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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10/11  한민족신문
삼가 [한글날]에 즈음하여

장석주

평양의《조선말대사전》에서는 단어 [고유어]를 아래와 같이 풀이하고 있다. 고유어 그 민족에게 고유한 말. 오랜 옛날부터 써온 말로서 인민들의 언어생활에 깊이 뿌리박고있으며 민족적감정과 정서가 잘 반영되여있다"

 

필자는 수천년 우리 배달겨레의 운명과 함께 해온 한자와 한자어야말로 토착어와 더불어 "나라와 민족의 역사와 함께 변천, 발달해 온 고유의 언어이며", "해당 언어에 본디부터 있던 말이나 그것에 기초하여 새로 만들어진 말"이며 "오랜 옛날부터 써온 말로서 인민들의 언어생활에 깊이 뿌리박"은 언어가 아닐 수 없다고 단언하며 강조, 설파하고자 한다.

 

한자어와 토착어(언문)는 마치 구만리 창공을 자유자재로 비상(飛翔)하는 대붕(大鵬)의 양 날개마냥 어느 하나도 없어서는 아니 될 필수불가결의 우리 배달겨레 말글의 동일체이다.

 

리승자(李承子) 선생의 "우리말과 글"의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한자 배척이 꼭 한글 사랑인 게 아니듯이 한자를 인정한다고 해서 한글을 모독하는 것도 아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하나의 언어에 두 개의 문자'라는 '일 언어 이 문자(一語二文)'의 특이한 서사생활을 해왔음을 인정한다면 한글 사랑과 한자교육은 모순되지 않는다.”

 

필자는 과거는 물론, 오늘날에 와서도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이 전혀 없이 우리 말글 구사와 서술이 가능할까? 더구나 한자와 한자어를 떠나서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관념어와 학술어, 특히는 론설, 론문, 론평과 같은 론리적인 말과 글에서 사고나 추리 따위를 리치에 맞게 이끌어 갈 수 있을까고 묻고싶다.

 

'한자'와 '한자어'를 떠나서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명'은 '물론', '삼족오', '고조선', '단군', '환웅', '신단수', '고구려', '신라', '백제', '태극기'와 '국민'의 '력사', '미래', '심지어'는 '조선어', '한국어'에 '립지'한 '민족'의 '자존심' '내지' '인간', '인류'의 '문명'과 '문화'마저도 '존속'할런지가 '의문'이다.(괄호 '00' 안의 낱말은 모두 한자어임)

 

필자가 통계한데 의하면 우리글 학술론문의 어휘 78%~88%가 한자어이다.

 

그리하여 모든 우리말 사전에서의 '한자' '한자어'와 '한자음'과 우리 실생활에서 쓰이는 '우리 한자', 우리 '한자어', '한자음' 내지 '우리음'과의 사용 관계를 재정립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래 한자의 유래를 간추려본다.

 

한자(漢字)는 워낙 한어(漢語)를 기록하는 문자이다. 한자는 세계적으로 아주 유구한 문자의 하나로서 일찍 창힐(倉頡·蒼頡), 일명 황힐(皇頡)·힐황(頡皇)이라는 사람이 만든 창힐문자에서부터 시작되였다고 할 수 있다.

 

창힐문자는 이미 6,800여 년의 력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창힐조자원리(倉頡造字原理) 략) 한비자(韓非子), 려씨춘추(呂氏春秋), 중국 대사전 “辭海(사해)”-上海辭海出版社1979年板, 제312쪽 참조, 천자문 “始 制 文 字 ‘복희의 신하 창힐이라는 사람이 새의 발자취를 보고 글자를 처음 만들었다'"참조]

 

현재 보존하고 알아볼 수 있는 문자는 3,000여 년 전의 은(殷), 상(商)나라의 갑골문(甲骨文)과 그 뒤로 발굴된 금문(金文)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 한자의 기원이 중국의 권위적인 고고학 연구가들로부터 새로운 골각문자(骨刻文字)를 발견, 연구하면서 중국 화하(華夏)문화의 뿌리를 밝혀 동방문자의 서막(序幕)을 십 수세기(十數世紀)를 더 앞당기고 있다.

 

중국 산동성 정부 웹사이트 ‘山东省情网(WWW.infobase.gov.cn)’의 ‘省情网’으로 서명한 글 ‘东夷及其文化发展(2007-07-31)’을 방문해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뚜렷이 눈에 띈다.

 

“最早的文字, 当是东夷人的创造. 《潜夫论·五德志》 有 “少皞始作书契”, 的说法. 这一说法得到了考古发现资料的证明.”  필자의 얕은 수역(修譯)으로 그 뜻을 헤아려보면 “최초의 문자는 동이사람들이 창조하여 ‘소호시작서글(少皞始作书契)[적을 少, 밝을 皞, 처음 始, 지을 作, 글 書, 새길 契 , 즉 어려서부터 사리에 밝아 시작부터 부절(符節)을 새겼노라]’설이 고고학적으로 증명이 되였다…”고 리해 할 수 있겠다.

 

일부 자료에서는 소호(少皞)를 동이족의 령수 인물인 소호(少昊)로 보고 있다(少昊又作少皞, 是古东夷族的另一位领袖人物).--山东省情网 http://tieba.baidu.com/f?kz=684118068 등 웹페이지 참조.

 

중국의 ‘齐鲁晚报’ 2008년 10월 27일의 글 ‘神秘东夷甲骨文现山东-疑比殷墟甲骨早千年’ 또는 산동성사회과학원(山东省社会科学院) 방진호(逄振镐) 연구원의 글 ‘从图像文字到甲骨文-史前东夷文字史略’(--2002年 02期 中原文物 Cultural Relics of Central China http: //  d.wanfangdata.com.cn / Periodical_zyww200202008.aspx 참조)을 보면 골각문자(骨刻文字)인 동이문자(東夷文字)는 지금까지 알려진 은허(殷墟)의 갑골문자(甲骨文字)보다 무려 1,000년 내지 1,500년 전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산동대학 고고미술학연구소 유봉군(劉鳳君) 소장은 얼마 전에 “20세기 중국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 갑골문자 발견이였다면 이번 골각문자 발견은 중국 력사를 지금보다 천여 년 이전으로 돌리는 21세기 중국 고고학의 력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http://news.sina.com.cn/c/2008-08-15/ 073714314025s.shtml-中國大众网-齐鲁晚报 웹페이지 참조)

 

지극히 중요한 것은 은허의 갑골문자 이전에 동이문자가 골각문자로 먼저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자는 동이문자와 은허문자의 맥을 이어 발전되여 왔다는 것이다.

 

필자는 우리 문자의 시조(始祖)와 같은 [집 家], [새길 契]과 같은 문자에는 동방의 화하 문명은 물론, 동양의 동근(同根), 동원(同源) 력사와 문화 기인(基因)이 력력히 남아있고 조선(祖先)의 지혜가 넘쳐남에 찬사를 아끼고 싶지 않다.

 

집 [가 家]자만 보더라도 글의 창제(創製) 원리와 머금고 있는 뜻이 한없이 깊다. 갓머리 [⼧]에 시[⾗]를 합하여 이루어진 가[家]는 바로 집안에서 돼지를 기른다는 뜻이다.(--골각문자(骨刻文字)와 갑골문자 [집 家]의 변이 과정은 생략)

 

사람이 살고 있는 [집 家]에 [돼지 ⾗]가 없어서는 아니 될 정도로 중요시됨은 그 시기 그 고장에 뱀이 엄청 많았을 것이며 사람은 뱀의 천적인 돼지를 가까이 하여 뱀의 침습을 막았으리라. (--오늘도 한국 제주도의 일부 시골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흔적 진술은 생략함)

 

집 [가 家]자에는 사람 [인 人]자 보다 돼지 [시 豕]자가 필수불가결이다. 돼지를 부엌 바닥이나 집안 마루 밑에 기르든 아니면 다락집의 아래 움막에 가두어 기르든 항상 돼지가 집을 지키고 있어야 집안이 편안하며 안전하다는 뜻이렷다.

이러한 글(契)들이 동이와 은의 맥을 이어 오늘의 한자(漢字)로 발전되어 왔다는 것을 중국이 주축이 된 동양의 고고학 전문가들이 대자특서하고 있다. (--글 契, 맺을 契, 새길 契, 부족 이름 契, 사람 이름 契의 풀이 략함)

 

동이문자를 파고들자면 우선 ‘동이’라는 낱말을 바로 리해해야 한다.

 

중국 대사전 『辭海(사해)(1979년 판)』 제46쪽에 ‘東夷’라는 낱말을 보면 ‘見 “夷”(“이”를 보라)’라고 올랐다.

 

다시 제644쪽에 오른 낱말‘夷’를 보면“中國古代對東方各族的汎稱 … 舊時亦往往用以称外國人.)라고 풀이하고 있다. 뜻인즉 ‘동이’란 바로 ‘중국 고대에 동방의 각 민족들을 두루 일컫는 범칭 … 옛적에 또한 외국인을 일컫는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말 사전 낱말 풀이대로 ‘동이’라면 ‘동쪽의 오랑캐’, ‘동쪽지방에 사는 미개한 종족’이라는 뜻으로이니 ‘동이문자’라면 바로 ‘동녘의 오랑캐문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우리말 모든 『국어사전』, 중국 연변인민출판사 『조선말사전』1992'의 낱말 ‘동이’ 주석 참조)

 

중국의 한문(중어)사전들에서보다 오히려 우리말 사전들에서 ‘동이’를 ‘동쪽의 오랑캐’니 ‘동쪽지방에 사는 미개한 종족’이라느니 하며 그 옛날 발해만(渤海灣)에 뿌리내린 우리 조상들을 욕보이게 하고 있다.

 

실은 ‘동이’를 ‘동쪽의 오랑캐’라고 폄칭(貶稱)한 유래는 2천여 년 전에 분서갱유(焚書坑儒)를 감행한 진시황이 막강한 동이민족의 후예국을 물리치면서 동녘의 렬국 사람들을 ‘오랑캐’라고 내뱉은 욕지거리를 우리 사전들에서는 두 손 들어 고스란히 받아 새겨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동이골각문자’를 정설(定說)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동이(東夷)’라는 낱말을 한국과 조선을 비롯한 해내외 모든 우리말 사전들에서 바로 새겨야 할 것이며 특히 옥편에서 [夷]를 [오랑캐 이]로 한 훈석(訓釋)부터 고쳐야 할 것이다.

 

실은 한문자 [夷]는 [클 大]와 [활 弓]의 합자(合字)로서 사람이 활을 들고 있는 모양 또는 큰 활 모양을 본 뜬 글이며 ‘화험위이(化險爲夷)’에서 ‘夷’자 마냥 ‘온화’, ‘평탄’, ‘안온’, ‘기쁨’, ‘지혜’, ‘용감하다’ 등의 뜻을 머금고 있다.

 

력사를 바로 잡고 비록 늦었지만 당대발복(當代發福)으로 조상을 정히 모시지는 못할지라도 급격물실(急擊勿失)로 명분을 되찾아야할 것이다.

 

필자는 '동이·東夷'를 '동녘의 큰 활을 멘 어진 민족' 또는 '동방의 큰 활을 지닌 용감하고 슬기로운 민족'으로 칭하고자 한다.

 

아울러 [夷]의 훈과 음은 [夷 = 활을 지닌 이, 큰활을 멘 이]로 새기고자 한다.

 

동이(東夷)의 더 구체적이고 전면적이며 권위적인 해석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동이'를 찾아 참고하기 바란다.

다음 다시 한문자의 력사와 그에 앞선 인류력사에서의 문자의 출현을 대충 추려본다.

 

필자는 서술의 편의와 전통 관용, 관습에 따라 상고(上古), 동이(東夷), 상(商), 은(殷) 등 력대 문자명의 세분을 제외하고는 모든 표의문자를 통상 오늘의 한자(漢字)로 잠시 지칭함을 특히 명시하는 바이다.

 

인류력사에서 결승문자(結繩文字)에 이어 대상을 나타내는 도형 또는 몇 개의 결합에 의하여 하나의 관념을 가리키는 그림문자(회화문자, 繪畵文字)가 가장 선참으로 나타났다.

 

이어서 점토 위에 갈대나 금속으로 만든 펜으로 새겨 썼기 때문에 문자의 선 모양을 쐐기 같다고 이름 붙인 설형문자(楔形文字)가 기원전 3천 년경부터 3천 년간 널리 씌었다. 때를 같이한 귀갑(龜甲)이나 우골(牛骨)에 새겼다 해서 이름 붙인 골각문자, 갑골문자가 동이와 은나라시대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골각문자와 갑골문자는 현재 알 수 있는 한문자의 가장 오래된 형태로, 회화적 요소를 다분히 남기고 있으나 순수한 결승문자, 매듭 글자, 그림문자보다는 상당히 진보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어 고대의 4대 문명(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황하 문명)은 독자적인 문자-사물을 본 떠 그 사물이나 그것에 관련 있는 관념을 나타내는  상형문자(象形文字)를 발전시켰다.

 

한문자의 륙서(六書) 가운데 하나로 물건의 형상을 본 떠서 만든 글자들로는 해를 본 뜬 ‘日’, 달을 본 뜬 ‘月’, 산을 본 뜬 ‘山’ 따위가 있다.

 

한자는 문화를 전파하는 서면(書面)식 부호로서 일찍 조선, 일본과 베트남등 나라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오늘의 우리말(한국어·조선어)은 하나의 독립적인 언어로서 아주 긴 세월 동안 한자로 서면 표달을 하였다.

 

위에서 언급했었지만 우리글 언문(諺文)이 있기 전에 우리 민족은 한문자를 그대로 써왔고 지금에 이르러서도 한문에서 온 한자와 한자어를 떠나서 우리의 말과 글을 엮을 수가 없는 현실이다.

 

다만 우리글 정음자가 있기 전에는 한문자를 글 그대로 써오며 우리식 발음을 했었고 우리 정음자가 생겨서부터는 한문자를 그대로 써 오기도 하였고 우리의 바른 한자음으로 옮겨 우리 한자로도 만들어 썼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지하기를 중국의 전국시기(戰國時期, 기원전 403년~기원전 221년)에 한자가 이미 조선반도에로 류입됐다고 한다. 

 

이는 조선과 한국에서 발굴한 각종 중국 전국시대 화폐(貨弊)의 명문(銘文)중에서 가히 증명할 수 있다. 늦어도 서한(西漢, 기원전 206년~기원 24년) 초기에 우리 민족은 한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우리 민족 기원과 천이(遷移)설 및 동이 후예 설은 별론)

 

진번(眞番)부락이 한무제에게 서신을 보내어 통상과 통교(通交)를 요구했다는 사료가 이를 립증해 주고 있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뒤에 중국 당나라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책을 펼쳐 나갔다. 이로 하여 대량의 표시문화, 지식, 개념 등 한자 사원(詞源)이 지속적으로 신라에 전수되어서 우리말 어휘에 융합되었다. 따라서 일부 한자단어가 심지어 우리말 토착어의 술어를 대체하여 우리말 단어 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중국 유학(儒學)의 조선반도에서의 전수와 영향이다. 유학이 어느 시기에 반도에 전수되었는지는 학계에서 아직 일치된 의견이 없다. 그러나『삼국지(三國志)』 제30권 「동이전(東夷傳)」에 인용된 ‘위략(魏略)’을 보면 중국의 전국시기에 반도로 전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의 고유사상인 ‘한’사상을 전거(典据)하는 삼대성서(三大聖書)인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 중에서도 조화경(造化經)이라 일컫는 “천부경”은 그 중에서도 진수(眞髓)이며 핵심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자료: 천부경 연구 제1집 『우리 얼 우리말 우리글』 崔載忠 저, 1985년 한민족 발간)

 

이 삼대성서는 모두 한문자로 집필되었는데 한자를 모르면 전혀 해석이 불가능 할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우리 민족의 고유사상인 '한'을 터득할 수 없다.

 

필자는 낱말 '한문' 또는 '한문자'와 '한자' '한자어'를 서로 다른 개념으로 각기 귀납하고 바로 규명하려 함을 미리 명시하는 바이다. 

 

'한문자'와 우리 '한자'는 오늘에 와서 결코 같은 모양, 같은 형태의 낱말이 아님을 강조하는 바이다.

 

다른 문자와 다른 한자음으로 옮겨지지 않은 중국의 한자는 순수한 중국의 한자음과 표의문자-한문자(漢文字) 즉 중문(中文) 그대로지만 일본의 한자는 음절문자(音節文字)만으로 그뿐이다. 

 

그러나 우리말 한자는 표의문자인 한문자를 글 모양은 그대로 쓰되 반드시 우리 한자음으로 옮겨야 하며, 또한 우리 정음(正音)으로의 표음문자이면서 또한 음소문자인 우리만의 글로도 쓸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말 사전들에서의 낱말 '한자(漢字)'란 무엇인가? 

아래 낱말 한자에 대한 각종 우리말 사전들의 정의(定義)와 주석(註釋)을 종합해본다.

필자는 나름대로의 론점을 보다 충실히 론증하고자 우리말 사전들의 낱말 풀이를 되도록 상세히, 보다 충분히 인용함을 특히 말해 둔다.

 

‘한자’라는 단어를 한국 금성출판사에서 펴낸 『국어사전』(1987)에서는 “중국의 글자”라고 주석을 달았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996) 제24권에서는 ‘한자’를 “중국어를 표기하는 중국 고유의 문자”라고 풀이했고 한국 민중서림에서 펴낸 『엣센스 국어사전』(1991)에서도 “중국의 글자”라고 간단히 풀이되어 있고, 한국 삼성출판사에서 펴낸 『새우리말큰사전』(1990)에서는 “한민족(漢民族) 사이에 발생한 중국어를 나타내는 문자”라고 주석을 달았다.

 

한국 민중서관에서 펴낸 『국어대사전』(1977)에서는 ‘한자’가 “중국어를 표기하는 중국 고유의 문자”라고만 풀이되었고 한국 교육도서에서 펴낸 『국어대사전』(1989)에서는 ‘한자’를 “한민족 사이에 발생한 중국어를 표기하는 중국의 고유의 문자. 그 기원은 분명치 않으나 기원전 10수세기의 은(殷)나라 때 이미 사용되었음”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한국의 동아출판사에서 1994년 1월에 개정 편으로 펴낸 『새국어사전』의 낱말 ‘한자’에 대한 주석도 “중국어를 표기하는 중국 고유의 문자. 표의적(表意的) 음절 문자로 우리나라, 일본 등지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음”이라고 적혀 있다.

 

1999년 한국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한자’를 “중국에서 만들어 오늘날에도 쓰고 있는 문자. = 당문자·한문자”라고 풀이하고 있다.

 

2006년 한국 민중서림에서 펴낸『국어대사전』에서는 ‘한자’를 “중국어를 표기하는 중국 고유의 문자. 한문 글자. 한문자”라고 풀이하고 있다.

 

조선 과학백과사전출판사에서 펴낸『현대조선말사전』(1981) 중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에 대한 새로운 견해에서는 ‘한자’를 “중국 사람들이 만들고 중국에서 써내려오는 글자의 하나. 뜻글자에 속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중국 연변인민출판사에서 펴낸『조선말사전』(1995)에서는 “한족들이 만들어 써내려오는 문자, 표의문자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중국 료녕민족출판사에서 펴낸『조선말새말사전』(1991)에서는 “한자는 표의문자로서 그 수가 많고 글자 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에 학습과 사용에 큰 지장을 준다. 때문에 표음문자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한자간략화방안’과 ‘한어병음방안’의 제정과 공포, 실시로 점차 한자 개혁을 진행하며 한자의 표음화 실현을 위하여 조건을 마련한다고 적고 있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사전들의 ‘한자’에 대한 풀이를 두루 훑어보았지만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위에서 실례를 든 사전들의 풀이를 보면 ‘한자’는 다만 중국에서만 쓰이는 상형(象形), 지사(指事) 등 문자로, 발달한 표의적 음절문자로, 그리고 자형(字形)도 대전(大篆), 소전(小篆) 또는 약자(略字), 속자(俗字) 등등으로 중국에서만 또는 중국 사람만, 혹자는 중국어를 배운(한국·조선·일본·베트남 등)이들에게만 쓰이는 문자로 인정하고 있다. 중국 ‘한문자’로서의 주석 풀이는 나무랄 데가 없다.

 

그렇다면 ‘한자어’란 또 무엇인가? 상술한 우리말 사전들을 두루 훑어보면 ‘한자어’에 대한 풀이는 더 간결하다.

한국의『국어대사전』(1977)과『엣센스 국어사전』(1991)에서는 낱말 ‘한자어’를 “한자로써 된 낱말”이라고 주석을 달았고 『표준국어대사전』(1999)에서는 “한자로 적을 수 있는 단어”라고 풀이하고 있으며 한국의 최신『국어대사전』(2006)과 조선의『현대조선말사전』에서는 “한자말”이라고 단마디로 주석을 달았다.

 

위의 남북의 많은 우리말 사전들에서 낱말 "한자"는 곧 "중국의 글자" 또는 "중국어를 표기하는 중국 고유의 문자"라고 했고 "한자어"는 "한자말" 또는 "한자로써 된 낱말"이라고 풀이하고 있으니 "한자어"란 곧 "중국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지극히 개별적인 사전들에서는 위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관념을 떠나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 객관적이고 실용적으로, 보다 실사구시적으로 한자어를 풀이하고 있는데 그 실례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실린 낱말 "한자어" 풀이를 거듭 인용해 본다.

 

한자어(漢字語): 하나 또는 둘 이상의 한자의 결합으로 되어 한국어로서 사용되는 한국식 발음의 단어......(--밑줄은 필자의 가첨임)

이처럼 사전의 주석이라고해서 모두 옳바름이 아니며 비록 분명히 똑같은 낱말이라고 할지라도 사전들에서의 그 풀이를 서로 자세히 대조 분석해 보면 상호 모순이 천차만별 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한자어의 생성, 발달, 특징의 사전용어 풀이 등은 생략, 조선 평양의 사전과 한국 서울의 사전에서 같은 낱말 풀이가 판이한 많은 실례 략)

 

다음 낱말 ‘한자음’을 찾아본다.

 

한국의 여러 사전에 낱말 ‘한자’, ‘한자말’, ‘한자어’, ‘한자학’, ‘한자교육’에 대해선 풀이가 많지만 ‘한자음’이란 단어는 여러『국어사전』,『국어대사전』을 비롯한 각종 사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한국의『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1984)과『표준국어대사전』(1999)에서와 조선의『현대조선말사전』(1981)에서, 중국의『조선말사전』(1995)에서 겨우 ‘한자음’이란 낱말을 찾아 볼 수 있었는데 그 풀이를 보면 모든 사전들은 ‘한자음(漢字音)’에 대한 주석을 단 네 글자로 ‘한자(漢字)의 음’이라고 적고 있다.

 

해내외의 모든 우리말 사전들에서는 ‘한자’를 ‘중국 글자’ 또는 ‘중국어’로 풀이하고 ‘한자어’는 ‘한자로 적을 수 있는 단어’ 또는 ‘한자말’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한자’와 ‘한자어’가 ‘중국어’, ‘중국 글자’, ‘중국 단어’, ‘중국말’이라고 내린 정의(定義)에 따라 ‘한자음’도 해당 사전의 주석에 따르면 ‘한자의 음’이라고 풀이했으니 다른 해석은 군더더기일 뿐 ‘한자음’이란 바로 명실상부로 ‘중국말의 음’ 또는 ‘중국어 발음’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실은 중국의 크고 작은 여러 자전과 사전을 샅샅이 훑어보아도 ‘한자(漢字)’, ‘한어(漢語)’라는 낱말은 있어도 ‘한자어(漢字語)’, ‘한자음(漢字音)’이라는 단어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만큼 낱말 '한자어'와 '한자음'은 위의 모든 사전의 주석과 판이하게 다르게 현실에서는 중국에서 보다 우리 겨레 말글에만 쓰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래 낱말 한자어의 매 문자의 형태소를 정밀 해부 분석해 본다.

한문자는 매 하나하나의 글자가 언어의 음과 상관없이 일정한 뜻을 갖고있는 표의문자다.

 

'한문자'로서의 "'한자어'의 첫자 '한'은 '나라이름 한(漢)'이요, 중간 자는 '말을 적는 일정한 체계를 의미'하는 '글자 자(字)'이고 마감자는 '말' 또는 '단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와 같은 '말씀 어(語)'"로서 중간 자의 "'말을 적는 일정한 체계를 의미'하는 '글자 자(字)' 뒤에 '말' 또는 '단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말씀 어(語)'"를 덧붙힘은 군더더기일 뿐이다.

 

같은 말로 낱말 '한자어' 석자 가운데에서 중간의 '자(字)'자를 빼고 앞뒤자만 합성을 하여 낱말 '한어(漢語)'를 이룰 수는 있지만 거듭 강조하거니와 표의문자에서는 실질 형태소인 "'말'이나 '자'"에 뒷이어 같거나 류사한 실질 형태소인 "말씀 '어'"를 합성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로부터라도 필자는 낱말 한자어는 표의문자인 중국의 단어로서가 아닌 우리 배달겨레가 생성한 고유어 단어임을 류추할 수 있다.

 

한자 문화권(동아시아문화권)에서 우리 ‘한자어’와 같은 개념을 지닌 단어를 두루 살펴보면 일본에서는 ‘한어(漢語/かんご/カンゴ/Sino-Japanesse, SJ)’로, 베트남에서는 ‘한월어(漢越語, Từ Hán Việt/詞漢越/Sino-Vietnamese, SV)’로 일컬으며 각자 자기나라의 고유문자와 자기 나름대로의 음으로 자기 나라식의 한자와 한자어를 표기하고 있다.

 

필자는 상술한 우리말 사전에 낱말 ‘한자’ 대신에 ‘한문’ 또는 ‘한문자’, ‘중문’, 또는 ‘중국문자’라고 올렸더라면 아무런 시비가 없겠지만 한국·조선과 해외의 모든 우리말 사전들에서 ‘한자’는 곧 ‘중국의 글이다’는 주석과 ‘한자어’란 곧 중국의 글자인 ‘한자로써 된 낱말’, 중국의 문자인 ‘한자로 적을 수 있는 단어’, 중국 한(漢)나라의 말이라는 뜻으로의 ‘한자말’이라는 풀이, ‘한자음’이란 곧 중국 ‘한자(漢字)의 음’이라는 풀이로서는 오늘날 우리말과 우리글의 한자, 한자어, 한자음에 대한 리해와 사용 현실과 너무나 큰 모순이 있음을 거듭 언급한다.

 

실은 한국의 ‘한글맞춤법’과 ‘표준어 규정’, ‘표준발음법’, ‘외래어 표기법’,《국어대사전》등 법서, 법전, 사전, 법규의 법칙과 규범, 규정, 규칙과 새김, 세칙 등에서 ‘우리 한자’, ‘우리 한자어’, ‘우리 한자음’, ‘우리 음’ 등 ‘우리’를 관형어·규정어와 수식어로 앞세운 오늘의 철 같은 현존 현실과 그와 정 반대로 그렇지 않은, 모든 우리말 사전의 새김과는 아주 다른 모순투성이 단어(單語·單辭)들이 수없이 무더기로 나오고 있는 례를 본문의 편폭 제한으로 생략한다.(--《우리 말글의 운명》상편 제2절, 제3절, 제4절 참조)

 

'한자'의 뿌리는 곧 '동이문자'였다. 

 

우리 ‘한자음’이 있음은 우리 ‘한자어’가 있기 때문이며 우리 ‘한자어’는 우리 ‘한자’가 없이 있을 수 없는 등식으로도 ‘한자’는 우리 배달겨레의 단어이며 우리 문자임을 립증한다.

 

우리 ‘한자’는 ‘한자어’와 ‘한자음’의 기본이고 핵이다.

 

본문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엄히 따져보면 낱말 '한국어(韩国語)'나 낱말 '조선어(朝鲜語)'는 물론이거니와 낱말 '한글', '조선글' 역시 모두 다 한자어이다.(--'한글'은 한자 '韩'자와 한자 '契'자의 합성어 '韩契'이고 '조선글'은 한자 '朝'자와 한자 '鲜'자 및 한자 '契'자의 합성어 '朝鲜契'이다. 한자 '고글(古契)', '환글(桓契)', '동이글각(東夷契刻)', '소호시작서글(少皞始作书契)', '골각글(骨角契)', '은글(殷契)', '갑골글(甲骨契)' 등등 '글(契)의 새김은 생략)

 

'글(契)'자의 력대 쓰임과 자의(字義)와 문의(文義•文意) 및 그 유래를 깊이 습득할수록 필자가 주장하는 고유어(한자어+토착어)에 대한 개념과 정의를 다소 인정하고 긍정할 것이다.(--'글(契)'의 자의(字義)와 관련 훈과 새김 등은《우리 말글의 운명》상편 제115쪽 참조)

 

계명산천(鷄鳴山川)이라, 우리는 우리의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의 관적과 본향, 귀숙을 찾아주어야 한다.

 

우리는 수백 년 전부터 정음자로 한자를 써오기 시작했다. 우리 생활에 정착된 한자를 우리글로 인정해야 한다.

우리말의 고향과 우리글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

참으로 고안심곡(高岸深谷)이요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해야겠다!

 

이상 론거(論據)로 외람되고 주제넘지만 필자는 4천5백 년 전의 동이문자(東夷文字)와 2천여 년 전의 한자(漢字) 그리고 500여 년 전의 훈민정음의 언문(諺文),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인 사차원세계(四次元世界) 및 다원화 시각으로 거시적(巨視的) 탈력사(脫歷史) 진화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의 립장과 관점에서 상전(相傳), 전승(傳承) 및 의존과 상호 련관성 내지 창의성에 근거하여 하나의 거대한 사슬(동이문자 → 한자 → 언문 → 오늘의 우리 말글)로 엮어 그 결과물을 ‘동이한자’와 ‘언문한자’라는 자립명사 창출로 감히 시도(試圖)해본다.

 

고로 필자는 ‘한자’의 시조(始祖)와 시원(始原)인 ‘동이문자’의 명분을 찾아 길이 기리며 아울러 한문자의 위상(位相) 및 작용과 실용을 거듭 인정하여 ‘동이+한자’의 품사결합 즉 ‘동이한자(東夷漢字)’라는 공식 명호와 수백여 년 간 언어(諺語)와 언문(諺文)으로 한자어(漢字語)를 명실공히 잘 써온 력사와 현실을 받들어 ‘언문+한자’를 결합한 ‘언문한자(諺文漢字)’라는 이름씨로 명명(命名)하여 세상에 태어나게 함을 정중히 선고(宣告)한다.

 

2 한자개념 정립

필자더러 기어코 우리 한자의 개념과 정의를 정립하라면 고왕금래를 탁마보완(琢磨補完)하여 간고(懇告)로 감히 아뢰옵건데; 한자의 유래는 고대 선사시대에 蒼頡이 새와 짐승들의 발자국을 본떠서 시작한 것이 少昊를 거쳐 무려 4500여 년 전 東夷에 의해 골각문자로 틀을 갖추고 그 맥을 이은 殷나라의 갑골문자가 漢나라 때에 鼎盛時期를 이루었고 그때 크게 擴充 정착된 표의문자를 다만 '契'과 '文'으로만 지칭되여오다가 먼 훗날 후손들 말하자면 지금으로부터 700여 년 전 元나라 몽고인들이 중국본토로 쳐들어와 남송을 멸망시키고 저희들의 몽고문자와 구별하기 위해 그 당시 해당 지방의 토착어 '契'과 '文'을 漢人들의 글자라고 해서 '漢字'로 이름 지어서 오늘에까지 많이 써온 연고로 지금까지 그냥 '漢字'로 불려왔을 뿐 그 문자를 우리 정음으로 옮겨 쓰면 우리 글자╺ 동이를 始祖로 한 한자 즉 東夷漢字이기도 하며 마찬가지로 중국의 漢語음으로 쓰면 중국문자╺ 中文漢字, 일어 음으로 옮겨 쓸 수 있는 한자라면 일본한자╺ 日文漢字이기도 한 동방문자라는 남다른 신개념을 주장 강조 說破하고자 한다.(-- 장석주 저《우리 말글의 운명》제157쪽 참조)필자는 인류운명과 인류문명 공동체의 일환으로서의 한자는 또한 동아시아 내지 세계적인 문자이기도 하다고 단언한다.

    

혹여 혹자는 '한자'의 형성과 발전 력사는 동이의 골각문자나 은나라의 갑골문자와 전혀 관련이 없이, 또는 원나라에 의해 '한자'로 이름 지어진 것이 아니라 치더라도 한국의 현행 "한글맞춤법"과 "표준어 규정" "표준발음법" 그리고《표준 한국어발음대사전》과《한국 어문규정 해설집》에서 렬거한 전문 장절에 '한자' '한자어' '우리 한자음', '우리 음'이라는 용어로 수많은 세칙과 기준을 다룬 철 같은 론거로만으로도 '한자', '한자어'는 분명히 우리의 고유어 즉 "漢文字를 우리 음으로 옮겨서 읽으면 곧 우리 한자음이고 우리 음으로 쓰면 곧 우리 한자"이기도 하다는 주장을 유력하고 엄정하게 표명(表明)한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관건 문제는 여러 상기 해당 규정과 세칙에서 '한자'와 '한자음', '한자어'를 우리말 사전들에서 낱말 한자에 대한 풀이 그대로 "한문자는 곧 중국글"로서만이 아니라 우리말과 우리글 범주에 넣고 다루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위의 해당 규정과 실례의 경우 '한자'와 '한자어'는 한문자의 원 뜻을 머금은 '우리 한자'이고 '우리 한자'는 바로 우리 겨레의 글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이왕의 모든 우리말 사전들에서 풀이한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에 대한 주석과 우리 실생활에서의 이미 보편화, 규범화된 '한자' '한자어'와 '한자음'에 대한 규정 및 실용 실태사이에는 상호 정의(定義)와 리해에 아주 큰 모순이 존재함을 증시(證示)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현행 “한글맞춤법"을 비롯한 상기 법서(法書)과 법전(法典)들에서 전문 조목과 장절로 '한자'와 '한자음' '한자어'를 크게 다룸 그 자체가 바로 '한자'와 '한자음' '한자어'는 곧 한국어(조선어) 범주에 속함을 자인한 것이며 또한 상술한 법과 규정에서 한자를 중국글로서의 한문자(漢文字)로서가 아니라 외국어와 외래어를 취급범위에 넣지 않는 한글 문법에 '한자'와 '한자음' '한자어'를 '한글'과 함께 우리글로 취급한 바로 이 것 만으로도 한자와 한자음 한자어는 바로 한글 범주에 속한다는 증거가 되고도 남는다고 해야겠다.(--한국 문교부에서“한글맞춤법”반포와 같은 시기 제88―2호로 "표준어규정”도 함께 발표했었는데 이 "표준어규정"의 제2장 "발음 변화에 따른 표준어규정"의 제2절 “모음"의 제13항 등에서 한자를 우리 한자로 서술한 많고도 많은 실례는 장석주 편저《우리 말글의 운명》제91쪽, 제111쪽, 제133쪽, 제147쪽 참조)

 

아래 필자는 우리 낱말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에 대한 주석을 다음과 같이 조심히, 경건(敬虔)히 진술하련다.

한자1 (漢字) 동이한자(東夷漢字)

한자2 (諺漢字) 언문한자(諺文漢字)

한자3 (固有漢字) 우리 고유한자

한자4 (漢字) 예전에 ‘중문’을 이르던 말

한자1[-짜](漢字) 

 

 오랜 세월 우리 훈(訓)을 갖고 우리 한자음, 정음으로 옮겨 우리글로 수용한 문자. 수많은 민족에 의해 형성된, 오랫동안 우리 배달겨레의 문자로 익히 써오던, 우리에게 이미 정착된 표의적(表意的) 뜻글자, 동이한자(東夷漢字).

우리 정음으로 옮겨 쓰고 읽을 수 있는 한문자에 한함, 정음이 있기 전에는 당시의 우리 겨레 중고(中古), 중세(中世)음으로 옮긴 뜻글자에 한함.

 

례: ‘父親’의 ‘父’자와 ‘親’자, ‘母親’의 ‘母’자와 ‘親’자 등.

 

한자2 [-짜](諺漢字) 

우리 음훈(音訓)을 갖춘 동이한자를 1446년 세종이 상형설(象形說) 원리로 창제한 언문(諺文) 맞춤법에 따라 수역(修譯), 옮긴 국어 가운데 토착어를 상대한, 우리 한자어의 뿌리를 형성하는 표음적(表音的) 소리글자, 언문한자(諺文漢字). 동이한자를 우리 언문으로 옮긴 우리만의 한자.

례: ‘부친’의 ‘부’자와 ‘친’자, ‘모친’의 ‘모’자와 ‘친’자, ‘산’, ‘강’ 등

한자3 [-짜](固有漢字)

우리의 고유한자. 한문자 어원을 지켜 새로 만들어 보충한 우리만의 고유한자.

례: 乭(이름-돌), 畓(논-답), 乫(땅이름-갈), 乮(봉호-묠) 등

한자4(漢字) 

 

예전에 ‘중문' '한문자’을 이르던 말.

이상 한자1, 한자2, 한자3을 아울러 ‘우리 한자’라고 일컫고자 한다.

종전 모든 우리말 사전에서의 올림말 ‘한자(漢字)’는 고쳐서 부득이한 경우만 낱말 ‘한문(漢文)’, ‘한문자(漢文字)’로 제한되어 쓰고, 되도록이면 ‘중문(中文)’, ‘중어(中語)’, ‘중국어(中國語)’, ‘중국 글’, ‘중국문자’로 수정할 것을 간권한다.

오랜 세월 우리말로 정착된 한자, 우리글에 굳어진 한자에 대해 정의(正義)로 정의(定義)를 바로 잡을 때가 되었다. 

우리 ‘한자’에 대한 정의가 확고해지면 자연히 ‘한자어’와 ‘한자음’에 대한 풀이도 석연해진다.

다음은 필자가 새겨 본 한자어와 한자음 주석이다.

 

한자어[-짜-](漢字語·諺漢字語) 

우리 한자(漢字·諺漢字)로써 된 낱말. 우리 한자로 적을 수 있는 단어. 

우리 한자말. 우리 한자음으로 옮긴 하나 또는 둘 이상의 한자의 결합으로 되어 우리 언어로서 사용되는 우리 겨레 식 발음의 단어.

동이한자어(東夷漢字語)와 언문한자어(諺文漢字語)로 나뉜다.

토착어보다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관념어와 학술어를 많이 이룬다.

 

례: 

동이한자어: 父親   

언문한자어: 부친 

토착어: 아버지

한자음[-짜-](漢字音·諺漢字音) 

우리 한자(漢字·諺漢字)의 음. 우리 훈(訓)을 갖고 있는 한자의 음.

(중문한자(中文漢字), 일문한자(日文漢字) 등은 장석주 저《우리 말글의 운명》제4장 제160쪽 참조)

필자는 상술한 론점과 론거로 우리말과 우리글 및 우리 음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자 한다.

 

우리말이란

① 고조선어(고유한자어 포함).

② 각 시대의 우리 민족어.

③ 오늘의 우리말 고유어: 토착어와 한자어.

 

우리글이란

① 우리의 고유문자.

② 상형설 원리에 따라 창제된 오늘의 한글⋅조선글-정음자, 언문(諺文).

③ 우리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이루어지고 우리 한자음으로 옮겨진, 한자어를 이루는 훈(訓)을 머금은 언문한자(諺文漢字).

④ 오랜 세월 우리들이 우리 문자로 익히 써온, 우리에게 정착된, 우리 한자음으로 옮겨진 상형문자, 표의문자로서의 동이한자(東夷漢字).

 

우리 음이란

① 고조선어의 음.

② 우리 고유문자의 음, 언어의 음(諺語音).

③ 고유 한자음.

④ 지금 오늘에 쓰이는 현대 한자음.

혹자는 우리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이룬 우리 한자음으로 옮겨진 한자-언문한자만은 쉽게 우리글 한자로 수긍하며 그러한 우리 한자음으로 옮긴 하나 또는 둘 이상의 한자의 결합이 있었기에 우리말로서 사용되는 우리식 발음의 단어 즉 한자어가 생성될 수 있었다고 여기겠지만, 필자는 오래전부터 이미 우리에게 정착된 한문자를 우리의 ‘동이한자’라고 인정한다면 ‘언문한자’만으로 이루어진 한자어뿐만이 아니라 동이한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한자어도 명분을 찾아 우리의 동이한자어라고 명명(命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우리에게는 ‘우리 한자’가 있고 ‘우리 한자’에는 ‘언문한자’와 ‘동이한자’가 있고 ‘우리 한자’가 있음으로 하여 우리에게는 또 ‘우리 한자어’가 있고 우리 한자어에는 ‘언문한자어’와 ‘동이한자어’가 있다고 천명하고자 한다.

 

우리 한자

언문한자: 천 지 만 물 춘 하 추 동

동이한자: 天 地 萬 物 春 夏 秋 冬

 

우리 한자어

언문한자어: 단군왕검 리씨조선 대한민국 금수강산

동이한자어: 檀君王儉 李氏朝鮮 大韓民國 錦繡江山

언문한자어: 숭례문 광화문 세종대왕 국민 국회 한성

동이한자어: 崇禮門 光化門 世宗大王 國民 國會 漢城

 

기나긴 력사는 아득한 그제 론리의 법칙으로는 전혀 맞지 않는 불합리 또는 비합리한 것이 천번지복(天翻地覆)을 겪으며 천변만화(千變萬化)하여 오늘에 와서는 론리적 원리나 리치 또는 법칙에 너무나 잘 부합된, 합리적이고 합당하게 된 현실을 우리는 외면하지 말고 바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가장 발달한 표의문자인 우리 동이한자(東夷漢字)의 장점과 가장 과학적이고 효률적인 표음문자인 우리 언문한자(諺文漢字)를 함께 갖고 있는 문화민족임에 무한한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세종대왕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3 훈민정음 창제

조선왕조 제4대 국군 세종대왕(世宗大王(본명 리도), 1419~1450년 재위)이 집현전(集賢殿)에 학자(鄭麟趾, 申叔舟, 成三問, 崔桓 등)들을 모아 1443년에 훈민정음(訓民正音), 즉 지금의 우리 정음(正音) 창제를 시작하였다.(--훈민정음의 위대한 문화적 창조 의의와 목적 및 거룩한 력사적 역할은 생략)

 

세종대왕은 한어 음운과 한어 두음을 정확하게 표기하기 위하여 성삼문 등 학자들을 13번이나 중국 료동에 파견하여 료동에 있는 명 한림학사 황찬(黃贊)에게서 음운학을 계통적으로 배우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드디어 1444년에 집현전의 학자들은 우리글-자음 17자와 모음 11자해서 도합 28자(지금에 와서는 자음자모와 모음자모 다섯 병서 및 합성모음자모 등 모두 40자가 있다)를 제정하였고 1446년에 마침내 훈민정음이라 하여 우리글의 음(音) 표기를 창제 반포하여 국자(國字)로 쓰도록 하였다.(--"한글은 집현전에서 만들지 않았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혼자 만들었다.”는 일설로 한국 (1999.10.9. 방영)도 있기는 하나 본문에서는 그 시비와 규명을 생략)

 

정인지 등이 1446년에 세종의 명을 받아 설명한 한문해설서를 전권 33장 1책으로 발간하였는데 책의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하였다.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현존본은 1940년경 한국 경상북도 안동 어느 고가에서 발견된 것으로서 한국 국내에서 유일한 귀중본이다.

 

세종은 창제의 목적을 밝힌 서문과 새 정음 표기 하나하나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예시하고 설명한 글을 짓고, 집현전의 학자들에게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용례를 짓도록 하여 책을 만들고 백성들에게 널리 공표하였다.

 

이 책에는 세종어제 서문과 훈민정음 음가 및 운용법을 밝힌 예의편이 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 합자해, 용자례 순으로 기술되어 있다.(--'초성의 제자원리', '중성의 제자원리', '종성', '합자', '제정의 경과' 및 "훈민정음도해", "훈민정음언해", "후민정음운해" 등등은 생략)

 

세계의 많은 민족이 자기의 언어를 표기하기 위하여 문자를 만들려고 노력하였으나, 정음자와 같이 일정한 시기에 특정한 사람이 이미 존재한 문자에서 직접으로 영향 받지 않고 독창적으로 새 문자(음자)를 만들고 한 국가의 공용표기로 사용하게 한 일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들 한다.

 

더욱이 새 문자에 대한 해설을 책으로 출판한 일은 류례가 없었던 력사적인 일이엿다. 특히 이 책에서 정음(正音)을 만든 원리와 문자 사용에 대한 설명에 나타나는 리론의 정연함과 엄정함에 대해서는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창제자와 창제목적 창제원리 및 창제시기가 뚜렸하고 특히 음소문자 뿐이 아닌 자질문자로서의 자소의 원리와 역할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세계의 문화유산으로서의 손색이 없다.(본문의 제7절 [자질문자 개념과 자소의 역할] 참조)

 

필자는 세종대왕이 우리 음을 창제하여 나라의 만백성들 모두가 자기의 언어를 자유로이 쉽게 쓸 수 있게 한 공적, 즉 우리글의 소리, 특히는 한자 음(音)의 기준을 바로잡아 국음(國音)으로 정하여 후세에 길이길이 전승(傳承)토록 하심을 특필대서로 칭송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훈민정음(국보 70호) 관련 자료와 그 역할 내지 력사적 의의를 포함한 해내외의 극찬은 대내외적으로 이미 크게 홍보되여있기에 본문에서는 이만 생략하고 다음 장절을 기술하련다.

 

4 훈민정음 재조명

필자는 세종대왕이 당초 고안(考案)하고 창제한 것이 어찌하여 [훈민정자(訓民正字)] 즉 바른 문자를 뜻한 [정자(正字)]가 아니고 [훈민정음(訓民正音)] 즉 바른 소리를 뜻한 [정음(正音)]이였을까를 깊이 생각해본다.

훈민정음이란 글 그대로 보면 백성을 가르치는 [정음(正音)] 즉 올바른 소리란뜻이다.

 

세종대왕은 당초 우리 겨레가 오랜 세월 널리 쓰고 있던 한자(漢字)를 우리의 문자가 아닌 순 남의 글로만 보았을 것인가? 그리하여 한자를 아예 버리고 우리만의 새 문자를 창제하여 쓰려는 것이었다면 결코 [정음(正音)]이 아니고 [정자(正字)]로 하였을 터인데, 그때의 임금이나 학자들이 결코 ‘자(字)’와 ‘음(音)’의 개념이 헷갈려서이거나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을 리가 없을 것이다.

 

필자가 외람되게 감히 단언한다면 당시 세종대왕과 학자들은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한자는 없어서는 아니 될 문자로 여기면서, 그 문자가 우리의 것이냐 아니냐보다는 일단은 그 어려운 한자의 뜻을 보다 쉽게 알고 읽을 수 있도록, 특히는 만백성 서민들의 한자를 읽는 바른 소리 즉 통일된 표준음인 ‘정음’을 적는 ‘음성 기호 표기’를 창제하려는 것이었다고 본다. 즉 훈민정음 창제는 한자를 버릴 대신 오히려 한자에 의존하여, 한자에 업혀 우리말 발음 표기를 시도했음을 볼 수 있다.

 

아래 한자에 뿌리를 둔 해례(解例) 몇 대목만 인용하면

ㄱ. 牙音. 如君字初發聲. 並書. 如虯字初發聲(아음. 여군자초발성. 병서. 여규자초발성)

ㄱ은 어금닛소리니, 君(군)자 첫소리와 같다. 나란히 씀(ㄲ)은, 虯()자 첫소리와 같다.

ㅋ. 牙音. 如快字初發聲(아음. 여쾌자초발성)

ㅋ은 어금닛소리니, 快(쾌·쾡)자 첫소리와 같다.

ㅇ. 牙音. 如業字初發聲(아음. 여업자초발성)

ㅇ은 어금닛소리니, 業()자 첫소리와 같다.

... ...

우리는 상기 해례에서 어렵지 않게 “ㄱ은 어금닛소리니, 君(군)자 첫소리와 같다”,

“ㅋ은 어금닛소리니, 快(쾌·쾡)자 첫소리와 같다”, “ㅇ은 어금닛소리니, 業()자 첫소리와 같다”에서 ‘君’, ‘快’, ‘業’ 등 한문자의 첫 음을 바탕으로, 한자의 첫 음을 본과 근거로 ‘ㄱ’, ‘ㅋ’, ‘ㅇ’ 소리 표기 정음을 제정하고 있음을 관찰할 수가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기호 [ㄱ]자 발음을 “牙音. 如君字初發聲. 並書. 如虯字初發聲(아음. 여군자초발성. 병서. 여규자초발성)”과 같이 한자 없이 해례가 전혀 불가능하였음을 보아낼 수 있다.

 

정음(正音)은 다만 말의 바른 소리로서 정음을 적으면 그 표기된 글자를 ‘언문(諺文)’ 또는 ‘한자’라고 일컫고, 언문 또는 한자를 우리 표준음으로 읽으면 그 소리를 ‘정음’ 또는 ‘언어(諺語)’라고 한다.(--정음자(훈민정음) 참조)

 

필자는 훈민정음 창제당시의 초심(初衷)은 '천자문(千字文)'과 '옥편(玉篇)'과 같은 어려운 동이한자에 훈석(訓釋)과 정음(正音)을 바로 적는 우리만의 소리 표기 기능과 역할을 감당할 기호(記號) 표기 체계를 창안함이 위주였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본다.

 

바로 음가(音價)•음표(音標 )•음성기호(音聲記號)•음표문자(音標文字)•주음부호(注音符號)와도 같은 부호를 창제하였다는 것이다.

 

당초에 정음을 '반절'이라고 부른 까닭만 보아도 필자의 상기 론점에 다소 수긍이 갈 것이다.

아래 한국과 조선의 사전에서 올림말 [반절]의 새김을 실어본다.

한국의《표준국어대사전》에서 올림말 [반절]의 새김

조선의《조선말대사전》에서 올림말 [반절]의 새김

 

참고로 지금으로 부터 100여 년 전의 우리글 신문에 실린, 주음기호마냥 한문자에 음표문자를 단 실례를 그대로 옮겨본다.

 

고로 엄히 보면 당초 창제하려는 것은 이미 널리 써온 한문자(漢文字)의 여러 같지 않은 한자음을 어느 하나의 음으로 표준을 세우고 올바른 우리말소리로 읽을 수있을뿐더러 그 뜻까지 헤아려 적을 수 있는 우리만의 보조적 표기기호(諺文) 28자를 창제하였다고 해야 더 적절하고 정확한 평이라고 본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필자는 세종대왕이 당초에 ‘훈민정자(訓民正字)’라고 하지 않고 바른 소리 즉 ‘정음(正音)’으로 정한 원인과 리유 중의 하나가 혹여 ‘한자’의 시조(始祖)와 시원(始原)은 곧 은(殷)을 거슬러 ‘동이(東夷)’임을 감안하고 그것을 시사(示唆)하고자, 이미 갖고 있는 우리글(東夷漢字)에 올바른 표준소리 즉 ‘정음’ 표기를 창제 반포하여 우리 ‘동이한자’가 훗날 ‘언문한자’를 낳도록 함과 아울러 두 문자가 함께 후세에 길이길이 올바르게 전승(傳乘)토록 함이 아니었을까 무겁게, 대담하게 짐작해본다.

 

세종은 정음자를 음소 문자이면서도 낱글자로, 음절 단위로 네모지게 모아쓰도록 함으로써 음절 문자의 효과를 내도록 하였다. 

 

‘동이한자’의 한 음절과 ‘언문한자’ 한 음절이 일대일로, 1자 1음으로 대응되면서 한자와 언문이 서로 개입될 여지를 충분, 충실하게 창제한 것만 보아도 보통 예사치가 않아 참으로 전무고인(全無古人)이요 후무래자(後無來者)라 수백 년 수천 년을 멀리 보며 고안(高眼)으로 고안(考案)을 하였을 것이다. 

 

혹 필자의 추론(推論)이 립증된다면 ‘동이한자’라는 이름씨는 늦어도577년 전 그때에 이미 태어났어야하고 ‘언문한자’라는 낱말도 그 뒤를 이어 곧바로 세상을 봤어야 할 것이다.

 

훈민정음에 평성(平聲)은 점이 없고, 거성(去聲), 상성(上聲)과 입성(入聲)은 글자의 왼편에 한 점 또는 두 점을 찍는 ‘방점(傍點) 표기법’을 보더라도 당시 중세 우리글과 말의 각 음절은 우리 ‘동이한자’를 본으로 발음의 성조를 표시하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아래 훈민정음의 해례 표음 일부를 참고로 첨부한다.

左加一點하면 則去聲이고 一(일)은 하나라 去聲은 가장 높은 소리라 왼쪽에 한 점을 더하면 가장 높은 소리고;

二則上聲이고 二(이)는 둘이라 上聲은 처음이 낮고 끝이 높은 소리라 點(점)이 둘이면 상성이고;

無則平聲(무즉평성)이고 無는 없다는 것이라 平聲은 가장 낮은 소리라 點(점)이 없으면 평성이고;

入聲(입성)은 加點(가점)이 同而促急(동이촉급)하니라 入聲(입성)은 빨리 그치는 소리라 促急(촉급)은 빠르다는 것이라;

入聲(입성)은 點(점) 더함은 한가지이지만(같지만) 빠르니라.

 

이상 론거로 필자는 훈민정음 창제 시초의 문자는 어찌 봐도 한문자를 우리 정음(正音)으로 바로 읽도록 하는 음성기호였음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하기에 훈민정음이 창제되어 35년이 지나 두보의 시를 번역한 <두시언해(杜詩諺解)>와 <사서언해(四書諺解)>가 나오긴 하였지만 그때까지도 한문을 그대로 둔 채 언문으로 한문자에 사성(四聲)을 비롯한 방점과 ‘ㅿ’, ‘ㅇ’과 같은 조사(助詞)를 다는수준이였다.

 

그때까지만은 정음의 역할은 한자를 우리의 표준화된 소리로 읽고 언문으로 한자에 뜻 즉 훈(訓)을 달아서 새김의 작용을 하였을 것이라 사료된다.

 

하기에 우리는 훈민정음 용자례(用字例)에서 명사 "하늘" "땅" "아버지" "어머니", 형용사 "좋다" "즐겁다" "기쁘다"와 수사 "하나" "둘" "셋", 특히 인칭대명사 "너희' '자네' '누구'나 지시대명사 "이것" "무엇" "어디" 등등과 같은 토착어에 대한 발음 내지 해례(解例)나 례의(例義)는 찾아 보기 어려움에서 필자는  훈민정음의 정음(正音)은 정음(定音)과 정위(定位)를 한문자에 한(限)에서만이였다고 단언한다.

 

간혹 당시의 토착어 "슈룹"과 같은 단어의 출현은 자루가 굽은 부채의 일종으로 접고 펼칠 수 있는 한자어 "우산(雨傘)을 해례하기 위함일 뿐이다. 즉 일부 토착어의 출현은 오로지 한문자에 대한 해례나 례의를 위함일 뿐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정음(正音)’은 다만 말의 바른 소리로서 정음을 적으면 그 표기된 글자를 ‘언문(諺文)’ 또는 ‘한자’라고 일컫고, 언문 또는 한자를 우리 표준음으로 읽으면 그 소리를 ‘정음’ 또는 ‘언어(諺語)’라고 귀납하고자 한다.

 

하기에 그 후 최초의 언문 소설로서의 교산 허균(許筠, 1569~1618)의 <홍길동전>이 나오긴 하였지만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책자는 17세기 말이나 18세기 초의 이본(異本)에서 문자의 서사 역할을 겨우 보아낼 수 있었지만 당초 허균의 <홍길동전> 원본은 아직 발견된 바 없다.

 

거의 같은 시기 정철(鄭澈1536~1593)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되여 관동팔경을 노래한 <송강가사>가 있지만 원문은 온전한 것이 없고 17세기 말이나 18세기 초에 간행한 황주본을 보면 역시 한문자가 주를 이룬다.

 

松숑江강歌가辭사上샹

關관東동別별曲곡

江강湖호에病병이깁퍼

竹듁林님의누엇더니

關관東동八팔百백里리…

 

위에서 보면 훈민정음이 창제되어 이미 250여 년이 지났었건만 의연히 한자를 떠날 수 없을뿐더러 서열로 보면 한자를 항상 앞세우고 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듯이 오늘에 와서도 일부 한자어(언문한자어)는 우리에게 말이나 글 모두 같음에도 전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가 무더기로 많음에 정음(언문)이 생소할 당시로는 매자마다 분명하고 뚜렷한 뜻을 머금은 한자(동이한자)를 떠나서 글을 운운할 수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고로 진정 “말이 곧 글로 되게 하고 글을 읽으면 곧 우리가 말하는 것과 같은 세상”, 즉 모든 국민들이 한문자를 아주 떠나 순 우리 언문을 편히 쓰게 된 것은 훈민정음 창제 후 수백 년이 지나서 말과 글의 일치 ‘언문일치(言文一致)’를 주장한 유길준(兪吉濬, 1856~1914), <독립신문>을 발간한 서재필(徐載弼, 1864~1951), ‘국어연구회’를 조직한 주시경(周時經, 1876~1914)을 비롯한 국어학을 중흥(中興)하는데 선구(先驅)적 역할을 한 선생들의 활동시기부터였다고 할 수 있겠다.

 

흥미로운 건 언문 창제 당시 표의문자인 한자에 표음기호로 우리말의 바른 소리 즉 정음을 새기고 아울러 그 뜻을 적는다는 것이다.

 

문자(文字)와 음자(音字)의 유기적인 결합으로 하여 우리 민족은 비로소 일어 이문(一語二文)의 시대로 남다른 우세를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여 우리는 훗날 세상에서 가장 발달한 표의문자인 한자의 장점과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효률적인 표음문자인 언문-음소문자-정음자(正音字)를 갖고 있는 자랑스러운 문화민족으로 될 수 있었다.

 

세종대왕께 거듭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서문은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 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 多矣. 予, 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 便於日用耳”를 “나랏말미 中國에 달아 文字와로 서로 디 아니할쌔……",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아니할쌔……”와 같이 해례(解例)하고 있다.(--문단 표기에 나타나는 (), ()는 특수 문자이기에 컴퓨터나 핸드폰에 내장된 문자 버전에 따라 글 형태가 깨여지기도 하고 빈 공간이기도 하다)

 

당시 세종대왕이 ‘中國(중국)’을 ‘듕귁’이라 한 것을 혹자는 듕귁은 곧 그 당시의 국명 ‘중국’나라의 원음을 따서 적은 것인 양 곡해하는데, 천만에 이는 엄연히 당시의 주체적인 우리말식 표준음의 표기로 봐야 한다. (--1912년의 ‘중화민국’의 략칭 ‘중국’, 1949년의 ‘중화인민공화국’의 략칭 ‘중국’과 1443년 훈민정음 창제 때의 낱말로서의 ‘중국’의 구별 점은 별론)

 

중국어에는 명나라, 청나라 때나 지금이나 [ㄱ·ㅂ] 종성발음이 없으므로 만약 중국의 그때 당시 원음으로 했다면 ‘듕귁’이 아닌 [ㄱ] 받침 없는 ‘쭝꾸어’ 또는 ‘쭝꿔’로 적었을 것이다. 또한 당시의 중국 발음에 따르는 충실한 원음주의나 사대사상(事大思想)에 젖었더라면 ‘듕귁(중국)’이 아닌 당시 국명(國名)인 명(明)나라를 받들어 ‘밍궈(明國)’, ‘따미잉(大明)’, ‘다밍’이나 ‘따밍’으로 적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보아도 나라이름(국명)으로서의 ‘중국’은 훈민정음 반포 후 무려 466년이나 지나 청나라를 무너뜨린 ‘중화민국’을 략칭으로 ‘중국’이라고 부르게 된 때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고로 필자는 훈민정음에서의 ‘듕귁’은 ‘중국’이라는 나라명칭으로서가 아니라 ‘가운데에 있는’ 또는 ‘중원 나라에서 쓰는’ 문자나 언어의 발음으로 리해하며 아울러 세종대왕은 그 당시 명나라의 자칭 국명(自稱國名)이나 자칭 지명(自稱地名)에 관계없이 이미 중고(中古)·중세(中世)시대의 한자음으로 이미 굳어진 우리말의 올바른 표기와 발음 기준을 엄히 지키려고, 또한 지키고 있었음을 고증하고자 한다.

 

그러니 어찌 보면 중고·중세시대의 한자음에는 [ㄱ·ㅂ] 소리로 된 종성발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한 연고로 중세에 고착(固着)된 ‘듕귁’이라는 [ㄱ·ㅂ] 소리를 포함한 중세시대의 우리말의 8개의 종성발음을 이어온 15세기 우리 선조들의 뒤에 뒤를 이어 우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받침으로 [ㄱ·ㅂ] 소리는 물론 홑받침, 둘받침 쌍받침 등 종성발음으로서의 받침을 27개나 쓰고 있다. 

 

필자는 세종대왕께서는 훈민정음을 창제하실 때 당시 전과 많이 달라진 명나라의 한자음 또는 중원의 음 또는 락양의 음 아니면 또 어디의 음을 선택함에 있어서 무턱대고 따라간 것이 아니라 성삼문 등 학자들을 13번이나 중국 료동에 파견하여 음운학을 계통적으로 배우도록 하면서 우리에게 오래전에 벌써 정착되어 굳어진, 이미 우리의 한자어 발음으로 된 중고·중세시대의 한자음을 기준으로, 음성학 견지에서 우리 겨레의 언어풍격과 형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최종 표준음 즉 정음자(正音字)를 독음으로 새겨, 이를 바른 소리로 가르쳐 만백성들이 변치 말고 널리 쓸 것을 간곡히 기망(祈望·企望)했으리라 침량(斟量)하고 있다.

 

이는 오늘에 와서도 중세 한문자 어음 연구와 우리말 어음 변천사 내지 고금(古今)의 어휘 비교와 대조 연구에 귀중한 사료(史料)로 손색이 없다.

 

중국의 문자(한자) 발음은 전설적인 창힐문자에 이어 수천 년을 월력(越曆), 전천(轉遷)하여 명나라·청나라·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을 거치며 세월과 함께 계속 변하고 변하여 지금에 와서는 청나라 전의 그 원음의 형태와 형체를 분간키 어려울 정도에 이르렀다.

 

하지만 우리(고국-한국·조선)는 세종대왕의 중고·중세의 한자음에 뿌리를 둔 훈민정음이 있음으로 하여 수 세기 동안 중국 한자음의 끊임없는 변화에 관계없이 오로지 우리만의 음, 우리만의 겨레의 말로 고착된 국음을 지키며 우리식으로의 변천(變遷)을 거치면서 그 핵을 잘도 유존(遺存), 유전(遺傳)해왔다.(동이문자(東夷文字)의 원음(原音), 즉 동이어음(東夷語音)의 뿌리와 중고·중세 한자음과 상관 관련 여부는 별론)

 

만약 우리 한자음을 어느 한 시대의 자음(字音)을 기준으로 정하여 국음으로 고착, 정음(定音)하지 않고 다른 나라 조정의 의사나 다른 지역, 다른 민족의 남의 말의 변화에 따라 무턱대고 계속 끝도 없이 따라가며 변하고 또 변해간다면 그 말이야말로 이 또한 미무 속의 고마문령이 되여 그 어찌 자주(自主)적인 주체성과 정체성을 지닌 우리 겨레의 말이며 문명고국(文明古國)의 나라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처럼 우리 한자와 한자음은 본디 중고·중세의 한자와 한자음과 동근(同根)을 함께하면서 또한 훈민정음의 창제로 하여 우리만의 주체적인 정음(正音)을 갖도록 하고 있다.

 

한자의 훈과 음을 우리말로 표기하던 28개 표음(表音)문자로 이루어진 훈민정음이 불씨가 되고 뿌리가 되고 바탕이 되고 본이 되여 세종대왕의 훌륭한 후세들이 오늘에 와서 현재 우리글 자음 19개 모음 21개 도합 40개에 받침 27개로 키워 조선어로 한국어로 조선글로 한글로 발양광대하여 오늘의 찬란한 문화를 이루고 있다.

 

오늘날 우리글(언문)은 세계 문자 가운데서도 가장 독창적인 글자이며 가장 과학적인 문자이다.

 

글자를 구성하는 자음과 모음의 수가 적고 간편하여 배우기가 쉬우며, 그러면서도 1만 2천 768자의 소릿값을 가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자로서 세계에서 으뜸으로 가는, 인류 문자사에 그 유래를 찾아볼 수가 없는 가장 훌륭하고 우수한 문자로 표방 가칭되고 있다.(--우리글과 말에 영어의 'F', 'V', 'l' 등을 비롯한 몇몇 발음 표기가 없는 유감과 해결책은《우리 말글의 운명》하편 제9절 265쪽 참조)

 

5 한글의 유래

한글은 곧 正音설 시정 규회

다음 필자는 우리글이 태어나면서부터 ‘한글’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아님을 밝혀 한국에서의 낱말 ‘한글’ 새김을 시정(是正)할 것을 간권(諫勸)한다.

 

한국의 많은 사전들은 ‘한글’을 1446년 즉 조선 제4대 세종 28년의 훈민정음이라고 새기고 있는데 필자는 이를 오류(誤謬)로 된 오판(誤判)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여기서 잠시 한(韓)글의 유래를 밝혀본다.

 

많은 사람들은 ‘한글’의 옛 명칭은 '훈민정음'이었고 '훈민정음'의 현대 명칭은 바로 ‘한글(현재 조선에서는 조선글)’이라고 한다. 즉 ‘훈민정음이 곧 한글이고 한글은 곧 훈민정음’이라고 리해하면 될 것이라고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훈민정음이 생기면서부터 우리글과 함께 이름씨 ‘한글’이 나온 듯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한(韓)글의 유래를 밝히자면 한(韓)글과 함께 한(韓)국의 한(韓)자 돌림 력사를 돌이켜 거슬러보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대한민국(大韓民國)은 1948년 8월 15일에 완전 독립을 선언하면서부터였고 그 바로 전 광복 후 3년간은 유엔의 감시하에 총선거 과정이었다. 

 

또 그전의 1919년 4월부터 1945년까지는 중국 상해에서 조직 선포한 한국의 임시정부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시대였는데 략칭 임정(臨政)은 중국 중경(重慶)으로 옮겼다가 본국으로 입국해서 후에 해체되었다. 

 

력사를 더 거슬러 1897년 8월 16일, 조선왕조 말 고종 30년에 렬국의 승인을 얻어서 제정한 국호가 바로 대한제국(大韓帝國1897~1910)이였다.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나라 글을 한(韓)글로 했었지만 이 한글 이름은 주시경(周時經, 1876~1914)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신문관(新文館)에서 발행된 어린이 잡지「아이들 보기」(1913)의 끝에 횡서 제목으로 ‘한글’이라 한 것이 있다. 훈민정음으로부터 꼬박 467년이 지난 후 한글이라는 부름말(호칭)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글이라는 명칭이 일반화되기에는 조선어학회가 주동이 되여 훈민정음 반포 8주갑(周甲)이 되는 해에 음력으로 9월 29일을 반포 기념일로 정하고 그 이듬해인 1928년에는 ‘가갸날(1926년)’을 ‘한글날’로 고쳐 부르게 되면서부터이다.

 

‘한글’이란 말 자체의 뜻은 ‘한(韓)나라의 글’, ‘큰 글’, ‘세상에서 첫째가는 글’이란 뜻이다. 훈민정음으로부터 꼬박 482년이 지난 후 한글날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최근에 와서 일부 학자와 언론사에서는 금년을 한글 창제 577주년 즉 한글날 577돌이라고 법석 고아대고 아울러 일부에서는 조선어를 일컬어 한글이라고 억설로 우겨 대는데 참으로 소가 웃다 꾸레미 터질노릇이라 해야겠다. 

그렇다면 한글이라는 명칭이 나오기 전에 우리말을 무엇이라고 이름을 달았을까? 

 

한(韓)이라 하면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통합하여 삼한 시기가 있긴 하나 그땐 상고시대여서 오늘의 한(韓)글의 유래와는 관련이 없는 듯싶다.

 

기재를 보면 훈민정음으로부터 ‘한글’이라는 명칭이 나오기 전까지 ‘언문(諺文)’, ‘언서(諺書)’, ‘정음(正音)’, ‘반절(反切)’, ‘암클’, ‘아햇글’, ‘가갸글’, ‘국서(國書)’, ‘국문(國文)’, ‘조선글’ 등의 명칭으로 불리며 기나긴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한국의 대표적이고 권위적인 『국어대사전』(2006)에서는 낱말 ‘한글’(제4265쪽)의 주석을 다음과 같이 달고 있다.

한글 한국의 고유한 문자. 조선 제4대 세종(世宗) 28년(1446) 음력 9월 상한(上澣)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란 이름으로 국자(國字)로서 반포된 것으로, 처음에는 자모가 28자였으나……

 

위의 사전풀이를 보면 ① ‘한글’은 마치도 훈민정음과 함께 국자(國字)로 태어난 것 같기도 하고 ② ‘한글’이 유일하게 훈민정음이란 이름을 이어받은 것 같기도 하여 마치도 훈민정음과 ‘한글’ 사이에는 종래로 다른 이름씨가 없는 듯싶다.

하지만 방금전에 실례를 들었던 언문, 언서, 정음, 반절, 암글, 아햇글, 가갸글, 국서, 국문, 조선글과도 같은 우리글을 일컫는 명사가 훈민정음이 태어나서 ‘한글’이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까지 많고도 많았다.

 

한국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낱말 ‘한글’을 다음과 같이 새기고 있다

세종대왕이 우리말을 표기하기 위하여 창제한 훈민정음을 20세기 이후 달리 이르는 명칭이다.

 

그러나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필자는 세종대왕이 당초 고안(考案)하고 창제한 것은 [훈민정자(訓民正字)], 즉 바른 문자를 뜻한 [정자(正字)]가 아니고 [훈민정음(訓民正音)], 즉 바른 소리를 뜻한 [정음(正音)], [음자(音字)]였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자 한다.

 

훈민정음이란 글 그대로 보면 백성을 가르치는 [정음], 즉 올바른 소리란 뜻이다. 

오늘과 같은 문장으로서의 형태와 서사 역할은 후세들이 이루었다고 본다.

 

훈민정음에 평성(平聲)은 점이 없고, 거성(去聲), 상성(上聲)과 입성(入聲)은 글자의 왼편에 한 점 또는 두 점을 찍는 ‘방점(傍點) 표기법’을 보더라도 당시 중세 우리글과 말의 각 음절 발음에는 성조가 있었고 정음(正音)에 성조를 표시하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중세 우리말 발음의 네 가지 종류로 나눈 4성조(四聲調)설과 언문으로 한문에 방점과 ‘ㅿ’, ‘ㅇ’과 같은 부호로 조사(助詞)를 다는 실례, 즉 한문자에 우리 표준음을 표기하는 부호나 기호 역할 생략)

 

필자가 좀 더 형상적으로 직설적으로 풀이한다면 ‘한글’은 훈민정음의 몇 대 후손들 가운데의 하나, 즉20세기 이후 달리 이르는 명칭의 하나일 뿐이며 훈민정음은 창제 당시 그 자체와 그의 첫 세대 경우에는 정자(正字) 즉 문자(文字)의 역할보다는 음자(音字)로서의 한문자에 우리음 맞춤을, 정음(正音)으로서의 소리(音) 표기 역할이 위주였었다.(--《우리 말글의 운명》상편 제2절 제77쪽 참조)

 

이로부터 우리는 우리글이 생겨서부터 ‘한글’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고 훈민정음 창제 당초에는 지금의 한글•조선글마냥 한자를 떠나서 독립적인 서사 역할을 할 수 없었음을 거듭 피력한다.

 

외람되지만 흥미롭고 형상적으로 풀이하고 설명을 한다면 필자는 훈민정음의 '정음'을 '올챙이'로, 오늘의 '한글'과 '조선글'을 '개구리'로 비유하고자 한다. 

 

올챙이가 없이 개구리가 있을 수 없겠지만 '네발에 각각 물갈퀴가 있는 량서류(兩棲類)'의 개구리를 보고  '다리와 발이 없이 가는 꼬리를 흔들며 물속에서만 사는' 올챙이라고 해서는 아니되는 것과도 같은 리치이다.

'올챙이'를 보고 '개구리'라고 해서도 아니 되거니와 '개구리'를 보고 '올챙이'라고 해서도 아니될 것이다.  

 

다리와 발이 없이 물에서만 사는 올챙이가 자라서 네발 가진 량서류로서의 개구리로 되는 인과관계 즉 한 현상(올챙이)은 다른 현상의 원인이 되고, 그 다른 현상(개구리)은 먼저 현상의 결과가 되는 관계를 이루지만 그렇다고 하여 번연히 같지 않은(전혀 아주 다른) 주체나 객체의 원인체와 결과체를 동일시하여 동일 지칭, 동일 호명으로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음가(音價)를 표기하는 음성기호(音聲記號)만으로서의 '정음'을 서사(書史)적 문자(文字)역할을 감당하는 '한글'로 또는 '조선글'로 동일시 해서는 않된다는 것이다.

 

고로 훈민'정음'이 곧 ‘한글’이고 ‘한글’이 곧 훈민'정음'이 아님을 거듭 추리할 수있다.(본문 상편 [훈민정음 재조명]을 거듭 참조하기 바람)

 

‘한글’ 명칭(1913년)의 력사는 이제 고작 110년 정도이지만 우리 한자음으로 옮긴 언문한자는 1446년부터 우리글을 적기 시작해서는 여러가지 명으로 오늘까지 577년이요, 우리글 정음자가 생기기 전에는 우리 음으로 옮길 수 있는 우리 한자는 필자가 작명한 동이한자로 우리 문자 력사에서 무려 수 천여년의 역할을 감당해 왔다고 해야겠다. 

 

더불어 "고조선(기원전 2333년~기원전 108년 무렵)"과 "조선(1392년~1897년 무렵)"과 오늘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등등 반만년 력대 나라 이름 "조선"을 따서 우리 배달겨레의 유구한 고유 문자"조선문자" 략칭으로 "조선어"를 "한국어"로 "한글"로 취급함은 어불성설이 아니라 마치도 증조부더러 증손자를 배알하라는 격이로다.

 

각설하고 "훈민정음"이 창제된 시대가 바로 리씨조선이였으니 오히려 본말전도를 바로잡아 "한국어"나 "한어" "한글"을 "조선어" 범주에 넣어야 할 것이다. 

 

6 통일에 앞서 우리 말글명과

우리 배달겨레 민족명칭 합일 시급

말이 난 김에 한마디 더 한다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나라명이 '미국'이라고 해서 국어에 나라명을 붙혀 반드시 '미국어'라고 해야함이 아니고 다만 '영어'라고 할 뿐이며, 캐나다 역시 나라명을 붙혀 '캐나다어'라고 함이 아니고 '영어'와 '프랑스어'라고 할 뿐이다. 즉 영어를 통용어로 국어로 지정이 되였다면 나라와 지역간의 발음의 차이와 조어(造語)의 다름은 있더라도 문자표기로만은 분명 영문이라면 모두 다 '영어'로 명명하고 나라가 서로 다르다고 하여 기어코 그 나라 국어에 국명을 붙혀서 '미국영어', '미국영문' 또는 '미영어', '미영문', '캐나다영어', '캐영문'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고 통례이다.

 

한국도 나라명이 '한국'이라고 하여 국명을 붙혀 반드시 나라 '한(韓)'에다 '글'을 합성하여 꼭 '한글'이여야 한다는 론리는 정당성이 없어 지당함이 못된다.

 

독일이나 베트남도 한때 분단이 되였다고 하여 말글명까지도 제가끔 동서와 남북으로 별도로 기어코 별칭을 지어 마구 쓰지는 않았었다.

 

본문 서론에서 이미 언급했었지만 우리 겨레들은 일찍 "고조선(기원전 2333년~기원전 108년 무렵)"과 "조선(1392년~1897년 무렵)"과 오늘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등등 반만년의 력대 나라 이름 "조선"을 따서 우리 겨레의 고유 문자 그대로 "조선문자"를 "조선글"로 일컫고 있었다는 철같은 사실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위의 두 자료는 한국의《표준국어대사전》의 올림말 [고조선]과 [조선]의 주석

 

단일민족인 우리 배달겨레는 반만년 [조선(朝鮮)]이라는 국호 국명의 대를 이어 이제 다시 반만년을 이어가야 할 것이련만, 그리하여 으레 말도 하나로 글도 하나로 얼도 하나로여야 할 터인데, 글쎄 당분간 분단이 되였다고 하여 머나 먼 옛날로부터 오래오래 익히 써오던; 민족, 동포, 겨레의 령혼이며 기본 속성과 바탕인 문화의 핵과도 같은 언어가 국토분단으로하여 임의로 동강이 나거나 서로가 제가끔이라면 통일 념원은 빛 좋은 개살구 뿐일 것이리다.

 

더구나 민족의 명칭 호칭마저도 제가끔이여서 환장을 넘어 기절초풍으로 세상을 웃기고 있다.

남녘에서는 스스로를 [한민족] 략칭 [한족(韓族)]이라 일컫고, 북녘에서는 스스로를 [조선인] [조선사람] [조선민족] 략칭으로 [조선족(朝鮮族)]이라고 일컫고 있지만 사전의 주석새김을 보면 남과 북 모두 다 같은 뿌리에 같은 줄기로 동근생(同根生)으로서 배달겨레임이 틀림 없다(오늘의 남북 시국을 '칠보시'-'煮豆燃豆萁 콩깍지로 불을 때니 豆在釜中泣 가마솥의 콩이 우네 本是同根生 한 뿌리에 태여나서 相煎何太急 상잔함이 심하도다-로 형용해 본다).

 

나라는 당분간 달라도 예로부터 같은 조상을 섬기며 같은 말을 하고 같은 글을 쓰며 같은 혈친의 피가 섞여있다면 으레 같은 민족 같은 겨레로서 말과 글 내지는 민족의 명칭이나 호칭도 다 같은 하나로 통일되여야 할 것인데 가령 재중동포, 재일동포, 재미동포들이 고국의 남녘에 가면 [한족]으로서 [한어]를 쓰고, 고국의 북녘에 가면 [조선족]으로서 [조선어, 조선말]을 써야 한다.

 

당분간 나라가 다른 것만도 서럽고 억울한데 민족명까지, 말글명까지도 다르게 불리워야 하니 분통하기 그지없다.

한국의《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른 [한족]과 [한어] 새김

조선의《조선말대사전》에 오른 [조선족]과 [조선말] 새김

 

통일을 갈망한다면서 어이하여 동족을 서로 명칭이 다른 민족으로, 동족의 말글명을 다른 지칭으로 일컫는, 인위적으로 배타적이고 리기적인 별칭을 택하는 그 본의(本義)가 무엇인지, 도대체 무엇을 꾀하려는지 추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유태인을 포함하여 세계 모든 민족들은 세상 어디에 가더라도 자기 해당 민족과 언어의 호칭에 변함이 없이 자랑스레 일컫고 있다.

 

같은 뿌리 같은 핏줄 같은 동포임에도 민족 호칭과 지칭어 내지 말글명(名)이 서로 많이 다름은 아마도 세상에 우리 배달겨레 하나 뿐이 아닌가 하노라.

 

세상이 백번 천번 바뀌고 나라가 열둘로 깨지고 빠개져도 세월에 상관없이 나라명에 관계없이 같은 겨레 같은 동포라면 민족은 물론 민족의 명칭과 말글의 명칭도 절대로 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제각기 국가의 명분을 떠나 장차 통일을 대비해서라도 남과 북은 하나의 같은 민족 지칭으로, 말과 글도 하나의 똑같은 지칭어로 통일이 되여야 할 것이다.(겨레, 동포, 민족의 속성과 개념 및 정의와 구별 등은 생략)

 

위의 사전에서의 [고조선]과 [조선]의 올림말 새김과도 같이 수천년 전, 예로부터 우리 겨레의 나라 [조선]이 있음으로 하여 우리 겨레명칭은 [조선인] 또는 [조선족]이며 아울러 고유의 [조선말] [조선글]이 있었음에도 오늘날에 와서 별도로 '한족', 그리고 '한국의 글'이라는 구실로 '한국어' 또는 '한글' '한어'라고 별칭을 지어부르니 뒤따라 동의어가 무리로 줄지어 '조선옷'이 '한복'으로, '조선집'이 '한옥'으로, '조선종이'가 '한지'로, '조선김치'가 '한국김치'로, '조선랭면'이 '한국냉명'으로, '조선화'가 '한국화'로 '조선기와'가 '한와'로 둔갑되여 우리 말글을 들볶고 괴롭히고 있다.

 

우리 자음과 모음이 같은 정음자로 이루어진 어휘군(語彙群)이라면 위와 같이 구태여 완전 동의어와 불완전 동의어를 인위적으로 마구 지어올려 말글살이의 혼란 뿐이 아니라 겨레 문화의 일체감과 동질성 내지 정체성에 혼란을 야기 시키지 말았어야 했을 것이다.

 

이제 자칫 '하늘'이며 '땅', '구름' '바람' '논' '밭' '개'나 '돼지'까지도 국명을 달지 않을까 걱정이다. 하긴 '조선소'가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소'라는 뜻으로 '한우(韓牛)'로 세상 인기를 끌고 '한방'과 '한의', '한약'이 거리마다 골목마다 차고 넘치고 있음에...

 

그러지 않아도 이른바 망할 '두음법칙' 악법과 악례, 악습으로 동음이의어가 넘쳐나는데 동의어까지 마구 범람을 하게 되다니...(-- 한국의 '두음법칙'의 유래, 이른바 '두음'의 '법칙' 내지 '두음법칙'; '외래어 표기법'의 폐단과 그 피해 및 참상을 조목조목 파헤친 실례와 척결 대책 등은 필자의 편저《우리 말글의 운명》하편 제10절과 제13절 제14절 참조)

장차 통일을 념두에 두었더라면 결코 섣불리 그리하지는 말았어야 할 것이다.

 

분단되였던 동서독일, 남북베트남, 지금의 중국대륙과 대만을 비롯하여 그들의 말과 글 내지 어휘들도 우리 만큼 분단의 아픔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통일을 위해서라도 수천년간에 굳어진 우리 말글 '조선말', '조선글', '조선어'는 물론이거니와 '조선족' 호칭이 버젓이 있음에 그것을 굳게 지킬 대신 별도로 기어코 별칭인 '한국어'와 '한글', '한족'이라는 낱말을 고안해 낼 까닭이 무엇인지 못내 궁금하다.

 

이른바 '한족(韓族)'명과 '한국어'명은 세상에 태여난지 이제 겨우 75년정도로, '한글'명은 고작 백여년밖에 안되지만; '조선인'과 '조선말'은 수천년 전의 고조선에서부터 리씨조선 오백여년을 거쳐 오늘에까지 반만년을 살아왔다. 

 

비록 '한국어•한글'이 풋내기 햇내기이긴하나 본문 서론에서 이미 실례를 든 바와 같이 너무 설치며 기괴망측하게도 '韩古尔'로 둔갑을 하며 세상을 웃기고 있다. 이제 '韩古尔'을 본으로 뒤따라 '대한민국'이며 '태극기'며 '한민족•한족', '삼천리금수강산'이 줄줄이 작태와 추태를 보이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2023년 6월 11일자로 필자의 서명으로 발표한《한심한 파국추태》탈문화 현상 참조).

 

통일의 대업을 위해 동의어인 [조선족]과 [한족] 가운데에서 반드시 하나로 명사 술어를 선택하여 거취(去取)를 정한다면, 또한 동의어인 [조선어]와 [한국어] 가운데에서 기어이 하나로 통합 합일하여 거취를 정한다면 유구한 전통의 계승, 전승(傳承)과 그 존립(存立)을 위하여 당연히 전자(前者)를 취함은 천리(天理)와도 같아서 천언만어(千言萬語)가 오히려 무색하고 무기력하고 구구하리다.

 

이왕 오랜 세월 억조창생이 익히 써온 우리 겨레 낱말이 있음에도 동의어로 새삼스레 이른바 '한글'과 '한옥', '한지', '한와', '한우'와 '한민족', '한족'과 같은 와어(訛語)들의 출현과 람용 내지 범람의 궁극적인 책임은 분단으로 인한 통일에 대한 막연(漠然)함과 실의(失意)에 있다고 봐야겠다. 

 

아니면 분단을 기정사실화로 여겨 너는 너 대로 나는 나 대로를 고집하여 영구 분단을 묵인하거나 수긍함의 구체적인 발단과 발로의 표현이며 그에 따른, 또는 그에 대비한 약은 수단과 제 딴의 대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워낙 세기적인 비극과 민족의 파멸을 대가로 한 분단 분쟁 분렬 대립의 잉태물로서 태여나지 말았어야 할 것이였지만 참담한 력사가 낳은 오늘의 참상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이 미여짐을 또 어찌할 수 없는 참황; 그러하오나 오늘에 와서 어찌 그냥 렬강들만을 탓하고 조상들만을 나무라랴; 잘나도 못나도, 고우나 미우나, 잘해도 못해도 모두 력사가 남긴 유물이요 유산이며 문화재임을 직시(直視) 포용하고 적서(嫡庶)와 반상(班常)만을 끝없이 따지고 구별하느니 아예 이제 분발하여 앞으로의 제반 과업을 풀어나아가야 할 당사자이며 주인공들인 우리고 보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가꾸어 갈 막중한 사명을 기꺼이 짊어지고 차라리 "조선글"이든 "언문"이든 "정음" "반절"이든 "가갸글"이나 "한어" "한글"이든, 더구나 우리가 오래전부터 우리의 것으로 익히 써오던, 선택되고 정착된 우리 한자음으로 옮긴 "한자"도 모두 우리 배달겨레의 글, 하다못해 배다른 글이라고라도 다독여야 할 것이며; "조선인"이든 "조선민족"이든 "조선족"이든, "한인"이든 "한국인"이든 "한민족"이든 "한족"이든 또는 "고려인"이든 모두 다 우리 같은 토템 같은 조상을 모신 한 뿌리의 넌출과 덩굴의 순이며 꽃이고 열매로서 종계와 친계의 정당하고 바른 명분을 세워주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장차 통일을 대비하여 그 많은 제반 동의어들을 분류별로 나누어 일컫는 대상이나 표상에 따라 하나로의 호칭어 부름말로 통합 합일(合一)을 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7 자질문자 개념과

자소의 역할로 두음법칙 척결

훈민정음은 민족적 자주 의식과 민주적 정신의 발로이며 또한 과학적 정신에 립각한 산물이다. 

우리글 정음자가 만들어짐으로써 세종대왕의 훌륭한 후세들의 불굴의 신념과 투지, 끈질긴 노력으로 마침내 민족의 정신과 뜻을 담을 수 있는 진정한 그릇을 가지게 되였고 오늘에 와서 현재 조선어로•한국어로, 조선글로•한글로 발양광대(發揚光大)하여 오늘의 찬란한 문화를 이루고 있다. 

 

글은 문명의 근본이요, 문명한 민족이 되자면 글이 없는 서러움과 그 수치를 씻어야 한다는 세종대왕의 공은 천추에 길이 빛날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 말이든지 표기할 수 있고 더구나 오늘날 인터넷 시대에 건반(키보드)에 의한 가장 적은 타수로 오타률이 가장 적게 편히 마음껏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글 정음자이다.

 

우리글 정음자와 영어로 기계화, 문서화를 시험해본 결과 우리글이 영어보다 7배가 더 빠르다는 결론이 나왔다. 특히 휴대전화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오늘날, 엄지 손가락에 의한 정보통신(IT·SW)산업과 문화의 현장에서 우리글을 당할 문자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21세기 오늘에 와서 20세기 때 20년간 했던 일을 2년에 손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우리 발음에 힘든 [F] 소리 현상(순치성(脣齒聲)의 주음부호 [ㄈ]와 한어(漢語) 병음자모 [f]와 웨이드식 로마자 [F] 발음이 우리말 발음에 없는 현상, 영어의 'V', 'l' 등을 비롯한 몇몇 발음 표기가 없는 유감과 해결책은《우리 말글의 운명》하편 제245쪽, 265쪽 참조)

 

학계 일각에서는 우리글을 단순한 음소문자뿐이 아닌 ‘자질문자(heaturl writingsystem)’라는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 거기에 속하는 세계 가장 발달된 유일한 문자로 봐야 한다는 설도 있다.

 

이로하여 우리글은 천부적으로 표의문자+표음문자+자질문자를 고루 갖춘 문화민족임에 우리 겨레 모두들은 무한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우리글은 상형설에 의한 표음문자이면서 또한 음소로 결합된, 자소를 기본 핵으로 형성된 ‘자질문자'임을 거듭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잠시 자질문자의 개념을 보자.

 

자질문자는 하나의 문자기호가 하나의 음성적 특징 즉, ‘자질(資質)’을 나타내는 문자 체계이다. 

자질문자에서는 자질이 독자적인 자소(字素) 기능을 하게 된다.

자질문자가 모이면 그보다 상위 단계의 언어 요소인 음소를 형성하게 된다. 

고로 음소는 자질문자에 의해 형성되고 자질문자에 의해 좌우지 된다. 

 

자질문자의 기본인 자소가 흔들리거나 자소가 변형되고 지어는 자소가 소실된다면 해당 문자의 기반(基盤)과 기근(基根)이 무너진다.

 

 

 

성스럽고 거룩하신 세종대왕께서 후세에 물려준 소중한 무형의 문화자산에 숙연히 머리가 숙여진다.

 

실은 최근에 필자는 자음 자소의 [ㅁ]자도 엄히 따져보면 [ㄱ]과 [ㄴ]의 결합자로서, [ㄴ]자에 한 획을 더하여 [ㄷ]이 되듯이 또 [ㅅ]자에 한 획을 더하여 [ㅈ]이 되듯이 [ㅁ]자도 응당히는 자소 [ㄱ] 아래 자소 [ㄴ]의 자질결합으로 봐야 할 것이고 그래서 필자의 새로운 견해는 우리 언문의 자음자소는 5개가 아니라 [ㄱ] [ㄴ] [ㅅ] [ㅇ] 4개라는 것이며 모음자소 3개를 합하면 도합 7개 자소라는 것으로 단정한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중요하고 중대한 연구과제이기에 차후 세계 어학계의 인증에 맡기고 본문에서는 이만 생략한다.

본론은 해내외 우리 겨레의 모든 소학교(초등학교•우리 말글 학원•세종학교•세계각국 대학의 한국어•조선어학부)들에서 사칙(四則)학습을 하듯이 반드시 온갖 정성과 창의를 다하여 기초교육에서부터 착수하고 숙지하고 가르치고 보급해야 할  너무나 절박하고 중요한 신개념이기에 여기서 잠시 자소를 기본 핵으로 형성 결합된 우리글이 자질문자라는 개념을 거듭 간추려 널리 홍보하고자 한다.

 

이 또한 본문 착상과 기고(起稿)의 창의 창발 초심이기도 하다.

자질문자란 하나의 문자기호가 하나의 음성적 특징인 자질(資質)을 나타내는 문자 체계를 뜻한다.

자질문자에서는 자질이 독자적인 자소(字素)기능을 하게 된다.

자질문자가 모이면 그보다 상위 단계의 언어 요소인 음소를 형성하게 된다.

고로 음소는 자질문자에 의해 형성되고 자질문자에 의해좌우지 된다.

 

자질문자의 기본인 자소가 흔들리거나 자소가 변형되고 지어는 자소가 소실된다면 해당 문자표기 형태의 옹근 기반이 모두 무너져 버린다.

 

이어 사전에서의 낱말 자질과 자질문자 및 자소의 새김을 들여다 본다.

자질(資質)  

① 타고 난 성품이나 소질, ② 자기가 종사하는 사업에 관한 능력이나 실력의 정도, ③ 체질.--조선말 사전(6권사전)

① 타고난 성품이나 소질.  ② 어떤 분야의 일에 대한 능력이나 실력의 정도. ③ 타고난 체질.--표준국어대사전

① 천부적으로 타고난 성질과 품격과 바탕, ② 자기가 맡아 하는 일에 관한 실력의 정도. --국어대사전(이응백 감수)

 

자질문자(資質文字)

같은 부류를 이루고 있는 분절들음들 사이의 음성학적 차이를 체계적으로 자모에 반영한 문자.--표준국어대사전

실례로 'ㄱ, ㅋ, ㄲ'은 연구개 파렬음이라는 같은 부류인데, 기본 글자로부터 격음은 가획으로 경음은 각자 병서로 표현된다. 음소 문자의 일종이며, 전 세계적으로 우리글이 대표적이다.

 

자소(字素) 

한 언어의 문자 체계에서 음소를 표시하는 최소의 변별적 단위로서의 문자 혹은 문자 결합.--표준국어대사전

아래 필자는 자질문자의 자소 생성과 병합 조합 결합 원리 및 역할로 이른바 한국의 현행 '두음법칙', 조만간에 폐지해야 할 '두음법칙' 척결 대책을 강구해 본다.(--'두음법칙'의 유래, 이른바 '두음'의 '법칙' 내지 '두음법칙'의 폐단과 그 피해 및 참상을 조목조목 파헤친 실례 등은《우리 말글의 운명》하편 제10절 참조)

 

필자는 이른바 '두음법칙' 추종자들은 일찍 관련법 제정 당시 발음현상을 두고 다만 음소(音素)의 음운변화현상만 강조하고 자질문자인 우리 조선어‧한글인 언문(諺文)에서는 자질이 독자적인 자소기능을 하게 됨을 전혀 무시를 하였거나 자질문자의 기본 개념을 아예 모르고 있은 모양이라고 본다.

 

필자는 음소에 의한 음운변화현상은 운소(韻素)까지 포함을 하여 어디까지나 발성과 발음 차원으로서 얼마든지 리해되고 널리 허용되는 범주이겠지만 이러한 '발음습관' 과 ‘두음현상'을 철자표기법에까지 마구 적용하고 강요한다면 문자 표기구조와 어휘체계 전체의 혼란을 크게 야기시킬 뿐이라고 보고있다.

 

아래 "음소(音素)에 의한 음운변화 현상", 이를테면 "'두음법칙'에 따른 표기"와 필자가 강력히 주장하는 "자소(字素)를 지켜야 할 표기 원칙"으로 음소와 자소의 불일치형을 모아본다.

 

  音素에 의한 음운 변화 현상

字素를 지켜야 할 표기 원칙

여자(女子) 요소(尿素) 여행(旅行)

녀자, 녀인, 뇨소, 려행, 려객

낭군(郎君) 노인(老人) 노천(露天)

랑군, 로인, 로년, 로천, 로변

용산(龍山) 유음(流音) 양심(良心)

룡산, 류음, 류행, 량심, 량민

 

… 음소와  자소의  일치 형  실례는  생략함… 본 도표는 모니터의 字體大小를 맞춤하게 조설하여 열독하시면 화면이 보다 효과적이다

 

우리는 위의 표에서 한국 현행 '두음법칙'규정에 따라 '녀자', '뇨소'의 자소 [ㄴ]이 무시되고 소실되여 [ㅇ]으로 즉 '여자'. '요소' 등으로 변화 표기되였고 '룡산'. '류음'. ‘량심'에서 [ㄹ]이 무시되고 소실되여 '용산'. '유음', '양심'으로 즉 [ㄹ]이 [ㅇ]으로 변화 변이(變異)되어 표기 되였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두음법칙'을 고집하는 이들은 싹쓸이 하듯이 [ㄹ] 원음을 죄다 깡그리 모조리 잡아버렸는데 어이하여 유독 자음 [ㄹ]을 지칭하는 두음 [ㄹ]로서의 낱말 ‘리을'은 상투적인 '이을'로나 '니을'로 몰아붙이지 않았을까.  [ㄹ]의 씨종자라고 여겨서일까 아니면 [ㄹ]이 한자어가 아니기에, 또 아니면 먼 훗날 세종대왕 볼 면목이 없을까봐서일까.

 

자질문자의 개념에 따르면 자질문자에 의해 형성되고 자질문자에 의해 좌우지 되여야 할 음소임에도 본말도직(本末倒置)식으로 전도된 방식으로 먼저 '두음법칙'을 우선(優先)으로 제정하고 또한 그 '두음'이라는 음소에 의해 [ㄹ]을 포함한 자질문자 표기가 임의로 마구 전이 해체되고 변탈 변이되고 소실된다면 ‘훈민정음'의 해례본 즉 먼저 문자를 창제하고 그 문자를 기준으로 해당된 음을 달아주는 기본 원리와 원칙 및 절차를 무시하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훈민정음의 해례문 [ㄹ]발음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ㄹ.半舌音.如閭字初發聲(ㄹ.반설음. 여려자초발성)ㄹ은 반혓소리니,閭(려)자 첫소리와 같다.…"훈민정음”해례본 참조…

 

옥편에도 한문자 [閭]자의 훈독과 음독은 [마을 려]로 중세문헌을 보면 고유어의 어두에 류음 [ㄹ]과 구개음화 된 [ㄴ]이 출현한 실례가 많은데;

그 례로:

러울("훈민정음해례”용자례) 

락시(“신증류합”상, 15)

럼나다(“악장가사”서경)

랄효여(“벅역소학”八, 14)

녀름(“석보상절”九, 34)

니(“역어류해”하, 10)

녜다(“두시언해”초,二十三, 19)

녑(“훈민정음해례”합자해)

... ...

흔히 인류력사상에 문자보다도 언어가 먼저였겠지만 일단 문자가 상대적으로 고착이 된 시점에서는 말소리 즉 음소에 의해 문자가 좌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문자에 의해 음소가 결정되고 문자에 따라야 한다는 보편적 상식은 생략하고 아래 본격적으로 자질문자의 자질결합으로 형성된 문자구조 [ㄹ]자 하나만을 정밀 해체 해부하여 이른바 '두음법칙'의 부당성을 파헤쳐 진상규명을 하고자 한다.

       

자음 체계

모   음    체   계    생   략

자     소

    자질 병합 조합 결합

音 素 로 서 의 

' 리 을’  발  음  을

 [  ㄹ ]  로  표기한다

字   素

획+

   구 성

          생          성       자

[  ㄹ  ]  의

 형 성 과 정

       ㄱ + ㄷ

[  ㄴ  ]         ⇒           [  ㄷ    ] 

⇒      [    ㄷ  +  ㄱ    ]    

        ⇄   

    [  ㄱ  +  ㄷ    ]  

             ⇓

    [  ㄱ  ]  이   [ ㄷ ]   위  에

   얹  혀    [ ㄹ ]

‘리을'은 순수한 字素는 아니나 자질결합으로

[ㄹ]로 생성됨

ㄷ  + ㄱ

ㅂㅍ

자소    

+

자소

구    조

결    합

자질결합으로 형성된 

자질문자 [ㄹ]은 

음소와 관계없이

철자 형태를 지켜야할 것

    ㅈㅊ

 ㆆㅎ

… 자음자소  4개설 적용하지 않았음…

-- 본 도표는 모니터의 字體大小를 맞춤하게 조설하여 열독하시면 화면이 보다 효과적이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항은 자소 [ㄴ]에 한 획을 더 가첨하여야만 [ㄷ]이 되고 또 [ㄷ]이 자소 [ㄱ]을 업어야만 [ㄹ]을 얻게 되였음인데 '리을'이라는 'ㄹ' 음소는 [ㄴ]과 [ㄱ]두 자소에 [ㄷ]까지 결합한 삼위일체(三位一體)로 된 [ㄹ]에 대한 자질문자 지칭인 것이다.

 

종합적이고 복합적인 자질결합을 거쳐서 마침내 생성된 [ㄹ]이다.(--혀의 모양을 본뜬 상형설 창제원리는 생략)

 

필자는 자소를 기본 핵으로 한 자질문자의 자질 병합과 결합으로 볼 수 있는 자질체계는 어쩌면 유전자 본체를 지키며 유전 정보가 들어 있는 DNA의 여러 가지 복잡하고 종합적인 복제와도 류사한 또는 어쩌면 염색체고리나 염색체 사슬을 구성하는 염색체 결합과도 류사하다는 류추(類推)를 시도하려 했으나 이 또한 새롭고 중대한 연구과제이기에 훗날 생물공학자와 손잡고 완성하고자 본문에서는 이만 생략하련다.

 

자소를 근본으로 기본으로 한 자질문자의 결합구조를 지켜야 할 터인데 아니고 문자의 근원을 떠난 문자결구의 자소와 원소(元素)뿌리와 형태를 떠나서 발음대로 적고 발음이 변하는 대로 따라가며 적고 또한 딸려가며 적는 이른바 '두음법칙' 표기로 초래된 우리 말글의 돌연변이 현상은 다만 잡종과도 같은 사이비한 신종의 와자(譌字)만을 낳고 또 낳게 되여 민족문화에 재앙만 불러올 뿐이다.

 

필자는 당초 1933년 ‘두음(頭音)’이라는 설이 군림할 때 ‘왜어(倭語)’나 ‘왜문(倭文)’ 숭상에 물젖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두음’을 ‘표기법칙’으로서가 아니라 다만 발음의 ‘현상’ 정도로 취급했더라면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통절히 거듭 통탄한다.

 

당시 일본의 ‘[ㄹ] 소리 버릇’을 배우고 그것을 조금 바꿔서 두음법칙이라고 만들어 공을 청하고 록봉을 받았다는 일설도 무근한 것은 아닐 것이다.

 

수천 년간 [ㄴ], [ㄹ]소리가 우리말 단어의 첫소리로 발음이 잘 되었고(중세문헌 고유어의 어두에 류음 [ㄹ]과 구개음화 된 [ㄴ]이 출현되어 있은 실례는 생략)그 연고로 훈민정음에서도 두음(頭音)으로서의 [ㄴ], [ㄹ] 발음 방식과 표기 기준을 엄연하게 제정을 하여 우리 언어, 언문으로도 수백 년을 기꺼이 너무 잘 써 오다가 일제강점기에 일본말의 ‘두음현상’을 본받아 조선어학회에서 한술 더 떠서 ‘발음현상’을 ‘표기법칙’ 즉 ‘두음법칙(頭音法則)’으로 제출한 것이라니 혹여 그 여운이 오늘날에도 가셔지지 않고 그 흔적이 아직도 그냥 우리 말글을 해치고 있다고 해야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하여 수백 수천 년 무난히 잘 써오던 [ㄴ], [ㄹ] 발음이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와서야 홀연 문제시되고 또한 고국의 남반부에서만 그것을 고이 이어받아 1988년 1월 19일 ‘한글맞춤법’의 제3장 제5절에 전문 ‘두음법칙’이라는 조목을 두게 되었는가.

 

더구나 어이하여 반도 남측의 한국인들만 인체 생리학적으로 [ㄹ] 소리를 내기가 너무나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자국민들에게 [ㄹ]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강요하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러한 실태와 행태를 그대로 묵과하거나 버려둔다면 이제 머잖아 [ㄹ]이 [ㄴ]을 거쳐 [ㅇ]으로 가는 행각이 이루어질 것이다.

 

례하면 [ㄹ] → [ㄴ] → [ㅇ] → [--]식으로 ‘로조(勞組)’의 두음 [ㄹ]이 [ㄴ]으로 밀려 ‘노조(怒潮)’로, 다음 ‘녀자’의 두음 [ㄴ]이 [ㅇ]으로 쫓겨 ‘여자’로 되듯이 ‘노조’가 다시 ‘오조(誤造,惡阻)’로 될 것이고, ‘로동’이 ‘노동’을 거쳐 ‘오동’으로 되지 않으리라 뉘라서 장담하랴.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개울물이 가래로도 막지 못할 봇물로 터져 홍수로 번지어지고 있다.

법칙이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규범을 뜻한다. 

 

아름다운 우리말과 우리글을 무리로 말살하는 너무나도 무서운 법을 제정한 것이다.

 

두음법칙의 구체 요구와 실례는 현행 ‘한글맞춤법’의 제3장 제5절의 제10항, 제11항, 제12항에 상세히 조목조목으로 규정되어 있기에 필자는 여기서 더 부언하지 않겠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라면 두음법칙은 아무 상황에서나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다 한자, 한자어와 한자음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두음법칙이 발음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규칙이라면 왜 우리 한자어에만 적용 되는지 알 수 없다.

외래어인 라듐, 라디오(라지오), 라마교, 라이터, 락슈미, 란체라, 래브라도, 랭스, 랴잔, 런던, 로고, 루이스, 류리크, 류머티즘, 르네상스, 리겔, 리구리아, 리자이나와 같은 단어들과 최근 류행하는 중국어 표기 중에서 랴오닝, 랴오중카이, 란저우, 란창강, 뤄부포, 뤄양, 뤼다와 같은 [ㄹ]을 앞세운 소리는 발음하기 쉽고, 라체(裸体), 락뢰(落雷), 락상(落傷), 란시(亂視), 래방(來訪), 랭면(冷麪), 리익(利益), 류행(流行) 등의 라, 락, 래, 랭, 리, 류…… 등의 우리말 발음만은 그렇게 어려운가?

 

정말 [ㄹ] 소리가 그토록 발음하기 어려워 두음법칙을 제정하였다면 토착어와 한자어, 외래어 등에도 모두 똑같이 같은 법칙을 적용해야 마땅할 것이 아닌가.

 

같은 한자일 경우 그 자(字)가 분명히 [ㄹ] 발음으로 시작을 함에도 외래어로 취급 될 때에는 [ㄹ] 표기와 발음이 허락되고 그 동일한 한자가 한자어로 될 때에는 영락없이 두음법칙의 매를 맞는다.

 

어찌 보면 한국의 두음법칙도 사대주의(事大主義)에 물들어 왜말과 외어에는 기죽어 범접을 못하나 본다.

필자는 아직 ‘두음’이란 단어마저도 찾아 볼 수 없는 조선 과학, 백과사전출판사에서 펴낸 『현대조선말사전』의 낱말과 한국어사전편찬위원회에서 펴낸 『국어대사전』의 표준어와의 어휘 비교에서 같은 뜻(내용)에 다른 철자로 된 단어 즉 동의어를 무려 천여 개 넘게 가려냈다.

 

필자는 어렵고 힘든 발음은 버리고 대신 쉬운 다른 발음을 사용하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며 따라서 첫째, 둘째, 셋째 방법뿐만 아니라 더 많은 방법도 다 좋다고 본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발음의 계선’ 안에서만 허용되어 두음법칙이 표기에까지가 아닌 ‘발음법’으로만 취급되었더라면, 즉 철자(綴字)까지 고쳐서 맞춤법에까지 이르지 않았더라면, 만약 한자어의 첫소리 [ㄴ]과 [ㄹ]도 형태주의 원칙을 적용하여 모든 자(字)는 정훈정음(正訓正音)대로 표기하고 발음만은 언어의 발음 실태와 력사적 관습을 고려하여 두 가지를 다 허용했더라면, 즉 ‘두음현상’을 표기(적기)에까지 손대지 않았더라면 중세국어(근대국어를 포함)와 현대국어 간의 모순, 남측 표준어와 북측 문화어와의 모순, ‘원음법칙’과 ‘두음법칙’ 간의 모순이 이처럼 백열화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필자는 우리말 맞춤법(철자법)에서 우선 형태주의 원칙을 취하고 다음에 표음주의 원칙이나 력사주의 원칙을 따라 세워야 한다고 본다.

 

두음현상을 발음법에만 적용하고 맞춤법엔 한자 훈의 원음-속음(俗音)이나 와음(訛音)이 아닌 정음(正音)의 철자 형태를 그대로 지켰더라면 우리의 인명, 지명과 두음현상에 해당된 무수한 한자어 낱말 표기에 대한 시야비야가 이처럼 세기(世紀)를 넘어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한국은 현행 어문 규정을 제정할 당시 마땅히 철자 표기법에서 자소(字素)를 굳게지켜야 할 기본규범을 숙지하고 판정 반포했어야 할 것인데 그것을 미처 몰랐다면 참으로 어쩔수가 없다.

 

필자는 자소 [ㄴ] ⇒ + 한획 [ㄷ] ⇒ [ㄷ+ㄱ] ⇄ [ㄱ+ㄷ]형의 결합으로서의 [ㄹ]자 생성에서, 그리고 자소 [ㄴ]과 자소 [ㄱ]으로 이루어진 두 자소를 머금은 전형적인 자질결합의 산물인 ‘리을'자의 창출과 또한 자음 자소의 [ㄱ]과 [ㄴ]의 결합자로 [ㄱ] 아래 [ㄴ] ⇄ [ㄴ] 위에 [ㄱ]으로 생성 창출 된 산물 [ㅁ]자 자질결합의 '미음’ 역시 뛰여난 자질결합물로 봐야 할 것이며 우리문자의 자질체계 우수성을 세계에 대서특필로 홍보해야 할 대표적인 자질문자 실례라고 보고 있다.

아라비아숫자는 열 개 부호의 조합으로 임의의 수치를 무한히 변화시킬 수가 있지만 우리 자질문자 언문(諺文)은 자음 자소 4자 모음 자소 3자로 다만 7개 자소의 결합으로 자음과 모음 40개에 받침 28개를 생성하여 그것으로 다시 낱말 조합으로 수천수만의 부지기수의 풍부한 어휘들 더구나 복잡하고도 어려운 그 어떠한 개념어 관념어(觀念詞)도 얼마든지 조어(造語) 조사(措寫)할 수가 있게 되였다.

 

이처럼 우리글은 우선적은 자질문자이면서 또한 음소문자이고 무엇보다 낱글자를 음절 단위로 네모지게 모아씀은 세계 어느 문자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뿐더러 과학성과 권기(權奇)성 또한 이를데가 없음을 세상이 공인하고있다.(--받침 28개 중의 첫 번째 공백 해명은 생략)

 

최소한의 부호와 기호로 최대한의 어휘를 조합 구현하여 아우르며 자유자재로 표현 표기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자질문자이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몇 안 되는, 겨우 네댓 개 자음자소만의 부호로 된 자질문자에서 무려 [ㄴ]과 [ㄹ] 둘씩이나 이른바 '두음법칙'이라는 홍두깨로 마구 때려잡아 뭉개니 장차 몇 남지 않은 자소만과 음소로 우리 말글이 어떻게 자질(資質)구실을 바로 하랴 심히 우려된다.

 

이른바 '두음법칙'으로 하여 동음이의(同音異義)어가 폭증됨도 문제려니와 ‘리씨'냐 '이씨'냐, '류씨'냐 '유씨'냐 함은 단순한 발음표기 문제를 떠나서 수천만에 해당된 그 성씨 피해자와 그 가족들 내지 그 후손들에게까지 인간형성의 근간인 족속(族屬)뿌리가 의문 의심되고 그 자신과 가족 내지 그 가문의 정체성이 뒤흔들리는 인권문제에까지 치닫고 있다고 해야겠다.

 

문자구조는 상대적인 신중성과 온정(穩定)성으로 안정을 기해야 한다.

형태를 밝힐 수도 가릴 수도 없는 수천수만의 인위적인 동음이의어에 그렇게도 풍부하던 우리 말글 어휘가 기하급수로 고갈되고 사이비(似而非)한 모순과 추측으로 가득 찬 변탈(變脫) 위축된 단어들만으로의 감쇠되는 참상과 악과(惡果)가 갈수록 심각하다.

 

이를 만구하려면 자질문자의 자소를 기본핵으로 우리의 자질문자 역할을 활용하고 그 우수성과 과학성을 신속히 최대한 발양광대하면서 한국의 해당 당국에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이른바 "우리는 인체 생리학적으로 평생 'ㄴ'과 'ㄹ' 발음이 너무 어렵다"는 구실과 아집을 죄다 버리고 그리고 또한 '두음법칙' 반대론만 나오면 '알타이제어'론 아니면 퉁구스제어를 마구 걸고넘어지거나 걸핏하면 '조선문제'와 혼돈 시켜 정치체제를 거론하며 말씨부터 거칠어지는 고약한 고질을 버리고 '두음법칙'을 시원히 전부 폐지하고 우리글의 자소를 비롯한 자질문자를 올바로 밝혀 굳게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결론

필자는 본문의 이상 장절에 렬거 피력한 관점과 개념을 다음과 같이 재정리하여 간략히 귀납(歸納)하고자 한다.

1. 홍산문화, 동이골각문자, 은의 갑골문을 거쳐 형성되고 점차 발전, 왕성하여 오늘에까지 우리 겨레의 력대 모든 나라와 백성들이 거침없이 써온 한자는 곧바로 우리의 고유문자인 것이다. 

 

'한자'의 뿌리는 곧 '동이문자'였다. 

우리 '한자음'이 있음은 우리 '한자어'가 있기 때문이며 우리 '한자어'는 우리 '한자'가 없이 있을 수 없는 등식으로도 '한자'는 우리 문자임을 립증한다.

 

2. '정자(正字)'가 아닌 '정음(正音)'은 다만 말의 바른 소리로서 정음을 적으면 그 표기된 글자를 '언문(諺文)' 또는 '한자'라고 일컫고, 언문 또는 한자를 우리 표준음으로 읽으면 그 소리를 '정음' 또는 '언어(諺語)'라고 한다.

'정음(正音)'은 바로 음표(音標 )•음성기호(音聲記號)•음표문자(音標文字)와도 같은 부호라는 것이다.(--정음자 "훈민정음" 참조)

 

세종대왕의 훌륭한 후세들이 오늘에 와서 현재 우리글 자음 19개 모음 21개 도합 40개에 받침 27개로 키워 조선어로 한국어로 조선글로 한글로 발양광대하여 오늘의 찬란한 문화를 이루고 있다.

 

3. 우리 말글은 하나의 언어에 두 가지 문자를 갖는 특징과 우세가 있다.

[일어(一語): 우리말, 언어(諺語), 언어: 토착어+한자어]

[이문(二文): 언문(諺文)+한자(漢字)]

'우리 한자'에는 '동이한자(東夷漢字)'와 '언문한자(諺文漢字)'가 있다.

 

4. 우리 말글에는 고유어와 외래어가 있다. 

'우리 고유어'에는 '토착어'와 '한자어'가 있다.

[고유어(固有語): 토착어(土着語)+한자어(漢字語)]

'한자어'에는 '동이한자어'와 '언문한자어'가 있다.

 

5. 한자 문화권에서 한자를 외국어나 외래어로 취급함은 상식을 넘어 지능지수(知能指數·智商)를 의심하게 된다.

한자는 우리의 문자이기도 하니만큼 한자 문화권은 바로 우리의 문화권이기도 하다. 고로 우리는 응당히, 마땅히 이 문화권의 주축에서 주역을 놀아야 할 것이다.

 

6. 우리는 가장 발달한 표의문자인 우리 동이한자의 장점과 가장 과학적이고 효률적인 표음문자인 우리 언문한자를 함께 갖고 있는, 아울러 우리 정음자는 단순한 음소문자뿐이 아닌 '자질문자(heaturl writingsystem)'라는 새로운 범주로 세계 가장 발달된 문자(표의문자+표음문자+자질문자)를 고루 지닌 유일한 문화민족임에 무한한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필자는 본문에서 자질문자의 자소 생성과 원리, 우세와 원칙 및 역할로 조만간에 폐지해야 할 이른바 '두음법칙' 척결 명책(名策)을 세워본다. 

 

기나긴 세월, 력대의 임금, 군주, 관청과 관료, 학자와 전문가들에 의해 나라와 백성 모두가 천도(天道)나 천리(天理)와도 같이 ‘한자’는 바로 ‘중국의 글', '한자어’는 곧 ‘한자말’ 즉 ‘중국말'이라고 인식하고 인정한,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버린 개념, 관점, 관습을 초야에 묻혀 사는 못난 필부가 새롭게(다르게) 규정(糾正∙規正), 규명(糾明), 규회(規誨)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아울러서 피줄, 언어, 문화, 지역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력사적으로 형성된 사람들의 공고한 운명공동체인 민족명(名)을 왈가왈부로 거론하며 지극히 엄정하고 엄밀해야 할 인간의 언어 총체의 총칭과도 같은 말글의 호칭어 즉 부름말을 감히 규회하려 함은 닭알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 하겠지만 이는 결코 견강부회(牽强附會)나 무중생유(無中生有)가 아닌, 진리로 진실을 밝히기 위한 필자 스스로 감당한 사명이로되 외람된 안목으로 보는 사안(私案•史眼) 문제가 아니라 옹근 우리 민족과 배달겨레의 말과 글의 운명이 달린, 백흑(白黑)과 시비를 사안(査案)해야 할 특필대서의 사안(事案)이다.

 

어쩌면 이는 남과 북의 나라의 초석(礎石)과도 같은 법전(法典)과의 원치 않는 힘든 도전(挑戰)이어서 결코 쉽지 않을 줄 뻔히 알면서도 자초(自礁), 자행(自行)한 것이다.

 

거론된 사안이 이처럼 중대하고 또한 반드시 시급히 시정되어야 할 시대적이고 세기적인 과업임에도 모두 너무 무책임, 무관심, 무감각하고 일각에서는 묵시(黙視), 묵과(黙過)만 하고 있기에 비록 혈혈단신(孑孑單身) 외돌토리이지만 비장한 마음 누를 길이 없어 필자는 감히 이 한몸을 불태워 분신쇄골(粉身碎骨)로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더라도 부정과 맞서 바로잡아보겠노라 엄숙히 선언(宣言)하는 바이다!

 

실은 당분간 필자가 손을 대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 꼭 탁마보완(琢磨補完)으로 바로 잡히겠지만 이미 서론에서 강개지심으로 약석지언(藥石之言)을 구구절절 간간(懇諫)하였거니와 명재경각(命在頃刻)에 달린 우리의 말과 글을 지금 당금 구하지 않고서는 먼 훗날 그때 가면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아니라 종당에는 게도 잃고 구럭도 다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 단장(斷腸)의 비애로, 구곡간장 촌촌이 미여지는 애통으로 삼가 여쭈어드린다.

 

차마 우리의 말도 잃고, 글도 잃고, 넋도 잃고, 얼도 잃고, 이것 저것 다 잃고, 지어는 옹근 민족마저도 다 잃게 되는 비극이 제발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에서는 없기를 바라마지않으며 이만 필을 놓는다. 

 

** 본문의 철자법과 띄여쓰기 및 문장부호 등은 력대 조선과 한국의 해당 규례와 규범을 참작 혼용하여 최종 필자의 주장에 따라 최적을 선택 한 것임을 거듭 명시하는 바이다.

 

23년 8월 30일 집필

10월 9일 한글날 수정

 

우리 말글 바로 알자

      (수 정 편)

        장석주

▪︎서론

▪︎우리 말글의 유래

▪︎훈민정음 창제

▪︎훈민정음 재조명

▪︎한자와 한자어 개념정립

▪︎한자어는 우리의 고유어

▪︎자질문자 개념

▪︎字素의 원리로 두음법칙 척결

▪︎한글은 곧 正音 설 시정 규회

▪︎한글名은 고작 백여년

▪︎조선 말글은 무려 수천년

▪︎조선어와 한국어의 去取

▪︎남녘엔 한족에 한어 세상

▪︎북녘엔 조선족에 조선어

▪︎한족과 조선족은 同根生

▪︎통일대비로 제반 명칭통합 시급

 

▪︎결론

** 본문의 철자법과 띄여쓰기 및 문장부호 등은 력대 조선과 한국의 해당 규례와 규범을 참작 혼용하여 최종 필자의 주장에 따라 최적을 선택 한 것임을 특히 명시하는 바이다.

 

-- 워낙 세기적인 비극과 민족의 파멸을 대가로 한 분단 분쟁 분렬 대립의 잉태물로서 태여나지 말았어야 할 것이였지만 참담한 력사가 낳은 오늘의 참상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이 미여짐을 또 어찌할 수 없는 참황; 그러하오나 오늘에 와서 어찌 그냥 렬강들만을 탓하고 조상들만을 나무라랴; 잘나도 못나도, 고우나 미우나, 잘해도 못해도 모두 력사가 남긴 유물이요 유산이며 문화재임을 직시(直視) 포용하고 적서(嫡庶)와 반상(班常)만을 끝없이 따지고 구별하느니 아예 이제 분발하여 앞으로의 제반 과업을 풀어나아가야 할 당사자이며 주인공들인 우리고 보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가꾸어 갈 막중한 사명을 기꺼이 짊어지고 차라리 "조선글"이든 "언문"이든 "정음" "반절"이든 "가갸글"이나 "한어" "한글"이든, 더구나 우리가 오래전부터 우리의 것으로 익히 써오던, 선택되고 정착된 우리 한자음으로 옮긴 "한자"도 모두 우리 배달겨레의 글, 하다못해 배다른 글이라고라도 다독여야 할 것이며; "조선인"이든 "조선민족"이든 "조선족"이든, "한인"이든 "한국인"이든 "한민족"이든 "한족"이든 또는 "고려인"이든 모두 다 우리 같은 토템 같은 조상을 모신 한 뿌리의 넌출과 덩굴의 순이며 꽃이고 열매로서 종계와 친계의 정당하고 바른 명분을 세워주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장차 통일을 대비하여 인위적인 그 많은 동의어들을 분류별로 나누어 일컫는 대상이나 표상에 따라 하나로의 호칭어 부름말로 통합 합일(合一)을 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

 

--같은 뿌리 같은 핏줄 같은 동포임에도 민족 호칭과 지칭어 내지 말글명(名)이 서로 많이 다름은 아마도 세상에 우리 배달겨레 하나 뿐이 아닌가 하노라--(본문 하단에서 발췌)

 

서론

해마다 1월 15일이면 조선(평양)에서는 "조선글 날"로;

9월 2일이면 연변(중국)에서는 "조선언어문자의 날(朝鲜语言文字日)"로;

바로 오늘 10월 9일이면 한국(서울)에서는 "한글날"로 모두 제가끔 정한 날을 맞아 세종대왕의 성덕과 위업을 기리고 추모하며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고 우리글의 연구 보급을 장려하고 유구하고 소중한 우리 말글을 살리고 지키고 키우며 홍보 고양하는 각종 행사들을 많이도 벌려오고 있다.

 

다 같은 한 민족 한 겨레의 같은 글임에도 명명된 기념 지칭•호칭과 기념일자가 서로 다르다. 

 

그 원인과 리유라면 :

1월 15일의 "조선글 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명의 략칭 "조선"을 따서 "글"과 "날"을 합성하여 "조선글 날"이라고 명명한 것이고, 기념일을 1월 15일로 정한 것은 "훈민정음" 창제일로 추정되는 날(세정 25년 음력 12월 3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월 15일(1963년에 지정)로 택한 것이고;

 

9월 2일의 "조선언어문자의 날"은 중국 조선민족의 서사어는 "고조선(기원전 2333년~기원전 108년 무렵)"과 "조선(1392년~1897년 무렵)"과 오늘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등등 반만년 력대 나라 이름 "조선"을 따서 우리 배달겨레의 고유 문자도 역시 나라명을 그대로 앞세워 "조선문자"로 일컫고 그를 본으로 우리 말과 글을 규범•보급•전승하기 위하여 "조선언어문자의 날"로 명명한 것이고, 9월 2일로 정한 것은 "연변조선족자치주(1952년 9월 3일)" 성립일을 기준하여 매년 9•3에는 어느날보다 우리 말글을 더 고양하고 더 널리 홍보하고자 자치주인민대표대회의 결의(2014년에 지정)로 바로 9•3의 전날이 가장 특별한 의미로운 날이기에 그날을 택한 것이고; 

 

10월 9일의 "한글날"은 "대한민국" 국명의 략칭 "한국"의 "한(韓)"을 따서 "글날"과 합성을 하여 "한글날"이라고 명명한 것이고, 기념일을 10월 9일로 정한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 간행일로 추정되는 날(세정 28년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로 택한 것이다. 1928년 음력 9월 29일 지난날의 '가갸날'을 '한글날'로 개명, 광복후에는 매년 양력 10월 9일로, 2006년부터는 국경일로 정하였다.

 

"조선글 날", "조선언어문자의 날", "한글날"이 있기 아주 전인 1926년 음력 9월 29일에  벌써 고국의 국어학자들의 단체인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가 주동이 되여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기념하여 기념식을 갖고 제1회 "가갸날"을 치렀다고 전해진다.

 

"가갸날"이라는 이름을 붙인 리유는 우리글을 배울 때 '가갸거겨...'로 시작하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지난날이나 오늘날이나 서로 사는 나라가 다르고 지역이 달라도 마냥 귀여운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주듯이 우리글에 "--날"로 정히 작명을 하여 잊지않고 우리의 고운말 바른글의 우수성을 선양하고 전승 발전시키기 위한 취지로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 가슴이 뿌듯하고 후련하다.

 

그러나 옥에 티라고 해야 할까 여기저기서 이래저래 날을 잘 받아 서로 제가끔 말글날 작명을 하고 그 이름에 걸맞는 축제며 행사를 체계적으로 훌륭히 착실히 진행함도 있지만, 일부에서는 제사덕에 흰쌀밥이라고 또 떡 본김에 제사지내듯 해마다 기념일을 빌미로 행사규모는 그럴듯이 버젓하나 따져보면 지난날의 그 형식에 건성건성 겉치레 중복이나 답보 뿐, 저으기 한심한 것은 행사장 촬영포즈에서, 수상 단상에서, 수상 소감 연설에서-- 으레 잘한다, 잘하자, 힘내라, 힘내자, 한번 더, 좋구나, 멋지다, 고맙다, 얼씨구, 절씨구, 얼싸절싸, 얼싸 좋네, 얼싸 좋아, 에루화, 지화자 하며 우리 고유어로 축하와 축복, 축원의 열기를 올려야 할 터인데 그것이 너무나 촌스러운지--화끈하고 격정에 넘치는 우리 말글은 뒷전으로 팽개치고 할애비 할망구로부터 코흘리개에 이르기까지 다들 실성한 듯이 광기를 부리며 수치도 수모도 모르고 어디에서나 왜가리마냥 노린내 나는 외어 부스러기를 주어서 '화이팅, 화팅, 와팅, 와이팅, 파이팅, 파팅'으로 희떱게 홰를 치며 천방지축으로 분수도 재수도 없이 무지 무료하고 무례하게 우리 말글을 어지럽히니 단하에서는 더 무학지배들이 무지몽매로 미친듯 박수갈채로 야단법석 요란하고;  정답고 청순한 우리 고유어(한자어•토착어) '처' '아내' '부인' '마누라' '여보' '당신' '집사람' '안사람' '녀편네'가 모두 다 양키들 한테 바람이 들었냐 또 아니면 무슨 제기랄 추파라도 던지려는 거냐 한결같이 가증스럽고 구린내 나는 양놈의 F음을 흉내 낼 수가 없으니 생억지로라도 놈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입을 오므려 '와이프'요 '화이프'요 '파이프'로 아양과 알랑방귀로 부산을 떨며; 더구나 분명 윗대까지는 '리'씨 '림'씨 '류'씨들이였는데 언제부터 스스로 조상을 바꾸었는지 아니면 씨나 밭을 갈았었는지 '이'씨 '임'씨 '유'씨로 둔갑이 되고 '렴'씨는 렴치불고하고 '염'씨네 양자로나 된듯이, 또 '로'씨 '라'씨는 무슨 큰 류행인가 싶어 덩달아 노노하며 '노'씨 '나'씨로 씨갈이 변성을 하며; 분명히 안동 '권'씨임에도 이웃 동네에서 '췌엔'씨로, '박'씨를 '퍄오'씨로 별명지어 놀려대도; 배달겨레의 삶의 터전 약동하는 '연변'을 '옌볜'으로, 해맑고 푸른 꿈의 요람 '청도'를 '칭다오'로 짓까불며 후안무치하고 잔인무도하게 해외 동포들의 인명 지명을 싹쓸이하여 불모의 쑥밭으로 마구 파헤치고 뭉개버려도 그 피해 당사자들은 그저 그러려니 하며 무골호인으로, 고마문령이 되여 덮어놓고 맞장구로 지레 쫓는 갖가지 꼴불견에 해에 해를 거듭하고 있다.(-- 한국의 '두음법칙'의 유래, 이른바 '두음'의 '법칙' 내지 '두음법칙'; '외래어 표기법'의 폐단과 그 피해 및 참상을 조목조목 파헤친 실례 등은 장석주 편저《우리 말글의 운명》하편 제10절과 제13절 14절 참조)

 

웃지도 울지도 못 할 우리 말글의 현황을 살펴보면 형태주의를 무시한 철자법과 마구잡이 띄여쓰기나 문장부호는 그만두고라도 기막힌 일례로 평양의 [림]씨가 서울에선 [임]씨로 북경 연변에선 [린•林]씨로 둔갑이 되는데 문제는 이네들은 다 같은 혈친 겨레로서 고향과 본(평택-林씨)까지도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른바 '두음법칙'과 '외래어표기법'의 요망하고 간사스러운 야합과 작간에 마귀같은 림질•임질(淋疾•痳疾)이 이룬 걸작이여서 귀신도 곡할노릇이렸다.

더더욱 답답하고 한심한 파국추태에 기절초풍할 사달로는 한국의 한 해외공관에서 몇달전에 우리글•정음자(일명 한국어•한글)를 더는 '韩国語', '韩字', '韩文'이라 표기하지 말고(않고) 기괴망측하게도 '韩古尔'로 표기하고 불러달라고 했다.

중국 권위 사이트 "百度"에서 '韩古尔' 검색 참고

중국 사이트 "百度"에서 '韩古尔' 검색 참고

 

실은 해당 당국에서 아무리 기를 쓰고 한자 문화권에서 탈문화를 꾀하지만 엄히 따져보면 낱말 '한국어(韩国語)'나 낱말 '조선어(朝鲜語)'는 물론이거니와 화제에 오른 낱말 '한글', '조선글' 역시 다 한자로 된 한자어이다. 

'한글'의 원초 뿌리를 캐보면 한자 '韩'자와 한자 '契'자의 합성어 '韩契'이고 '조선글'은 한자 '朝'자와 한자 '鲜'자 및 한자 '契'자의 합성어 '朝鲜契'로서 그네들은 마땅히 한자 '契'자와 '锲'자에 대한 유래와 글(契)자의 훈을 풀이하기에 앞서 '고글(古契)', '환글(桓契)', '동이글각(東夷契刻)', '소호시작서글(少皞始作书契)', '골각문•골각글(骨角契)', '은글(殷契)', '갑골문•갑골글(甲骨契)'등등의 '글(契)'자의 력대 쓰임과 자의(字義)와 문의(文義•文意)를 깊이 습득해야 하겠건만 그렇지 못한 짧고 부당한 소견과 소홀한 처사에 유감천만이 아닐 수 없다.

 

낱말 '글'은 한자로 '契'이며 한자 '契'의 우리 말글 훈독•음훈•독음은 '글'이다.(-- '글(契)'의 자의(字義)와 관련 훈과 새김 등은《우리 말글의 운명》상편 제115쪽 참조)

중국 권위 사이트 "百度"에서 '契'과 '书契' 검색 참고

 

'한글'을 한문자로 '韩字'나 '韩文' 또는 '韩国語'로 표기하기가 뭣하다면 하다못해 이상의 론거로 고풍찬연하고 비범한 '韩契'이라고나 명명 했더라면 해내외 고고학자를 비롯한 세인들의 절찬을 받았을 터인데 글쎄 얼토당토않은 '韩古尔(한고이)'가 뭐냐!

 

'글(契)'을 그만두고 '고이(古尔)'를 택한 이들, '韩古尔'이라는 낱말을 고안해낸 위정자나 학자는 혹 나라를 뜻하는 '韩'에다 옛스러울 '古'하면 오랜 력사를 지닌, 또는 유구한 문화를 자랑하는 '한글'인 양 싶지만 '韩古尔'의 성씨와도 같은 '나라 한(韩)'을 앞세우고(빼버리고) 이름과 같이 뒤따르는 낱말 '古尔'만을 풀이해 보면, '古'와, '너'를 뜻하거나 조사(助詞)로서의 '尔•爾'가 합성되여 '古尔'이라는 단어를 이루게 되면 마침내 '한글'이라는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중뿔나게 어부성설로 문제가 우습게도 많이 달라진다.

 

낱말 '古尔'의 새김을 아래 중국의 권위적인 사이트 "百度"의 사전풀이를 사진 그대로 옮긴다.

중국 사이트 "百度"에서 '古尔' 검색 참고

 

낱말 '古尔'의 새김은 위의 뜻 밖에도 중국의 북방 소수민족인 몽골족의 일종 놀이(게임)의 소다리 뼈로 만든 완구(玩具)일 뿐이다. 

 

풀어보면 소다리 뼈로 만든 놀이감, 코흘리개의 완구를 일컫는 '古尔'을 한국 학자들은 '나라 한•韩'을 앞세워 성스런 '나라 글'로 신처럼 삼가 '고이(古尔)' 받들어 모셔 새기려 하고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古尔'에 대한 여러가지 설 가운데 고대 아랍인들의 전설로 사람을 잡아먹는 요귀설까지도 있지만 이만 생략한다.

 

중국 사이트 "百度"에서 '古尔' 검색 참고

 

만약 '韩古尔'의 '古尔' 풀이가 짐짓 섬찍하고 무섭고 우스꽝스러운 위의 사전의 뜻이 아니라면, 바로 표의적 뜻글자(표의문자) 한문자인 '古尔'로 하여금 표음문자이고 또한 음소문자인 낱말 '글(ㄱㅡㄹ)'의 발음, 또는 낱말 '국어(ㄱㅜㄱㅇㅓ)'의 발음이나 음가(音價)•음성기호(音聲記號)의 주음부호 역할을 시도해 보려는 착상이였다면 더구나 소웃다 꾸레미 터질 전대미문의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어찌보면 아주 먼 옛날-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전에 ‘바다’를 ‘波旦’으로, ‘벼랑’을 ‘比烈’로, ‘서늘히’를 ‘沙熱伊’로, ‘구슬’을 ‘古斯’로, ‘어미’를 ‘阿嫫’로, ‘아들’을 ‘阿旦’으로, ‘바람’을 ‘把倫’으로, ‘구름’을 ‘古論’으로, ‘서리’를 ‘色立’으로, ‘이슬’을 ‘以沁’으로, ‘머리’를 ‘墨立’로, ‘눈’을 ‘嫩’으로 차자표기(借字表記)를 해오던 참담하고 어설프고 애매하고 부득이한 기막힌 과거를 답습하는 듯 싶다.(“삼국사기”, “삼국유사”, “계림유사”참조) (일제의 '창씨개명'을 본받아 중국의 인명 지명 내지 낱말을 현지음이라며 '조선족'을 '초우세엔주'로 표기하는 악법과 악폐 악례는 저서《우리 말글의 운명》제6절 제10절  제11절 제13절 참조)

 

2005년 1월 표의문자로서의 천년 고도(古都)명 '漢城'을 여전히 뜻글자 한문자로 하여금 음소문자마냥 'ㅅㅓㅇㅜㄹ' 발음을 유명무실한 '首尔'로 변명(變名)을 한 재미로 오늘은 '한글•한국어'를 '韩古尔'로 둔갑시킨 것 같은데 참으로 말깨나 하고 글깨나 한다하는 그네들이 한자와 한자어의 유래와 개념, 상식(견식)과 전통 복식을 얼마나 알고 날치는지 말문이 막힌다.(-- 저서《우리 말글의 운명》제15절 '서울-SEOUL-수이-首爾-shouer-서우얼에 대한 단상' 참조)

 

뿐만 아니라 지난해에는 북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나타난 우리 민족 치마저고리를 두고 세상을 웃기더니 오늘엔 또 수천년 고스란히 편안히 소중히 시시각각 우리 생존의 공기처럼 물처럼, 우리 몸의 피와 살처럼 필수불가결로 고맙게 열심히 잘 받들어 써오던 한자와 한자어의 기존 상식을 뒤엎어버리려 하다니 오동일엽에 일엽지추라고 보자보자하니 해도해도 너무 한다싶어 같은 동족으로서 망연자실, 수치스럽고 부끄러움에 기겁 기절을 넘어 환장 초풍 환멸할 노릇이로다.(-- 2022년 2월 10일자로 필자의 서명으로 발표한《생트집 이젠 그만》참조)

 

편견과 졸견 단견 오견(誤見)으로 걸핏하면 이제 태여나서 겨우 백십 년도 되나마나 한 낱말 '한글(1913~)'을 두고 '한글의 독립성' '한글의 독창성' '한글의 정체성'을 외치면서(-- '조선말'은 무려 수천년을 헤아리지만 항상 름름하고 듬직하고 묵중하고 신중함을 기함은 생략)한자 문화권에서 기어이 빠져나가려고 버둥거리는 몸부림이 심할수록 그 '韩古尔'이 워낙은 '韩孤兒(한고아)'이였음이 불보듯 뻔하게 들여다 보이고, 가소롭고 쓸데없는 그 자비심으로 이제 부지기수의 한자어인 '대한민국'과 '태극기' '애국가' '세종대왕' '훈민정음' '대통령' 해서 반만년 전적(典籍•前績•傳籍)과 모든 국민들의 족보며 가보(家譜)에 오른 조상들 뿐만 아니라 선산 묘소의 비명(碑銘) 비문(碑文)이며 오늘의 남녘 오천만 인명에다 삼천리금수강산의 짤린 허리- 남녘의 반이나마 여전히 아름답고 아까운 지명(地名), 백두대간의 산명(山名), 동해, 남해, 서해의 바다명, 한강, 락동강, 소양강과 그많은 호수명, 도시명과 길거리명 역명과 산간벽촌 시골의 동네명과 사찰(寺刹)명 내지 거리 뒤골목 가게기둥의 립춘, 지어는 가두어기르는 가축 가금이며 애완명 등등도 서둘러 일일이 줄줄이 잇따라 '韩古尔'에서 '韩孤兒'로마냥 둔갑시킬 것을 짐작하니 등골에 소름이 끼친다.

 

과연 소탐대실(小貪大失)로 황당무계한 개두환면(改頭換面)을 해서 얻자고 하는 것이 무었인지 궁금하다.(-- 2023년 6월 11일자로 필자의 서명으로 발표한《한심한 파국추태》탈문화 현상 참조)

 

문화권이란 어떤 공통된 특징을 가지는 문화의 공간적인 령역을 두고 이른다. 좀 더 풀이한다면 공통된 특징을 보이는 어떤 문화가 지리적으로 분포되여 있는 범위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핵심은 문화의 전파라고 할 수 있다.

한자 문화권이란 동이(東夷)의 골각문자, 은(殷)의 갑골문자가 한(漢)을 거치며 '한자'라는 이름으로 뿌리내려 부단히 완성, 발전된 글을 받아들여서 자국어에 고전한문어계의 어휘를 대량으로 사용 또는 차용한 동아시아 지역을 가리킨다.

 

중국과 조선•한국 일본, 지난날의 베트남(--중아시아의 일부 나라와 동남아시아의 부분 나라들도 이 문화권에 넣는 설도 있다.)등 여러 나라들에서는 오랜 세월 자형(字形), 자음(字音), 자의(字意)를 함께 익혀 공유하며 문화권을 쌓아왔고 또한 함께 어울리며 교류와 화합으로 공존 공생하며 각자의 문자와 문화를 나름대로 발전해 온 공동체를 이루었기에 한자 문화권은 당연히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우리 겨레의 문화권이기도 하기에 우리는 이러한 우세로 우리 문화권의 주축에서 주동이 되여 주역을 놀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그 어느 누구가 해당 문화권을 부인하려 들거나 탈퇴하려 함은 돌을 들어 제 발등을 까는 격이여서 변증법적 발전의 론리로 볼 때에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의 하나인 존속(存續)의 필요성과 정당성 내지 상호 의존과 제약으로서의 환경과 조건에서, 이미 문자와 문화 및 교리(敎理)로 수천 년 쌓아온 련대와 소통으로 조련찮게 이룬 상생(相生)과 협화(協和)된 문명과 문화의 공존공영을 기한 명운(命運)공동체에서 탈피를 꾀함은, 국가적이고 민족적인 중대하고도 심각한 실책이며 실각과 실추, 실세로서 시대적인 퇴보이기도, 세기적인 재난이기도 한 자기부정과도 같다고 해야겠다.(--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론술은《우리 말글의 운명》상편 제1절 '한자 문화권에서 한자의 역할' 참조)

 

고로 필자는 오로지 구국간성(救國干城)과 구족간성(救族干城)으로 본문을 다가오는 "조선언어문자의 날"과 "한글날"에 즈음하여 우리 말글의 유래 및 진수(眞髓)와 정수(精髓•精粹)를 바로 알리고 그 진가(眞價)를 옳고 바르게 전수(傳授)하고자 [우리 한자개념 정립], [한자어는 우리 고유어이다], [훈민정음 재조명]과 [한글은 곧 정음 설 규회], [자질문자 개념과 자소의 역할로 두음법칙 척결], [조선어와 한국어의 거취]라는 명제(命題)로; 우리 배달겨레를 위한 진충보국(盡忠報國)과 충불고사(忠不顧死) 토진간담(吐盡肝膽)으로 우리 말글 진황(眞況)의 시비곡직을 새롭게 탐지(探知)하고 단정(丹精)으로 진언(進言•盡言)을 엮어 수백 년 얽히고 설킨 본말(本末)을 규명(糾明)하고자 한다.

 

1 우리 말글의 유래

한자어는 우리 고유어 

먼저 우리말과 우리글의 유래를 요약해본다.

 

우리의 말과 글을 운운하자면 우리말에 포함된 조선어와 한글은 물론이요 일부 외래어와 고어 및 리두, 향찰, 구결과 방언 등을 고루 다루어야 하겠지만 일부 생략하고 우선 화두에 오른, 말밥으로 된 한자 그리고 한자어, 한자음과 얼키설키 얽힌 토착어를 비롯한 우리말과 글의 유래부터 밝혀봐야 할 것이다.

 

필자는 수백 년의 언어(諺語), 언문(諺文)으로 된 토착어는 물론, 수천 년 전부터 우리 문화의 피와 살, 공기와 물과도 같이 써 온 우리 한자, 한자어, 한자음 역시 고유어범주로 보고있기에 우리 말글의 유래에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을 함께 취급함을 명시한다.(--필자가 새긴 고유어, 토착어와 한자어 모두 고유어 범주로 주장하는 론점과 론거는《우리 말글의 운명》제130쪽 참조)

 

항간의 속설로는 최초에 우리말은 선사(先史)시기, 태고(太古)순민들로부터 시작되였을 것이고 그 후 홍산(紅山)과 동이(東夷), 단군((檀君) 기원전 2333년)을 거쳤으니 우리 민족 문화가 형태를 이루기도 반만 년이 훨씬 더 넘었고 그동안 우리 민족에게만 쓰이는 말글이 형성되였다고 보고 있다.

 

“훈민정음 이전에 이미 속용문자(俗用文字)와 승용문자(僧用文字)가 있었다”는 일설로 한국 (1999.10.9. 방영)도 있기는 하나 본문에서는 그 시비와 규명을 생략한다.

 

--훈민정음 이전에 가림토 문자가 있었다는 속설 자료사진 참고

필자는 본문 서술에서 낱말 ‘조선어’와 ‘한국어’ 또는 낱말 ‘조선글’과 ‘한글’이 우리 말글로서의 똑같은 의미로 함께 표기해야 할 경우엔 해당 낱말의 선후 선택과 배렬을 비롯한 인위적인 시비와 모순, 갈등, 시기 및 끝없는 쟁의와 배타적인 론란을 피하여 남과 북 내지 해외에서 모두 수긍할 수 있는 낱말 '우리글', ‘정음자’ 또는 ‘언어(諺語)’, ‘언문(諺文)’으로 통일함을 미리 말해둔다. 

낱말 ‘한반도’와 ‘조선반도’ 역시 위와 마찬가지 연고로 낱말 ‘반도’ 또는 ‘우리 반도’로 통일하여 표기하고자 한다.

긴긴 세월 우리의 문자와 발음이 모진 세파에 바래지고 파란만장을 겪으며 수많은 방언의 갈래로 뻗었지만 그 뿌리와 원천은 류수불부(流水不腐)라 마침내 오늘의 아름다운 고유어로 결실을 맺어 우리 문화유산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례:

아버지, 어머니, 사랑, 사람, 바람, 떡, 하늘, 땅, 집, 옷, 하나, 둘, 다섯, 닭, 오리, 소, 송아지, 개, 돼지……

언어학에서는 우리말을 우랄-알타이어족(語族)에 속한다고 하며 일각에서는 다만 알타이어족이라고 주장한다.(--기타 어계통설은 략)

 

우리말은 우랄-알타이어족이라고 하지만 우리글은 오랜 세월 주로 한자와 한자어 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아래 우리 고유어에서 우리 한자음으로 표현되는 한자와 한자어 위치와 역할을 집중적으로 조명해 본다.

 

“우리가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에 많은 有·無形의 文化遺産을 가지고 있고, 특히 典籍문화재도 그 수가 적다고만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을 헤아릴 수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訓民正音이 조선시대 초기에 와서야 聖君인 世宗大王의 主導에 의해 제정되었고, 제정된 이후에도 우리의 공식문자가 한자였던 까닭에 전적의 거의 전부가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黃忠基編著 『韓國學事典』 국학자료원, 2002년 9월 23일, 서문에서)

 

여기서 잠깐 다시 대표적이고 권위적인 사전에서 한자어의 개념과 주석풀이 그리고 우리 말글 속의 한자어 정의(定義)와 고유어에서의 비중 및 상호관계를 간추려본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996) 제24권 287쪽에실린 한자어 풀이를 인용해 본다.

한자어(漢字語): 하나 또는 둘 이상의 한자의 결합으로 되어 한국어로서 사용되는 한국식 발음의 단어…(--한자어의 생성, 발달, 특징 등은 생략)

 

‘하나 또는 둘 이상의 한자의 결합으로 되여 한국어로서 사용되는 한국식 발음의 단어가 곧 한자어(漢字語)다’는 낱말 풀이다.

 

우리 한자어는 우리 한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어로서의 한자어는 한자를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한자가 우리의 것이 아니라면 어찌 한자어가 우리의 것으로 될 수 있겠는가?!

외람되긴 하지만 만약 필자가 위의 낱말 ‘한자어’ 풀이를 보충한다면:

 

한자어(漢字語): 우리 한자음으로 옮긴 하나 또는 둘 이상의 한자의 결합으로 되여 한국어로서 사용되는 한국식 발음의 단어……

필자는 위의 풀이에서 다만 “우리 한자음으로 옮긴”이라는 표현을 더 가첨했을 뿐이다. 

 

하지만 필자는 우리 한자음으로 옮긴 하나 또는 둘 이상의 한자의 결합으로 되여 한국어로서 사용되는 한국식 발음의 단어 즉 한자어와 한문 어휘(단어)간에는 원칙적인,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 즉 한문 어휘는 순 중국문자 그대로의 한문자(漢文字)이고 한자음(漢字音) 그대로이지만 우리 한자음으로 옮긴 한자어는 한문자(漢文字)가 우리글로 옮겨진, 발음과 문자가 바뀐 글이라는 것의 큰 차이가 있다.

 

물론 문자 모양이 한문자 그대로이지만 우리 한자음으로 옮겨 이미 수천년 우리의 말과 글로 정착된 한문 한자도 마찬가지로 우리글이다.

 

우리의 ‘고유한자어’ 차자표기법(借字表記法)으로 만들어진, 우리들에게만 있는 한자, 이를테면 돌(乭·이름-돌)이나, 답(畓·논-답), 갈(乫·땅이름-갈), 걱(巪·사람이름-걱), 묠(乮·봉호-묠), 쇠(釗) 등과 같은 문자들은여전히 우리 훈독과 음독이 뚜렸하다.(--차자표기법(借字表記法)으로 만들어진 고유한자어 풀이와 더많은 실례는 략함)

 

한자 하나로도 한자어를 이루고 있다는 설은 한자→ 한자어→ 한국어 =한자어=한자라는 등식을 련상케 한다.

례:  

산(山), 강(江), 향(香), 병(病), 약(藥)…… 

아래 다른 한 사전에서의 낱말 "한국어"주석을 인용해 본다.

한국어(韓國語): 한국어의 어휘체계는 순수한 고유의 말과 한자어(漢字語) 그리고 차용어로 구성되어 있다. 순수한 고유의 한국어 속에 침투되어 있는 한자어는 고대로부터 이미 중국과의 문화 접촉으로 말미암아 그 영향이 언어에도 미친 결과이며 현재 한국 언어재(言語財)의 절반 이상(약 70%)이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 『세계대백과사전』)

위의 사전에서는 순수한 고유의 한국어 속에 침투되어 있는 한자어, 즉 ‘한자어는 순수한 고유의 한국어 속에 침투되어 있다'고 쓰고 있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한자와 한자어, 한자어와 한국어, 고유어(토착어)와 고유의 한국어 관계를 다음과 같은 등식으로 풀어볼 수 있다.

한자의 결합으로=한자어가 이루어지고=한자어가 한국식 발음의 단어로서 한국어가 되고=순수한 고유의 한국어는 바로 한국 고유어=고유어 속에 침투되어 있는 한자어는 현재 한국 언어재의 절반 이상=한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한자어는 고유의 한국어 속에 침투되어 있다. 

 

고유의 한국어는 한국의 고유어이니 그 속에 침투되어 있는 한자어는 한국의 고유어이기도 하다. 

그 한자어는 ‘한자로 된 낱말’이니 그 낱말을 표기하는 문자는 당연히 ‘한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위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풀이한 ‘한자어’와 『세계대백과사전』에서 풀이한 ‘한국어’ 주석을 근거로 상기 등식을 짜 ‘한자어는 곧 우리의 고유어’이며 ‘고유어 속에 한자어가 있다’는 것을 추리하고 있다.

아래는 한국 동아출판사에서 펴낸《새국어사전》에서의 낱말 [고유어] 새김이다.

고유어 1) 그 나라나 민족의 역사와 함께 변천•발달해 온 고유의 언어. 2) 그 고장 고유의 독특 한 말.

한국의《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낱말 [고유어]를 다음과 같이 새기고 있다.

- 다음기에 계속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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