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아침 산책하러 나온 나는 은은하게 전해오는 라일락 꽃 향기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어디일까?
두리번 거리다가 꽃향기를 따라 갔더니 아담한 3층 한옥이 나타났는데 그 담장 밖으로 연보라빛 라일락 꽃들이 소담스레 드리워져 있었다.
얼마나 기쁜지 나는 꽃송이를 코에다 대고 심호흡을 길게 하면서 익숙하고 정겨운 라일락 꽃 향기를 만끽했다. 나의 고향 중국 하얼빈은 라일락 꽃이 특별히 많은 도시이다.
라일락 꽃은 하얼빈의 시화(市花)이다. 봄철이면 얼음 도시로 유명한 하얼빈 도처에는 라일락 꽃이 만발하여 국내외 많은 유람객들이 모여 들기도 한다. 나의 직장이었던 할빈시 아성방송국 뒷 정원에도 라일락꽃이 군락을 이룰 정도로 많아 라일락 꽃이 피어나는 계절엔 온 향기로 가득했다.
나는 잠깐 휴식할 때면 뒷 정원 라일락 꽃나무에 다가가 흐드러지게 핀 라일락 꽃 향기의 향연을 즐겼다. 순수하고 깨끗하고 황홀한 라일락 꽃의 향기는 나의 모든 근심 걱정을 털어버리게 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불협화음이랄가, 젊은 직장 동료들이 그 소담스런 라일락 꽃 가지를 마구 꺾어다가 책상위에 꽂아 놓는 것을 보면서 씁쓸하던 그 심정. 세월이 흘러 나도 퇴직하고 한국에 와 있으면서 고향에서 보지 못했던 많은 꽃들과 수목들을 보게 되었고 또한 한국의 문명과 국민들의 높은 소질을 체험하게 되었다. 주말에 어린이대공원에서 목격한 일이다.
백화가 만발한 공원에 한 젊은 아빠가 대여섯살 돼 보이는 남자애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었다. “아빠, 저 꽃 하나 가지면 안 돼요?” 남자애가 길가에 피어있는 노란 민들레 같은 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애 아빠가 하는 말. “꽃들은 눈으로만 보는 거야. 꽃을 꺾으면 아파하니깐 우린 눈으로 실컷 보고 가자.” 이 부자간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젊은 애 아빠에게 경모의 눈길을 보냈다.
내가 아성방송국을 떠난지도 어언간 10년.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굳이 라일락 꽃을 꺾어서 책상위에 꽂아 놓던 나의 젊은 직장 동료들도 이젠 많이 변했겠지? 라일락 꽃 향기를 맡으며 꽃보다 사람이 더 아름다우려면 어떤 향기가 나야 할까?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오래 지속되는 “사람의 향기”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라일락 꽃 향기같은 그런 “사람 향기”말이다. 나는 그런 향기의 소유자가 되고 싶다.
/이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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