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비급가(女婢給暇)는 세종대왕이 해산기가 있는 여자노비에게 출산 전 한달동안 복무를 면제하도록 지시하며 하신 말씀이다.
조선시대에는 사(士)·농(農)·공(工)·상(商)의 신분제도가 엄격하였는데 천민(賤民)에 속하는 노비는 전혀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노비는 물건처럼 매매가 가능하고 신분은 계속 세습되었는데 노비의 인권과 복지를 생각한다는 것은 그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철저한 신분제 사회에서 세종대왕은 “노비는 비록 천민이지만 이들 또한 하늘이 낳은 백성”이라며 천민도 신분에 상관없이 나라의 근간인 백성의 일원으로서 귀하게 여겼다.
이 당시 여자노비가 아이를 낳으면 7일간의 휴가를 주었는데 세종대왕은 세종8년 무려 100일로 출산휴가를 확대한다. 그뿐만 아니라 세종12년에는 해산에 임박하여 일을 하다가 몸이 지치면 미처 집에까지 가기 전에 아이를 낳는 경우가 있다하여 출산 전 30일간의 복무를 면제하여 준다.
이후에도 세종16년에는 “남편에게 휴가를 주지 않아 부부가 서로 돕는 일에 어긋나고 돌보아 줄 사람이 없어 목숨을 잃은 경우가 있어 너무 가엽다”며 노비의 남편에게도 30일의 휴가를 주도록 지시한다.
신하들은 사대부에게는 없는 출산휴가를 어찌 하찮은 노비들에게 주느냐며 반대하지만 세종대왕은 “그대들의 집에는 그대들을 대신해 부인을 보살펴 줄 다른 이가 많지 않은가”라며 제도화하도록 지시하였다.
세종대왕은 “임금의 직책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라며 늘 하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노비, 아동, 여성,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보살피는 정책을 펼쳤다. 세종대왕은 아이를 버리는 자들은 엄벌하였으며 고아를 입양하는 일에 있어서는 적극적으로 권장하였다. “버려진 고아들에게 특히 겨울철에 먹을 것을 넉넉히 공급하도록 하고 제생원(서민 의료기관)에서 항상 관리하도록 하라(세종17년)”고 지시하였다.
또한 세종대왕은 노인을 우대하는 정책을 펼쳤는데 “나이가 많은 노인을 공경해야 효도풍속이 두터워진다”며 80세를 넘으면 신분에 상관없이 정기적으로 경로잔치를 베풀어 주었으며 9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는 신분에 상관없이 쌀 2석(약288㎏)을 하사하였다.
그리고 10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는 노비의 경우 면천의 특권을 주었으며 명예직이지만 벼슬도 제수하였다. 세종대왕은 장애인복지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장애인의 직업창출(관현악기를 다루는 시각장애인 선발 등)에 도움을 주었으며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곡식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여성에 대한 배려정책으로 세종대왕은 부왕 태종대에 서울 한양에만 있었던 의녀제도를 전국적으로 확대하였다.
여성들이 몸이 아프거나 위독한데도 남자의사(男醫)에게 살 보이는 것을 꺼려 병이 더욱 악화되거나 죽는 일이 빈번해지자 전국 관아의 노비 중에서 젊고 영리한 자를 선발하여 제생원에서 가르쳐 지방에 파견하여 여성들을 치료토록 하였다.
15세기의 어느 나라에도 이와 같은 복지제도는 찾아 볼 수 없다.
세종대왕의 이러한 복지정책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와 비교해 보아도 결코 뒤지지 않는 시대를 앞서가는 정책이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정책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세종대왕의 백성을 향한 사랑이고 여민(與民)이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실천하는 역지사지의 마음일 것이다.
/전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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