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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09/26  한민족신문
“우리 말글의 운명” 연재 (1) _ 장석주

한자개념 정립, 두음법칙 폐지, 외래어 표기법 이견

[우리 말글의 운명, 과연 어떻게 예상해야 할까? 오늘부터 우리는 전 흑룡강방송국 국장으로 계셨던 장석주 선생의 글을 연재하면서 우리 말글의 慘狀을 파헤쳐 眞相을 밝혀보는 시간을 갖고자 하오니 많은 애독자들의 관심을 기대해 본다._편집자]

 

머 리 말

 

만민이 만복을 기원하는 무자년① 정초 새해 벽두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 서울의 얼굴이요 나라의 영과 혼으로 일컫는 국보 1호 숭례문②이 불타버렸다!

 

나라의 으뜸 보배가 이렇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장장 600여 년 동안이나 찬연한 고풍을 지켜오던 남대문이 무너졌다!

 

타오르는 불길은 겨레의 체면과 자존심마저 태워버리고 무너뜨렸다!

 

이에 앞서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대구 지하철이 불타고 이천 냉동 창고가 불타버렸다!

 

그리고 이어서 또 끔찍한 세월호 참사 ⋯

 

또 대통령 탄핵 ⋯

 

또 ⋯

 

삼단 같은 불길이 맑은 하늘을 휘감고 먹장 같은 기름이 푸른 바다를 뒤덮는 참사가 비일비재, 참담한 현실에 국민들은 망연자실, 해외동포들도 하늘이 무심하다며 땅을 치고 가슴을 허비며 통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국민들이 비감에 겨워 눈물을 흘릴 때에 천애지각의 해외동포들은 고국의 하늘을 우러러 비통으로 피를 삼키고 있다!

 

고국이 무엇이기에 지난날 시베리아 설한풍 칼바람에 몸은 비록 꽁꽁 얼어붙어도 언젠가는 무궁화 꽃피는 봄날 포근한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아 가슴은 마냥 훈훈하고,

 

겨레가 무엇이기에 거칠고 험한 타관타향에서 기대고 비빌 곳 하나 없어도 서로 살붙이가 되어 부둥켜 버티고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으며,

 

민족이 무엇이기에, 동포가 무엇이기에 메마른 땅에서 외로이 초근목피로 연명을 해도 언젠가는 이제 모두 다 함께 모여 세상 부럽잖게 잘살 날이 올 것이라 희망을 걸고 우리 말글을 버린 적이 없었다.

 

고국과 겨레가 비록 해와 달은 아닐지라도 우리 몸의 뼈와 살, 피와 혼으로 엉켜져 운명을 같이하고픈 마음이다.

 

하기에 고국에 재난이 덮쳐들면 국민들과 함께마음을 졸이고 아픔을 나누며, 고국에 경사가 생기면 덩달아 신이 나서 흥겨운 마음 감출 수 없는 것이 한 핏줄을 타고난 해외동포들의 넋인가 본다.

 

실은 일찍 고국의 88올림픽 개최 성공에 같은 혈육으로서의 무상의 영광을 느끼며 허리를 쭉 펴고 활개 치며 살게 된 이들이 바로 우리 해외동포들이고, 고국이 슬기롭게 금융위기를 이겨 나라 살림이 바로 잡힐 때에 누구보다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며 격려의 갈채를 아끼지 않은 이들 또한 우리 해외동포들이다.

 

2002년 월드컵 경기 때 지축을 울리며 하늘을 진감했던 “대한민국” 함성- 그 여 파, 그 여음, 그 여운이 희망의 메아리로 되어 오늘도 내일도 항시 해외동포들의 맥박을 고동치게 하고 있다.

 

비록 선거권도 피선거권도 없는 제외동포이지만 밤잠을 설치며 고국의 대통령 선거가 마감될 때까지 투표 수치와 함께 혈압이 오르내리는 우리들이고 보면 흐르는 피가 분명 단군의 핏줄을 이어온 배달의 적자(嫡子), 환인(桓因)의 후손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바로 이처럼 같은 배달민족으로 태어난 자랑과 긍지로 고국의 융성 발전과 대한부강(大韓富强)을 기원하고 아울러 바로 같은 겨레, 같은 동포이기에 감히 고국에 간원(懇願)과 간언(諫言)을 삼가 드리는 바이다.

 

이제 우리 모두 손에 손잡고 한마음 한뜻으로 굳게 뭉쳐 사고왕국의 불명예를 건뜻 씻어버리고 내친김에 손에 든 촛불을 모아 광명과 희망을 불러오는 등대(燈臺)로 밝혀 산과 바다에 드리운 흑운을 걷어버리고 마음속의 흑암마저도 말끔히 가셔버리노라면 드디어 사랑하는 고국이 날개 돋친 표호마냥 한강의 기적 위에 새로운 도약과 비전, 새로운 궐기와 창성을 쌓아갈 것임을 굳게 믿어 마지않는다.

 

사랑하는 고국의 국민들이여! 불탄 숭례문을 보면서 그리고 새로 복구된 숭례문을 보면서 가슴치며 절규하던 어제의 상처를 잊어서 아니 되거니와 오늘 지금 이 시각에도 사악한 암류가 찬란한 우리 역사와 유구한 우리 문화를 송두리째 삼켜버림을 묵과하거나 망각해서는 더더욱 아니 됨을 아시는가?!

 

나라의 관청은 매일매시 다사다난(多事多難)한 국사와 어려운 민생을 돌보랴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끄기에도 진땀을 빼고 국회에서는 민의를 받아들여 크고 작은 입법(立法)을 하기에도 어려움이 많겠지만 서로 아웅 다웅 기득권 다툼으로 사사건건 줄다리기와 기 싸움에 기진맥진, 국민들은 그날그날 벌어먹고 살기에도 여념이 없다.

 

자타가 따로 없이 돌아가는 쳇바퀴마냥 그냥 바쁘고 그냥 분주하며 그냥 하루하루의 일상에 지쳐 그냥 무감각하고 차차 무디어져 가고 있다.

 

광우병 쇠고기 사태보다, 경제위기의 어려움보다, 비선실세와 국정농단보다, 신종바이러스 확산보다 수천수만 배 더 심각하건만 촛불은커녕 반딧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있다.

 

필자는 불탄 숭례문을 보면서 숭례문과 가지런히 모진 풍상고초를 겪어온, 나라와 민족의 자부심이고 또한 반만년 우리 민족 무형문화재인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문화, 우리 겨레의 얼과 혼이 깃든 동이문자(東夷文字)③의 맥을 이어온 우리 한자, 한자어와 한자음을 비롯한 지극히 소중한 국보특호와도 같은 우리의 고운 말, 바른 글, 우리의 국어가 은연중 그냥 타왔고 지금 이 시각에도 계속 그냥 타버리고 무너지고 사라짐에 가슴을 조이고 있다.

 

복구가 가능한 유형자산인 숭례문에 비해 무너지고 사라지는 무형자산의 막대한 손실 가치는 세월이 갈수록 돌이킬 수 없는 역사와 같아 금전으로, 화폐로, 수치로 가늠할 수가 없다.

 

먼 훗날 울면서 후회 말고 오늘 서둘러 웃으며 예방해야 할 것이다.

 

고로 초심고려 세한송백(歲寒松柏)의 적자지심(赤子之心)을 다잡아 필자는 단장(斷腸)의 비애로 우리말과 글의 진상(眞相陳狀)을 글월로 역어 이를 진정서(陳情書), 탄원서로 삼아 우리 말글로 고국의 국맥(國脈)을 잇고 국익(國益)과 국력(國力) 신장(伸張)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바이다.

 

혹자는 어쩌면 필자의 진정서를 번지 없는 주막으로 보내는 주소 없는 편지마냥, 낙화유수가 아닌 유수낙화(流水落花)마냥 아무런 기약도, 언약도,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결실도 바랄 수 없는 부질없는 소행이라고 탓할는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천년 묵은 고목에도 꽃이 핀다는 진실과 진리를 굳게 믿고 있다.

 

핵(核)은 꽃으로 자랄 눈과 싹, 순과 움을 머금고 있는 고목이기 때문이다. 꽃을 필히 피우고자 하는 고목이 자양분(滋養分) 속에 깊이 뿌리내려있기 때문이다.

 

창해유주(滄海遺珠)라 언젠가는 볕을 보게 될 것이요. 빛을 뿌릴 것이리라.

 

동이한자④는 무려 수천 년을 기다렸고 언문한자⑤는 이미 수백 년을 기다렸지만 아직 명분과 귀숙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 같은 암담하고 위기일발인 시각에 어찌 태만히 관망만 하랴. 고로 필자는 비록 고국의 시민권자도 아니요, 영주권자도 아닌 한 해외동포 3세에 불과하지만 보잘것없는 필부의 힘으로나마, 우리 고국의 휘황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의 소실과 유실을 막고자 하는 불타는 마음을 구국의 횃불로 지펴 두려움과 송구함을 무릅쓰고 이 한 몸을 태우면서 감히 이 진정서—우리말과 글의 백흑 보고서로 삼천리 삼천만(오늘의 약 팔천만) 겨레의 혼백(魂魄)과 운명(命運)을 건지고자 하는 애절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고국에 삼가 드리는 바이다. (김구의 ‘삼천만 동포에 읍고(泣告)함’과 본문의 마감 쪽 ‘맺음 시’ 횃불조형(火炬造形)과 내용문 참조)

 

필자로서는 이는 어쩌면 필생의 숙원을 이루고자 하는, 노부(老夫)의 뼈깎는 고통으로 얼마 남지 않은 메마른 피를 짜서 쓴 혈서(血書)와도 같은 최후의 간간(懇諫)이기에 더더욱 소홀함이 없이 모든 것을 감내(堪耐), 감인(堪忍), 감수(甘受)하며 최선으로 감당(勘當)해야 함을 각오하고 있다.

 

새 천 년에 들어서면서 한국은 세계 각국과의 친선관계 확립에 박차를 가하고, 특히는 국제사회에서의 의무와 책임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충실히 이행하고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긴장 완화의 주축에서 주역을 감당함으로써 세계 선진국의 반열에 합류하고 앞장서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도 전에 없는 친선, 합작, 교류와 호혜, 협력을 추진하며 공동이익을 확대하여 마침내 전면적인 협력 동반자 관계로부터 전략적인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켜 두 나라 관계의 더 아름다운 미래를 예약해놓고 있다.

 

한국의 대 중국 관심과 연구 그리고 다방면의 교류는 세계 그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앞서가고 있다.

 

한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 및 교류를 하자면 우선 그 나라의 위치, 역사, 제도, 인문, 사회, 경제, 문화, 이념, 예술, 교육, 과학, 기술, 천문, 역법, 의학, 군사, 외교, 철학, 종교, 예의, 관습 등등에 대한 요해와 이해를 떠날 수 없고 상술한 제 분야를 운운하자면 우선 그 나라의 말과 글,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또 잘 알아야 할 지명, 인명을 떠나선 더구나 담론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지난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중국의 지명과 인명을 우리말로 된 한자음, 한자어 그대로 잘 써오다가 최근에 갑자기 ‘외래어’, ‘외국어’랍시고 중국의 지명, 인명을 중국어 발음(일명 ‘중국어 표기법’, ‘중국 현지음’)을 흉내 내며 억지로 표기하고 읽고 있다.

 

지난 세기 말부터 이른바 ‘두음법칙⑥’으로 하여 금이 생긴 한자문화가 새 천 년에 들어서면서 한자, 한자어의 빙소와해(氷消瓦解)와 균열(龜裂)의 진통을 겪다가 끝내는 소위 ‘외래어’와 ‘외국어’를 몰고 온 해일(海溢)로 하여 풍비박산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반도 남녘에서 시단(始端)된 우리 고유어(토착어)와 우리 한자, 한자어의 변탈(變脫)과 붕괴 및 ‘영어제국주의(English lmperialism)’ 세력에 빌붙어 ‘영어 공용화’ 를 부르짖는 망발(妄發)이 동북아를 넘어 환태평양으로 번지어질까 적이 불안하다.

 

외국어 및 외래어와 함께 외래문화의 무분별한 수입은 다만 그 민족의 보편적이고 전통적인 가치관의 혼돈을 초래할 뿐이다.

 

한국의 일각에서는 “세계 언어 단일화(영어 공용화론)”를 내걸고 영어를 나라의 국어로 삼아야 한다는 설로 많은 사람을 꼬이고 있다.

 

‘외래어’가 아닌 ‘외국어’를 모셔와 자기 나라 국어로 섬기자는 것이다.

 

듣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얼토당토아니한 광언(狂言)이나 예사로 스치기에는 등골이 오싹하고 치가 떨린다.

 

그런 치는 80여 년 전의 일제강점기라면 이른바 ‘황국신민(皇國臣民)’으로 되고자 ‘일어 공용화’, ‘일어 단일화’를 외치며 선참으로 창씨개명(創氏改名)⑦을 자청하였을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이하여 혹자는 일제의 악착같은 민족말살정책이 우리에게 들씌운 액난(厄難)과 수난, 국치민욕(國恥民辱)의 상처를 그리 쉬이 잊어버리고 ‘부귀(浮鬼)’만 따르려 하는고.

 

필자는 어느 누가 만약 ‘세계 언어 단일화’나 ‘영어 공용화’가 그토록 소원이라면 자기 나라 즉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와 과학, 외교 내지 모든 종합실력이 미국이나 영국을 비롯한 영어권의 발달한 나라들과의 수준이 같거나 앞설 때가 되면 한번쯤 시험(試驗) 삼아 해볼 만도 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 정도면 문화적인 식민지나 외교적인 속국(屬國)이 될 우려가 없고 국방은 물론 경제와 문화, 특히는 말과 글에서 남의 말과 글에 의존(依存)함이 없는, 즉 자국의 고유어를 굳게 지키고 발전시키며 영어는 비교 언어나 비교 문화로 받아 들인다면, 즉 먼저 자기를 지킬 수 있는 든든한 배짱이 있을 때 소원성취를 해보라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혹자는 배짱이 있다면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세계 언어 단일화’에서 ‘한국어 공용화’ 바람이 일도록 실력을 키워보라는 것이다. 황차 세계 언어학자들은 우리 정음문자의 우수한 제자원리(製字原理)를 세계의 가장 발달된 ‘자질문자(featural alphabet/heaturl writing system)’ 범주로 보고 세계통용문자로 채용하자는 주장이 있음을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 (한국 네이버 ‘지식백과’의 ‘자질문자의 개념’과 영국 제프리 샘슨 교수의 저서 『문자체계』 ‘자질체계를 갖춘 자질문자 - 훈민정음의 제자해 평가’ 참조)

 

더 바르게 표현한다면 어느 한 국가나 민족이나 어느 개개인을 막론하고 제구실을 하자면 최소한의 줏대나 배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줏대와 배짱이란 다름이 아니라 국가라면 대내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힘과 무상의 절대적 권리를 갖고 대외로는 완전한 자주적이며 철저한 독립성을 갖춘 권한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 국가의 이익을 최고로 하는 주권(主權)이 있어야 하고, 민족이라면 최소한 자기의 말과 글을 기본으로 한 자기 역사와 문화를 굳게 지키는 존엄(尊嚴)과 자부(自負), 긍지(矜持)가 있어야 하고, 개개인 역시 제구실을 하자면 수양과 인격을 기반으로 한 기상(氣像)과 절개(節槪) 즉 불요불굴의 지기(志氣)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로부가 내린 계설(界說)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발달한 표의문자인 동이한자(東夷漢字)의 장점과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효률적인 표음문자인 언문한자(諺文漢字)와 토착어를 이루는 음소문자-정음자-자질문자를 갖고있는 자랑스러운 문화민족임을 자긍심으로 자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우수한 문화민족임을 깨닫고 그로하여 자부심과 자신감 자존감에 무상의 보람으로 정진과 자강불식(自强不息)을 해야 할진데 참으로 그러지 못하는, 그러지 않고있는 갑갑하고 답답한 현실을 어떻다 하랴 ㅡ

 

예전에 보면 언제나 주눅이 들어 지저분하게 제구실을 못하거나 싹수머리가 노란 녀석, 또는 어깻죽지 축 처져 음지나 동네 뒷골목을 싸다니는 부실하고 불효막심한 얼간이들이나 늘 남의 눈치만 슬슬 보면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줏대도 배짱도 없고 주견도 지조(志操)도 없는 간신적자들을 제멋대로 둬버리면 종당에는 가족과 가문 내지 민족과 나라의 기틀과 기강이 흔들리고 무너지기 마련이다.

 

지난날 오랜세월에 역대의 열강(大唐, 大明, 大清, 大和, 大俄)에 양키들까지 모시기도, 당하기도, 빌붙기도 하다가 종당에는 삼천리강산 허리가 동강나는 설움을 겪고---

오늘엔 마치도 동네 뒷골목의 깡패들마냥 서로 무리를 지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상습이런가 또 제각기 친일, 친미, 친중, 친러, 친북이라고 욕질하면서 마구 이리 치고 저리 박고 물고 뜯고 하여 뉘집의 못난 강아지코등마냥 하루도 성한데가 없고 그기에다 이런저런 종교까지 이리저리 얽히고 설키여 하루도 편할날이 없으니---

그저 항상 신세가 가련하고 운명이 기구하다고만 탓하기에는 너무나 가벼운 변명과 해탈, 질책이 아닐까?!

서로 아웅다웅하며 세상을 웃기는 그 틈에 간특하고 사악한 이번 신종바이러스같은 기지(旣知)와 미지(未知)의 그 무엇들이 기어들어 관청과 정당과 종교와 단체들을 마구 휘감고 휘젓고 부수며, 염병보다 더 지독한 괴력으로 온 세상인심을 어수선하게 일대 난동을 부리고 있다.

 

이 위기일발의 시각, 오늘도 서로 코 막고 답답하다고 한탄만 하지말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 원망과 질책만 하지말고, 여기저기로 헤매며 남 동네의 힘 세고 코 큰놈의 바지가랭이만 부여잡고 아양을 떨고 빌붙어 남의 힘으로만 집안 불화와 모순을 풀려고 하다가 자칫 인랑입실(引狼入室), 인화소신(引火烧身) 하지 말고, 고래 싸움에 끼여들면 새우 등 터짐을 잊지 말고 또한 괜한 곁불에 재앙을 당하지 말고, 제발 이래저래 그냥 당하고 또 당하지만 말고; 우리 고국의 여야와 남북과 해내외 동포들로 단합된 그 무궁무진한 힘으로 일심단합(同舟共济)하여 가슴을 시원하게 활짝 열어젖히고 손에손잡고 신심가득히 총동원된다면 그 누구라도 그 무었이라도 뉘라서 감히 얕보고 언감 넘겨보겠으며 이 세상에 못 해 낼 일이 그 무엇이 있으리오까!

 

이제 우리 모두 충정과 슬기, 지혜와 용기로 한강의 기적위에 새로운 대한부강을 세우고자 저기 저 백두대간에 떠오를 태양을 향해 힘써 달려야 할 것이 아니옵니까?!

저 푸른 동해바다 먹장구름이 가셔진 수평선위에 샛별이 빤짝--

계명산천이라--

드디어 먼 동이 트려나 ㅡ

 

혹자는 이 어디 어느 해외 무지막지한 시골 촌놈이 문밖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나 하고 무슨 잠꼬대 같은 한심한 소리를 내뱉느냐고도 하겠지만 필자는 자랑이 아니라 전문 우리 말글을 파헤쳐보려고 일찍 러시아와 유럽, 미국, 캐나다와 호주, 일본을 비롯하여 20여개 나라를 돌며 풍상고초에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늙은이다.

 

일찍 나폴레옹이 이르기를 “인류의 가장 숭고한 도덕이란 바로 애국심이다. 애국은 문명인의 으뜸가는 미덕이다”고 했었다.

 

필자는 영어나 일어란 그것이 ‘외국어’일 때만이 영어로나 일어로서의 구실이 예쁠 뿐이지 그것이 한국이나 러시아, 프랑스, 중국 같은 나라 안방에서 주인 노릇을 할 경우에도 그리 예쁠까 의문이다.

 

머지않아 이제 또 국제 위상의 판도가 바뀌면 ‘세계 언어 단일화’를 주장하는 얼간이들은 팔랑개비같이 풍향풍속을 봐가며 바람 따라 중국어, 러시아어 또는 어느 다른 나라 말을 국어로 택해야 한다고 고래고래 부르짖을 것이다.

 

만에 하나 그리한다면 고국은 다시 어느 나라나 어느 문화의 종속, 언어적 식민지 내지 문화적 예속(隸屬)이 될 것이 너무 자명하기에, 이는 국가와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전통문화의 자멸(自滅)을 자취하고 있는, 말과 글 내지 우리 말글에 기반 된 전반 민족의 존엄과 권리를 비롯한 민족관념과 민족의식이 파괴, 파멸, 붕괴되는, 그로 말미암아 종당에는 민족의 유전자 돌연변이를 초래하는 반민족적, 반국가적인 반동행위나 다름없다.

 

하기야 언제부터인지 한국에서는 자기 나라 대통령의 성명도 영어명(英語名)으로 생감(省減)시켜 제법 우리 이름처럼 만들어 잘도 부르고 있다. 예하면 이명박은 ‘M·B’로, 김대중은 ‘D·J’로, 김영삼은 ‘Y·S’라는 별명으로 잘도 통하고 있다. 부르는 이도 듣는 이도 너무 편한 모양이다.

 

필자는 솔직히 겨를도 없고 필요도 없어 이미 돌아간 분들의 묘소를 찾아보지 않아 모르긴 하지만 그렇다면 그분들의 무덤 비석의 비명(碑銘)과 족보(族譜)도 ‘D·J’, ‘Y·S’ 등 영문 생감식으로 모조리 고쳐 새길 수 있거니와 또한 당금 돌아간 이들과 앞으로도 돌아가게 될 수천만 이들의 비명과 영위(靈位), 위패(位牌), 명부(冥府)에도 위에서처럼 낯선 자로 새기든가 등록을 하여도 무방하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하나 먼 후손들이 크게 깨닫고 뉘우쳐 잃어버린 우리의 소중한 역사와 문화, 시궁창에 버려진 미풍양속을 다시 되찾고자 할 때에 이러한 참상의 사태와 사단의 원흉이 바로 “세계 언어 단일화”를 주장하는 할아비들의 행실이라면 참으로 뭐라고 통탄할는지,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는 노릇을 구천의 세종대왕께 여쭤보면 어떻다 하랴.

 

조상에 욕되고 후세에 부끄러운 후환과 화근만 남기는 실책이 없어야 할 것이다.

 

언어 생태학적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세계 언어 단일화”의 미명하에 자국의 고유어를 밀어버리고 다른 어느 나라의 말과 글을 국어로 택함은 그 해당 주체민족의 정체성을 깨뜨리는 위험천만의 위태로운 행태로서 천부당만부당이다.

 

이를 두고 언어전이(言語轉移) 또는 문화 변용(文化變容)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대로 가만 두면 말글과 얼굴뿐이 아니라 차차 피와 살, 뼈와 영혼도 다 바뀌게 될 것이다.

 

국가와 민족의 말과 글 내지 역사와 미래, 문명과 문화의 생사존망 위기를 눈앞에 두고 삼천리강산(응당히 ‘유구’한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해야겠건만 ‘유구(悠久)’와 ‘금수(錦繡)’라는 어휘가 아깝다)에서는 횃불, 촛불은 커녕 쥐불, 반딧불도 하나 깜빡이지 않고 있다.

 

삭풍만 몰아치는 깊고 긴 캄캄칠야, 밀려오는 먹장구름에 깜빡이던 뭇별만 가뭇없이 사라질 뿐이다.

 

이 또한 결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닐 터이니 필자는 명운(命運)을 걸고 사투 (死鬪)로 기어이 봉화(烽火)를 지필 것이다. (본문의 마감 쪽 ‘맺음 시’ 봉화조형(烽火造形)과 내용문 참조)

 

필자는 지면과 필묵이 아까워 혹자와의 이른바 ‘세계 언어 단일화’를 정당화하려는 궤변(詭辯)과의 논쟁은 별론으로 줄이고 아래 본론으로 직진하고자 한다.

 

문제는, 너무나 지극히 놀라운 문제는 바로 그 어느 누구, 어떤 이를 뜻하는 혹자가 아니라 또는 어느 민간단체나 학계나 학술 대표자나 학관(學官)이 아니라 나라의 법과 규범을 제정하는 지엄한 한국 관청(당국)에서 알게 모르게 벌써 오래전부터 수 천 년간 우리말과 우리글에 이미 정착되어 굳어져 있고 오래전부터 익히 써오던 토착어⑧와 한자어를 비롯한 고유어, 우리말 소통에 편한 인명, 지명을 모조리 버리고 대신 말을 하는 이(화자·話者)와 말을 듣는 이(청자·聽者) 및 그 말을 글로 적는 이(寫者)와 옮기는 이(전달자·傳者)들 즉 언중(言衆) 모두에게 아리송한 이른바 신형의 외래어, 외국어를 무더기로 만들고 또한 계속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정착된 우리 낱말을 우리 정음자(正音字)와 우리 언어(諺語)⑨로 우리끼리 소통하는데 우리가 모두 알아듣지 못할 조어(鳥語)와 같은 조어(造語)를 무더기로 엮을 이유가 무엇일까.

 

본래의 철자나 뜻은 고려하지 않고 다만 그 음만 옮겨놓는 현상을 언어학에서는 음차(音借) 또는 음역(音譯)이라고 한다.

 

여러 나라에서는 자기 나라에 없는 말을 음차 또는 음역하여 잘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도, 일본도, 영어권의 미국과 영국, 캐나다와 호주도, 에스파냐어를 공용어로 쓰는 중남미의 여러 나라에서도 외래어로 자기말에 없는 빈자리를 잘 채우고 있다.

 

외국어를 걸러서 외래어로 받아들임을 좋게 보면 그 나라의 언어가 개방성이 있다고 할 것이며 나쁘게 보면 과도한 개방으로 인하여 자기의 주체성과 자기의 기본을 잃는 전통을 말살하는 현상이라고 할 것이다.

 

필자는 국제 통용 관례에 따라 세계화에 따르자면 외국의 인명, 지명은 객수주편 (客隨主便), 명수기주(名隨其主)의 원칙으로 손은 주인에 따라야 한다는 통념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 대상은 어디까지나 우리말과 글에 전혀 없었던 낱말 또는 우리에게 전혀 생소한 인명, 지명일 경우에만 한(限)하고 준(準)해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신조어(新造語)는 우선은 조심스럽게 우리식의 토착어 낱말로나 우리에게 뿌리내린 한자어로 인명, 지명을 명명(命名)하기에 힘써야 할 것이고 기어코 외국어의 발음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면 무조건 덮어놓고 이른바 한국식의 원음주의(原音主義)를 고집하기보다는 외래어 조어모식(造語模式)인 음역형(音譯型), 의역형(意譯 型), 혼합형(混合型), 복합형(複合型) 또는 음의융합형(音意融合型) 등 여러 가지 가운데 가장 적당한 방식을 택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현행 외래어 표기의 원음주의는 다 같은 한자 문화권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인명, 지명에만 중국 현지음에 준하는 교조적인 형이상학(形而上學)일 뿐 국제 사회의 허다한 인명, 지명 표기 현상과 사용 실태와는 너무나 상반되는 내적 모순(內的矛盾)을 안고 있다.

 

한국은 중국의 인명, 지명을 억지로라도 ‘원음주의’로 분장시켜 이른바 국제화 추세에 입을 맞추려고 하지만 이는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실은 이탈리아의 수도를 자국에서는 ‘Roma’로, 한국에서는 ‘로마’로, 중국에서는 표기로는 ‘罗马’로, 발음으로는 ‘Luoma’로, 미국에서는 ‘Rome-Rom(롬)’으로 하고, 프랑스의 수도를 자국에서는 ‘Paris’로, 한국에서는 ‘파리’로, 조선에서는 ‘빠리’로, 중국에서는 ‘巴黎’로 표기하고 ‘Bali’로 발음하고 미국을 포함한 영어권에서는 ‘패리스’로 발음하며, 스위스의 ‘Geneva’를 한국에서는 ‘제네바’로, 중국은 ‘日內瓦(Rineiwa)’로, 프랑스와 미국에서는 ‘Geneve(주네브)’로 표기하고 발음하며, 한국에서 일컫는 ‘베네치아(Venezia)’를 국제사회의 많은 나라에서는 ‘베니스(Venice)’라고 표기하며 발음하고 있다.

 

한동안 ‘월남’ 하다가 ‘윁남’을 거쳐 요즘은 ‘베트남’이라고 하며 또 ‘서반아’에서 ‘스페인’을 거쳐 ‘에스파냐’라고 하는 일관성도 없다. 한국에서 주장하는 ‘원음주의’를 무색케 하는 위의 철같은 실례다.

 

문제는 바로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자칭 지명(自稱地名)과 타칭 지명(他稱地名)의 구별 및 그 존재 이유가 이른바 원음주의 뿌리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외래어는 외국어와 달라 화자와 청자가 같은 언중이기 때문에 자국어(自國語)의 음운법칙(音韻法則)을 따르는 것이 대원칙(大原則)이다.

 

본문의 전편에서 언급되고 강조되다시피 필자는 한자 문화권에서의 지명, 인명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역사와 우리 문화에 피와 살마냥 굳어진 한문 또는 한자, 한자어는 모두 국제통상의 외국어, 외래어, 차용어, 전래어와 달리 모두 우리 문자로, 우리 문화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을 피력하고자 한다.

 

필자는 한자 문화권에서 한자를 외국어나 외래어로 취급함은 상식을 넘어 지능 지수(智商)를 의심하게 된다.

 

필자는 영어권의 미국, 아일랜드, 캐나다, 뉴질랜드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영어와 영문을 외국어로 또는 외래어로, 타국어로, 차용어로 취급하는지 의문이다.

 

우리말과 글에 ‘한자어’가 태반이요, 전문용어에는 무려 70∼80%가 ‘한자어’이며 ‘한자어’를 “하나 또는 둘 이상의 한자의 결합으로 되어 한국어로서 사용되는 한국식 발음의 단어…”라고 주석을 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제24권 제287쪽)의 풀이가 있음에도 ‘한자’와 ‘한자어’를 기어코 외국어 또는 외래어로 취급함을 무엇이라고 어떠하다고 평가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한자는 우리의 문자이기도 하니만큼 한자 문화권은 바로 우리의 문화권이기도 하다. 고로 우리는 응당히, 마땅히 이 문화권의 주축에서 주역을 놀아야 할 것이다. (본문 상편 제1절, 제2절 ‘한자 문화권과 한자의 유래와 역할’ 참조)

 

우리는 반드시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하고 정평(正評)으로, 우리 한자의 관적(貫籍)과 본향(本鄕) 내지 뿌리와 정음(正音)을 찾아 옳고 바른 우리 말과 우리글로 우리 문화를 지켜가야 한다.

 

인명, 지명은 우리말 고유명사의 기본을 이루고 그 수 또한 고유명사의 태반을 넘기고 있다. 인명, 지명의 거의 모두가 한자어인데 고유명사의 태반이 이렇게 음차, 음역으로 뒤바뀌다 보면 장차 보통명사 가운데의 한자어는 과연 얼마나 오래 버티고 그러다 보면 또 우리말과 우리 문자 전체가 어떻게 될 것인지.

 

물론 지금은 중국의 인명, 지명에만 외래어 감투를 씌워 중국 발음으로 표기(흉내)하고 있지만 이것이 발단이 되어 세계 각국의 한자어로 된 모든 인명, 지명과 한국 내의 한자어로 된 인명, 지명 내지는 우리의 모든 한자어 낱말까지도 중국어 표기법을 따라 외국어로 취급을 한다면, 영어와 일어, 불어, 독어에 중어까지 합세한 한국의 외래어 범람에 과연 우리의 고운 말과 바른 글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삼거웃보다 더 얽히고설키어 도저히 두서를 잡지 못하겠다.

 

한 나라의 문화는 씨줄과 날줄로 짠 직물과도 같은 것이다. 즉 전통문화와 외래문화에 의한 수직과 수평을 이룬 위선과 경선과도 같지만 기본 바탕이 전통문화냐 아니면 외래문화 위주냐에 따라 그 원단이 삼베(麻布)일 수도 있고 무명(綿布)일 수도 있으며, 비단(絹布)일 수도 있고 모포(毛布)일 수도 있다. 또한 나일론, 비닐론, 폴리 염화비닐, 플라스틱일 수도 있다. 하긴 능라주단(綾羅綢緞)에 금상첨화(錦上添花)라면 더없이 좋으련만 오늘 한국의 말글살이는 수직과 수평의 수준을 넘어 하늘땅 모두가 갈피갈피 서구의 외어로 된 화학섬유며 합성수지 내지 폐물폐지 따위로 천지가 뒤덮여 자연과 환경이 마구 침습(侵襲)되고 있다.

 

청정(淸淨)환경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황사나 초미세먼지는 예보를 통해 예방대책이 가능하거나 때가 지나면 가라앉겠지만 외어의 침습(浸濕)에 녹이 슬고 퇴색 변질된 한국어는 그 불순물을 떼어버릴 수도, 걸러낼 수도 없어 다만 용광로에 다시 녹여서 새로 분리하지 않으면 폐기처분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나 보다.

 

어느 나라든지 대저(大抵) 국어(國語)는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고유어(固有語)와 다른 나라 또는 다른 민족, 다른 지역에서 들어온 일부 외래어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의 국어는 지난날 한자어가 70%, 토착어는 24%, 외래어는 6%로 통계되어 있었지만 실은 최근 한국의 언어 실태를 정밀 조사해 보면 사이비한 외래어가 80% 이상 범람하고 있다고 한다. 살벌한 외래어 범벅투성이에 밀려 한자어와 토착어가 기죽어가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외래어가 범람하는 한국에서 순 우리말(토착어·한자어)로는 언어 소통마저도 어렵다고 하는데 매일매시 새로운 외래어를 무더기로 거침없이 만들고있으니 장차 그 말에 해당되는 고유어가 얼마나 많이 뭉텅뭉텅 잘리고 줄어들 것이며 아울러 우리말을 담는 우리 문자의 모양새는 또 어떻게 될 것인지 심히 염려되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필자는 본문 전편에서 외국어 학습은 적극 권려(勸勵)하며 외래어 남용은 필사의 힘으로 반대하고 엄단(嚴斷)하고자 한다.

 

외국어 학습 특히는 한국에서의 영어의 위치에 관련하여서 필자는 한국의 경희 대학교 영어학부의 박병수교수의 “언어학에서 본 영어 공용어화”의 관점을 전적으로 찬성하며 <새국어생활 제11권 제4호>에 실린 글 전문을 읽어볼 것을 간권하며 본 문에서는 지면의 제한으로 생략한다.

 

세계화 시대의 문화 산물이라고 하리만큼 대서특필해야 할 한류가 한국의 국가 이미지, 한국의 국가브랜드(國格)를 한껏 신장시키며 동남아시아뿐이 아닌 머나먼 유럽과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아프리카대륙까지 휩쓸어 ‘세종학당’과 ‘한글학원’, ‘한국어전업’, ‘한국어학부’가 우후죽순마냥 일어서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무려 107개국의 1,395개소 대학에서 한국어학과 한국학 전공강좌를 대거 개설하였다 함에 필자는 참으로 뿌듯한 마음으로 경탄토록 기쁘면서도 또 한편 우선 그렇게 많은 대학들에서 자질문자를 가르칠 교사들의 자질과 교재(敎材) 내용이 의문스럽고 아울러 세계적인 열풍인 한국어 학습과 연찬에서 한국의 현행 부실한 ‘두음법칙’과 ‘외래어 표기법’의 중국 관련 기준들에 일그러진 한국 말글의 실태를 알게 될 수천수만 학도들의 매섭고 차가운 질문과 그 질문에 몸둘 바를 모를 교사들의 난감한 처지가 심히 우려된다.

 

세계 최대의 도서(島嶼)이며, 이슬람교 신봉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자기 말을 적는 공식 문자로 채택하고 초등학교에서 한글 교과서로 민족교육을 시작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세계인들은 너도나도 호감을 갖고 우리글의 실태와 실질을 파헤쳐 볼 것이요, 깊이 파헤쳐 그 내막을 알고 본 한국어 현상과 현황은 빛 좋은 개살구로 온통 어설픈 외래어와 잡탕말뿐이어서 자못 유감과 탄식만 극심하지 않을까 적이 마음이 죄인다.

 

날로 질식되고 고갈되는 우리의 고유어에서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정음자‒자질 문자의 우수성과 특수성, 순수성 및 과학성을 어디서 어떻게 찾으며, 외국어와 외래어를 모조리 빼버리고 난, 메마르고 엉성할, 순 우리말과 우리글을 또다시 무엇이라 어떻다고 재평가할지 두렵기만 하다.

 

본디 우리의 고유어에 뿌리내린 정음자가 창궐하는 외래어에 손발이 묶여 양키 말만 흉내 내는 노비(奴婢) 신세로 전락되어버렸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정음자의 소임이 기껏해야 겨우 외국어, 외래어나 적고 발음 하는 구실뿐이라면 세계인들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 역사와 문화를 이어오고 담아 온 연모‒우리의 아름다운 말글에 어떻게 접근하고 접수하랴 싶다.

 

외래어에 쫓겨난 우리의 고유어‒나라말 국어(國語) 신세가 궁색하고 궁핍하기 짝이 없다. (본문 하편 제14절 제391쪽 참조)

 

경거망동(輕擧妄動)은 자취기화(自取其禍) 망국멸족(亡國滅族) 미연지전(未然 之前)에 은인자중(隱忍自重)으로 경세훈민(警世訓民)하지 않을 수 없다.

 

무릇 외국어와 외래어가 범람하는 나라일수록 그 나라의 고유어를 비롯한 순수 한 국어와 국문이 반비례로 줄어들기 마련이다.

 

2019년 국제 관련 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지금 세계에 7,000여 종류의 언어(4~5 천 가지는 살아있는 언어, 나머지는 사어(死語)로 소실되고 있음)와 200여 종류의 문자가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세계인 97%가 사용하는 언어는 고작 4% 정도에 못 미치고 토착어(고유어)의 40% 정도가 소멸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그 많은 언어 가운데 매년 평균 40여 종 언어가 소실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금세기 말이면 토착어와 지역어(방언) 80%가 소실, 멸몰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의 일부 문화도 대량의 언어 소실로 하여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다.

 

놀라운 속도로 언어 종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일찍이 독일의 철학가이며 사상가인 피히테(J. G. Fichte)는 “국민이 국어를 만들고 국어는 다시 국민을 만든다”, “한 민족의 특성은 그들의 언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 언어가 국민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살아 있는 언어를 가진 민족은 정신적 교양이 바로 생명에 작용하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정신적 교양과 생명은 관계가 없다”고 하며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엄밀히 보면 혈연관계가 있어야만 하는 겨레와 동포는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집단인 민족과 서로 개념이 다르다.

 

중국의 만족은 한 시기 힘을 키워 중국대륙을 지배하기도 하였지만 오늘에 와서는 자기 민족의 언어와 문자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고, 그 옛날 알타이산맥을 주름잡으며 몽골고원에서 중앙아시아에 걸친 광활한 지역을 지배했던 돌궐의 후예들도 자기 민족 언어와 문자가 사라진 것은 유감천만이 아닐 수 없다고 하였다.

 

16세기 남아메리카 안데스 지대의 잉카족은 청동기 문화에 직물, 금세공, 계단밭 농업에 뇌수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하였다고 하지만 문자 기록 방법이 없는 탓으로 잉카문명은 자멸되고 말았다.

 

혈연을 바탕으로 한 겨레-부족과 씨족은 생존하고 있지만 언어와 문화를 잃어 민족의 구실을 못 하고 있다.

 

2019년은 ‘세계 토착어의 해’로서 세계 어학계는 토착어에 대한 전에 없는 주목과 연구, 발굴과 활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유엔은 토착어의 실낱같은 취약함을 인식하고 2019년을 ‘세계 토착어의 해’로 지정하여 “토착어의 돌이킬 수 없는 소실과, 토착어를 보존∙재활∙증진할 긴급한 필요에 대한 관심을 촉진”할 것을 호소하였다. (필자가 보는 고유어 개념, 고유어를 세분 (細分)한 ‘토착어’와 ‘한자어’ 분류는 본문 상편 제4절 제130쪽 참조)

 

필자는 본문 역시 유엔의 ‘세계 토착어의 해’의 일환으로 뜻을 같이하여 토착어와 한자어를 포함한 우리의 고유어 지킴을 성스러운 사명(使命)으로 여길 것이다.

 

고로 필자는 우리말과 우리글을 바탕으로 한 우리 문화가 금세기 말로 소실 될 80% 속의 하나가 아니라 누누 천년 전승, 창달되도록 기원하고 보장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 ‘언어 침입’과 ‘문화 침입’ 특히는 ‘세계 언어 단일화(영어공용화론)’를 막는 것을 당면의 급선무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겨레와 동포, 민족 내지 나라의 공영(共榮)과 공영(共贏)을 기해야 한다. 말과 글의 오랜 생존과 발전의 전제는 강대한 국가 이미지 수립과 함께 국방, 경제, 외교, 교육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못지않게 국어 순화를 다그치는데 있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지를 막론하고 그 나라의 국어와 국문의 순화를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언어의 이질화를 극복해야 하는데 이질화의 오염은 외래어 남용(濫用)과 난용(亂用) 및 말과 글의 오용(誤用)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필자는 우리 한자어로 이미 굳어진 인명, 지명을 버리고 새삼스레 중국의 현지음으로 표기하는 한국의 ‘중국어 표기법’이나 거의 한자어에만 적용된 ‘두음법칙’에 일그러진 우리말의 참황의 뿌리는 바로 우리 한자, 한자어, 한자음에 대한 잘못된 관념과 개념, 평가, 새김, 주석, 주해가 오도(誤導)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해내외를 비롯하여 줄곧 우리의 한자, 한자어, 한자음에 대한 개념과 새김이 왜곡 되었기에 법전용어(法典用語)와 그에 따른 많은 사전(辭典·字典)이 혼선을 빚어 혼란을 겪고 아울러 한국의 ‘한글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을 비롯한 많은 규범과 규정, 기준이 우리말과 글의 혼탁을 야기(惹起)시키고 있다.

 

만약 우리 한자와 한자어가 수백, 수천 년 전부터 우리의 글과 우리의 말이라는 정의(定義)를 정의(正義)롭게 정리하고 인정했더라면 우리 한자와 한자어, 우리의 말과 글이 오늘 이른바 한국의 ‘중국어 표기법’과 ‘두음법칙’에 의해 이토록 몸살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오늘의 중문(中文), 중어(中語)는 외국어로 보며 당연히 해당 외국어 학습과 보급을 적극 격려하고 권장하지만 한자(漢字), 특히는 우리의 훈(訓)과 음(音)을 갖춘 한자는 외국어도, 외래어도, 차용어나 타국어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글이고 우리의 말이라고 본문 전편에서 당당하게 피력하고 주장하고자 한다.

 

우리는 민족의 생존, 번영과 진보를 위한 계왕개래(繼往開來)의 현시점에 입각하여 우리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을 비롯한 우리의 말과 글을 재정립하고 아울러 외국어와 외래어를 걸러서 필요한 새말만을 우리말과 우리글에 귀화시키고 순화, 동화시켜 순수한 우리말과 우리글 그리고 이른바 ‘두음법칙’의 침해와 피해로부터 벗어난 순결하고 순수한 우리의 말과 글이 세계 문화 문고에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발전 방략을 함께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필자는 한자라는 낱말은 수천 년간 우리 선조들을 포함한 수많은 민족에 의해 형성되고 부단히 완성되며 발전된 기호(記號)가 동이(東夷)에 의해 골각문자로 틀을 갖추고, 그 맥을 이은 은(殷)나라의 갑골문자가 한(漢)나라 때에 정성시기(鼎盛時期)를 이루었고 그때 크게 확충(擴充) 정착된 문자를 다만 글(契)과 문(文)으로만 지칭되어오다가 먼 훗날 후손들 즉 지금으로부터 700여 년 전 몽고인(元나라)들이 중국 본토로 쳐들어와 남송을 멸망시키고 저희들의 몽고문자와 구별하기 위해 당시 해당 지방의 토착어를 ‘한자(漢字)’로 이름 지어 오늘에까지 많이 써온 연고로 지금까지 그냥 불려왔을 뿐, 그 문자를 우리 정음으로 옮겨 쓰면 우리 글자 즉 동이한자(東夷漢字)이기도 하며, 마찬가지로 중국의 음으로 쓰면 중국문자 즉 중문한자(中文漢字), 일어 음으로 옮겨 쓸 수 있는 한자라면 일본한자 즉 일문한자(日文漢字)이기도 한 동방문자라는 주장을 강조하고자 한다.

 

필자는 ‘한자’를 어느 나라에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것이 ‘동이한자’로도 되고 ‘중문한자’로도 되며 ‘일문한자’로도 됨을 간곡히 설파(說破)하고자 한다.

 

혹여 혹자는 ‘한자’의 형성과 발전 역사는 우리 선조들과 무관하며 아울러 동이의 골각문자나 은나라의 갑골문자와도 관련 없이 또는 원나라에 의해 ‘한자’로 이름 지어진 것이 아니라손 치더라도 필자는 한국의 현행 ‘한글맞춤법’과 ‘표준어 규정’, ‘표준발음법’ 그리고 『표준 한국어발음대사전』과 『한국 어문규정 해설집』에서 열거한 수많은 세칙과 기준을 다룬 용어를 철 같은 논거(論據)로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은 분명히 우리의 것 즉 “한문자(漢文字)를 우리 음으로 옮겨서 읽으면 곧 우리 한 자음이고 우리 음으로 쓰면 곧 우리 한자”이기도 하다는 주장을 널리 표명(表明)하고 자 한다. (상편 제3절 제89~93쪽, 제4편 제133쪽 참조)

 

고로 필자는 광의적인 의미에서 ‘동이한자(東夷漢字)’와 ‘언문한자(諺文漢字)’ 모두를 한글·조선글로 여겨야 한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동이한자어’와 ‘언문한자어’ 모두를 우리의 ‘고유어’ 범주에 속한다고 보지만 본문 앞 장절에서는 주로 한문, 중문, 한자, 한자어, 한자음만을 다루는 연고로 필자가 보는 낱말 ‘고유어’ 범주와 ‘고유어속의 토착어와 한자어’ 개념은 아래 본문 상편 제4절 제130쪽에서 다룰 것이다.

 

우리 겨레가 한문자(漢文字)를 우리 문자로 사용해온 역사는 세상에 아직 ‘한자 (漢字)’라는 단어(명사)가 나오기 수천 년 전부터였고 우리 정음(正音)자를 써 온 지도 어언간 570여 년이 실히 된다.

 

이 기나긴 세월, 역대의 임금, 군주, 관청과 관료, 학자와 전문가들에 의해 나라와 백성 모두가 천도(天道)나 천리(天理)와도 같이 ‘한자’는 바로 ‘중국의 글’, ‘한자어’는 곧 ‘한자말’ 즉 ‘중국말’(본문의 다음 장절에 열거한 모든 우리말 『국어대사전』, 『조선어사전』의 해당 주석과 새김 참조)이라고 인식하고 인정한,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버린 개념, 관점, 관습을 초야에 묻혀 사는 못난 필부가 새롭게(다르게) 규정(糾正∙規 正), 규회(規誨), 규명(糾明)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이는 결코 견강부회(牽强附會)나 무중생유(無中生有)가 아닌, 진리로 진실을 밝히기 위한 필자 스스로 감당한 사명이로되 외람된 안목으로 보는 사안(史眼) 문제가 아니라 옹근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의 운명이 달린, 백흑(白黑)과 시비를 사안(査案)해야 할 특필대서의 사안(事案)이다.

 

어쩌면 이는 한 나라의 초석(礎石)과도 같은 법전(法典)과의 원치 않는 힘든 도전(挑戰)이어서 결코 쉽지 않을 줄 뻔히 알면서도 자초(自礁), 자행(自行)한 것이다.

 

거론된 사안이 이처럼 중대하고 또한 반드시 시급히 시정되어야 할 시대적이고 세기적인 과업임에도 모두 너무 무책임, 무관심, 무감각하고 일각에서는 묵시(黙視), 묵과(黙過)만 하고 있기에 비록 혈혈단신(孑孑單身) 외돌토리이지만 비장한 마음 누를길이 없어 필자는 감히 분신쇄골(粉身碎骨)로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더라도 부정과 맞서 바로잡아보겠노라 엄숙히 선언(宣言)하는 바이다!

 

실은 당분간 필자가 손을 대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 꼭 탁마보완(琢磨補完)으로 바로 잡히겠지만 이미 명재경각(命在頃刻)에 달린 우리의 말과 글을 지금 당금 구하지 않고서는 먼 훗날 그때 가면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아니라 종당에는 게도 잃고 구럭도 다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우리의 말도 잃고 글도 잃고 얼과 넋도 잃고 민족도 다 잃게 되리라는 것이다.

 

현대과학은 태고로부터의 우주홍황(宇宙洪荒), 무궁무진한 만휘군상(萬彙群象)과 까마득한 45억 년의 지구 생성을 비롯한 천체 변화를 흡사 아기 임신을 투시해보고 출산을 예상하듯이 환히 알게 되었고, 500년 전만 해도 인류 창생(蒼生)은 지구가 네모난 줄로만 알았는데 오늘은 달나라에 날아가 산책을 하며 둥근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지 않는가!

 

시간과 파장, 전류를 나노(nano)로 계산하고 생물공학의 첨단에서는 미지의 복제를 꿈꾸며, 전자망원경은 억(億)을 단위로 광년(光年)을 재고 전자현미경은 조(兆)를 단위로 상(像)을 관찰한다.

 

초고속 인터넷은 지구상의 모든 정보를 하나의 거대한 통신망(network) 체계로 엮고 묶어 모든 인간이 천리안을 갖게 하며 생태와 환경은 상호보완하며 인류로 하여금 최적과 쾌적을 누리도록 한다.

 

두 세기 전 다윈의 ‘진화론’과 ‘종의 기원’, 지난 세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와 ‘광량자 가설’ 그리고 금세기 오늘날의 최신 성과로 집산된 조물주는 지난날의 불가사의가 오늘의 현실로 이루어지고 오늘의 불가사의가 내일의 현실로 이루어짐을 보여주고 있다.

 

무한한 가능성은 인문과학과 가치 탐구에도 적용이 되어 무릇 그것이 정의적이고 진리라면 어제 밝혀지지 않은 것은 오늘에 밝혀지고 오늘에 밝혀지지 않으면 내일에 꼭 밝혀지게 되어 있다.

 

현대과학은 일사천리로 기지(旣知)를 안고 미지(未知)를 풀며 달음질치고 있다. 더구나 인공지능(人工知能, 스마트)을 넘어 기계지능(機械知能, 로봇지능) 시대가 들이닥치는 이 급어성화(急於星火)마냥 급속하고 급변하는 시대, 다문화와 다원화가 공존하는 현시점에 새로운 과학적인 시각으로 시급히 밝혀야 할 사안- 바로잡아야 할 우리의 문자와 우리의 언어‒이 존망지추(存亡之秋)로 초미지급(焦眉之急)함에도 모두 무한판단(無限判斷)만 하여 수백, 수천 년 되도록 바로잡지 못한 문어(文語)가 오늘 곪다 못해 썩어 곰팡이가 끼는 데도 그대로 후세에 남긴다면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과연 우리들을 무엇이라고 할까?

 

상술한 사안이 한시가 다르게 시급함에도 베일에 가려져 세상 사람들이 그냥 너무 여사로 또는 예사로 여기고 있다.

 

이제 더는 누구에게 미룰 수도, 학수고대로 기다릴 수도, 무작정 참고 견딜 수도, 어느 시대의 구세주나 신령을 바랄 수도 없다!

 

우리는 천세일시를 놓치지 말고 발란반정(撥亂反正)으로 전도된 시비와 백흑을 낱낱이 밝히고 바로잡아 청사죽백을 새로 새기며 명봉재죽(鳴鳳在竹)을 맞아야 할 것이다. (‘명봉재죽’ 본문 하편 제16절 제425쪽 참조)

 

필자는 한국의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중국의 지명, 인명 표기 규정에서 관용을 지키지 않는 자기모순(자체모순)과 그로 인해 허다한 문제를 낳는 산실, 또한 거의 한자어에만 국한된(적용된) 이른바 ‘두음법칙’으로 인하여 형태를 걷잡을 수 없는 오자(誤字)와 와자(訛字), 와음(訛音)의 만연, 그보다 한자 문화권에서 우리가 선참으로, 유별나고 당돌하게 한자의 공용(共用)과 공유(共有)를 버려 결코 얻는 것은 조금도 없고 오히려 수천 년 전부터 피와 살로 쌓고 지켜온 소중한 우리 역사와 찬란한 우리 문화만 잃어버리는 참담한 현실과 현상의 근원은 바로 잘못된, 왜곡된, 불완전한 우 리 한자, 한자어, 한자음의 개념과 새김·주석에 있다고 거듭 지적한다.

 

그 원인의 뿌리를 더 깊이 파고 헤쳐본다면 우리 역사는 홍산문화(紅山文化)와 동이골각문자로부터 온 한자의 형성, 발전 내지 사용과 한덩어리로 엉켜져 있음을 정시(正視)하지 못함, 그로 하여 한자는 유구한 우리 문화의 기본이며 주체임을 망각 또는 부인한데 있으며, 한자야말로 우리 역사와 문화 내지 모든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일체로서의 불가분리의 정체성을 갖고 있음을 부정하거나 그것에 대한 무의식(無識) 상태이기 때문이 아닐까 본다.

 

고로 필자는 본문을 상편과 하편으로 나누어 우선 지금까지의 우리 한자, 한자어, 한자음의 잘못된 개념과 새김을 시정하고 아울러 거듭된 시행착오를 분류별로 해부, 해체해보고 우리 한자, 한자어, 한자음의 원류(源流)와 원형을 찾고 진상 규명으로 백흑을 밝혀 마침내 명실상부한 우리 한자, 한자어, 한자음의 관향(貫鄕)과 원적(原籍)을 바로잡아 참다운 우리의 고운 말 바른 글을 고양(高揚)하고자 한다.

 

본문의 일러두기에서도 언급이 되었지만 한국의 학계와 언론, 관청과 본문에 관심을 갖고 계신 독자 여러분들의 검독(檢讀)에 편리를 드리고자 필자는 대한민국의 현행 ‘한글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에 입각하여 본문의 전편에서 부득불 본의(本意)를 꺾고 되도록 기왕의 ‘두음법칙’을 비롯한 한국의 어학(어문) 규범과 규정, 관습에 따라 서술하고, 힘써 한국의 국문과 국어 현실, 현황, 현상과 구조, 변화에 맞추어 객관적으로 기술하려고 노력하였음을 거듭 부언(附言)하는 바이다.

 

필자는 본문이 남과 북 내지 해외를 아우르는 모든 우리말과 글의 ‘문법 규범’, ‘맞춤법’, ‘표준어 규정’, ‘문화어 규범’, ‘문장부호’와 ‘표준어 발음’, ‘띄어쓰기’, ‘외국어 표기’, ‘외래어 표기’, ‘형태론’, ‘문장론’과 방언학 연구 등에 이르기까지 실사구시적인 역사관으로, 새로운 현실에 입각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개념, 범민족적인 규범, 권위적인 주석, 투철한 해석, 간단명료한 풀이에 대해일적(大海一滴)이나마 참조가 되고 만의 하나라도 도움이 되여 시비에 오른 한글·조선어·한자·한자어·한자음과 한문· 한문자·중문·중어·중국어의 개념과 새김이 새로이 규명되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우리말 지명, 인명 내지 ‘두음법칙’의 폐단으로부터 시정되어야 할 바른 글과 바른 음으로의 무수한 낱말들이 백흑(白黑)과 명암(明暗)이 밝혀짐에 일조(一助)가 되어 우리 겨레의 운명과도 같은 우리 말글이 새로이 볕을 보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아울러 언젠가는 남과 북이 함께 출판하게 될, 모든 우리말 사전(종합사전, 전업 사전을 총 포함)의 훌륭한 모체(母體)가 되고 핵심이 되고 지침이 될 『겨레말 큰 사전』 편찬에 일익(一翼)이 되기를 기원해마지 않는다.

 

본문의 착안(着眼)과 착상(着想)에 조언을 주신 한국 국립국어원, 한국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한국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한국방송공사(KBS)한민족방송 등 여러 기관, 단체 관계자 여러분들 그리고 본문의 편집과 심의 및 쇄행을 기꺼이 맡아주신 한국 하나로애드컴 출판사의 손정희 사장님께 심심한 사의를 드린다.

 

색 인 :

 

무자년 기원 2008년

 

숭례문 조선시대(600여 년 전)에 건립한 한양 도성의 남쪽 정문

 

동이문자 4500년 전 중국에서 옛적 동쪽의 외국인이라 일컫는 동이인(東夷人)의 골각문자(본문 상편 제2절 제39쪽~42쪽 참조)

 

동이한자 정음으로 옮긴 우리한문자(東夷漢字), 정음이 있기 전에는 당시의 우리 겨레 음으로 옮긴 표의적(表意的) 뜻글자에 한함

 

언문한자 동이한자를 우리 언문으로 옮긴 우리만의 한자(諺文漢字), 우리 한자어를 이루는 표음적(表音的) 소리글자

 

두음법칙 [ㄴ], [ㄹ] 소리가 낱말의 첫 음, 첫머리에 발음되는 것을 꺼려 나타나지 않거나 다른 소리로 발음되는 ‘소리현상’을 ‘표기규범(법칙)’으로(반도 남반부에만 적용되는) 규정(본문 하편 제10절 참조).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발음현상’을 ‘표기법칙’ 즉 ‘두음법칙(頭音法則)’으로 제출. 1988년 1월 한국에서 “한글맞춤법”에 ‘두음법칙’이 제정됨(본문 하편 제10절 제265쪽 참조).

 

창씨개명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성과 이름을 강제로 일본식으로 고치게 한 일. 1937년 10월 일제는 황국 신민선서를 만들어 외우게 하고 1939년 11월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을 개정하여 우리 민족 고유의 성명제를 폐지하고 일본식 씨명제(氏名制)를 설정하여 1940년 8월 10일까지 창씨개명을 결정해서 제출할 것을 강요하였음.

 

토착어 고유어가운데 한자어가 아닌 낱말.‘고유어’는 ‘토착어’와 ‘한자어’, 한자어는 ‘동이한자어’와 ‘언문한자어’로 나뉜다.

 

언어(諺語) 언문(諺文) 상스러운 나쁜 말이 아닌 아름다운 우리의 고운말 바른 글.(본문 상편 제4절 참조)

/장석주

 

일러두기

 

첫째. 본문은 1933년 몹쓸 병(‘두음현상’이라는 박테리아)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1988년 1월에 ‘두음법칙’이라는 불치의 병으로 최종 진단받고 명을 달리한 라씨, 렴씨, 로씨, 리씨, 림씨를 포함한 모든 [ㄹ]자 돌림을 앞세운 수만은 성씨 희생자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아울러 그 몹쓸 병을 강제로 물림 받아 오늘도 고통스레 살아가는 수많은 관련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본문은 그 몹쓸 병의 뿌리를 뽑고자 붓을 들었다. (본문 하편 제10절 참조)

 

둘째. 본문은 1446년에 태어나 400여 년을 어렵게 살아오다 끝내는 ‘가갸글’, ‘한글’, ‘조선글’에 시달려 명을 달리한 ‘언어’, ‘언문’의 넋을 기린다.

 

셋째. 본문은 반만년을 거슬러 고조선과 동이문화로부터 줄곧 우리 말글로 써온 우리 고유의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의 원혼(冤魂)을 불러 달래여 부활(復活), 재생, 영생(永生)토록 하고자 한다. (본문 상편 제4절 참조)

 

넷째. 본문 전편에서 새롭게 접하는 개념어와 관념어가 많을 것이다. 대표적인 실례로 ‘동이한자(東夷漢字)’와 ‘언문한자(諺文漢字)’ 등 사상 최초의 낱말들의 출현에서 필자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인 사차원세계(四次元世界) 및 다원화 시각으로 거시적 탈역사 진화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의 입장과 관점에서 상호 전승(傳承) 및 의존과 연관성 내지 창의성에 근거한 지극히 정당한 논리성 어휘임을 입증할 것이다.

 

㉮ 본문에서는 수백 년, 수천 년간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진, 역대 관청과 관아, 학계, 지난날의 반상(班常)은 물론이거니와 오늘의 유식무식자를 불문하고 고금의 모든 세인들의 관념, 개념과 견해나 주장, 더구나 나라의 법으로 제정된 규범과 규정(規定) 및 해내외의 모든 우리말 사전의 많은 올림말과 그 새김을 필자의 옅은 소견과 필부 홀로의 여린 힘으로 감히, 간신히 시정하고 규정(糾正·規正), 규명 (糾明), 규회(規誨)하려는 엄청난 큰 과제(課題)와 과업(課業)을 안은 사안(事案)이기에 필요하고 연관된 대목과 중요한 관점 내지 논거로 될 만한 문단과 구절이 같지 않은 장절에서 더러 반복, 중복된 경우가 있음을 미리 첨언(添言)하는 바이다.

 

㉯ 같은 값이면 되도록 고유어를 주장하고, 지어는 고집까지 쓰면서라도 고유어 가운데서 토착어(土着語)를 선호하는 필자이지만 본문에서만은 한자에 대한 개념을 규명하기 위하여 한자, 한자어와 한자음을 많이 다루고 정리하게 된 연고로 본문 전편의 서술에 한문자와 고사성어(古事成語)가 많음을 미리 말씀드린다. (고유어를 세분한 토착어, 일러두기 ㉱ 참조)

 

㉰ 한국의 관청과 학계와 언론, 본문에 관심을 갖고 계신 독자 여러분들의 검독(檢讀)에 편리를 드리고자 필자는 대한민국의 현행 ‘한글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에 입각하여 본문의 전편에서 부득불 본의(本意)를 꺾고 되도록 기왕의 ‘두음법칙’을 비롯한 한국의 어학(어문) 규범과 규정, 관습에 따라 서술하고, 힘써 한국의 국문과 국어 현실, 현황, 현상과 구조, 변화에 맞추어 객관적으로 기술하려고 노력하였음을 특히 부언(附言)하는 바이다.

 

㉱ 필자는 수천 년도 더 된 우리 한자어도 고유어 범주로 보고 있다. 종전의 고유어 개념을 갱신하여 필자는 본문 전편에서 고유어 가운데 ‘한자어’가 아닌 우리 겨레 낱말(종전의 사전에서 일컫는 고유어)일 경우에는 ‘토착어’로 적었다. 즉 ‘고유어’에는 ‘토착어’와 ‘한자어’가 세분되어 있고 한자어엔 ‘동이한자어’와 ‘언문한자어’가 포함되었음을 본문 제4절 제130쪽에 피력함. 필자는 본문을 유엔의 ‘세계 토착어의 해’(2019년)의 일환으로 뜻을 같이하여 토착어와 한자어를 포함한 우리의 고유어 지킴을 성스러운 성전(聖戰)으로 여길 것이다.

 

㉲ 본문 전편에서의 낱말 ‘정음(正音)’, ‘정음자’는 별도로 ‘훈민정음의 글자’라는 용어 가첨을 제외하고는 곧 오늘의 한글·조선글·언문을 의미한다.

 

㉳ 필자는 본문 서술에서 낱말 ‘조선어’와 ‘한국어’ 또는 낱말 ‘조선글’과 ‘한글’이 우리 말글로서의 똑같은 의미로 함께 표기해야 할 경우엔 해당 낱말의 선후 선택과 배열을 비롯한 인위적인 시비와 모순, 갈등, 시기 및 끝없는 쟁의와 배타적인 논란을 피하여 남과 북 내지 해외에서 모두 수긍할 수 있는 낱말 ‘정음자’ 또는 ‘언문’으로 통일함을 미리 말해둔다. 낱말 ‘한반도’와 ‘조선반도’ 역시 위와 마찬가지 연고로 낱말 ‘반도’ 또는 ‘우리 반도’, ‘반도 땅’으로 통일하여 표기하고자 한다.

 

㉴ 필자는 우리글과 타류(他流) 문자와의 혼용(混用) 표기를 반대한다. 같지 않은 문자를 마구 섞어 쓰기를 극력 반대하는 필자는 부득이한 경우 꼭 필요할 때만 조심히 괄호안에 보충으로 외국 문자를 간략하게 첨가하되, 별도로 오랜 세월 이미 우리에게 정착되고 굳어진 우리글이나 마찬가지인 아라비아숫자와 우리에게 익은 일부 외국문자와 부호, 기호는 우리에게 귀화되고 동화된 우리의 문자라는 주장과 입장을 첨부한다.

 

㉵ 필자는 본문에서 우리말과 글의 발전시기를 고대 우리말(고대 조선어-선사시대 ∼통일신라 말), 중고 우리말(중고 조선어-신라의 멸망∼고려 말), 중세 우리말(중세 조선어-조선왕조의 건립∼임진전쟁 이전까지), 근대 우리말(근대 조선어-임진전쟁∼갑오경장 이전), 현대 우리말(현대조선어·현대한국어-갑오경장∼현재)로 구분하며 본문에서 별도로 시대나 시기를 밝히지 않으면 바로 현대조선어·현대한국어를 가리킴을 미리 명시해 둔다. (‘조선어’와 ‘한국어’의 유래 및 공통점과 다른 점은 본문 상편 제5절 참조)

 

㉶ 본문 전편에서 사용한 ‘우리말’, ‘우리글’, ‘한글’과 ‘한국어’, ‘조선글’과 ‘조선어’, ‘국어’ 또는 ‘겨레말’과 ‘겨레 글’, ‘우리 한자’, ‘우리 한자어’, ‘우리 한자음’ 등 표기와 표현들은 논술의 편의상, 필자의 국적에 무관하게 범 한민족·조선민족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말과 글을 아울러 이르는 것이고; 일부 장절에서 사용하는(별도로 밝히지 않은) ‘외국어·외래어’라는 낱말은 필자의 국적과 관계없이 한국·조선의 입장 내지 각도에 서의 외국어·외래어(필자가 본문에서 논술하고자 하는 필자의 모어 한국어·조선어에 상대한 것)이며; 그리고 본문 서술에서 언급된 ‘인종’, ‘민족’, ‘동포’, ‘겨레’, ‘우리’, ‘모국’, ‘조국’, ‘국민’, ‘공민’의 개념은 한국의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 의 해당 낱말 새김을 기준으로 하였으며; 본문에서의 ‘고국’이라는 표현은 우선은 한국의 『표준국어대사전』의 해당 낱말 [고국(故國)]①의 새김을 뜻하며 더러는 낱말 [고국(古國)]①②의 주석을 뜻하고; ‘우리 민족’ 또는 ‘우리 겨레’는 ‘배달민족·백의민족·한민족·조선민족·조선족·조선인·고려인·한인’을 의미함을 특히 성언하는 바이다.

 

㉷ 무릇 중국 경내의 여러 소수민족 언어(토착어)와 문자 및 남북의 서로 다른 방언, 동서지역의 서로 다른 심한 사투리도 역시 광의적으로는 모두 ‘중국의 말’이고 또 한 ‘중국어’, ‘중국 글’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본문 전편에서 별도로 중국의 소수민족 언어와 문자 및 방언 취급을 제외하고는 통상 ‘중국어’, ‘중문’, ‘중어’를 다만 중국의 현재 공식 관용문자인 ‘한문자(漢文字)’와 ‘한어(漢語)’에 만 귀결함을 미리 명시해드린다.

 

㉸ 필자는 서술의 편의성을 기하여 역대와 시대의 특별한 구분을 제외하고는 본문에서 통상 삼황·오제시대를 시작으로 하나라·은나라·주나라·춘추 전국시대·진(秦) 나라·한나라·삼국시대·진(晉)나라·남북조시대·수나라·당나라·오대(五代)·송나라·원나라·명나라·청나라·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을 통틀어 ‘중국’으로; 또는 특정된 역대나 시대를 밝히지 않았을 때도 ‘중국’으로 일컫고자 한다. 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식국호(正式國號)∙공식국명으로서의 ‘중국(中國)’은 없고 다만 약칭(略稱)으로서 ‘중국’일 뿐이다.

 

㉹ 필자는 본문의 주제를 우리말과 글의 백흑을 밝히기 위함에 한정하고자 인류 4대 문명보다 앞선 홍산문화(紅山文化)로부터 동이문화(東夷文化), 용산문화(龍山文化), 배달문화(倍達文化)와 고조선(檀君)문화 등 각 시대별의 역사적인 문화 특징과 현상에 대한 진술 및 상호 전승(傳承), 역할 내지 오늘에까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생략한다. (천원지방설, 곰 토템, 환웅족, 삼족오 숭배, 천지인 삼재를 본뜬 훈 민정음의 모음, 팔괘와 태극문양 등 참조)

 

차 례

 

■ 머리말 ------------------4

■ 일러두기 ---------------26

■ 찾아보기 -------------- 30

 

 

상 편

 

한자와 한자어, 한자음의 진상 규명--36

1. 한자 문화권에서 한자의 역할 -- 55

2. 한자의 유래, 훈민정음 재조명, 한자와 한자어의 사전새김-- 68

3. 우리말 현실에서 쓰이고 있는 한자, 한자어와 한자음 -- 89

4. 바로 정립한 한자개념 및 그 주석새김과 풀이-- 121

5. 한문, 중문, ‘북한’, ‘남조선’, 한글, 조선글에 대한 사색--162

 

하 편

 

바로 잡아야 할 개념, 법칙, 규정, 규범, 새김, 원칙과 기준-- 186

6. 외래어 표기법에서 규범화해야 할 용어-- 189

7. 분명한 계선이 없는 역사와 현재, 과거와 현대의 구분-- 201

8. 같은 문화권에서 관용의 필요성-- 214

9. 음운법칙과 어음순화를 무시한 표기 규정 -- 243

10. 두음법칙에 일그러진 우리말과 우리글-- 270

11. 뿌리 없는 인명 표기는 후환만 가득-- 307

12. 잘 지켜온 표기 원칙과 규범 사례-- 320

13. 외국어와 외래어 귀화 및 순화를 다그치는 모식-- 361

14. 외국어와 외래어의 구별 및 우리말의 어폐-- 373

15. 서울-SEOUL-수이-首爾-shouer-서우얼에 대한 단상-- 400

16. 천자문-만자문(萬字文)-잡탕문(雜湯文)-- 414

 

■ 권말별첨 - 훈민정음(訓民正音)

1. 훈민정음(訓民正音) 서문 -- 456

2. 훈민정음의 다른 한 해례의 일부 -- 461

 

■ 맺음 시

운명, 종소리 --- 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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