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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09/04 풀잎

동네화제

S촌 사람들은 거지반 이 마을에서 20년씩 살아온 토배기들이다. 그들은 모이면 한담하기를 즐기는데 이야기하는 사람은 정색해서 하고 듣는 사람은 귀담아 듣는다. 또 집에 돌아가서도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집식구들과 한두마디씩 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구수하게 엮어서 집식구들은 식후의 한 일거리로 여긴다.

근일에 또 새로운 이야기거리가 나졌다. 그것은 동네 제일 북쪽줄의 맨 아래집 맏아들이 주인공이 되였다. 주인공은 올해 25세나는 이철수라는 청년이다. 양친부모에 외할머니가 계시고 동생 둘도 공부를 그만두고 농사일을 하여 그의 뒤를 댄다. 이것이 동네 “여론계”의 파문을 일구었다.

올해 “5.4”청년절에도 규례대로 청년들은 술놀이가 벌어졌다. 술이 몇순배 돌자 화제는 자연히 철수에게로 돌아갔다.

“나이 스물다섯살에 공부한다는건 거짓말이야. 지금 혹간 소설을 봐도 이름 하나 기억못하겠는데.”

“애기 아버지”라 불리우는 철진이가 서두를 떼였다. 24살인 철진이는 벌써 첫아이의 돐이 오래지 않았다.

“글쎄 말이다. 아예 농사질 하기만 하니. 동생들 보기도 미안하지 않은지.”

민병련장 청수가 이렇게 말하자 이야기는 철수를 머저리라는지 영웅이라는지 도대체 무엇이라는지 알수 없게 되여간다. 그 다음 다시 시작되고 멋없이 끝이 난다.

그후 파종철이 끝난 어느날, 논머리에 오고가는 사람들이 우연히 모이다 나니 10여명이 잘되였다. 이야기는 또 철수를 에워싸고 벌어졌다. 부모도 모르는 망할 놈 이요, 어떨궁 해서 다니오, 별의별 말이 다 있었다.

“철수 정말 대학 가면 내 손바닥에 장 지지겠다.”

“그러다 가면?”

“그 세멘트 골을 누가 몰라. 고중 갈 때도 수학, 한어를 겨우 60점 맞았어. 흥!”

이렇게 의론은 열렬했지만 누구 하나 격동되지 않았다. 때가 되니 모두들 그저 멋없이 헤여졌다.

농약칠 철이 되자 동네화제는 철수를 두고 180도로 돌아갔다. 철수가 대학에 입학한것이다.

“내 그럴줄 알았다니. 나와 한반에 다닐때부터 숙제를 꼭꼭 자기절로 했다니. 그때부터 뭘 해먹을 놈이라구 했더니.”

초중동창생인 종철이가 말하자 청수가 받는다.

“고중에 가서도 정치과 대표질을 했다. 그때부터 공부를 잘했어.”

고중을 한달가량 다녔던 청수는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었다.

“원래 아 대틀이더군. 그집 아주머니 그렇게 깽깽 거려도 책을 턱 쥐면 놓지 않는단 말이야.”

저쪽의 어른들속에서 철수네 아래집 나그네가 께끼자 좌중에는 웃음판이 벌어졌다. 이렇게 되니 여러군데 이야기판은 한군데 모인다. 저녁이 되여 어린애들이 어른들을 찾아와서야 이야기판은 파하군 한다.

며칠 지나지 않아 철수 외할머니가 중풍에 걸려 철수가 왔다가게 되였다. 오는 길에 현성에서 공부하는 연화를 우연히 만나 같이 오게 되였다.

연화는 무남독녀로 곱게 자라났다. 그런데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체격이 쭉 빠진 연화에게 벌써부터 눈독을 들이는 청년이 적지 않았다. 올해 20살인 연화는 활발하고 낭만적이였다.

그들은 마을까지 함께 걸어오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의 우연한 동행이 뭇사람들의 눈에서 벗어나지 못한것은 둘째이고 신비하게 보여져 그속의(아무것도 없는 그속의) 비밀을 들추려 하였다.

연화가 집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기뻐하면서 인사도 받을념을 하지 않고 딸만 주시하였다. 연화는 무엇하여 얼굴까지 붉히였다.

“어머니, 원 일이세요?”

“철수도 좋지, 당당한 대학생이니.”

연화 어머니는 제나름에 흥분속에 포근히 잠겨있었다.

“어머니는 무슨 말씀을 하세요? 철수는 사범학교에 갔어요. 졸업하면 선생이예요.”

연화의 해석을 들은 연화 어머니는 얼굴이 대뜸 퍼래지더니 냉냉해서 말했다.

“안돼. 훈장의 똥은 개도 안 먹는대. 너 정신이 있니?”

더욱 벙벙해진건 연화였다.

“뭐 그래요?”

“너 철수와 그렇지 않니?”

“아니요!”

“오--, 그럼 됐다. ”

연화 어머니는 “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이쯤 철수도 집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먼저 할머니에게 인사를 올리게 하고는 정지간으로 끌고내려와 따지고 들었다.

“어디 못나서 농촌 계집애를 보구 다니니?”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하는 어머니의 물음에 철수는 어리둥절하여 어머니를 머룩머룩 쳐다만 보고있었다.

“요사한 년이지. 네 오는것은 어떻게 알구서 살살 기여드니?”

그제야 어지간히 짚이는데가 있어 철수는 시무룩히 웃었다.

“허참, 어머니도. 오다가 우연히 만나서 함께 왔는데 왜 이럽니까? 연애라도 했으면 죽이자겠습니다.”

“그런걸 나는 공연히…”

“참, 별 근심을 다 합니다. 농촌처녀면 뭐라 합니까?”

“뭐… 뭐라니? 안된다. 안돼! 요사한 년한테 정신을 빼우기전에 내일 당장 학교로 가거라.”

철수 어머니는 노기등등하여 언성을 높였다.

이튿날 철수는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집문을 나섰다. 어머니도 뒤따라 나왔다. 마침 고모네 집에 와서 놀고 가던 연화를 만났다.

“이렇게 인차 가요? 며칠 놀지 않구요.”

연화가 상긋 웃으며 먼저 말을 건넸다. 철수는 그를 기다려 함께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바심이 난 철수 어머니는 재촉했다.

“철수야, 차시간이 되겠다.”

“근심 마세요. 아직 시간이 많습니다.”

(요사한 년, 누구를 홀리려고.)

철수 어머니는 괘씸한 생각을 누르며 철수에게 눈을 흘기였다.

연화 어머니가 빨래를 널다가 연화와 철수를 보더니 흠칫 놀라며 연화를 불렀다.

“연화야, 어서 와서 빨래를 헹구어라.”

“네.”하고 대답한 딸은 그냥 서서 이야기하는것이였다.

(미친 놈, 그 눈에도 고운게 알리는 모양이군.)

연화는 어머니가 또 다잡아 재촉해서야 집으로 들어갔다.

저녁에 연화 아버지가 푸르뎅뎅해서 집에 들어서더니 연화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 년아! 애비에미 뼈 빠지게 벌어서 학교에 보내니 무슨 지랄 했니?”

“어쩄다구 이러오? 야단스레.”

연화 어머니가 말리였다.

“저리 비키오. 조꼬마한 계집애가 동네를 웃기면서. 말해! 무슨 지랄 했니?”

난생처음 당하는 일이라 더구나 알고도 모를 일을 가지고 무엇을 말하란 말인가? 연화는 공포에 떨려 울기만 하였다.

연화는 집에서 쫓기워나 한동네 고모네 집으로 피신갔다.

이때 동네에서는 새로운 뉴스가 시작되였다. 철수와 연화가 연애한다. 인제는 못 갈라질 사이다. 부모들이 뜯어말리려 한다. 그래서 철수가 열흘 말미를 얻고 왔는데도 이튿날로 돌려보냈다.

이른 아침, 연화는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대수 문지르고 고모네 집에서 나섰다.

“연화, 어째서 이리 축갔니? 앓지 않니?”

길에서 두부방으로 가는 송씨네 며느리는 연화의 얼굴에서 무엇을 찾으려는듯 마주서서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연화는 그 눈길을 피하려고 머리를 젖히고 제 갈길을 걸었다.

두부방에 이른 송씨네 며느리는 두부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발견을 공포하였다.

“에그. 연화가 학교에 가더니 영 축갔습데.”

“글쎄, 엊저녁에 고모네 집에 와서 그렇게도 섧게 울지 않겠소.”

“철수와 그렇다며.”

내 한마디 너 한마디 끝이 없다.

“지금 젊은이들은 속잔치를 먼저 한다며.”

연화도 일약 철수와 같은 위치에 놓여 동네화제에 올랐다.

연화가 인공유산을 했다. 철수의 이번 걸음은 우정 이 일을 처리하려 왔다. 부모네도 동의했다. 연화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철수가 연화를 얼렸다. 인젠 싫다고 하니 연화는 매일 집에서 운다. 철수가 좋다는것을 철수 어머니가 막는다.

연화는 지탱못하고 쓰러졌다. 음식을 전페하고 헛서리만 친다. 학교도 못가게 되였다. 연화 어머니는 의사를 청한다고 야단쳐도 연화 아버지는 속이 상하여 밖에 나가서 술만 마시고 집에 들어와서는 성질만 썼다. 그러니 연화의 병은 점점 더해만 갔다.

철수 어머니는 철수가 떠난지 열흘도 되나마나했는데 세번이나 편지를 썼다.

농촌여자를 얻어서는 절대 안된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내 아들이 아니다. 정말 농촌여자와 결혼하면 나는 죽고말겠다. 이러루한 말을 중복하고 또 중복하였다.

연화는 드디여 큰 병원으로 실려갔다.

연화가 병원으로 떠나는 날 길목마다 모여선 사람들이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가엾게 여겨 처음엔 몇마디씩 주고받던것이 좀 지나자 실 끊어진 구슬처럼 줄줄 흘러나왔다.

여자들이 저런 병에 쉽게 걸린다는둥, 철수가 저런 처녀와 살면 머저리라는둥 철수 책임이 크다는둥 저런 병은 후대에게 미친다는둥.

생사람이 죽어가도 동네화제는 더욱 열렬해져 누구누구네 가마목에서도. 길목마다에서도, 향소재지 뻐스정류소에서도 연화 소식을 묻는가 하면 또한 모르는 사람에게 상세히 알려준다.

/김학수 (1984년 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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