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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11/01  정명선
어머니의 길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한평생을 자식만을 위해 행복이란 두 글자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오직 고생을 락으로만 알고 살아온 어머니의 갖은 풍상고초와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한번 글로 적어 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는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압박과 책임을 느끼고 마침내 필을 들게 되였다. 왜냐하면 금년에 세수 83세의 고령을 톱고 있는 어머니에게 인생의 종착역도 인젠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도 어머니 살아생전에 당신이 걸어온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꼭 글로 써서 세상에 알리는 것도 역시 자식으로서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해주 오씨인 당신은 시골에서 태어났고, 시골에서 자랐고. 시골에 시집을 갔고, 지금도 시골에서 살고 계신다.

 

당신이 16세를 먹던 나이에 3대독자인 양천허씨의 남편(나의 생부)에게 시집오는 첫날부터 당신의 고생문은 서서히 열리게 되었다. 고태와 변덕이 많고 거기다가 성격까지 괴벽스러운 과부시어머니의 겨울 추위처럼 매운 시집살이와 그 설음, 집안에 서발 장대기 휘둘러도 거칠게 없는 가난한 살림살이를 16세의 어린 나이에 감내하기가 버거웠지만 당신은 혼자 눈물을 삼키며 묵묵히 달래며 가난한 살림을 영위해 갔다.

 

시집오던 해에 큰 누나를 낳으면서 그 뒤로 우리 7남매를 낳았다.

 

내가 2살을 먹던 해 봄, 지금으로부터 57년 전의 일이다. 당시 마을에서 지부서기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지탑을 잡고 논밭을 갈다가 뇌졸중으로 논두렁에 넘어간 것이 영영 눈을 감아 버렸다. 그때 아버지의 나이는 겨우 39살이고, 당신은 꽃 같은 35세의 나이에 청춘과부로 되었다.

 

자식을 앞세운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살기를 포기한 외할머니도 연속 10일 동안 밥 한술, 물 한 모금 넘기지 않고 단식을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서 10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 당신 한 몸에 올망졸망한 우리 8남매의 목숨이 거미줄처럼 달라붙었다. 그때 현 중학을 다니고 있던 제일 큰 누나가 17살 이였고 태어난 지 1달이 되는 막내 동생이 있었다.

 

원체 째지게 가난한데다 하루아침에 집안의 일가 지장이고 기둥처럼 믿고 살던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에 당신은 눈앞이 칠흑처럼 캄캄했고 앞으로의 살길이 막막하기만 하였다.

 

몇날며칠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눈물만 쏟아 붓던 당신은 어느 날부터 더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당시 당신이 우선 생각한 것은 당신까지 맥을 놓고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은 차리라고, 어떤 어려운 역경에서도 당신이 정신을 차리고 우리 8남매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신은 굳센 의지와 모성으로 뼈를 악물고 일어섰던 것이다.

 

당신은 갓 난 동생을 업고 생산대 일을 하면서 남들이 모두 쉬는 쉴 참에도 쉬지 못하고 논두렁이나 용수로, 배수로에서 땔나무를 긁어서 저녁이면 머리에다 한 짐씩 이고 다니며 화목을 해결했고, 밤이면 대대(촌)와 공사(향)공작대에서 투기모리라고 못하게 하는 양털을 가만가만 집어 뜯어서 밤새도록 실을 뽑아 조끼나 내복을 떠서 60~70리길(당시 시골에 뻐스가 없었음)을 걸어서 한족마을을 다니며 팔아서는 어려운 살림에 보탰다. 그러다 보니 당신은 늘 밤을 새우기가 일쑤였다.

 

큰 누나도 더는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어머니를 도와 생산대 일에 나갔고 어린 동생들도 돌봐야 했다.

 

당신은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아글타글 애를 쓰고, 발버둥을 쳤지만 우리 집은 먹고 살기가 점점 힘들었다. 우리 집 형편을 옆에서도 보기가 너무 딱했던 마을 사람들은 당신에게 그 많은 자식을 고생스럽게 혼자 끌어안지 말고 잘사는 집에 주라고 했고 청춘과부로 있지 말고 일찌감치 자리를 옮기라고 여러 번 권했다. 그러나 모성애가 강하고, 어떻게 하나 우리 8남매를 당신이 꼭 키우겠다는 당신의 강인한 의지와 굳센 신념에는 한치의 동요도 없었다.

 

어린것들이 점점 크면서 가난한 집 아이들이 먹성도 크다고 당시 우리 집은 먹을거리가 제일 큰 문제였다.

 

그 세월에 생산대에서는 공수에 따라 양식을 분배하였는데 어머니와 큰 누나가 버는 얼마 안 되는 공수로 분배받는 양식도 얼마 안 되여 식솔이 많은 우리 집은 해마다 보릿고개도 넘기지 못하고 쌀독이 거덜이 났다.

 

당신은 양식을 조금이라도 더 불리려고 한족들과 입쌀 1근에 옥수수쌀이나 옥수수가루를 2근, 혹은 2.5근씩 바꿨다. 그래서 우리 집은 설 명절 때나 집에 귀한 손님이 오거나 누가 생일이면 그나마 하얀 입쌀밥을 구경할 수 있었고 늘 깔깔한 궈태(옥수수가루 떡)와 옥수수밥, 옥수수 죽을 먹었다, 그래도 우리 집은 늘 식량이 모자라 당신은 자식들의 먹거리 장만에 사시장철 신고를 다 하였다.

 

당신은 늘 손바닥만 한 앞뒤 뜨락과 논밭 머리에 일군 자류지에다 감자와 옥수수를 깨알같이 박아 넣었고, 봄이면 사람이 먹어서 죽지 않을 들나물과 산나물을 모두 뜯었고, 겨울이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북방의 혹독한 추위를 무릅쓰고 한족 밭에 가서 눈 속을 파헤치고 사탕무우 잎과 옥수수이삭을 주었다. 그리고 살얼음이 깨지는 위험을 감수하며 늪가의 얼음을 깨고 조개를 건졌다.

 

그 때, 그 시절, 한겨울 눈보라에 휘날리던 당신의 머리카락과 추위에 얼고 갈라터진 두 손을 떠올리면 지금도 코마루가 찡해난다. 그때 우리 8남매가 굶어죽지 않고 산 것은 모두 당신의 덕 이였다.

 

이렇게 당신은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살아 오셨지만 단지 자식을 먹여 살리고 키우는 데만 신경을 써온 것이 아니라 그 바쁘고 힘든 와중에서도 때론 자식사랑이 넘치는 모성으로, 때로는 칼날 같은 겨울추위 같은 매서운 회초리로 당신의 소신과 존엄을 소중하게 지키면서 자식들에 대한 교육만은 아주 엄했다.

 

당신은 늘 자식들에게 절대 거짓말과 도적질, 남에게 피해가 되는 일, 말과 행동거지에서 옳고 그름을 다그쳤고, 요구도 엄했다.

 

한번은 내가 소학교를 다니던 그해 여름 이였다. 하학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허기증에 다리가 휘청거렸다. 식장과 가마뚜껑을 열어 봐도 먹을 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집 뒤에 있는 텃밭으로 들어간 나는 먹을 것을 찾았지만 초여름이라 먹을 만한 것이 없었다. 내가 이웃집의 밭을 건너다보니 먹음직한 오이가 보였다. 나는 이웃집의 바자를 넘어 들어가 오이를 4개 따서 먹고 나오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어머니에게 현장에서 잡히고 말았다. 나는 그날 평생에서 잊지 못할 호된 매를 맞았다. 그날 이후로부터 나는 다시는 남의 물건에 손을 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오늘까지 살아왔다. 어머니의 매가 나에게 사람 되는 도리를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지금은 우리 8남매는 모두 시집장가를 가고 자식들도 모두 커서 시집장가를 가서 풍족한 생활을 누려가지만 대신 어머니는 머리가 백발이 되고 허리도 굽으셨고 밭고랑처럼 깊게 패인 주름주름에 오직 고생만을 겪으며 살아온 당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만 남았을 뿐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젠 손자나 증손녀를 보면서 복을 누리라는 자식들의 간곡한 부탁에도 마다하고 해마다 마을 밖의 자류지를 다루고 텃밭의 일을 도맡아 하시고 주방 일까지 도와주고 계신다.

 

내가 한국에서 14년이나 있으면서 '노가다'판에서 때론 너무도 고달프고 힘들어 몇 번이고 집으로 가려고 하다가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군 했고 결국 14년을 견지하게 되었다.

 

금년에 92세 고령의 어머니가 살아온 인생길은 오직 자식을 위한 고난의 길이였고 여성의 길보다 어머니의 길을 택한 모성의 길이였으며 언제나 자식들에게 자기의 엄한 모습과 신근한 노동으로 본보기를 보여준 보람찬 삶이였고 자식들에게 마음의 언덕 이였다.

 

하여 우리 8남매는 지금도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을 교육할 때면 어머니의 인생사를 말하면서 인간이 살아가는 도리를 배워주곤 한다.

/수원시 허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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