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나는 아산시에 계시는 둘째 사촌오빠에게 전화를 드렸다. 일상적인 안부 대화가 오간후 조카 유림이의 근황을 물었더니 이미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단다.
“네? 왜 저한테 알리지 않았어요?”나는 좀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아예 결혼식을 하지 않았어, 상견례 할때 이미 혼례식을 하지 말자고 우리가 사돈 어른께 말씀 드렸거던. 애들도 전적으로 찬성하고. 그 돈을 절약해서 걔들이 가고 싶은 유럽에 가서 멋진 결혼 사진도 찍고 여행도 하고---”
“그럼 친척들이나 주변 분들이 좀 섭섭해하지 않을까요?” 인정이 많은 오빠네가 많은 주변 분들의 경조사에 안 빠지고 다닌 걸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더욱 이해가 어려웠다. “글쎄. 우린 애초부터 애경사에 뿌린 돈을 되받을 생각을 안 하고 다녔으니깐--- ”.
“옛날 부모 세대때에는 진짜 가진게 없어서 애경사가 있을 때마다 지인들이나 동네어른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 주는 걸 고맙게 생각하고 당연한 걸로 여겼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 체면 때문에 마지못해 다니는 경우가 많지.” “지금 우리나라(한국)에서 애경사는 자신의 성공여부를 과시하는 척도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단 말이야. 하객이 많아야 체면이 선다는 생각에 최대한 청첩장, 부고를 돌리지. 그니깐 청첩장을 받고 고민 할 때도 많은거야. 가자니 고작 반면지분인데 애매하고 안 가자니 앞으로 만나면 껄끄러울 것 같아 어쩔수 없이 가는거지.”
“이런 문화는 누군가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린 규식이(아들)결혼도 마찬가지로 혼례식은 안 할거다.” 알뜰하게 아주 평범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오빠네지만 예의 바르고 경위 밝은 오빠와 형님이 오늘따라 더더욱 돋보였다. “화실아. 근데 너의 아들 잔치때는 꼭 갈거니깐 알려야 한다.
넌 특별한 동생이니깐---알았지?” 1990년1월, 어머니와 함께 처음 친척방문으로 한국에 나왔을 때부터 친 여동생이 없는 오빠는 고종사촌인 나를 각별히 사랑하고 보살펴 주었는데 지금도 그 사랑이 지극하다. 오빠와 대화를 나누며 나는 오래전부터 고민해 오던 장래 아들 결혼식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올해 30살인 아들이 언젠가는 결혼을 할 것인데 결혼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나는 많은 지인들의 애경사에 다니면서 부조를 해 왔다. 장차 하나밖에 없는 아들 결혼식을 대비해서 부지런히 다녔다. 하지만 갈등도 있었다. 아들은 장가를 가도 혼례식은 하지 않고 신식으로 여행이나 다른 형식으로 갈 거니깐 신경쓰지 말라고 벌써부터 말해왔지만 엄마인 나의 입장은 좀 달랐다.
장차 어떤 사돈집을 만날지? 그 쪽에서 기어이 혼례식을 올려야 한다면 어떡하지? 그리고 솔직히 지금까지 뿌린 돈에 대한 집착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면, 나 자신도 현재 재한 동포들속에서 성행하고 있는 “계록”같은 결혼식에는 부정적이다. 결혼식은 축하해 주는 자리인데 혼례식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떠서 식사부터 챙기는 사람들이 부지기수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부조금만 내고 곧바로 식사칸으로 향해 신랑 신부의 낯도 모른다.
1차의 식사가 끝나면 2차는 노래방이다. 삼삼오오 떼를 지어 노래방에 갔다가 3차는 또다시 음식점, 여기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심지어 4차 생맥주나 차집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3차까지의 모든 비용은 혼주가 담당한다. 결혼식을 하자면 적어도 몇달전부터 이 모든 절차를 안배해야 하고 당날은 새벽부터 밤중까지 일일이 돌봐야하니 주인들은 “반주검”이 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워.” 결혼식날 혼주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동포들의 부조금도 최하가 10만원이다. 저의 한 고향 지인은 페지를 주으며 장기환자인 남편을 모시고 어렵게 살고있는데 청첩장만 받으면 심장이 떨려 죽겠단다. 페지를 열흘 주어야 겨우 부조금을 마련할 정도인데 마지못해 10만원 부조하고 돌아오면 고생이 막심하단다.
적게 부조하고 대신 식사 안 하고 돌아가려고 몇번 망설였는데 명부를 보니 다 10만원이상이어서 차마 5만원을 낼 수 없었다고 한다. 동포들은 결혼식외에도 손주 돌잔치, 환갑, 진갑, 팔순잔치 등등 명목의 청첩장을 잇달아 받는 경우도 있다.
청첩장 받는데로 다닌 사람들은 본인도 큰일 한번 치러서 본전을 뽑으려는 당연한 심리 때문에 피곤한 청첩장은 쉴새없이 돌고 도는 악순환이 되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 결혼, 각종 잔치 등 경사들과 장례식 등 대사에 다니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한다.
허례허식에 매이지 않고 “도”를 넘지 않는 즐겁고 건전한 애경사 문화는 인간관계를 돈독히하는 윤활유가 아닐까? 서로가 부담을 갖지 않는 편한 애경사 말이다. 나는 과연 석연하게 욕심을 버린 경사를 치를수 있을까?
/이화실
http://www.hmzxinwen.com/news/18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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