 신청자의 여권 성명을 기준한 것이다. 중국의 모든 여권의 성명표기는 중문 성명을 기준으로 하며 중문 아래 또는 중문 뒤에 부차적으로 병음자모가 보충되어있다. 한국의“외국국적동포 국내거소신고증”의 성명표기는 바로 이 부차적으로 보충된 병음자모를 선택했다.

 

중문한자(中文漢字)로서의 여권 성명을 우리 한자음으로 읽으면‘동이한자(東夷漢字)’로 된다. 이처럼 떳떳하고 정정당당한 성(姓)과 명(名)이 있음에도 한국의 공관에서 우리글 인명이 무시되고 있다.

하다못해 괄호 안에라도 우리글 성명을 넣어주는 관용을 베풀었다면 이렇듯 억울하고 섧지는 않을 것이련만.(‘중문한자(中文漢字)’, ‘동이한자(東夷漢字)’의 풀이는 본문 상편 제4절참조)

 

만약 우리 동포들 사이에 그 ‘거소증’으로 호명(呼名), 호칭(呼稱)을 한다면 알고도 모를 부호와 기호로 된 인명에서 성(姓)과 명(名)을 어떻게 밝히며, 또한 그 발음을 우리말과 정음자·한글로 옮긴다면 그 모양이 또한 어떻게 되며, 원래의 우리말과 글로 된 해당 본명(인명)과의 구별은 또 어떻게 밝혀야 할까.

 

한국에서 만든 이른바 새로운 외래어가 낳은 기형아 ‘창씨개명’이 해내외에서 우리의 굳어진 한자어 인명, 지명을 좀먹고, 삼키며 가족과 혈육상봉 내지 족보, 계보(系譜)에마저 끼어들어 마구 제멋대로 길길이 자라고 있다.

 

필자는 상술한 기형아의 산실(産室)은 우리 한자와 한자어를 도외시하고 외면하고 뭉그러뜨린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 그 중에서도 “중국어의 표기”와 “동양의 인명, 지명 표기”규정이라고 본다.

 

또한 이러한 ‘규정’의 비극적인 잉태와 출산 및 생존이 가능토록 한 온실은 우리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에 대한 인식과 개념, 풀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고 아울러 한국과 조선 및 해외를 비롯한 지금까지의 모든 우리말 사전들의 해당 낱말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에 대한 정의(正意·正義·定義)와 주석(새김)에 오도(誤導)가 있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한한자 문화권에 대한 잘 못된 관념, 이해와 연구가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그 원인의 뿌리를 더 깊이 파고 헤쳐 본다면; 우리 역사는 홍산문화(紅山文化)와 동이골각문자로부터 온 한자의 형성, 발전 내지 사용과 한 덩어리로 엉켜져있음을 정시(正視)하지 못함, 그로 하여 한자는 유구한 우리 문화의 기본이며 주체임을 망각 또는 부인한데 있으며, 한자야말로 우리 역사와 문화 내지 모든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일체로서의 불가분리의정체성을 갖고 있음을 부정하거나 그것에 대한 무의식(無識)상태이기 때문이 아닐까 본다.

 

 

『우리말글의 운명』 련재--2끝

([머리말/ 일러두기]는 본문련재-1 참조)

(본문의 모든 련재는 微信公众号⇒「硕宙也」를 찾아 열독하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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