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까지만 해도 조선족들은 주방에 연변식장을 갖추는 것이 부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적지 않은 주부들은 언제쯤이면 우리 집에서도 연변식장을 갖출 수 있을까 하면서 없는 살림에도 한푼 두푼 모았다.
우리 집에서는 연말 수입에서 연변식장부터 구입했다.
주방엔 아직 놓을 자리를 제대로 못 정했다. 그래서 임시로 안방 가마목에 식장을 놓았다.
방안에 있는 식장은 너무 환하고 보기 좋아 놀러 오는 이웃들마다 부러워 하였다.
식장이 참 좋구먼요. 크기도 맞춤하고요. 문에 그린 꽃들도 예쁘네요. 우린 몇 년이고 연변식장을 사려 했는데 아직 못 샀어요. 모두들 한결 같이 좋은 말만 하였다.
때는 겨울 방학이라 이 날도 우리 사춘기 여자애들은 여느 때처럼 우리 집에 모여 들었다.
순복, 명자, 화식, 순녀, 용자, 매일 만나는 또래들인지라 허물없이 좋아 하였다.
이윽고 트럼프(카드놀이)를 하며 히히 하하 즐겁게 놀았다.
한참 신나게 노는데 찰카닥 소리가 나서 보니 그 곱던 식장의 한 칸 유리가 박산 났다. 놀이에 빠진 한 애가 손짓하면서 팔꿈치로 툭 친 것이 그만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모두들 놀이를 그만 두고 어떻게 하면 이번 실수를 조금이라도 미봉할 수 있을까? 의논 하였다.
다 박산난 유리 쪼각을 어떻게 붙인단 말이야. 그래도 방법을 대 보자. 테프에 유리 쪼각들을 붙이면 안 될까? 유리 밑판이 남색이니 남색 페인트로 칠 하면 좋겠는데. 너도 나도 궁리 하던 중 옆집에 사는 명자가 테이프를 가져왔다.
먼저 테이프를 안쪽에 붙이고 바깥쪽엔 유리 쪼각들을 맞추어 붙였다.
원래와 좀 근사해 졌는데 약간 세우니 유리 쪼각이 떨어지려 하였다. 하는 수 없이 테이프로 바깥 면도 또 한층 붙였다. 흰 테이프를 붙이니 그 곱던 유리문은 원 상태를 잃었다.
예쁜 색 페인트 있으면 칠 하면 어떨까? 그게 좋겠다. 우리 집에 남색 페인트 있는데 가져다 칠 해 보자. 순복이는 얼른 자기 집으로 가서 페인트를 가져다 칠 하였다.
여럿의 지혜와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원래 것과는 비길 바가 안 되지만 그래도 눈가림은 할 수 있었다.
애들은 너 엄마 돌아오면 혼나겠다고 걱정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 식사 후 나는 낮에 있었던 일들을 부모님께 아뢰였다. 연변식장 보는 순간 어머니는 다친 애는 없느냐? 하고 걱정 하셨고 아버지는 부엌 칸에 두어야 할 식장을 방 안에 두었으니 내 잘못이라고 되려 반성하셨다.
아무런 질책도 없었다는 소식에 또래들은 여느 때처럼 또 우리 집에 모여 제 멋대로 놀았다. 그때 만약 호된 욕을 먹었더라면 까맣게 잊었겠지만 부모님의 너그러운 처사에 나는 계속 양기를 펴고 지냈다.
내가 새 살림을 하면서 연변식장을 샀는데 수십년 지난 지금 세월엔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나는 어린 시절 우리의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애들한테 꾸지람 한번 하지 않는 부모님의 그 아량을 생각하면서 추억거리로 잘 간직하여 두고두고 보고 있다.
/김보옥 기자
http://www.hmzxinwen.com/news/18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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