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리현조선족중학교 고중 1학년 리흔
우리 엄마는 목소리가 곱지 않습니다. 또 노래도 잘 부르지 못합니다. 그런데 타령 하나만은 잘합니다. 엄마의 “잊지 말고”는 엄마가 곡이 맞지 않게 부르던 노래처럼 때로는 맹목적이고 말틀에 맞지 않습니다. “잊지 말고 공부하는 거 잊지 말라.”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런 말들을 그렇게 정색해서 하실 때도 있습니다. 나는 듣다못해 “어머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틀립니다. 잊지 말고… 잊지 말라 하시면 대체 어쩌라는 말씀입니까?”라고 하면 “그래, 알았다. 이 계집애, 좀 배웠다구 엄마 흉을 보는구나. 그래그래 , 잊지 말고 공부나 잘해.” 하면서 또 “잊지 말구” 타령이십니다.
여름방학이였습니다. 나는 친구들과 남산에 놀러 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엄마가 온 아침 정성을 담아 갖춘 도시락에는 맛갈스러운 김밥이 골똑 담겨져 있었습니다. 어쩌면 저렇게도 색갈을 곱게 맞췄을가? 파랑 오이, 노랑 닭알, 빨강 쏘시지, 하얀 밥, 보기만 해도 군침이 슬슬 돕니다. 가방에는 또 바나나, 포도, 사과, 파이내플 등 여러가지 과일이 내가 들기 어렵도록 그득 담겨져있었습니다.
“엄마, 정말 고마와요.”
나는 엄마의 뒤잔등을 꼭 껴안았습니다.
“오냐, 잊지 말구 친구들과 나누어 먹어.”
“예. 예. 예.”
나는 또 “잊지 말구” 타령이 시작되는구나고 생각하며 아예 한꺼번에 다 대답해버렸습니다.
약속대로 친구들이 우리 집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웃고 떠들며 집문을 나섰습니다.
“얘들아, 잊지 말고 산에 가서 조심들을 하거라.”
“예.”
우리는 다같이 대답했습니다.
“잊지 말고 도시락을 잘 건사해”
“잊지 말고 일찍 돌아와야 돼.”
“잊지 말고…”
옆에 있는 친구들이 이상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속으로 나를 웃고 있는게 틀림없었습니다. 나는 애들 보기가 부끄러웠습니다.
(세 살짜리 어린애도 아닌데…)
나는 몸을 홱 돌리며 “어머니!” 하고 소리를 높였습니다.
“응, 알았어. 재미있게 놀구 와. 잊지 말고…”
엄마의 “잊지 말고”를 뒤등에 남기고 우리는 왁자지껄이며 엄마의 시선에서 멀어졌습니다.
친구의 생일날이였습니다. 친구는 저녁에 음식점에 가자고 했습니다. 나는 엄마한테 어떻게 청가 맡을가 궁리했습니다. 언제나 걱정이 태산 같은 엄마가 내가 저녁에 늦게 돌아온다면 또 잔소리가 끝이 없을겁니다. 하지만 먼저 생일선물을 받은 내가 의리 없이 생일파티에 참가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엄마한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로 했습니다.
“엄마, 저녁에 친구 생일이여서 저녁밥을 집에서 안 먹겠어요.”
“그런 모임에는 안 가도 되지 않니? 죄꼬만 애들이 뭐 음식점에 간다고 까불어.”
“어떻게 안 갈수 있어요? 내 생일에는 선물도 다 받았는데. 엄마, 생일선물 사게 돈 50원 줘요.”
“뭐? 죄꼬만것들이 통도 크다. 안돼.”
“다른 애들은 다 가는데요. 엄마 좀스럽게 그러시지 말구 빨리 줘요. 학교 늦어집니다.”
“10원만 줄게, 너 알아서 해. 그리구 잊지 말고 저녁에 일찍 들어와야 한다.”
“알았어요. 매일 ‘잊지 말고’, ‘잊지 말고’ 귀찮아요.”
나는 입이 한발 나와 집을 나오며 문을 콱 닫았습니다.
“저놈 계집애, 어디서 하는 본때야. 못 들어와?”
성이 몹시 난 엄마가 달려가는 나의 등에 대고 소리쳤습니다. 나는 못 들은척하고 더 빨리 달렸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나는 엄마를 보자 생일파티에서 무안하던 일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다른 애들은 값지고 보기 좋은 선물을 내놓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해서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었었습니다. 또 매일 마다 귀 따갑게 들려오는 “잊지 말구”가 오늘따라 더 싫었습니다.
“엄마, 저도 인젠 16살입니다. 자기 일을 절로 할 수 있구요. 오늘은…”
말이 목구멍까지 막 올라왔는데 어머니의 타령이 또 들려왔습니다.
“얼른 씻고 방에 들어가 공부해라.”
“알았어요. 알았어요. 듣기 싫게. 나절로 하지 않을가봐요. 잔소리할망구처럼 끝이 없어요.”
그리고는 방에 들어와 문을 콱 닫아버렸습니다. 멍해서 나를 쳐다보는 엄마의 시선을 “쾅!” 하는 문소리가 끊어버렸습니다. 엄마의 욕설이 쏟아지려 생각했는데 생각밖으로 바깥방은 매우 조용하였습니다. 금방까지 씩씩거리던 나는 나의 무례한 행동에 아무 말도 없으신 어머니가 이상하게 생각되였습니다. 하도 이상하여 문틈으로 내다보니 엄마가 잠자코 쏘파에 앉아계시는 것 이였습니다. 얼굴에서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이 몹시 상하신 모양입니다.
나는 금방 했던 행동이 너무 한것 같았습니다. 잘못했다고 사과해야겠는데 말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석고상처럼 꼼짝 안하고 앉아계시는 엄마가 너무 안됐습니다. 그날 저녁 난 오래도록 뒤척이다가 늦게 잠들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학교에 갈 때 매일같이 부르던 타령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기분이 좀 이상해났습니다. 가슴이 텅 빈 것 같고 무엇인가를 집에 두고 온 것 같았습니다. 가방을 뒤져봐도 빠진 것은 없었습니다.
(엄마, 화 많이 나셨지요.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용서해주세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엄마에게 미안했습니다.
점심에 집에 돌아와 엄마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았습니다. 엄마는 여느때 처럼 환한 얼굴을 하고있었습니다. 나는 죄진 사람처럼 머리를 수굿하고 밥만 부지런히 떠먹었습니다.
“빨리 일어나. 학교 늦겠다.”
어머니의 부름소리가 점심 잠을 자는 나를 깨웠습니다. 나는 허둥대며 신을 신고 문을 나섰습니다.
“잊지 말고 열쇠를 가져 가.”
귀에 익은 소리가 등뒤에서 울려왔습니다. 그 말씀이 그렇게 정답게 느껴졌습니다.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를 내려놓은 듯 한숨이 후― 나왔습니다. 걸음이 가벼워지고 코노래가 절로 나왔습니다.
나는 지금도 매일 엄마의 타령소리를 들으며 삽니다. “잊지 말고…”, “잊지 말고…” 때로는 짜증이 납니다. 그러나 듣지 못하는 날에는 가슴 한구석이 빈 것 같습니다. 비록 아름다운 목소리가 아니지만 이 타령 속에서 나는 성장합니다.
http://www.hmzxinwen.com/news/19857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Powered by Newsbuild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