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옛 고향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살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굿불굿 꽃대궐 차리인동네

그 속에서 놀던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나는 내가 나서 자란 내 고향 ㅡ조양마을을 사랑한다.

 

삼면이 보호병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양지바른 흑룡강성 목릉시 조양 마을은 전형적인 오붓한 아름다운 조선족 마을이다.

 

봄이 오면 서산 절벽산에는 살구꽃과 진달래가 울긋불긋 곱게 피여나고 동쪽산 아래로 목릉하가 유유히 흐르고 북산 아래 작은 강이 흐르고 강변에는 수양버들이 휘늘어져 하늘거리고 마을 앞 남쪽에는 논밭이 쫙 펼쳐져 있어 멀리 팔면통시의 고층건물들이 한 눈에 안겨 왔다.

 

지난 9월 13일, 나는 한국에서 중국에 도착하자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에 고향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는 길에 어느새 어린 시절의 일들이 떠올랐다.

 

조양마을은 담장 없이 줄 집으로 이어져 있고 집마다 문 잠그는 법이 없었다. 이웃끼리 마치 한 집안처럼 사이좋게 지내며 좋은 일 궂은 일 모두 서로 도우며 끝까지 봐 주군 하였다.

 

어느 집에서 막걸리나 청주를 하면 남정들은 바닥이 날 때까지 매일 마셔 준다. 해마다 설날이 오면 아침을 맛나게 드시고 난 아버지들은 마을에서 연세 많은 어르신들을 찾아가 설 인사를 한다. 애들도 아버지 따라 나선다. 그러면 어르신 집에서는 미리 마련한 설음식들인 엿이며 여러가지 엿강정, 사탕, 과자, 과일을 대접한다. 그래서 애들이 따라 다니기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 전통을 이어 받아 마을 청년들이 군대에 입대했거나 외지에 갔다가 돌아오면 꼭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 가 인사드리군 한다.

 

근년에는 마을의 젊은이들이 모두 한국이나 대도시로 돈벌이 떠나고 마을에는 어르신 몇 분만 계신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고향에 돌아오면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한상 푸짐히 대접하군 한다.

 

나도 이번 기회에 어르신들을 모시고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다. 마을에서 4리쯤 떨어진 곳에 이르니 깎아지른 듯 높고도 웅장한 절벽산 아래 자리 잡은 초등학교 건물이 안겨왔다.

 

어린이들의 또박또박 글소리 울러 퍼지고 휴식시간에는 마음껏 뛰놀던 넓은 운동장, 저녁이면 하루 일을 마친 청년들이 배구를 치거나 축구를 즐기던 곳이다.

 

이 학교를 지을 때 무대까지 꾸며 놓아 청년들이 저녁이면 문화생활을 하게 하여 노래를 배우거나 춤이나 무도를 즐길 수 있었다.

 

지금은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자 학생이 없어 학교 문을 닫게 되여 학교는 개인 주택으로 되였다고 한다.

 

절벽산 아래 큰 길을 굽이돌아 얼마가지 않으니 버스정류소였다. 조양마을 들어가는 길에 들어서니 예전의 모래 길이 아스팔트길로 쭉 펼쳐져 있었고 초가집 대신 높은 담장에 둘러싸인 붉은 벽돌기와 집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는데 대문들은 굳게 닫혀 있었다. 마을에는 낯선 한족 몇 몇이 오가는 것이 보일 뿐이였다.

 

나는 먼저 김점님 할머니 댁을 찾았다. 대문에 들어서니 하얀 머리에 허리가 땅에 닿일듯 체구가 왜소한 할머니가 정기 없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시는 것이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울컥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이 분이 내가 어렸을 때 착하고 일 잘하고 이쁘기로 소문난 1등 처녀란 말인가?

 

그 할머니는 여위고 거칠어진 손으로 나의 손을 잡으며 "너 순복이구나. 이 시골에 어찌 왔노? 고맙대이" 라고 하시며 반가와 하셨다.

 

내가 찾아 온 이유를 말하자 할머니는 금시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마을 어르신들은 요양원으로, 자식 따라 한국이나 대도시로 모두 떠났다는 것이다. 혼자만 의사로 있는 막내아들과 함께 고향 마을에서 산다고 알려 주셨다.

 

나는 김점님할머니께 고향마을을 지키시느라 고생하신다고 위로의 말을 몇마디 남기고 서글픈 마음과 좀 더 일찍 왔던걸 하는 아쉬움을 안고 돌아섰다.

 

더없이 외롭고 쓸쓸하게 그처럼 그리워하던 고향마을을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고향마을은 옛보다 그 모습이 멋지게 발전했지만 그리운 얼굴들 보고 싶은 얼굴들 은 보이지 않았다. 그처럼 인정미가 넘쳐나던 고향마을은 낯설고 외롭고 적막하게 변했다. 아, 그리운 나의 옛 고향이여!

 

언제면 또 다시 옛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박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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