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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9/03/28  초원이
끄릴로브의 우화는 죽지 않았다

                                                                                    류성진

 

이완 안드레예위치 끄릴로브는 로씨야의 우화를 창조한 걸출한 작가이다. 그는 1809년부터 1843년에 이르는 사이에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들을 창출함으로 하여 뿌쉬낀이 말했듯이 “가장 민족적이고 가장 통속적인” 사실주의적문학가로 꼽히게 되였다. 그는 또한 철저한 애국주의자로서 1812년 조국보위전쟁시기에도 당시의 중대한 사변을 반영하는 우화들을 써냈다.

 

《끄릴로브우화》란 이 책은 1979년에 오암선생의 손에 의해 중문으로 번역되여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작품집이기도 하다. 나는 편편의 문장들에서 끄릴로브의 첨예한 안광과 투철한 정치두뇌에 탄복을 금치 못하였다. 어찌 보면 당년의 그릇된 사회현상에 대한 신랄한 폭로와 비판으로도 되겠지만 그의 우화가 갖고 있는 의의는 여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는 인간성과 량심을 떠난 것, 그리고 비도덕적인 것들을 풍자하고 조소하면서 반면적인 면으로부터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주려고 노력해오지 않았나싶다. 나는 아래에 두편의 문장에 대해서만 말하려 한다.

 

첫 작품은 제목이 〈통 두개〉이다. 한통은 술이 꼴딱 찬 통이고 다른 한통은 텅 빈 통이다. 두 통이 굴러가는데 술이 들어있는 통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는데 빈 통은 어찌나 요란한 소리를 내는지 길손들은 황황히 자리를 비켰다. 그러나 빈 통이 아무리 요란한 소리를 낸다 해도 그의 가치는 술이 든 통에 비길 수 없는 것이다. 실속은 없고 허장성세를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따끔히 옆구리를 찔러준 우화가 아니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고 목대를 세우는가 하면 일에 착수하기 전부터 자랑질에 이골이 튼다. 티끌만한 일을 해놓고서는 사람들이 못 알아줄가 봐 나팔을 울리고 앉은 데 선 데 희떠운 소리를 쳐서 남들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실상 끄릴로브가 말했듯이 빈 통의 가치 밖에 안된다고 나는 한마디 하고 싶다.

 

이 면에서 공자는 일찍 우리한테 명지한 교시를 한 적 있었다.

 

“군자는 말이 적고 행동이 민첩하다.”

 

“군자는 말이 행동보다 앞서는것을 부끄러워한다.”

 

겸허하고 신중하며 빈소리를 하지 않고 실사구시하는 것은 중화민족의 우량한 전통이자 미덕이다. 나라의 흥성과 발전은 과학적인 사로와 지혜, 그리고 신근한 로동에 의하여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허풍치기, 나팔불기는 이미 시대에 밀려난 찌꺼기로 되고말았다. “빈 통”은 인제 력사무대에서 물러갈 때가 되였다. 지식이 폭발하는 시대, 정보시대, 도전의 시대, 경쟁의 시대, 새천년을 넘어선 오늘에 와서 허풍치기는 완전히 설자리와 배길 자리가 없게 되였다. 사람마다 행동으로 말하고 진실로 말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현실에 시각을 돌리고 한번 쯤 랭정한 사고를 거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가? -바다의 깊음을 닮아라, 태산의 침묵을 본받으라. 다른 한편은 제목이 〈알케티우스〉였는데 이 글에서는 알케티우스가 길을 가다가 좁은 오솔길에서 무엇인가 조그마한 것이 고슴도치처럼 옴츠리고 있는 것을 보고 짓밟고 뭉그러뜨리려고 했다가 그것이 밟힐 때마다 배로 커져, 그러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거대한 물건으로 변하여 그가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까지 막아버렸다는 내용으로 엮어졌다. 그 때 희랍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녀신인 아테나가 그한테 귀띔을 해온다.

 

“이 괴물의 이름은 증오라 해요… 만약 오빠가 그것을 짓부셔버리려고 때리면 때릴수록 그것은 더욱 무섭게 커져 하늘마저 까맣게 가리워버릴 거예요.”

 

남을 함부로 증오하지 말라는 충고로 받아들이면 어떨가? 내가 남한테 하나의 상처를 주게 되면 그 상대는 열배로 아파하며 그 열배가 되돌아올 때는 그것이 다시 커져 백배로 된다는 설도 있다. 미움을 버리자, 마음만 너그러이 가지면 버리지 못할 미움이란 없지 않을가?

 

우의 두편의 우화는 우리한테 유익한 계시를 주고있는 바 잘 명기해두면 좋은점이 있을 것이다. 끄릴로브의 우화는 죽지 않았다. 그는 오늘에 살고 있는 세대들에게 아니, 래일에 살아갈 후세들한테도 의연히 하나하나의 철리를 가르치는 교과서와도 같은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약은 먹을 때는 쓰지만 먹고나면 병이 떨어지기에 그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게 된다. 이같이 훌륭한 우화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잔류해있는 불건전한 것들, 병적인 것들, 기형적인 것들을 치료하는 효험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우화읽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나한테도 치료해야 할 “병”이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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