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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10/20  한민족신문
나의 사촌형님

나에게는 어릴 때 함께 자란 사촌형님 한분 계신다. 일산에 게시는 사촌 형님이 병환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와 함께 병문안을 일산에 다녀왔다.

 

형님의 병문안을 다녀온 후 형님에 대한 지난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늘 밤잠을 설치군 한다. 어릴 때 형님과 나는 시골 한마을 아래 윗 집에서 살았다. 어린 시절에는 왜 그리 가난했는지 옷 한 벌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했는지^^

 

그래도 우리 집은 유일한 재산인 재봉틀이 있어 어머니는 늘 헐고 구멍 난 옷들을 깁고 빨아서 입히군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름대로 어머니의 사랑도 받고 형님에 비하면 너무 행복했던 것 같다.

 

사촌 형님은 일찍 불이의 사고로 어머니를 여의고 어머니의 사랑도 못 받으시고 자랐다. 큰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형님은 4남 일녀 중에 넷째로 겨우 열 살 남짓했다. 그러다가 몇 년 지나 큰아버지는 새어머니를 맞아드렸다. 어머니는 혼자 몸도 아니고 어린아이 네 명을 데리고 오셨는데 대가족이 모였다. 인구가 많아지자 먹고 사는 게 자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형님들도 방황하면서 집에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가을철 군대모집이 있게 되었는데 워낙 건강하기로 소문난 형님은 신체검사에서 합격되어 입대하게 되었다.

 

군복무기간 형님은 더 열심히 자신을 단련하기 시작했는데 그 공을 인정받아 3등공을 두 번이나 세우고 7년간 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화룡시 숭선향 파출소서에서 운전기사로 몆년간 근무하다가 러시아로 가서 보따리 장사도 하면서 힘든 고생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한국 재외동포정책의 혜택을 받아 형님은 2010년 무연고 동포 추점에 당첨되여 오매에도 그리던 한국 땅을 밟게 되었다. 한국에 도착한 후 형님은 힘든 일, 궂은 일 가리지 않고 10년 넘게 아침 5시에 출근하고 저녁 늦게 들어오면서 억척스레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형님은 현장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위기를 넘기자 집으로 돌아와 통근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글쎄 이 기간 함께 살던 형수가 형님이 쓰러져 더는 일할 수 없게 되어서인지 이혼을 통보하고는 형님 곁을 떠나 버렸다.

 

그렇게 강하고 두려움 모르던 형님이 믿고 살던 아내마저 곁을 떠나니 너무나도 슬프고 억울하여 눈물만 흘리고 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오던 존경하는 형님의 삶을 보노라니 나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진다. 그처럼 건강하고 일 잘 하고 돈도 잘 벌던 형님이 이제는 일 할 수 없고 돈도 벌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이런 대접을 받는 게 너무나도 가슴 아프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옛날의 그 건강한 의지력을 바탕으로 인생을 포기하지 말고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건강관리를 잘 하면서 하루 빨리 일어나 이 동생과 함께 고향에 가서 행복하게 살기를 약속하고 싶다.

 

형님,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항상 건강 하세요!

/허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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